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 때 도림선사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는 날만 쾌청하면 큰 나무 가지에 올라앉아 선정에 들곤 했다. 어느날 학식 높은 백낙천(白居易)이 도가 높다는 도림스님을 찾아뵙고 시험하고자 했다. 백낙천이 도림선사를 찾아오니 때마침 도림선사가 나무 가지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스님 거기서 조시면 위험합니다. 어서 내려오십시오.” 하고 외쳤다. 도림선사는 백낙천 을 넌지시 바라보다가 자네가 서 있는 땅위보다 내가 앉아있는 이 나무 가지가 더 안전하네.” 라고 하였다. 백낙천은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치는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도림선사에게 삼배를 올렸다. “어찌 이 어려운 걸음을 하였는고?”하고 선사가 물으니 도의 대의를 물으려 왔습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라고 답했다.

불사선불사악하라(不思善不思惡)이라. 착한 것도 생각지 말고 악한 것도 생각지 말라.”고 선사는 답했다. 백낙천이 그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소리 아닙니까?”하고 재차 질문하니, “삼척동자도 알지만 구십 노인도 실천하기는 어려우니라.”라고 선사는 답했다.

여기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착한 것도 생각지 말고, 악한 것도 생각지 말라는 것이다. 악한 것도 생각지 말라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선도 생각지 말라는 것은 얼핏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불사선불사악이란 의미는 일념이 미처 생기지 않을 때 본래의 면목을 보라는 것이다. 즉 일체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것이다.

얼마 전에 내가 주지로 있는 보타락가사서 템플스테이를 진행한 적이 있다. 사찰 입구에 보니 붉은 꽃이 만발해야 할 백일홍 나무 들이 칡넝쿨에 덮여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가지 몇 개는 이미 고사 상태였다. 내일 새벽에 예불을 마치고 백일홍 나무에 뒤덮인 칡을 거둬 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목과 가지를 감아 조이며 엉켜있는 칡넝쿨을 다 끊어버릴 생각과 백일홍이 얼마나 시원할까 생각하니 별 것 아닌 일에 잠을 설쳤다. 이윽고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낫으로 사정없이 칡넝쿨을 걷어냈다. 그런데 잠시 쉬고 있을때 거두어낸 칡넝쿨을 가만히 응시하니 슬프게 이야기 하는 듯 느껴졌다.

스님, 어찌 백일홍 고운 줄은 아시고 칡이 있어 쑥대가 자라지 못하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또한 칡이 갈근이라 해서 만병통치약이며 꽃도 백일홍 꽃보다도 보라색으로 더 아름답고 향기는 주변의 불순한 향기를 정화합니다. 제악막작 중선봉행은 백일홍에만 국한 된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백일홍한테 베푸시는 감정을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말이다. 칡을 걷어내니 바닥에는 쑥들이 칡의 말처럼 엉겨 붙어서 나오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었으나 칡넝쿨에 눌려 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쑥도 한마디 하는 것 같았다. “스님, 어찌 백일홍 고운 줄은 아시고 쑥이 있어 잡초가 자라지 못하는 것을 모르시나요? 또한 쑥이 떡과 음식을 해 먹는 데는 최고 이며, 인간들의 수종 냉증을 다스리는 줄은 왜 모르십니까?”라고 말이다. 평등한 자비심에는 나와 남이 없고 큰 거울은 차별을 두지 않고 그대로 비춘다. 하지만 중생의 마음은 차별이 본성이 돼 버렸기 때문에 자타의 집착서 벗어나기 어렵다. 모두 다 자신들의 입장이 있다. 또한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다. 명이 있으면 암이 있듯이 우리 사회에 백일홍만 중히 여기지 말고 칡도 쑥같은 이들도 자비중생으로 껴안자. 그러다 보면 나의 마음도 맑아지고 깨끗해 진다. 칡도 쑥도 잡초도 모두 유정물이다. 백일홍도 칡도 쑥도 그냥 본래 면목 그대로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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