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해인사 승가대학원장 원철 스님

참불선원 인문학강좌인생과 종교, 이 시대의 철학에세이

모난 돌멩이는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둥글게 변한다. 사람도 나이가 듦에 따라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알고,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듯 결코 쉽지 않다. 나를 변화시켜 사회를 맑히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해인사 승가대학원장 원철 스님은 1031일 서울 참불선원 인문학강좌서 여행과 다독을 통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강조했다. 단순히 떠남과 책을 많이 읽는 게 아니다. 여행서 겪는 하심의 과정과 다독에서 얻는 넓은 시야를 의미한다. 정리=이승희 기자

▲ 원철 스님은… 법전 스님을 은사로 1987년 수계했다. 해인사 승가대학 교수, 월간 해인 편집장,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총무원 기획국장ㆍ재정국장, 교육원 불학연구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장을 맡고 있다.

"부처님은 한 나무 그늘서 3일 이상 머물지 말라 하셨다. 오래 머물면 애착과 집착이 생기고 타성에 젖어 발전에 저해되기 때문이다."

보편타당한 불교적 인문학
인문학은 사람답게 살자는 외침입니다. 인간의 기능만 강조되고, 인간성은 사라진 산업사회에서 부속물로 100년 넘게 살아온 사람들이 존재에 대한 자각을 하게 됩니다. 산업화 사회에선 휴가도 칼퇴(정시 퇴근)도 부담스러운 삶을 살다보니 사람답게 살기 위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다가 현재, 사람들은 기술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선 창의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과거 산업사회의 양적 성장에서 한계를 느끼고 기능을 향상시키려 노력합니다. 이를 위해 이제까지 없던 기능을 만들어야 하니 창조력이 필요한 겁니다. 창조란 모든 전제 없이 제로(0) 베이스서 출발하거나 기존의 것을 융합해서 얻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명상을 하며 머릿속을 말끔히 백지 상태로 만들고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참선, 명상 등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바탕을 마련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에 대기업에서 명상교육을 실시하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불교는 믿을만한 가르침인지 따져볼까요? 불교가 펼치는 논리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다룬 문화권 안에서도 맞는 말인지 생각해보면 됩니다. 학자들은 여태까지 3000개 이상의 신생 종교들이 생겼다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와 인도중국한국일본동남아시아서구권까지 시방세계의 광대한 지역에서 보편성과 정당성을 획득한 종교입니다.

2500년간 불교적 인문학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도 대중성에 있습니다. 많은 이웃종교인들이 절을 찾거나, 불교적 가르침을 배우고 돌아갑니다. 사회적으로도 불교식 용어가 많이 퍼졌습니다. 사대천왕이란 단어만 해도, ‘요리계 사대천왕’, ‘게임계 사대천왕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쓰고 있습니다.

사회 전영역서 인문학적 소양을 기초로 판단을 내리는 분야에서 불교적 가치는 활약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 예로 의료산업에서 심심찮게 나타나는 기술과 의료윤리 사이의 판단을 꼽을 수 있습니다. 과거 치료적 의료에서 요즘엔 예뻐지는 기술과 장기 기증, 존엄사 등 문제가 커지면서 병원윤리위원회가 인문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곤 합니다.

바야흐로 불교 가르침을 인문학적으로 환원하고 보급하는 것이 화두인 세상입니다. 모든 생물에 불성이 있단 가르침은 불교적 인문학의 큰 전제입니다. 불교 경전, 선사어록, 명상참선법 등 인문학적 가르침을 널리 보급할 수 있는 불교 우호적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행, 下心으로 겸손해지자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불교 경전을 몇 권 읽었다고 해서 스스로 바뀌던가요? 몇 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 생긴 습관과 업이 있는데 쉽게 바뀌지 않죠. 지난 100년 동안 높이빨리싸게방식이 몸에 익었습니다. 사회 전체가 쌓은 업에서 인문학이 금방 효과를 볼 거란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그냥 두면 나와 우리 사회의 손해가 됩니다. 우리 자신의 모든 문제를 남에게 전가하면 무엇도 해결될 수 없습니다. 정치인언론인기업인종교인에게 의존하지 말고 내가 나를 바꿔야 합니다. 각성된 개인의 집합이 사회와 국가를 이룹니다.

