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알아차림으로 짝을 이루어 명상의 기법으로 활용하고 있는 닦음의 계열은 네 가지 대상에 대한 주의 깊음의 발휘와 지속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네 가지는 몸[], 느낌[], 마음(상태)[], 현상[]을 말하는데, 이들 각각에 대해 주의력을 불러일으켜그러한 상태를 지속시켜 확립해나가는 명상의 방법을 사념처(四念處)’라고 부른다. 경전에 따라서 사념주(四念住), 사의지(四意止), 사지념(四止念), 사념수관(四念隨觀)이라고도 한다.

사념처에 대한 가장 체계적인 서술은 디가-니까야마하사띠파타나(大念處)’경에 나타나고 있어서 사념처의 이해와 실천을 위한 고전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런데 니까야 가운데는 법구경등의 운문(韻文)으로 이루어진 경전처럼, 몸에 대해 주의력을 불러일으켜 그러한 상태를 지속/확립시켜나가는 신념처(身念處)’만을 거론하고 있는 경우가 나타나며, 네 가지 단계에 걸쳐 명상의 수준을 심화시키는 사선(四禪)’과 결합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발견되기 때문에 사념처의 의미와 위상에 대해서 대념처경에 내재된 시선만으로 볼 필요는 없다.

대념처경에서 청정도론으로 이어지는 남방불교의 해석체계에 따르면, 신념처(身念處)에 대해 주의력을 불러 일으켜 그것을 지속시켜나감으로써 호흡을 비롯한 몸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거나, 시체 등이 썩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정(不淨)’의 이미지를 떠올려 자신의 몸에 대한 견고한 애착을 제어하고 다스리는 수행으로 제시된다.

▲ 그림 나은영.

그는 주의를 기울여 숨을 내쉬며 들이마신다. 길게 내쉬었을 때에는 나는 길게 내쉰다고 제대로 알고, 길게 들이쉬었을 때에는 나는 길게 들이쉰다고 제대로 안다. 짧게 내쉬었을 때에는 나는 짧게 내쉰다고 제대로 알고, 짧게 들이쉬었을 때에는 나는 짧게 들이쉰다고 제대로 안다.

이처럼 호흡하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며 주시하는 과정을 통해 주의력, 인지력, 관찰력 등 마음의 힘을 향상시키는 방법이 바로 사념처 중의 신념처이며, 수많은 불교 명상 가운데 또렷한 하나의 계열을 이루고 있다. 특히 호흡에 주의력을 기울이는 방법은 아나빠나-사띠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된다. 여기서 아나빠나는 팔리어로 호흡을 의미하고, 동아시아 한자어 권에서는 이 말의 발음에 따라 채택한 번역어가 안나반나이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안으로 따라가며 관찰하여 머무르고, 몸에서 몸을 밖으로 따라가며 관찰하여 머무르며,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따라가며 관찰하여 머무른다. 몸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관찰하는 자로 머물거나, 몸에서 소멸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관찰하거나, 몸에서 생성·소멸하는 현상을 관찰하는 자로 머문다.

이 내용은 호흡, 걷기 등 신체의 갖가지 동작 하나하나를 그대로/제대로 인지하는 과정을 진행하여 도달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경지를 묘사한 것이다. 이 구절은 관용구의 역할로써 신념처다음의 느낌’, ‘마음상태’, ‘의식에 포착된 현상의 수행 길 설명에서도 동일한 서술로써 마무리하고 있어서 사념처수행의 면모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같이 주의력/알아차림이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는 정념정지의 계열이 사념처의 형태로 집약되고 체계화된 모습을 띠게 되었다는 점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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