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쉬게 되면, 눈 뜨고 푹 쉬게 되면 진짜 진리를 알리라

작년 씨를 올봄에 심으니 싹이 돼서 열매가 열려서
지금 수박이 디룽디룽 매달려 있는데 말입니다,
그 수박씨를 어디 가서 찾아야 되겠습니까?

(지난 호에 이어서)
하늘을 받칠 수 있고 땅을 디딜 수가 있으니까 부처님 발은 평발이라고 했습니다. 왜 평발이라고 한 줄 아십니까? 너무 말이 할 게 많아서 그냥 뒤뚱뒤뚱 이렇게 뛰어갑니다, 지금. 왜 평발이라고 했습니까? 여기에 앉아 계신 분들이 높은 일이든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다 제가끔 높습니다.

제가끔 옳습니다, 또. 안 그렇습니까? 농사짓는 사람한테, 농사를 전공하던 사람에게 펜대를 쥐고 사무실에 가서 일하라면 일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니까 농사짓는 데서는 농사짓는 사람이 으뜸이요, 회사 하는 사람은 회사 하는 데서 으뜸이요,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하는 데서 으뜸이요, 뱃사공은 물에서 으뜸이요. 안 그렇습니까? 공업가는 공업의 기술계에서 으뜸이요. 그러니까 어느 거 하나 높지 않은 게 하나도 없어. 높지 않은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니라 했던 겁니다. 자기 개인 하나를 놓고 높다고 그런 게 아니라 전체가 다 빠짐없이 높은 것을 얘기한 것이고, 아래로는 내 발 아님이 하나도 없으니까 평발입니다. 기어 다니는 지렁이 발 하나도 내 발 아님이 없으니 평발이죠. 이 뜻을 판가름을 하시기 바랍니다.

얕은 것도 높은 것도 둘이 아닙니다. 저 산이 높을 때에 높은 것만 있다면 얕다 높다 하질 않습니다. 그러나 얕은 것이 있기 때문에 높은 것이 빛이 납니다. 그럴 때에 넓게 본다면 얕은 것도 높은 것도 평등한 겁니다. 그러나 작은 데서 볼 때는 높은 건 높고 낮은 건 낮죠. 그래서 ‘산과 물이 둘이 아니로되 산은 산대로 있고 물은 물대로 있느니라’ 한 겁니다. 우리는 찰나찰나 변하면서, 화해 돌아가면서 생동력 있게 다른 일을 해야 하고, 다른 걸 봐야 하고, 다른 걸 들어야 하고, 다른 걸 먹어야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러한 세계에서 지금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삼천대천세계에 부처님 법 아님이 없다는 사실, 진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족이 사랑을 하되 진짜 자비로써 사랑을 해야지 착을 두고 사랑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왜냐하면 수억겁 광년 전으로부터 생명이 생겨서 자꾸자꾸 돌아가면서 쫓고 쫓기면서 진화를 해 가면서 인간까지 왔다고 합시다. 그런다면 그때서부터 내 부모 내 자식을 한번 검토해 봅시다. 하하하…. 그저 이걸로도 태어나고 저걸로도 태어났을 때, 이 집 가서도 태어나고 저 집 가서도 태어나고, 수없이 바꿔 가면서 태어나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거를 모둠이를 해서 한번 계산을 해 본다면 내 자식도 따로 없고 내 부모도 따로 없습니다, 넓게 본다면.

그런데 어떻게 바닷물을 삼킨 그 선지식들이 고기 따로 물 따로, 큰 고기 따로 작은 고기 따로 이렇게 생각하겠습니까? 이 모두가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달린 것이니 한생각을 좋게 생각을 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시고, 좋은 일을 많이 하시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시고, 남의 원망을 하지 마시고,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마시고, 모든 게 이 세상에 내가 난 탓이라고 생각을 하신다면 아주 좋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되 그저 나쁘게 돌아가는 것도 잘 돌아가게 하는 건 당신밖에 없다고 믿을 때 모든 것이 잘 돌아갈 겁니다.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앉아서 하는 것만이 참선이 아닙니다.

그건 좌선입니다. 누워서 하는 거 와선, 서서 하는 거 입선, 일하면서 하는 거 행선, 이것이 다 그냥 모두가, 앉으나 서나 참선입니다,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느 사람이 산 아래를 지나가다가 좌선을 하고 앉아 있는데, 유마힐 거사가 거닐다가 보니까 꼭 몸이, 맘이 옹졸하게 ‘아이고, 나는 앉아서 참선을, 좌선을 해야지.’ 하고 앉아 있더랍니다, 시간을 맞춰서. 그래서 유마힐 거사가 지나가면서 “앉는다고 앉고 선다고 선다면 그 나머지 시간은 안 돌아가는구먼.” 하고 지나가더랍니다. 그러니까 앉았다가 펄떡 일어나서 한생각을 착 돌리니까 그 즉시에 머리가 트이는 걸 깨달았답니다.

