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쪽방촌도우미봉사회

▲ 사단법인 쪽방촌도우미봉사회가 10월 20일 제16회 쪽방주민위안잔치를 개최한 가운데, 이날 조계사붓다맘, 보현의집, 해군 통해사, 대관음사불교대학 등 소속 불자 40여명이 봉사행을 펼쳤다.

1999쪽방봉사활동 공식 시작
사회 곳곳서 자비행 펼치던
박부득 팀장, 김윤석 경위 만나
파출소 옥상서 17년 급식 나눔
정기 후원 없지만 전국서 재료 보시

 

친구 따라 불국토 가다
연례행사 때마다 많은 봉사자 필요
좋은 일은 함께불자들 모여
대관음사·보현의집 등서 동참
많은 스님들도 함께해주길

 

변변한 공간도, 정기적인 후원도 없이 18년 간 나보다 어려운 이웃 돕길 주저 말라는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해 온 이들이 있다. 쪽방촌도우미봉사회다. 건물 옥상 임시천막, 가건물 등서 근근이 급식 조리를 이어왔지만 단 한 번도 그만해야겠다생각한 적은 없다.

아무 욕심 없으니 제발 쪽방촌 주민들을 계속 도울 수 있게만 해달라는 게 쪽방촌도우미봉사회 박부득 팀장의 간절한 바람이다. 사회 가장 외진 곳서 묵묵히 자비행을 펼쳐온 그들을 만났다.

 

국수 한 그릇서 오간 사람사이
오피스텔과 백화점이 즐비한 영등포 시가지.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로 24시간 다망하다. 최근엔 뉴타운이란 이름 아래 재개발사업이 가속화되며 투자지역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쪽방촌 주민들에겐 그저 먼 나라 이야기.

영등포역 6번 출구를 나와 왼쪽 길을 따라 걸으면 쪽방촌 초입에 들어선다. 그저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면 될 것을 마을 입구를 알리는 청소년 출입금지구역이란 팻말 아래서 괜스레 침을 꼴깍, 긴장된 마음에 발길을 주저한다.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거늘 제 아는지 모르는지, 보이지 않는 경계선 역할을 하는 애꿎은 팻말을 탓하며 다시 한 걸음 떼어본다.

1020일 영등포 쪽방촌을 찾았다. 이곳서 18년 간 봉사활동을 펼친 사단법인 쪽방촌도우미봉사회(팀장 박부득, 이하 쪽방도우미회)를 만나기 위해서다. 매년 가을 열리는 쪽방주민위안잔치가 개최된 이날도 쪽방도우미회를 비롯해 조계사붓다맘, 보현의집, 해군 통해사, 대관음사불교대학 등서 40여명의 불자들이 모여 봉사활동을 펼쳤다.

쪽방도우미회는 조계사 붓다맘봉사회의 전신이다. 1999년 당시 소년원 업무를 담당하며 삼동소년촌서 봉사행을 펼치던 강서경찰서 소속 김윤석 경위(당시 마포경찰서 강력4반 소속)와 박부득 팀장이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일반인들이 쉽사리 찾지 않는 쪽방촌서 이들이 무엇 때문에 급식봉사를 하기로 마음먹었을까.

박 팀장은 도움 필요한 곳에 불자로서 밥 한 끼 나누는 게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고 말한다.

김 경위님을 알기 전부터 조계사 신도들과 함께 곳곳서 봉사활동을 했어요. 그저 도움이 더 절실한 곳은 없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김 경위님을 만난 겁니다.”

처음부터 급식배달을 한 것은 아니다. 초창기엔 10가구 남짓 독거노인들에게 쌀 20kg과 약간의 생활비를 지원했다. 그러나 반찬은커녕 밥 지어먹을 냄비조차 없던 쪽방촌 주민들에게 쌀은 무용지물과 다름없었다. 이에 쪽방도우미회는 길거리에 버너와 후라이팬을 펼치고 앉아 밥을 짓고 멸치를 볶아냈다.

그러다 구() 당산파출소 옥상에 자리 잡고 17년간 급식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지난해 건물이 철거되며 지금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사람 쓸 돈이 없으니 발품 팔아 자재를 모으고, 우리가 직접 쪽방촌 한편에 주방시설과 법당을 만들었어요.”

▲ 쪽방촌도우미봉사회원들이 특식으로 마련된 육개장 배식 준비로 분주하다.

