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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추구대상 아냐… 비우면 찾아오는 귀결점”월서 스님 조계종 원로의원·법주사 조실

선지식에게 듣는다

월서 스님은 1956년 전남 구례 화엄사서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선승이다. 스님은 한국전쟁 후 전투경찰에 근무할 당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처음 체험했다.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서 동료들의 전사를 목격 한 것이다. 제대 후에도 그 고통의 잔영은 가셔지지 않았다. 그렇게 방황하던 중 지인의 추천으로 지리산 실상사 약수암으로 찾아가 금오 스님을 친견한 후 곧바로 출가했다. 이후 스님은 수행정진에 진력했으며, 특히 30여년 전부터는 선묵일여’(禪墨一如) 정신으로 정진한 선사로 유명하다. 본지는 창간을 맞아 월서 스님에게 자비나눔의 의미와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들었다.

정리=김주일 기자

   
▲ ▶월서 스님은1936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1956년 화엄사에서 금오 스님 계사로 사미계를, 1959년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남지장사, 분황사, 불국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재무부장, 중앙종회의장(1990), 호계원장 등 종단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조계종 최고 품계인 대종사에 오른 월서 스님은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현재는 법주사 조실과 천호희망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금오스님과 불교정화운동〉 〈깨달음이 있는 산사〉 〈행복하려면 놓아라〉 〈거울 속 성불의 길〉 등이 있다.

육신은 그냥 한 벌의 옷일 뿐입니다.
탐심이란 한 번 입고 버릴 옷에
치장을 하는 허망한 짓이지요.

제행이 무상하다는 인식에서
본래면목의 한 물건을 찾아내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 추구입니다. 행복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요?

-몇년 전 펴낸 법문집 행복하려면 놓아라에서도 밝혔듯이 행복이란 추구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비우고 내려놓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귀결점입니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 마음속의 묵은 욕심과 때를 벗겨내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 집니다. 그러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오죠. 혼자서 하기 힘들면 가까운 절을 찾아가 보세요. 훨씬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절도 목욕탕입니다. 육신의 때를 벗기는 곳이 대중 목욕탕이라면 마음의 때를 벗기는 곳이 바로 절입니다.

천호희망재단 설립 이후 나눔행 실천에 활발하신데요. 어떤 인연으로 시작하셨나요?

-사찰의 주지를 지내고 선방서 참선만 해오다 뒤늦게 어려운 아이들의 실상에 눈을 떴습니다. 조계종 대표단으로 2007년 방문한 북한서 굶주리는 동포 어린이들을 본 뒤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에 첫 자선 서예전을 열어 도왔습니다. 미력하나마 내 온전한 힘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였지요.

그러다가 2012년에 캄보디아 오지를 방문할 기회가 생겨 가보니 대다수 학생들이 교과서도 없이 공부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목격 하고 천호희망재단을 설립해 교과서와 학용품을 지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어 프놈펜 시아누크왕립불교대학에 컴퓨터를 기증하고, 씨엠립 인근 바탐방 지뢰마을에는 쌀을 보냈습니다. 힘들지만 가능하면 협찬 없이 혼자 힘으로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업을 짓기에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 였지요. 인생을 회향할 나이인데 마지막에 좋은일 좀 해야 되지 않겠어요?(웃음)

구호사업중에 특별히 교육 사업에 전념하시게 된 계기는요?

-캄보디아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 사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십년수목백년수인(十年樹木百年樹人)’이란 말이 있지요. 관자(管子)서 유래 된 말인데 ‘10년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며 사람을 심는다라는 의미로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비유하는 고사 성어입니다. 또한 권수(權修)편에 보면 1년 계획으로는 곡식 심는 것 만한게 없고, 10년 계획으로는 나무 심는 일 만한 게 없으며, 일평생 계획으로는 사람 키우는 일 만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 一樹一獲者穀也, 一樹十獲者木也, 一樹百獲者人也) 인재 양성은 국가의 미래가 걸린 것이니 만큼 100년 앞을 내다보고 계획을 잘 세워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도 이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캄보디아의 장래는 바로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 교육에 있다는 생각서 이 사업을 앞으로 죽을때까지 꾸준히 해나갈 것입니다.

   
▲ 캄보디아 오지학교에 학용품을 전달하는 월서 스님

텝퐁 스님의 요청도 구호활동을 하게 된 이유중 하나라고 들었는데, 그동안 어느정도 후원을 하셨는지요?