그랬다는 식으로 이 모두가 우리가 시공을 초월해서 볼 때는 밤낮이 없습니다. 밤낮이 있습니까? 넓게 보신다면 어떻습니까? 동쪽이 따로 있고 서쪽이 따로 있겠습니까? 동쪽과 서쪽과 둘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우리가 한군데 사는 데서만 본다면 동쪽도 있고 서쪽도 있겠죠. 그러나 또 한 번 넘겨다본다면 동쪽도 없고 서쪽도 없어요. 그 양면을, 둘이 아닌 양면을 다 우리가 캐치해서 간파할 수 있는 인간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느 종교든지 가면 그저 ‘아이고, 우리 남편 잘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 자식 잘되게 해 주십시오.’ 하면서 요기 놓고 빌고 저기 놓고 빌고 신중당에 놓고 빌고, 이론이나 배우고 지식으로나 배우고 이러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인제 이것도 좀 알아야 될 때가 됐는데요. 정신계의 발전이 될 때가 됐는데요. 부처님 당시에도 이 마음도리 공부를 가르쳤는데 힌두교에선 아주 이 몸으로다가 고행을 너무 많이 하는 까닭에, 이 몸으로다가 고행을 하다가 몸 떨어지면 그 고행도 끊어진다, 이 고행하던 것도 다 떨어지고 없어진다 이겁니다. 남는 게 없다 이거죠.

그러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고행이 아닌 것도 놓고 고행인 것도 놔라. ‘푹 쉬게 되면, 눈 뜨고 푹 쉬게 되면 진짜 진리를 알리라.’ 이렇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면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때 당시에도 이렇게 가르치셨는데, 그 후에 지금 근 삼천 년이 돼 오는데 이렇게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또 단군도, 단군 할아버지께서도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81자를 기준해서. 부처님께선 80종호를 기준했지만 단군 할아버지는 81자를 비유했는데 80종호나 81자나 다른 게 없습니다. 그렇게 영특하게 모두 여러분에게 살림하는 법과 농사짓는 법과 사람 마음을 쓰고 활용하는 법과 정신계와 물질계가 같이 합해서 작용해서 중용을, 스스로서 자유스럽게 자유인이 되는 법을 가르쳤는데도 불구하고 이날까지도 그렇게 하고 가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이 세계가 달라지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마음들이 계발이 되고 달라져야 세계도 달라질 것입니다. 모두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그렇지 못하다면 영원히 이렇게 쳇바퀴 돌듯 돌아갈 겁니다. 그리고 부족한 게 생기고요. 만약에 지구의 모든 재료가 부족하게 된다든가 태양계에 어떠한 팽창력이, 열이 생긴다든가 타 버린다든가 또는 은하계에 어떠한 문제가 생겨서 별성이 모두 껍데기를 벗고 활력을 띄지 못한다든가 이런다면 우리에 직결된 이 마음부터 벌써 잘못돼 돌아가는 겁니다. 이 모두가 같은 염주알에 돌아가듯 이 전체 우주가 지금 같이 한 염주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빈약하게 그냥 그렇게 생각을 하고 기복으로만 나가서야 되겠습니까?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이 꽃 한 송이를 놓아도 바로 네 뿌리 내 뿌리가 둘이 아니니 이 마음의 이 향, 이 마음이 천만 개의 마음을 한데 합쳐도 둘이 아니니 내 주인공에 바로, 이게 직접 내 꽃 한 송이를 내 꽃 한 송이에 바로 갖다 놓는 것입니다. 저 부처님 형상도 여러분의 형상과 둘이 아니요, 부처님의 마음도 여러분의 마음과 둘이 아니요, 부처님의 생명도 여러분과 생명이 둘이 아닙니다. 이런 컵도 지수화풍으로 인해서 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 세상에 출현했습니다. 출현했을 때에 그 이름과 여러분의 이름과 뭐가 다른 게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이 광대무변한 법을 이렇게 가르쳐 길을 인도하시면서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이 둘이 아니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둘이 아니니라. 너희 마음먹기에 달렸느니라. 너희가 악한 마음을 쓰면 악한 일을 하고 악한 행을 하면 악업을 짓는 것이고, 선한 일을 하고 좋은 일을 하고 좋은 생각을 한다면 바로 선업을 짓는 것이니라. 그러니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느니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개선해야 할 문제를 지금 얘기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뿌리를 잊으셔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도 쥘 수 없고 볼 수 없고 잡을 수 없는 여러분의 뿌리, 그 불씨! ‘내가 나기 이전에 바로 내 씨가 있다더라’ 그러곤 바깥으로 휘휘 젓고 찾아요. 하하하…. 화두를 가지고 ‘이게 뭣고?’ 하면서 그저 바깥으로 휘휘 둘러 찾거든. ‘아휴, 부처님! 나 좀 깨닫게 해 주십시오.’ 그러고는 과거에 뭐 어쩌고저쩌고하고 야단법석이죠. 그러나 만약에, 호박으로 비유해 봅시다. 수박이라도 좋아요. 수박씨를 작년에 받았으면 바로 올해 심죠? 심어서 수박 싹이 났습니다. 여러분이 수박 싹이라고 봅시다. 그러면 수박이 벌써 모두 열렸습니다. 그래서 수박이 열려서 바로 수박 속에 단맛이 나고 씨가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랬는데 여러분이 수박씨를 어디 가서 찾아야 되겠습니까? 과거의 씨는 현실로 나왔는데, 작년 씨를 올봄에 심어서 싹이 돼서 열매가 열려서 지금 수박이 디룽디룽 매달려 있는데 말입니다, 그 수박씨를 어디 가서 찾아야 되겠습니까? 예?