그마저도 가건물로 급히 만들어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상황. 쪽방도우미회는 외줄타기하듯 급식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정기 후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매주 목요일 급식을 만들 수 있단 사실이 그저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한 주 급식을 만드는 데 재료비가 약 150만원 들어요. 어쩔 땐 통장잔고가 부족해 이번 주는 밥을 할 수 있으려나걱정하는데, 신기하게도 매주 전국 각지서 많은 분들이 황태, , 국수, 냉면 등 재료를 보시해주세요. 돈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조금씩 보내주시는 정성에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급식메뉴 중 단연 최고 인기는 바로 국수다. 주민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 한 그릇 받아들면 그보다 행복할 수 없다며 미소 짓는다.

자신을 전과자라 밝힌 쪽방촌 주민 오OO(46) 씨는 쪽방도우미회가 오는 목요일만 기다린다. 국수가 여태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다처음엔 세상에 마음을 닫고 살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공감해주는 이들이 있단 사실에 행복하다. 덕분에 불교도 깊이 공부하게 됐다고 웃어보였다.

배식준비로 여기저기 분주한 쪽방도우미회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오 씨를 보며, 쪽방도우미회가 나눈 것은 배를 불리는 국수 한 그릇이 아닌 사람 사이의 정이오, 진심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쪽방촌 주민들의 아들, 딸이 되다
세월이 세월인 만큼 쪽방촌도우미회는 주민들에게 아들딸이자 형님이고, 누나다. 혹여 밥 못 먹고 돌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가는 뒷모습을 돌이켜 밥 먹었냐고 다시 한 차례 확인받는 박 팀장의 모습은 다 큰 동생 챙기는 누이 같다. 20년 세월동안 주민들과 나눈 희로애락도 많았을 터. 가장 가슴 아픈 일이 무언지 물었다.

OO 할아버지가 계셨어요. 2층 다락방에 사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어요. 그러다 3년쯤 지났나. 그날도 급식 준비로 영등포 시장에 갔는데 할아버지가 계신 겁니다. 할아버지 말씀이 어느 날 누가 좋은 곳에 살게 해준다며 데려갔는데, 알고 보니 할아버지의 기초생활수급비를 노린 나쁜 사람이었어요.”

박 팀장과 김 경위는 그 길로 할아버지 손을 잡고 쪽방으로 돌아왔다. 비좁고 지저분한 공간이었지만 할아버지의 편안한 웃음을 보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오래 집을 떠나있던 탓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를 인천 어귀 요양원에 모시고, 틈틈이 찾아뵀습니다. 근데 저희가 도시락 드리던 목요일만 되면 간호사를 통해 보고 싶다고 전화가 오셨어요.”

박 팀장의 말끝이 흐려졌다. 여느 목요일에도 급식 배달 준비에 여념이 없었는데, 요양원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할아버지가 또 우리 보고 싶다 찾나보다며 전화를 받았는데 돌아가셨단 소식이었다.

쓸쓸히 돌아가시는 어르신들 보면 마음이 참 아픕니다. 더욱 잘 챙겨드리려고 노력하는 게 저희 도리겠지요.”

이처럼 쪽방도우미회는 급식 배달 뿐 아니라 독거 어르신들을 모시고 병원을 가거나, 도배김장주민등록증 발급 등 일상생활 전반을 돕는다. 어버이날엔 어르신들 가슴에 카네이션도 달아드린다. 이 때문에 목요일로 봉사활동일이 정해져있지만 거의 매일 쪽방촌을 찾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나 살뜰히 챙기는지 주민들도 누님’, ‘형님하며 가족처럼 의지하는 사이가 됐다. 특히 김 경위는 마을주민들에게 큰 아들큰 형역할을 맡고 있다.

어느 집에 누가 살고, 이름까지 다 알만큼 한 식구처럼 지내요. 20년이면 그야말로 가족과 마찬가지죠. 다른 위안잔치를 가면 혹여 사고날까봐 술을 주지 않는 곳도 많은데, 저희는 서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막걸리도 나눠줍니다. 그게 다 사람 사는 정이죠.”

잔칫날인 만큼 특식으로 육개장이 준비된 이날도 주민들은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데 집중했다. 반면 쪽방도우미회는 그 누구도 한 자리에 가만 서있는 사람이 없을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인상 깊었던 점은 일반 무료급식 현장과 달리 길게 늘어선 배식 줄이 없단 것이었다. 주민들은 번호표를 받아 자리서 기다릴 뿐 봉사자들이 밥과 반찬, 국이 담긴 식판을 직접 자리까지 옮겼다. 한 두 명도 아닌 몇 백 명의 급식판을 나르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 박 팀장에게 이유를 물었다.

