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 대인기피증과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아이를 만난 건 6월 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선생님은 몇 살이에요?”
침울한 얼굴로 만나자마자 당돌한 질문을 한다.
“내 나이가 궁금하니? 한번 맞혀볼래?”
그러자 아이는 나의 말은 아랑곳 않고,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가족의 나이를 무심히 흘리듯 외었다. 자기가 11살, 엄마는 몇 살, 아빠는 몇 살, 동생은 몇 살, 할머니는 63살….
‘대인기피증이라더니 뭐가 문제지?’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침착하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만나서 반갑다. 앞으로 잘해보자.”
아이는 갑자기 손을 움츠려 뒤로 감추며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아, 미안! 손잡기가 싫은가보네.”
이렇게 시작된 아이와의 만남은 횟수를 거듭하면서 알 수 없는 아이의 행동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라 난처할 때가 많았다. 어느 날은 책상 밑으로 들어가선 나오지 않아 나도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손녀 달래듯 ‘까꿍’하며 재롱을 떨면 나왔다. 화장실 간다고 나가선 문 뒤에 숨어 나를 지켜보고, 찾아내는 시늉을 하면 신이 나서 낄낄거리기도 했다. 걷잡을 수 없는 행동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을 다잡았다.
“어제 우리 반 친구랑 놀았는데….”
“어머! 친구랑 놀아서 재밌었구나. 친구 이름이 뭐야?”
기회다 싶어 이야기를 하면 더욱 입을 굳게 닫곤 “비밀!”이라며 딴청을 부렸다.
“선생님은 남편하고 몇 살 차이에요?”
느닷없는 질문에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망설이다 말했다.
“두 살 차이야. 그게 궁금하니?”
“우리 외할머니랑 할아버지도 두 살 차인데 왜 엄마아빤 열 살 넘게 차이나요?”
어린 나이인 중국동포 엄마와 한국 노총각이었던 아빠가 재혼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나보다. 모처럼 가족얘기를 하는데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 한 말인지 알 수 없어 머뭇거렸다.
“아마 엄마 아빠가 너무 먼 곳에 있다가 만나서 그런 것 같은데?”
대답이 시원치 않았는지 물어본 게 후회된 건지 아이는 시큰둥했다. 다문화 아이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닌지 돌아오는 내내 아이의 침울한 표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렸을 때 좋았던 일을 얘기해보자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더니, 엄마 아빠 동생과 놀이공원에 갔을 때를 얘기했다. 그러다 갑자기 울먹이며 “이혼한 게 뭐 우리 잘못인가?”라고 말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아이를 보며 부모의 이혼으로 동생과 헤어져 상처받은 걸 알게 됐다.
“선생님, 오늘은 뭐 할 거예요?”
“그림 보고 이야기 꾸미기 할 거야.”
“엄마곰과 아빠곰이 줄다리기를 해요. 엄마곰 뒤에 아기곰이 숨어서 엄마를 도와 이겼어요. 아빠곰은 엄마곰이 좋아하는 꿀을 사다 줬어요. 사실 아빠곰도 아기곰이 엄마를 도운 걸 알았지만 엄마곰 생일이라 일부러 져준 거래요.”
“이야기를 재밌게 잘 꾸몄네. 잘했어! 우리 서로 칭찬하며 안아봐도 될까?”
아이는 서슴없이 두 팔을 벌려 나를 꼭 안아주며 5개월 만에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부처님께 감사의 합장을 올렸다. ‘그동안 무더위도, 아이의 엉뚱한 행동도 참아낼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가 더 편안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