禪과 현대미술-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

▲ 로버트 스미스슨의 작품 〈Mirage No.1, 1969/70〉은 9개의 거울을 각각 크기가 다르게 해서 벽면에 붙였다. 이를 통해 공간에 보이는 무수한 변화를 거울을 통해 보여준다.
화사한 색채들이 보는 사람의 시각을 자극하는 계절이다. 각각의 색상들이 어울려 하나의 커다란 예술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장 창의적이며 한순간도 동일하지 않은 움직이는 작품이다.

예술에 자연 추가한 대지 예술가
자연 속 시간의 흐름을 이미지화
9개의 거울 배치한 작품 ‘신기루’
공간 속 무수한 변화 묵묵히 보여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 1938~1973, 미국)은 자연의 커다란 변화를 보며 자신의 예술에 자연을 추가한다. 대지예술가로 잘 알려진 스미스슨은 거대한 자연 속에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들을 만들어 놓는다.

이 작품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처음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 가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다시 자연 속으로 돌아가 그 흔적을 발견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는 왜 이러한 거대한 작품을 하는가?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며 작품을 가격으로 산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행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낸다. 선(禪)에서 이야기하는 무상(無常)이치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 어떠한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특히 자연은 순환하는 가운데 변화하며 시간의 흐름을 흔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항상 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고 이를 작품으로 수용하는 스미스슨은 젊은 나이에 자신의 작품세계 즉 예술성을 인정받는다. 당시 미국 사회에 팝아트가 유행을 하며 ‘예술=돈’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며 많은 예술가들이 돈이 안 되는 예술을 멀리 할 때이기 때문에 그의 이러한 행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자신이 설정한 예술적 개념을 정립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그 중의 하나가 자신이 집필한 에세이 〈Entropy and the New Monuments〉이다. ‘엔트로피와 새로운 기념물’로 번역되는 이 에세이는 인간이 생성하고 만들어낸 것들이 어떠한 물리학적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이 행하는 예술적 행위가 물리학적 또는 과학적인 관점과는 다른 차원의 단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해안가에 만들어진 달팽이 모양의 나선형들이 지구와 달의 간격차이에 의하여 물 속으로 사라지기도하며 변화하는 모습들을 만들어 낸다. 이를 통하여 자연의 변화는 예측이 가능하나 그 형상은 변화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논리처럼 생겨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단지 변화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그에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아가는 철학적, 미학적 토대가 되었다.

비슷한 개념들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가 자주 사용한 재료 중의 하나가 거울이다. 그는 실내공간에서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기 위하여 자연에서 가져온 흙과 돌덩어리에 거울을 배치함으로써 작가의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Mirage No.1, 1969/70〉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신기루’로 번역할 수 있는데 아홉 개의 거울을 각각 크기가 다르게 하여 벽면에 붙여져 있다. 벽면에 설치된 거울은 바닥을 비추고 있다. 거울의 크기에 따라서 보여주는 바닥의 크기도 각각 다르다. 바닥에서 일어나는 무수히 많은 변화들을 거울은 묵묵히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 앞에서 일어나는 변화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줌으로 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변화를 인지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하지만 그 변화하는 속도는 각각의 경우에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이 쉽지 않을 수가 있다. 이러한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진 스미스슨은 거울을 등장시켜 변화를 인지하는 훈련을 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거울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져다주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일상의 삶속에서 거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일상적인 도구이며 자신의 외모나 스타일을 만드는데 유용한 도구이다. 하지만 외형을 가꾸는 거울을 매일 또는 자주 보면서 마음을 가꾸는 거울은 하루에 몇 번이나 보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여 보자.

시시각각 변화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은 우리의 주변에 무수히 많이 있다. 자연에 가면 많은 다양한 나무들이 화려한 색채를 뽐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또한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자연의 모습은 커다란 화면에 그려진 그림처럼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아름다움과 변화들은 모두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왜 그럴까?