대중 수박.

큰스님 지금 내 현실의 수박 싹에 수박이 열린 거기서 찾아야죠?

대중 예.

큰스님 그 씨는 벌써 화해서 싹이 돼 버렸으니까요. 그런데 어디 가서 부처님을 찾습니까? 어디 가서 부처님을 찾습니까? 나로부터 부처님이 계신 겁니다. (등 뒤의 부처님을 가리키시며) 저 부처님은 여러분이 그렇다는 사실을, 길을 인도해 주시는 방편의 부처님이십니다.

그러나 부처님이라는 방편의 이름도 저 이름 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저 이름 타기가. 49년을 설하면서도 나는 한 생각도 해 본 예가 없다고 하신 그 뜻에 의해서 그 형상이 이 세상에 저렇게 생겨났으니 얼마나 위대한 부처님의 이름입니까? 그러니 어느 누구를 막론해 놓고, 권세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부처님 앞에 삼배를 올려야 된다.

그러니 좀 생각들을 깊게 해 보십시오. 작년 씨는, 작년에 씨 받은 거를 가지고 올해 봄에 심었다. 내가 형성됐다, 그 싹으로. 수박이 나한테 열렸다. 그러니까 나한테 있는 수박을 깨뜨려서 내가 직접 맛을 봐야 하고 직접 그 씨를, 즉 말하자면 원자에서 그 씨 하나가 수만 개로 나가는 거와 같다 이 소립니다. 불씨 하나가 수만 개의 불씨가 된다 하는 것도 되지마는 내 한마음에서 천백억화신이 천차만별로 응해 달라고 하는 분들에게 응신으로서 응해 주신다. 이거를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은 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씨는 한계가 없습니다. 이런 물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질이 아닌 거를 저기 질척질척한 데다 심어 놓으면 자동적으로 그냥 벌레가 나옵니다. 생명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질척한 데서 낳는 것, 화해서 낳는 것, 태로 낳는 것, 알로 낳는 것, 이 사생이 다 그러그러합니다.

그러니 제일 급한 것은, 여러분이 지금 시카고에서 제일 급한 작업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지금 내 안에 수박이 있고, 그 수박 맛을 봐야 바로 내 씨를 내가 찾는다 이겁니다. 수박 맛을 보지 않고는 그 수박 속의 씨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하나 내 가정에서 모든 걸 거기다가 맡겨 놓고 관찰해서 지켜보는 그 자체가 바로 참선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체험하는 것이 참선의 기초적인 문을 찾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그거를 실험해서 체험하는 것이 수박 맛을 보는 거나 한가집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정도 유유하게 되고 내 가정의 애고도 없어지고 병고도 없어지고 모든 애고, 업, 업식이, 유전성이, 영계성이 모든 게 소멸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 마음의 지혜는 세세생생에 갈 겁니다. 왜냐하면 금은 금방에 갈 것이고 넝마는 넝마전에 갈 것이니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사람의 차원에 따라서 세세생생에 그 차원대로 자동적으로 끼리끼리 만날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제불은 도솔천국에 있느니라. 그리고 항상 중생들과 둘이라고 생각지 않고 내 아픔이라고, 나 아님이 없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항상 평등공법으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 아님이 없이 응해 주시느니라.’ 했습니다. 인제 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일러 드렸죠. 그러니 여러분이 지금 질문하실 게 있으면 질문하시고요.

