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을까? 上

▲ 그림-강병호
찬솔이는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화장실에 앉은 지 20분이나 지났는데도 똥은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마지막으로 성공한 것이 사흘 전이었다. 거의 일주일 만에 눈 똥이었는데, 토끼 똥처럼 작고 동글동글한 똥 세 개가 퐁퐁퐁 떨어지고는 끝이었다. 배를 누르고 쥐어짜면서 힘겹게 눈 똥이 겨우 세 톨이라니 정말 실망스러웠다.

찬솔이는 두 손을 겹쳐서 꾹꾹 누르며 시계방향으로 배를 쓸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똥을 눠야 했다. 오늘은 과학실험이 있는 날이고, 운 좋게도 희주랑 같은 조가 됐다. 희주 옆에 앉아서 지독한 방귀를 뀌어댈 수는 없었다.

변비의 가장 심한 고통은 방귀였다. 배가 빵빵해지는 느낌이라든지, 똥을 누고 나서도 똥이 마려운 것 같은 잔변감이라든지, 움직일 때마다 배가 콕콕 쑤시는 통증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며칠 동안 똥을 누지 못하면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독가스를 뿜어내게 된다.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찬솔이는 자기 자신이 지독하게 싫어졌다. 찬솔이가 뀐 게 아니라고 아무리 발뺌을 해도 아이들은 믿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지독한 독가스를 뿜어내는 사람이 찬솔이 말고는 없다는 사실을.

, 나온다!’

찬솔이는 기쁨에 들떠 열심히 배를 문지르고 쥐어짰다. 실망스럽게도 그것은 방귀였다. 부우우우우우욱. 참으로 길고 우렁찬 소리를 내며 방귀가 뿜어져 나왔다. 찬솔이는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는 서둘러 화장실을 나왔다.

찬솔이가 나오자마자 은솔이 누나가 다급하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 박찬솔!”

누나가 비명을 질렀다.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다며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쌤통이었다. 독가스가 항상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박찬솔!”

찬솔이가 화들짝 놀라 젓가락질을 멈췄다. 엄마가 이름 앞에 성을 붙여 부르면 그건 화가 좀 났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눈썹 사이에 주름 세 개가 선명하게 잡혀 있었다. 찬솔이는 밥에 든 검은 콩을 골라내 그걸로 ‘NO’라는 글씨를 만들고 있었고, 글씨가 막 완성되려는 순간에 콩 하나가 부족해서 누나의 밥그릇에 있는 콩을 집어 올리던 중이었다.

음식으로 장난치면 못써. 그 콩 네가 다 먹을 거지?”

엄마. 밥에 들어있는 콩은 정말 싫다고요.”

찬솔이는 두부도 잘 먹고, 두유도 좋아했지만, 밥에 들어있는 콩은 끔찍하게 싫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비린 냄새가 나서 뱃속이 울렁거렸다.

난 고소해서 좋던데.”

누나가 얄밉게 끼어들었다.

그렇게 좋으면 누나가 다 먹든지.”

누나가 혀를 쏙 내밀어 메롱을 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어쩜 저렇게 얄미울까.

그래도 오늘 아침 밥상은 마음에 들었다. 아빠 생일이라서 고기반찬이 잔뜩 올라왔으니까. 고기 찬성. 채소 반대. 찬솔이가 식탁 위에서 항상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찬솔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갈비찜이었다. 찬솔이는 혀로 양념을 핥은 갈비 다섯 조각을 앞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 너 뭐하는 거야?”

누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하긴. 내 갈비에 침 발라놓는 거지.”

너 또 지난번처럼 남기기만 해 봐.”

아유, 걱정을 마셔.”

말은 그렇게 해놓고 끝내 한 조각을 남겼다. 불고기며 잡채며 이것저것 먹다 보니 배가 불러서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었다.

찬솔아. 이렇게 침 발라놓고 먹지 않으면 아깝게 버려야 하잖니.”

엄마가 말했다.

미안해요. 엄마. 다음부터는 꼭 다 먹을게요. 더 먹으면 진짜 배가 터질 것 같다고요. 오늘은 온종일 소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지낼게요.”

찬솔이가 엄마의 뺨에 입을 맞추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볼뽀뽀는 엄마가 더 이상 잔소리를 못 하게 하는 최고의 방패였다. 자주 음식을 남기는 찬솔이에게 엄마는 말했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은 다른 생명에게 빚을 지는 거라고.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은 한 존재의 생명을 먹는 거라고. 그러니 늘 고마운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고.

찬솔이가 가방을 멘 채 베란다로 갔다. 철창 우리 안에 있는 쪼꼬미가 찬솔이를 보고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머리 나쁜 사람을 닭대가리라고 하는 건 잘못된 비유다. 쪼꼬미는 정말 똑똑했다. 식구들 얼굴을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면 반갑게 달려왔다. 찬솔이가 다가가면 먹이를 주러 온 건지, 인사를 하려는 건지, 심심하니까 놀아달라는 건지 금세 알아차렸다.

쪼꼬미야, 오빠 학교 다녀올게. 오후엔 꼭 산책가자. 약속해.”

쪼꼬미가 산책이라는 말을 알아듣고 꼬꼬꼬 대답했다. 산책은 쪼꼬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노란 기장쌀 보다도, 말린 지렁이 보다도 더.

쪼꼬미가 처음 집에 왔을 때, 엄마와 아빠는 서로 다른 이유로 걱정했다. 아빠는 초등학교 앞에서 사 온 병아리는 병에 걸리기 쉬워 잘 죽는다고 했다. 귀여운 병아리가 죽으면 찬솔이가 무척 슬플 거라고 했다. 엄마는 병아리가 엄청난 속도로 쑥쑥 큰다고 했다. 몇 달만 지나면 커다란 수탉(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는 모두 수컷이라고 했다)이 되어 새벽마다 꼬끼오~ 할텐데, 아파트에서 그런 닭을 키우면 이웃들이 항의할 거라고 했다.

엄마 아빠의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쪼꼬미는 죽지 않고 쑥쑥 컸다. 한 달 만에 보송보송한 솜털이 빠지고 얼룩덜룩한 깃털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을이 되자 완연한 닭의 모습을 갖추었다. 쪼꼬미에게는 길고 화려한 꽁지깃이 나오지 않았다. 억센 며느리발톱도 나오지 않았다. 머리에 난 벼슬은 뾰족뾰족 귀여웠고, 꼬끼오 하고 우는 대신 작고 귀여운 소리로 꼬꼬꼬 하고 말했다. 찬솔이의 예상대로 쪼꼬미는 암탉이었다.

쪼꼬미가 커갈수록 철창 우리는 비좁아갔다. 좁은 우리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불쌍해서 베란다에 풀어줬지만, 온 사방에 똥을 싸고 다녀 엄마가 다시 우리에 넣어놓았다. 대신 찬솔이가 산책을 시켜줬다. 강아지에게 해주는 어깨끈을 두르고 산책로에 나가면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어떤 아이들은 쪼꼬미를 보고 무섭고 징그럽다고 말했지만, 찬솔이에게 쪼꼬미는 그 아이들이 데리고 나온 강아지보다 훨씬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산책을 시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 일이 많았다. 학원도 다녀와야 하고 숙제도 해야 했다. 무엇보다 놀고 싶은 마음에 산책이 귀찮아졌다. 마지막으로 산책한 것이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미안해. 쪼꼬미야. 오늘은 꼭 같이 산책하러 가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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