주민들 중엔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많아요. 그런데 뜨거운 음식을 스스로 옮기기가 어디 쉽나요. 그저 어르신들이 편한 방법을 생각하다보니 처음부터 직접 가져다드리게 됐습니다.”

▲ 이날 재능기부로 사물놀이를 펼친 해오름예술단과 조계사 포교국장 서송 스님(사진 뒷줄 가운데), 김윤석 경위(사진 뒷줄서 맨 왼쪽) 모습.

 

불자들 한 데 모이니 그곳이 불국토
서송 스님과 도반이에요”, “불교대학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왔어요”, “김 형사님 통해 알게 돼 함께 왔어요.”

이날 전국 각지서 모여든 봉사자들에게 쪽방도우미회에 합류하게 된 계기를 묻자 열이면 열 같은 대답을 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쉽게 찾아오기 어려운 곳에 이 많은 불자들이 모인 것은 도반이 좋은 일을 한다기에가 유일한 이유였다. 혼자선 선뜻 마음내기 어렵지만, 불자들이 한 데 모이니 못할 일이 없었다.

쪽방도우미회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조계사 붓다맘봉사회는 이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준비했다. 조계사 포교국장이자 붓다맘봉사회 지도법사인 서송 스님은 말로만 나누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우리 신도들이 매주 목요일 좋은 일을 한다고 하니, 나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시간될 때마다 함께한다고 말했다. 이날 육개장 배식을 맡은 서송 스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신도들과 좋은 일을 함께한단 사실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해군 통해사는 서송 스님과 도반인 영범 스님이 신도들의 손을 잡고 이날 처음 함께했다. ‘영등포서 불자들이 좋은 일을 한다더라는 말에 순식간에 20여명의 봉사자가 모집됐다.

서송 스님 옆에서 함께 육개장 배식을 하던 영범 스님은 힘들지만 부처님 정법대로 살아가는 불자들을 보니 오히려 힘이 난다좋은 사람 옆엔 또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법이다. 앞으로도 쪽방도우미회 활동에 지속적으로 함께할 것이라 말했다.

대관음사불교대학은 올 7월부터 함께하게 돼 매주 5명 정도의 고정멤버가 생겼다. 대공화(법명69) 보살은 퇴직 후 불교공부나 해보잔 생각으로 신행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도반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한다처음엔 쪽방촌으로 들어서는 길이 무섭기도 했지만, 지금은 열악한 환경서 살아가는 분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빈부에 상관없이 모두 귀한 존재들 아니겠느냐고 웃어보였다.

3년 간 쪽방도우미회 활동을 이어온 안소연(56) 씨는 이날 불교대학 1학년 도반 안병학(55) 씨의 손을 이끌고 함께했다. 책으로 배운 부처님 정법을 봉사로 실천하는 데, 도반이 함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두 사람은 이날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각각 수건 1000장과 후원금을 지원해 쪽방도우미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앞으로도 공부와 봉사행을 이어나갈 거예요. 좋은 날, 좋은 일을 도반과 함께하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네요.”

아울러 이날 주민들의 흥을 돋운 해오름예술단은 매년 위안잔치마다 재능기부로 사물놀이 공연을 펼쳤다. 송지식 단장은 김 경위님과 인연으로 좋은 일을 함께하게 돼 단원들도 매우 행복해한다. 앞으로도 책임감을 가지고 쪽방도우미회와 함께할 것이라 전했다.

이처럼 함께 자비행을 펼치며 행복해하는 불자들을 보며 김 경위는 뿌듯하고도 감사하다고 한다.

봉사를 하고 싶어도 어디서 할지 몰라 포기하는 불자들이 주변에 꽤 많습니다. ‘쪽방촌 봉사활동을 가자하면 선뜻 나서주니 고마울 따름이지요. 그들을 모아 부처님 가르침을 함께 실천할 수 있단 사실만으로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특히 박 팀장은 재가자들의 자비행에 많은 스님들이 동참해줄 것을 당부했다. 스님들이 좋은 일에 나서면 더 많은 불자들이 따를 것이란 게 이유였다.

쪽방촌은 다른 곳보다 더욱 힘들고 열악하기 때문에 정말 큰마음을 내지 않으면 계속하는 게 어려워요. 그렇기 때문에 스님들이 먼저 원력을 세우고 함께해주시면, 세상에 더 많은 보살님들이 생길 거라 생각합니다.”

▲ 쪽방촌도우미회는 19년간 舊 당산파출소 옥상서 급식을 준비하다, 지난해 영등포 쪽방촌 내 가건물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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