그리고 여기 또 한마디 더 해야 할 얘기가 있습니다. 여기 스님네들이 세 살을 먹었든 다섯 살을 먹었든 저 부처님 형상 믿듯 해야 합니다. 모르든 알든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그건 여러분의 마음에서 잣대를 재는 거지 이 승려들의 잣대는 없습니다. 못났으면 못난 대로, 잘났으면 잘난 대로, 배웠으면 배운 대로, 못 배웠으면 못 배운 대로 그대로 승려인 것입니다. 그대로 삭발을 한 겁니다. 잘나고 못나고 잘하고 못하고 그걸 떠나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재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의 잣대지 그 잣대에 부닥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가정과 부모와 형제를 다 버리고 모든 거를 전폐하고 이러한 원을 세우고서 깎아 버렸을 때의 그 심정, 그 신의 하나만이라도 숭배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일차에는 삭발 제자고 이차는 유발 제잡니다. 다 전폐하고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모두….

또 한 가지는 우리가 여기 지금 유발 제자와 삭발 제자가 같이 이렇게 이 안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떡 와 보니까 유발 제자도 공부를 해야 하고 삭발 제자도 공부를 해야 할 텐데 공부하는 데 제로야, 모두가. 하하하. 공부하는데 안 되겠어요. 세상 더 좀 같이 있게 해 달라고 비대발괄을 하지만, 유발 제자는, 그렇지만 이거 안 되겠어. 따로 떼어 놔야지 안 되겠다 이랬습니다. 하하하…. 그랬더니 마음이 언짢긴 하지만 어쩝니까. 장래를 내다보고 길 아닌 길과 손 없는 손과 정말 발 없는 발로 자유스럽게 왕래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거를 정리할 건 정리하고 이렇게 돌아가야 된다 이 소립니다. 그것까지 얘기했으니 인제….

여러분, 또 한 가지 생각난 게 있습니다. 지금 여기 이렇게 어린 양같이 있죠, 모두? 한 이삼 년만 있으면 사십이 되는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항상 어린 양으로 보이시죠? 그리고 뭐, 입산한 지가 얼마가 됐네, 법랍이 얼마가 됐느냐, 또 법랍이 작으냐 많으냐 이런 것도 여러분은 생각할 게 없습니다. 아주 무진 설법은 할 수 없을지언정 갖다가 주고 갖다가 먹을 줄은 압니다. 이름은 몰라도 갖다가 주고 갖다가 먹을 줄은 압니다. 그 길은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모르걸랑 무조건 물어보시고 이 길을 인도받으십시오. 정말입니다. 모든 걸 얕잡아 보고 한다면, 자기가 그릇을 만들지 못해서 그릇에 담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그거는 절대입니다. 우리가 지금 지원을 이십 몇 개를 두고 있는데요, 서울이나 미국이나, 그 제자들이 얼마나 출중한지 모릅니다. 다른 절의 스님들도 그냥 깜짝깜짝 놀랍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군.’ 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외국에 있는 분들은 아주 더 약은 모양입니다. 지나치게 약은 모양이에요. 좀 어리숙하게 모르는 척하고 떡 그릇에 엎드러질 줄을 몰라요. 하하하…. 죽겠으면 지푸라기라도 쥐고 “날 좀 살려 주지 않겠니?” 할 수도 있는데, 하물며 그래도 몇 해씩이나 머리 깎고 중노릇하던 사람들을 그렇게 얕잡아선 되지 않습니다. 그거 한마디 마저 전해 드렸습니다.

