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조계사 야경 템플스테이·달빛 수요음악회

사찰과 저녁의 이색 콜라보
사찰서 만나는 각종 문화체험
야경 어우러져 분위기 극대화
외국인들에겐 특별한 추억을
한국인들에겐 삶의 쉼표

▲ 조계사 야경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태국 관광객들이 대웅전 앞에서 밝은 미소를 띠며 차 시음을 하고 있다. 전각을 밝힌 조명과 체험장 분위기가 조화롭다. 사진=노덕현 기자
[현대불교=윤호섭 기자] 저녁 7. 찬바람 불자 햇살은 일찍 퇴근하고, 대한민국 문화 1번지 종로에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도심 속 탁한 공기에 별빛은 얼굴을 감추고, 야근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을 비추는 형광등 불빛만이 세상을 밝힌다. 불 꺼진 종로는 늘 이렇게 컴컴하고 고요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에 형형색색 조명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무명(無明)이라도 밝힐 듯 도량서 퍼져나간 오색 빛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야경·명상·다도 그리고 음악이 있는 곳, 제주도 아닌 조계사 푸른 밤이다.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가 은은한 조명과 전통체험, 음악공연으로 매주 수요일 저녁을 곱게 물들이고 있다. ‘문화가 있는 야경 템플스테이달빛 조계사 수요음악회. 저녁 시간대에 맞춰 이 같은 문화행사를 기획한 건 조계사도 처음. 그런데 처음치고 제법 성황이다. 이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건 도심 속 사찰 야경을 비롯해 마음챙김명상 다식 만들기&차 시음 지화 만들기 소소한 음악공연. 참가자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 많다. 해가 진 뒤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한국문화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아가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 다식 만들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어린이. <조계사 제공>

112다섯 번째로 열린 조계사 야경 템플스테이를 찾았다. 계절을 잘못 안 듯한 동장군의 때 이른 방문으로 체감온도가 뚝 떨어져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주문을 지나 맡게 된 군고구마 냄새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대웅전 앞마당은 생각보다 북적였다. 하얀 다포가 덮인 기다란 테이블 위에는 향초와 연등, 찻잔 등이 놓여 있었다. 참가자를 배려한 난로들은 곳곳에서 고구마를 향긋하게 달궜다. 날씨는 추웠지만 참가자들의 미소는 온화했다. 추억을 쌓는데 이 정도 날씨가 문제랴.

6주 전 이화여대 한국어학당으로 유학 온 안드리아스(26·스웨덴) 씨는 가족과 함께였다. 그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간단한 한국어로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에게 인사했다. 스님도 반갑다며 이 가족에게 합장인사를 알려줬다. 안드리아스의 모친은 한국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보러 왔는데 사찰에서 새로운 체험을 하게 돼 놀랍다아름다운 경치와 사찰의 친절함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딸과 함께 관광 온 레지나(53·아일랜드) 씨 역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는 숙소가 조계사 근처라 와봤는데 행사가 있는 줄은 몰랐다. 절에 방문한 게 처음이지만 다른 절에도 가보고, 불교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찰 야간행사는 드문 일이라고 얘기하자 “Lucky!(운이 좋은)”라고 외치며 웃어보였다.

▲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과 안드리아스 부모(왼쪽 첫째, 둘째)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노덕현 기자

조계사가 이 행사를 마련한 취지는 밤이 되면 어둡기만 한 종로에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대중에게 제공하기 위함이다.

주지 지현 스님은 인사동과 광화문 인근은 저녁 8시 반이면 대부분 불이 꺼진다. 젊은이들이나 회사원, 관광객들이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곳이 없을까 고민하다 가장 안전지대인 조계사를 꾸며보기로 마음먹었다면서 절을 찾는 이들이 많고 적음을 떠나 한국불교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됐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지현 스님은 밤을 새가며 경내 조명각도를 직접 맞추는 등 열정을 쏟았다고 했다. 청량사 주지 시절 비슷한 행사를 준비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스님은 날씨에 따라 연말까지 저녁행사를 진행해본 뒤 내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체계를 잡을 계획이다. 현재 받고 있는 체험비 1만원도 없애 만원의 장벽을 허물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조계사를 대표하는 행사로 발전시키기 위한 스님의 원력이 담겼다.

8시가 되자 범종루 앞 데크에 공연자들이 올랐다. 이날은 8인조 K-레이디즈 째즈 오케스트라와 아쟁·해금 연주팀의 동서양을 넘나드는 공연이 펼쳐졌다. 다식과 지화를 만들고,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이던 관광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흥겨운 선율에 발을 구르며 박자 타는 사람, 연인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 모두 웃음꽃이 피었다.

▲ 째즈밴드 M-바이러스 공연. <조계사 제공>

가족 모두 불자라고 밝힌 응웬(32·베트남) 씨는 한국은 두 번째 방문했지만 절에는 처음 와봤다. 한국 친구가 조계사에 대해 알려줘 관심이 생겼다도심 속에 있으면서도 평온한 느낌이 좋다. 베트남 사찰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근처 회사에서 야근을 마치고 온 김선국(33) 씨는 퇴근하면 항상 집에 가기 바빴는데 잠시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 하루의 쉼표같은 느낌이 든다면서 직장동료들에게도 한번쯤 가보라고 권유해보겠다고 전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저녁 있는 삶을 꿈꾼다. 다른 나라에 비해 노동시간이 월등히 높은 한국이기에 이 같은 열망은 더욱 크다. 하지만 정작 시간이 주어졌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이들도 많다. 각박한 사회로 인해 삶을 즐기기보다 견뎌내기 바빴던 탓이다. 이젠 여유를 찾자. 거창한 일이 아니다. 사찰로 발걸음을 조금만 옮겨보자. 그 발자국 하나하나가 삶의 쉼표를 찍을 테니.

▲ 차 한 잔에 웃음꽃이 핀 관광객들. 사진=노덕현 기자
▲ 고층빌딩 사이에 자리한 조계사 체험장 전경. <조계사 제공>
▲ 수요음악회 공연팀에게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 <조계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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