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인한 광안리 쓰레기를
치우는 외국인 모녀 귀감
윤리적 자화상 경책에 감사

누군가 해야 할 일이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 일을 먼저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잔잔한 감동과 함께 몸소 그렇게 할 용기가 없었던 우리 자신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을 갖는다. 어쩌면 그들은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진 이 세상이 그래도 여전히 살만한 곳임을 말없이 가르쳐주는 불보살님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주 SNS 이용자와 네티즌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외국인 세 모녀의 이야기도 그와 같은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화제의 동영상은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민소매 차림의 외국인 엄마가 앙증맞은 모자를 쓴 예쁜 꼬맹이와 함께 기껏해야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추정되는 어린 딸을 데리고 바닷가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외국인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마침 부산 광안리 해변을 지나던 어느 목격자가 휴대폰으로 이 장면을 촬영했고 감동을 받은 나머지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SNS와 인터넷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동영상 파일 밑에 달린 댓글에는 아이고, 이뻐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부끄럽네’, ‘이런 게 제대로 된 시민의식이다’, ‘너무 감동적이다와 같은 쪽지들이 줄을 이었다.

당시 광안리 해수욕장 주변에는 태풍 차바가 몰고 온 온갖 종류의 쓰레기들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동영상에 나오는 세 모녀는 청소도구를 이용해 각종 쓰레기들을 한 곳으로 모으거나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파도에 떠밀려온 해초류와 생활용품 따위가 뒤엉켜 흉물스러운 쓰레기를 정리하는 세 모녀의 모습이 평소에도 늘 하던 익숙한 작업인 듯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였다. 어쩌면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이처럼 꾸밈없는 장면들로부터 더 큰 감동을 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영상 속의 세 모녀는 근처에 사는 동네 주민일 수도 있고 잠시 부산에 들른 외국 관광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 외국인 모녀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우리들의 부끄러운 시민의식을 되돌아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지역 주민들은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쓰레기 청소를 해야 할 시민적 의무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관계당국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믿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섣부른 단정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여기서 우리는 새삼 시민의식의 중요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50대 후반에 접어든 필자는 내 소유의 자동차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깨끗한 주거환경과 넘쳐나는 먹거리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민주시민의 자격을 갖춘 사람들인가를 반문해 보면 나 자신부터 대답이 궁색해지고 만다. 잦은 교통위반에다 내 집 앞의 눈치우기에도 모르는척한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곱씹어 볼수록 필자의 시민의식 점수는 바닥을 맴도는 수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인은 공동체적인 유대감이 유달리 강한 민족이었다.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 간에도 서로 돕는 미풍양속의 문화를 널리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슬그머니 자리 잡기 시작한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건전한 시민의식의 형성과 실천을 거부하고 말았다. 그렇게 사는 동안 우리는 말 그대로 품격 없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자문자답해 볼 일이다. 그런 점에서 어린 두 딸과 함께 낯선 이국의 해변에 밀려든 쓰레기를 치우는 외국인 가족의 솔선수범은 우리의 시민의식을 거듭 일깨워 주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외국인 세 모녀가 쓰레기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함께 힘을 보태 하던 작업을 마무리 했다는 점이다. 시민의식은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는 것인가 보다. 작지만 큰 울림으로 우리들의 윤리적 자화상을 경책해 준 이름 모를 외국인 세 모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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