나무들은 생존을 위하여 자신의 일부분인 나뭇잎을 각각의 화려한 색으로 변화시키며 결국에는 모두 버린다. 그 속에는 치열한 생존의 법칙이 숨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보는 인간들은 그 화려함에 심취하여 색채의 아름다움만 보게 되며 또한 동일한 대상과 색채를 본다고 하여도 느끼는 강도나 감정은 다르다.

‘자신이 변화해야 세상이 변화한다’는 것을 그는 마음의 거울이라는 작품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의 생존법칙에 의하여 적정한 시기에 변화하며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켜 나아간다. 모든 것을 버림으로 해서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주말에 필자가 시간을 내어 작은 암자에 갔는데 법당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허공 속으로 자신의 가지들을 키워 나아가고 있었다. 이것을 보면서 만약에 저 허공이 비어있지 않다면 나뭇가지는 크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무가 실내공간에 있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떠한가? 허공이 비어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수용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관념이나 사상, 철학, 종교, 문화 등 그 어떠한 것으로도 제약할 수 없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스미스슨은 자신의 예술의 핵심으로 진공묘유를 선택하였다고 보인다.

예술가들이 늘 고뇌하는 창의성도 진공묘유의 이치를 어느 정도 알게 되면 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아 시간이 부족할 정도이다. 학생들이 가끔 이러한 질문을 하곤 한다. 지금까지 미술사를 보면 너무나 많은 예술가들이 너무나 많은 다양한 예술을 해서 자신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고민을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 역시 대학시절에 이러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이럴 때 필자는 “진공묘유의 이치를 설명하며 지금까지 어떠한 예술가도 동일한 작품을 만든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변화하기 때문이며 재료와 기법에서 유사성은 있을 수 있으나 동일한 개념은 없기 때문이다.

즉 다시 말해 각각의 예술가들이 생각하는 범주가 다르고 그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인데 그 근원적 이유는 모든 것이 비어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많은 예술가들이 만들어 놓은 다양한 개념들을 통하여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치 커다란 나무가 여러 갈래의 가지들이 있으나 허공을 향하여 계속해서 커가듯이 다른 가지가 있는 것은 아무런 방해요소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또한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선사들이 자신의 깨달은 바를 어록으로 남겨놓았는데 똑같은 표현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선사들이 깨달은 바는 둘이 아니다. 선사들은 자신이 수행하며 깨달은 바를 자신이 경험한 공간속에서 새롭게 규정하며 그 이치를 찾아가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금도 많은 수행자들이 안거에 들어가 수행을 하며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그 이치를 찾아가는 것이다.

스미스슨의 이 거울 작품은 바로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규정하는 규범과 같은 것이다. 칸트는 자신의 미학에서 예술가(천재)는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새로운 규범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 버려야 한다. 자신이 인식하고 경험한 그 모든 생각들을 모두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개념을 만들 수 가 없기 때문이다.

벽면에 설치된 거울이 만약에 다른 색채로 칠하여져 있었다면 거울은 더 이상 새로운 변화를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거울은 비어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수용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밤하늘에 떠있는 달이 일천 강에 비추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듯이 거울은 달은 비추기 위한 강과 같은 것이다. 자신의 존재는 항상 어디에나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주는 것이다.

스미스슨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지미술가로 알고 있으나 필자는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특성들이 개념미술, 미니멀미술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대지는 그에게 하나의 커다란 거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대지의 변화된 모습들을 만들어 가며 시간이 흐르는 것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는 수행자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비행기 사고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의 삶은 마치 자신의 미래를 예견한 것처럼 홀연히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놓은 작품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술에 대한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 보여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기존의 예술이 지향한 다양한 가치들과 더불어 예술의 영역을 확장시키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마음에 거울을 보는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 내며 자신을 비워가던 그의 모습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색채의 자연 변화를 보면서 마음의 거울을 볼 수 있는 좋은 계절이다. 자연을 비롯한 모든 대상과 사물은 모두가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 거울은 언제나 비어 있어야 한다. 어제 본 모습이 남아 있으면 오늘은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새롭게 자신의 삶의 가치를 규정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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