여러분이 그저 아래로 내려다보지 마시고 언제나 자기같이, 모자라는 걸 보면 자기 모자랄 때 생각을 하시고 어린 거를 볼 때는 자기 어렸을 때 생각을 하시고, 남이 고통스러워하면 자기 고통으로 생각하시고 모든 거를 자기로 이렇게 연결을 해서 한번 굴린다면 사랑의 자비가 나옵니다. 어떠한 사람이든 아픔으로 살아가시고 그러는데도 그럴 때마다 지극한 생각으로 하시는 분들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어떤 때는 내가 있었던가 없었던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 때가 많습니다. 하! 내가 있었던가 없었던가 그러고요. 항상 저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여러분 보는 데에 그저 껍데기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을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껍데기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알맹이가 너무 여러 개가 돼서 말을 하는 나가 있고 또 급하다고 부르면 얼른 가야 합니다, 또. 하하하…. 이렇게 말하는 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도 공부하시면 이 도리를 틀림없이 아실 겁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다고 해서 미국에 내가 아니 오고 없는 줄 알지 마십시오. 응해 달라 하면, 급하면 그냥 한 찰나에 듬성 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 속에는 항상 무시로 찰나찰나 들고 나고 있습니다. 항상 있습니다. 이 제자들 속에서 내 에너지를 빼 가도 아마 마찬가지일 겁니다. 제자들 에너지 통이나 내 에너지 통이나 똑같으니까요. 모두가 다 그런 생각으로서 한생각을 잘하신다면 또 다 같을 거니까요. 그러면 질문을 받겠습니다.

사회자 감사합니다. 설법에 이어서, 여러분이 한마음 공부를 하시면서, 또 처음 오신 분들도 과연 주인공은 무엇인지 의증이 나시는 분은 이 앞에 마련된 자리에 나오셔서 마이크를 들고 어디서 오신 누구시라는 존함을 밝히시고, 간단하게 질문해 주십시오.

큰스님 주소 대지 않으셔도 되고요 이름 대지 않으셔도 좋고요. 그냥 그저 자연스럽게 질문들을 하십시오.

사회자 질문하실 분은 앞으로 나오세요. 어렵게 생각하실 거 하나도 없습니다. 집에서 의심나는 것 서로 묻고 대답하듯이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큰스님 모든 거를, 교만이라든가 아집이라든가 이런 거를 다 빼 버리고 권세도 빼 버리고 나라는 것도 빼 버렸을 때에, 어떠한 용도가 있고 어떠한 걸림이 있을 때에, 어떠한 모르는 게 있을 때에 내가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슴지 않고요. 절은 한 번만 하십시오.

질문자1(남) 요쪽 골에서 이 소리 해서 저쪽 골에서 또 다른 소리 하는데 그거를 합쳐서 어떻게 하나로 묶겠습니까?

큰스님 지금 하나로 뭉쳐서 돌아가기 때문에 지금 한 사람이 나와서 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와 하나가 정신계의 바른쪽 왼쪽 두뇌에서 작용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 사람이라고 나와서 이렇게 얘기 못합니다. 그와 같이 모두가 그렇게, 이 원리가 지금 그렇게 생겨 있습니다. 전깃줄과 전깃줄이 한데 합쳐져야 불이 들어오듯이.

질문자2(여) 스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마음속 깊이 영광스럽습니다. 스님에게 한 가지 여쭤 보고 싶은 말은 다름이 아니라 스님이 들으시면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렇게 참선에 들어서면서 자꾸 울게 됩니다. 가슴에 닿아도 울고 삼라만상을 봐서 마음에 닿는 것이 있어도 울고 전부 울음이에요. 어떤 땐 제가 생각할 적에 ‘난 왜 자꾸 이렇게 우나. 울지 말아야 될 텐데.’ 남이 언짢은 걸 가지고 울고, 남이 좋지 않아서 내가 돕고 싶은 마음이 나서도 울고 그래서 이 우는 것을 좀 막을 수 있는….

큰스님 이 운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그것도 그냥 우는 게 아니라 이 뿌리로부터 거죽 나무로 왕래가 돼 있기 때문에 이 해동이 되는 뜻입니다. 즉 말하자면 아주 얼고 언 나라가 봄이 오려면 그 물이 한정 없이, 그 얼음이 녹아서 쏟아집니다. 그러니까 그 업보가 녹느라고, 그 얼음덩어리가 녹느라고 댁의 눈을 통하고 이 혈맥을 통해서 그 얼음이 다 녹아내리는 겁니다. 그러니 지옥고가 무너지느라고 그럽니다. 그 추운 겨울날에 봄이 오느라고 그럽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해동이 되니까요. 아시겠습니까?

질문자2(여) 감사합니다.

큰스님 그렇다고 그냥 아무 데서나 울지 마시고 이렇게 하세요. ‘체면이 있지, 아무 데서나 눈을 통해서 해동을 시키면 어떡해? 그냥 아무도 없을 때나 좀 그러지.’ 이렇게 하세요. 그러면 절대 누구 있는 데서는 그러지 않습니다. 그것도 자유자재할 수 있는 겁니다. 참 이게 얼마나 좋은 공부인데요. 정말 자유스럽게 다 할 수 있는 겁니다.

 

※위 법문은 1992년 7월 5일 시카고지원 법회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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