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미 前 한국심리학회장

참불선원 인문학강좌불교와 마음의 치유

사람들은 감정의 덩어리를 겪으며 아파하고, 방황한다. 현대인들은 마음이 아플 때 상담가를 찾아가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이들의 치료법에 의존한다. 그러나 정작 상담가는 치료 과정서 내담자의 진면목이 스스로를 치료할 때가 많다며 놀라워한다. 서양이론이 알려주지 않는 많은 영역의 해답을 불교 가르침서 찾았다는 이규미 한국심리학회장. 그는 117일 서울 참불선원 인문학강좌서 내담자가 상담을 받아도 언제든 문제 재발 가능성이 있는 이유는 서양 의학이 무아를 몰랐기 때문이라며 한국서 불교적 인간관을 반영한 새로운 상담심리학이 탄생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정리=이승희 기자

▲ 이규미 아주대학교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불교심리치료학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으며, 前 한국발달지원학회장, 前 교육부ㆍ여성가족부 정책 자문위원, 前 한국발달지원학회장을 역임했다. 2014~5년 한국심리학회장을 맡은 바 있다.

서양의학, 자아 통한 심리치료
자아 있는 한 고통 되풀이
無我 진면목 만나야 해결돼
불교 가르침 쉽게 전해야

떠오르는 불교 심리학
저는 한 때 금강경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공공연하게 금강경 읽기 전과 후의 나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상담심리학자로서 금강경이 주는 치유력에 주목했고, 상담심리학 분야에 불교를 접목할 수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상담심리학에선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다루는지 말해볼까 합니다. 그러면서 불교적 가르침과 비슷한 점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스님들은 불교가 심리학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맞는 말 같습니다. 스님들이 상담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중생상을 가진 분들께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대중들이 불교에 접근하기 힘들어하니, 현재 심리학에선 어떻게 사람들 마음에 다가가는지 관심을 기울이시는 거죠. 심리학 중에서도 사람들 문제에 직접 접근해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심리학에서 내담자(client)들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학문적 내담자의 정의는 돈을 내고 상담을 받고자 하는 적극적 자세의 사람들이지만 실제 현장에선 끌려온 사람들과 오히려 찾아가야 이야기 해볼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스님들의 고민이 깊겠죠. 그러니 저도 어떤 때, 어떤 방법의 도움을 드려야 할지 항상 고민합니다.

현재 미국에서 많이 쓰는 치료 방법을 알려드리기도 합니다. 미국에선 요즘 불교심리학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굉장한 실용주의자들입니다. 불교식 심리학도 현실적인 상담법 위주로 발달했습니다.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마음챙김 명상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이 한 예입니다. 미국서 나온 이런 방법들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져 한국에서 오히려 서구 불교를 수입하기에 이릅니다. MBSR 창시자 존 카밧진 메사추세츠대 의학부 명예교수가 2012년 방한해 강연했을 때 저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세계적 불교심리학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기존 스님들의 강연을 들어도 느낀 바가 많지만, 스님들은 공부가 워낙 깊다보니 쉽고 재밌게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대중들이 다가가기엔 수준이 높아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기 쉽지 않죠.

그러면 제 전공분야인 상담심리학에선 고통과 상처를 어떻게 다루며, 또 불교적 가르침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볼까요. 한동안 불교는 인생은 고통이란 점만 무조건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불자가 아닌 사람들은 얼핏 불교가 비관적이고 비판적이라고 오해했죠.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불자들은 부처님이 행복을 찾아 출가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원초적 고통에 맞서 해법을 찾기 위한 이고득락(離苦得樂, 괴로움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음)의 종교가 불교입니다. 간단히 말해 불교는 고통 해법에 관한 종교입니다.

상담가, 내담자 眞如 캐내야
상담심리학은 괴로움 해결에 대해 불교와 같은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안정된 삶과 잠재력 개발, 행복과 긍정적 변화를 추구하는 등 공통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당면한 과제가 있거나 마음이 불안할 때 심리 상담가를 찾아옵니다. 미국 심리학자 칼 로저스가 사람들이 긍정을 원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고통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듯이 말입니다. 괴로움이 없다면 삶에 안주하려 할 겁니다. 괴로움 없인 긍정적 에너지를 끌어내고 새로운 삶의 형태를 살고 싶단 생각을 안 하니까요. 상담이 다루는 사람들은 발달적응관계위기실존 등 여러 문제서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갱년기 우울증, 상급학교 진학 후 부적응, 성장한 자녀들이 떠난 뒤 겪는 빈집증후근이 대표적입니다.