-승왕 텝퐁 스님은 캄보디아서도 재정이 열악한 북서부 국경지역 쁘레아비히어 주와 오도르민쩨이 주 학교들에 교과서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스님에게 캄보디아 벽지 마을 학교에 체계적인 교과서 지원을 매년 하기로 약속했지요. 2개 주의 학교 중 1~2개 학교를 선정해, 학생 수 대비 50%~100%의 교과서를 지원하고, 제작되는 교과서에는 겉표지에 후원자를 명시했습니다. 그동안 네 번 정도에 걸쳐 교과서 2만부 정도를 후원했지요. 앞으로 3만부 정도 더 후원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캄보디아 뿐 아니라 네팔과 라오스 등에도 교육 불사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스님께서 수행자로서 올곧게 보시행을 펼치며 살 수 있던 데에는 스승인 금오(金烏·18961968)스님의 가르침이 크신 것으로 압니다.

-예 그렇습니다. 1956년 환갑의 나이로 구례 화엄사 주지였던 금오 스님은 스무 살의 새파란 제자가 조금이라도 게으른 꼴을 보지 못했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밤 9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잠시도 놔두지 않고 계속 수행과 공부, 울력 등을 시켰지요. 그때는 무척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스승의 가르침은 평생 저에게 수행자의 본분을 지키게 하는 큰 힘이 됐습니다. 수행자는 냉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순간의 실수로 일생을 망치게 돼죠. 은사 스님이 참선을 강조한 것도 바로 수행이 바탕이 돼야 공부도 잘한단 이유 때문임을 뒤늦게 알았지요. 금오 스님이 없었으면 오늘의 월서도 없었을 겁니다.

스승인 금오 선사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업적을 알리는 일에도 적극적이신데, 그동안 어떤일을 하셨는지요?

-금오 스님께서는 청정승단을 수호하는 불교정화운동과 선불교 정통을 몸소 확립하는 등 큰 업적을 남겼지만, 문자로 가르침을 남기지 않아 후세 사람들이 유훈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는 한국불교의 큰 소실이라고 생각해 스님의 어록과 가르침, 유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본격화 하기 위해 금오선수행연구원을 설립했습니다. 이후 선사의 정화운동을 조명한 금오 스님과 불교정화운동(2)을 펴냈고, 이를 기반으로 동국대 종학연구소와 합심해 금오 스님의 생애와 수행관, 계율관, 선사상 등 선사의 삶과 사상체계를 학문적으로 조명한 금오 스님과 한국불교, 법문을 정리한 금오집등을 잇달아 발간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불교신문과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물을 책으로 묶고 저의 제자들도 금오선사 연구로선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올해가 금오선사 탄신 120주년이 되는 해인만큼 스님의 연구는 계속 될 것입니다.

법주사 조실도 겸하고 계신데 후학들에게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다면요?

-육신은 그냥 한 벌의 옷일 뿐입니다. 탐심이란 한 번 입고 버릴 옷에 치장을 하는 허망한 짓이지요. 저는 50살이 지나면서부터 삶의 무상성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제행이 무상하다는 인식에서 본래면목의 한 물건을 찾아내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삶의 무상성을 깨달아 마음을 바꿔 욕심과 화와 집착을 줄이는 지혜를 내는 것이 생활 속의 불교수행이라는 것입니다. 삶의 무상성을 생각하면 욕심 덜 내고, 덜 섭섭해 하고, 덜 화내고, 덜 집착하게 돼 어리석음이 줄어듭니다. 도인처럼 탐(욕심), (성냄), (어리석음) 삼독심을 완전히 끊기는 어렵지만 생활 속에서 그것을 참고 줄이는 지혜로운 마음을 내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불자들을 위한 가르침을 한 자락 청하겠습니다.

-‘금강경 오가해(金剛經 五家解)’竹密不防流水過(죽밀불방류수과)/ 山高豈碍白雲飛(산고기애백운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나무가 아무리 빽빽해도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없고, 산이 아무리 높아도 흰구름 지나는 것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물과 구름처럼 걸림 없이 살라는 뜻이지만, 어떤 역경이라도 물과 구름처럼 뚫고 가라는 가르침이기도 하죠.

어두운 터널에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역경이 닥치면 주저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참고 인내하며 피하지 말고 돌파하세요. 그러다보면 분명 길이 생기고 희망이 생깁니다. 인내하는 그 순간이 잠시 지루하더라도 이겨내시면 반드시 돌파구가 생깁니다. 그게 우리네 삶의 흐름이자 순리죠.

김주일 기자  kimji421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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