저는 국가란 경영하기 쉬운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직하게 잘하는 사람에겐 상을, 잘못하는 사람은 죗값을 치르게 하면 되니까요. 회사 경영도 마찬가지로 실적이 좋은 사람에겐 포상을, 그렇지 않으면 내보낼 수 있겠죠. 반면 가정 경영은 정말 어렵습니다. 모든 구성원들을 만족시켜야 하고, 잘못했다고 징벌을 내리거나 가족에서 제외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입니다. 결국 한 가정의 가장이 가장 인문학적인 경영을 해야 합니다. 또 가정을 경영하는 방식처럼 회사도, 나라도 운영한다면 기업인들이나 정치인들은 존경을 받겠죠. 인문학적 삶으로 내 인생관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바꾸기 위한 방법을 많이 연구했습니다. 불교 경전과 인문학 책들을 섭렵하다보니 접점이 보이고 방향이 잡혔습니다. 그러면서 거창한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사소한 깨달음도 중요하단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행동들이어야 남에게도 쉽게 들려줄 수 있을 테니까요.

나를 바꾸기 위해선 첫 번째로 여행을 많이 해야 합니다. 요즘 여행사를 통해 가는 여행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고전적 여행법은 내가 있는 곳에서 단순히 떠나는 것을 일컫습니다. 대표적으로 서유기속 현장법사를 떠올리면 됩니다. 현장법사는 당나라의 가장 큰 지식인으로서 국가적 중요 인물입니다. 좋은 사찰 환경에서 지내던 현장법사는 한어 번역이 정확한지 확인하고픈 마음에 인도로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났습니다. 나를 진화시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여행인 겁니다.

여행을 떠나면 하심(下心)을 통해 무아심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행사에서 돈을 쓰는 관광객은 갑()입니다. 그러나 여행객이라면 을()의 위치로 항상 먹을거리, 잠 잘 장소 등을 고민해야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내가 직접 해결하면서 하심하고, 나를 버리는 무아를 경험하는 겁니다.

또한 세상인심이 각양각색이란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한 것들이 다른 이들에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법당에 들어설 때 양말을 신어야 예의지만, 동남아시아 사찰에 가보니 꼭 양말을 벗어야 하더군요. 그 사실을 알고 나니 환경이 바뀌면 옳다는 것들도 달라진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옮겨 다니는 것은 자생력을 높입니다. 부처님은 한 나무 그늘에 3일 이상 머물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래 머물면 나무 그늘에 다른 누군가가 왔을 때 침해 받았단 생각에 기분이 나빠집니다. 나무 그늘에 애착과 집착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한 자리에선 누구라도 타성에 젖어 발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물론 바쁜 현대 사회에서 항상 옮겨 다니기란 쉽지 않습니다. 대신 집 안 가구 배치를 새롭게 하거나, 1000일 기도를 100일씩 10번 하는 등 행동패턴을 바꿔보면 도움이 됩니다. 조금씩 바꿔 가다보면 큰 변화에 이를 겁니다.

넓은 시야로 나를 업그레이드
두 번째 변화의 방법은 다독(多讀)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이나 신문 페이지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보다보면 내 관심사와 접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흥미를 붙여 조금씩 영역을 넓혀 가다보면 사물을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예를 들면 사찰을 지키는 사천왕도 새롭게 볼 수 있습니다. 수미산 북방을 수호하며 부처님 법문을 항상 듣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을 보고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많이 듣는 게 중요하다는 해석을 내려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주변에 관심을 기울여 많이 듣는 게 힘이 된다는 교훈을 느껴야 합니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서방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을 보고 다양한 양상을 동시에 보면서 꼭 나만 맞는 게 아닐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견들을 골고루 살피고 서로 양보하는 태도를 갖추는 게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에 완벽히 합의를 이끌어 낼 순 없어도 합의점을 위해 상대를 이해하는 태도는 독서를 통해 기른 넓은 시각에서 가능합니다. IS 같은 근본주의자들이 위험한 이유는 자기 것만 옳은 줄 아는 우물 안 개구리식 태도 때문입니다. 많이 보면 비교하는 능력이 생기고, 비교하면서 정견이 나옵니다.

그런데 주의할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책을 무조건 많이 읽으면 좋다고 비슷한 책만 보면 오히려 아집이 늘어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 변화를 싫어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문화지체현상이 벌어지게 되죠. 배우지 않으려드니 젊은이들과 소통이 안 돼 점점 멀어집니다. 많이 보고 많이 들어야 하는 세상에서 내 자신에 한계를 씌웁니다.

그러나 세상의 환경이 바뀌면 이에 맞춘 새 논리도 개발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지 않으면 창조는 불가능할 겁니다. 중국 은나라 탕왕은 세숫대야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고 적고 매일 새로워지고자 자기세뇌를 했습니다.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탕왕의 열망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늘 듣던 이야기도 새롭게 들어야 합니다. 나의 변화는 곧 내 가정의 변화이고, 이어서 사회나라세상을 변하게 할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세상이 변하는 데 동참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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