상담심리학에선 사람사물사건 등서 발생하는 심리적 작용을 분석합니다. 그러면서 과거현재미래에 대해 다차원적 접근법으로 다가갑니다. 인간은 과거 미해결 과제로 인해 고착, 원한, 정형화된 행동 등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남녀 관계에서 항상 상대방이 떠날 거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사람은 상대방의 호의적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 거부하게 됩니다. 결국 상대방이 떠나갔을 때 거 봐. 내말이 맞잖아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어떤 기억 때문에 현재를 살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미래에 대한 바람이나 불안이 커도 현재에 충실하지 못합니다. 부인왜곡회피 등을 행동화하면 현재와 접촉이 어렵지요. 건강한 사람은 현재를 사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를 살지 못하고 부정적 감정에 갇힌 이들은 행동 레퍼토리 가짓수가 빈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에 가서 적응을 못하는 아이가 왜 적응을 잘못하는지 관찰해봤습니다. 사교적인 아이의 경우 처음 교실에 들어서면 주변 친구들에게 어디살아?’, ‘누구 좋아해?’ 하면서 말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누가 말을 붙여주길 바라죠.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행동 레퍼토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화가 나면 주먹부터 나가는 사람이 있죠? 화가 났을 때 이 화를 조절하는 전략이 몇 가지 있냐를 따져봤을 때 주먹을 휘두르는 것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상담자는 답답함에 괴로워하는 이들의 감정을 해소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감정의 덩어리를 경험합니다. 하나, 하나의 감정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은 분노와 슬픔의 감정을 세세히 보지 못하고 덩어리로 가지고 있다가 다른 곳에서 표출합니다. 이들의 감정을 알아주고, 사고를 전환시켜 준다면 행동의 변화를 이끌 수 있습니다.

이 때 상담자는 상담 기술로 내담자를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내담자가 갖고 있는 본성을 발현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상담을 진행하다보면 의도와는 무관한 내담자만의 고유 영역들로부터 자발적인 성장을 이루는 모습을 많이 목격하곤 합니다. 내담자의 진여가 드러나는 순간, 부처님이 모든 사람은 불성을 지닌 존재라고 말한 이유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상담의 한계서 불교를 만나다
서양 과학에선 나를 너와 구분되는 개성적 존재로 정의합니다. 스위스 정신의학자 융은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하는 심리적인 정체성인 ‘Self’가 개성화(individuation)를 주도한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불교에서 라는 존재는 오온()의 집합일 뿐, 독특한 본성은 없다고 봤습니다. 사실 서양 심리학의 한계는 이런 구분에서 나옵니다. 개성화된 존재는 삼라만상과 연결할 수 없지요. 그래서 불교적 심리학이 필요한 겁니다.

이동식 한국정신치료학회장과 융 정신심리학 권위자 가와이 하야오는 십우도(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그린 선화)로 견성하는 과정을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같은 방식으로 십우도를 해석해 봤습니다.  

첫 번째, 심우(尋牛)는 사람이 자신을 돌아볼 필요성을 느끼는 단계입니다. 불안을 느끼며 해결책을 찾고자 합니다.

두 번째, 견적(見跡) 단계서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자신이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느낍니다.

세 번째, 견우(見牛)는 자신에 대한 인식과 작은 통찰들을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네 번째, 득우(得牛)는 상담자가 보다 도전적인 기술로 내담자의 통찰을 촉진하고, 내담자는 이 과정에 동참해 자신에 대해 탐구함을 일컫습니다.

다섯 번째, 목우(牧牛)는 자신의 문제 해결 지점에 어느 정도 도달한 경지입니다.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자기지도력이 나타나는 과정을 경험합니다.

여섯 번째, 기우귀가(騎牛歸歌)는 상담 종결점입니다. 내담자는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상담자 없이도 홀로서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 재발 가능성 또한 여전히 존재합니다.

일곱 번째, 망우재인(忘牛在人)은 갈등은 해결됐으나 무아를 이루지 못한 경지입니다. 이 단계서 이동식 박사가 지적한 서양정신분석학의 한계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내담자가 무아 단계서 자신을 비우지 못했기에 현상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비우는 것은 가장 힘든 일이며, 갈등 해결 상태서 만족하지 말고 정진해야 공()에 이릅니다.

여덟 번째, 인우구망(人牛俱忘)은 공에 이른 상태를, 아홉 번째, 반본환원(反本還源)은 본래 진면목을 바라보는 단계를, 마지막 열 번째, 입전수수(入廛垂手)는 진면목을 획득한 개인이 사회로 나가 제도를 펼치라는 가르침입니다.

서양 상담은 무아까지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본래 진면목까지 확인하려면 종교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는 단지 치유를 넘어 세상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를 지니게 도와줍니다. 불교적 인간관은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어렵고, 언어로도 설명하기 힘든 인간의 정신적 에너지를 담아두는 힘을 길러줍니다. 이 때문에 불교적 가르침과 수행이 주는 치유의 힘원리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과 더불어서 심리학적 접근의 한계를 불교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전문가들이 불교적 가르침을 보다 쉽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절실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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