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관룡사 약사전 53불 벽화

한 칸 크기의 약사전 내부포벽에 봉안한 53불 벽화. 남아있는 대부분의 진채벽화는 흙벽에 바로 그린 것이 아니라 종이에 그려 원벽화 위에 붙인 것이다.
〈관약왕약상이보살경〉 53불 소의경전
송광사, 선암사에 53불 탱화 전해져
종이에 그려 원벽화 위에 붙이는 방식
석가모니불 좌우로 홀짝수번 교대배열

1000억의 1000억, 삼천대천세계
가장 최근의 연구성과에 의하면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쯤이다. 엄청난 밀도의 한 점에서 폭발하여 138년 동안 팽창해온 우주의 크기는 대체로 400억 광년 크기로 추정한다. 광대한 그 우주 안에는 얼마나 많은 별들이 있을까? 해와 달이 있는 태양계와 같은 세계가 1000억 개 분포해 있는 곳이 우리은하다. 우주에는 우리은하와 같은 별들의 세계가 다시 1000억 개 존재한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갠지스강의 모래알 개수만큼 많다. 불교에서는 그토록 광대무변한 세계를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라 한다. 삼천대천세계에 가피의 충만함으로 상주하시는 부처님이 ‘삼천불(三千佛)’이시다. 삼천불은 광대한 공간적 개념뿐만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개념을 초월한 시방삼세(十方三世)에 편재하시는 분들이다.

그렇다면 삼천불은 어떻게 삼세에 걸쳐 성불하여 편재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삼천불의 소의경전인 〈관약왕약상이보살경〉에서는 53불을 지극히 예경한 인연공덕으로 삼세에 각각 천불씩 성불하셨다고 밝히고 있다. 즉 대승불교 다불사상(多佛思想)의 대표적인 형태인 천불신앙의 배경에 53불이 모태 역할을 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53불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무수한 부처님을 나투게 하신, 삼천불의 근원이자 불조(佛祖)인 셈이다.

소의경전인 〈관약왕약상이보살경〉에 그 분들의 명호가 나타난다. 1번 나무보광불부터 시작해서, 2번 나무보명불, 3번 나무보정불, ...., 53번 나무일체법상만왕불까지 존명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경전에서는 53불을 일심으로 예경 올리면 살생, 도둑질 등과 승가에 해를 입히는 악행 등의 사중오역(四重五逆)의 죄도 정화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뤄볼 때 53불은 저마다의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 불성(佛性)을 밝히는 힘, 곧 자비력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화엄경에서 말하는 여래출현(如來出現), 혹은 성기(性起)사상과 대단히 밀접하다. 성기(性起)의 ‘성(性)’은 본래 청정한 본성이자 불성을 이른다. 모두가 불성을 갖고 있지만 번뇌망상과 집착에 빠져 마음 속의 본래 여래를 증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53불은 그 불성을 일깨운다.

안동 봉황사 대웅전에도 53불 벽화
53불은 다불신앙의 모태다. 삼천불과 자연스럽게 결합해서 조형으로, 탱화로 조성되어 큰 법당에 봉안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금강산 유점사 능인보전의 느릅나무 53불상 조형이 그러하고, 서울 봉원사, 경주 기림사 삼천불전 등에서 삼천불상을 봉안하고 있다. 53불 탱화로는 순천 송광사와 선암사에서 전해지는데 두 곳 다 불조전(佛祖殿)에 모시고 있다. 그런데 벽화로 봉안한 53불도 현존하고 있어 감탄과 숭고함을 불러일으킨다. 그것도 두 곳에 현존한다. 한 곳은 안동 봉황사 대웅전 내부포벽이고, 나머지 한 곳은 창녕 관룡사 약사전 내부벽화다. 두 곳에 벽화가 남아 있어 매우 흥미진진하고 의미있는 비교를 할 수 있다.

봉황사 53불은 과거칠불과 함께 내부포벽에 그렸다. 이웃한 짝수 번호끼리, 혹은 홀수 번호끼리 세 분씩 짝을 지어 듬성듬성 배치했다. 공포 한 칸에 세 분씩 배치한 봉안방식이다. 그것은 건축의 형태에 맞춘 미술장엄의 후작업과정을 암시한다. 벽화의 존상도 상대적으로 충분히 큼직하다. 대웅전내의 53불은 법당이 불성으로 가득한 중중무진의 삼천대천세계임을 조형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관룡사 약사전은 1칸짜리 정방형 건물이다. 작은 크기에 맞게 조형장엄이라고는 연화대좌를 갖춘 약사석조여래 한 분 뿐이다. 53불 벽화는 창방 위 사방 흙벽에 그렸다. 불상 뒤인 북쪽 벽에 15체, 동쪽 벽면에 10체, 서쪽 벽에 11체, 출입문 안쪽 위인 남쪽 벽에 13체 해서, 총 49분을 모셨다. 더 정확하게는 48분이다. 북쪽벽면의 한가운데에 모신 부처님은 석가여래이신 까닭이다. 그렇다고 경전과 달리 48분만 모셨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지워진 흔적도 있으며, 중간에 부처님 명호(名號)만 적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경전 속 22번에 해당하는 ‘보개조공자재력왕불’은 존상의 그림 없이 명호만 명기해두고 있다. 사방면의 불상 벽화 중에서 서북방향의 6체와 북쪽 벽면의 15체 불상은 진채(眞彩)로 온존해 있지만 나머지는 색채의 박리와 박락으로 벽화의 흔적만 남아있어 안타까움을 갖게 한다.

동서 양측면 벽에 각각 4폭씩 그린 민화풍의 화조도를 이으면 영락없는 8폭 병풍이다. 민화가 불교 깊숙이 들어와 자리 잡았다.
광배, 수인, 대좌 통일한 53불
53불의 장엄은 대량생산 과정이다 보니 불화제작이나 규격, 배열방식에서 일정한 규격화와 모듈을 갖추게 된다. 효율성과 통일성의 관점에서 행과 열의 규격화가 진행될 수 밖에 없다. 사방 벽면의 배치 길이를 정하고 봉안할 존상의 수가 정해지면 한 부처님의 폭이 산술적으로 결정된다. 폭이 결정되면 원만한 인체비례감에 따라 세로 길이가 정해져 하나의 수치모듈이 결정된다. 기본단위 규격이 정해지면 일사천리다. 더구나 관룡사 약사전의 53불 벽화는 광배, 습의, 수인, 연화대좌 등을 하나로 통일한 까닭에 속도감 있는 대량생산 모듈을 갖추고 있다.

남은 과정은 패턴의 반복이다. 한 분의 존상으로 복제에 가까운 자기 유사성을 반복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닮은 존상의 부처님 어깨에 존명을 밝히는 명호를 써넣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리듬을 갖춘다. 안으로 감춘 내재화된 리듬이다. 홀짝 번호로 서로 좌우로 배대하는 시메트리(symmetry), 대칭기법이다. 대칭의 중심은 불상 바로 뒤 벽면에 그려 모신 석가모니불에 두었다. 왼쪽 어깨에서 시계방향으로 1번 나무보광불, 3번 나무정광불, 5번 마니당불,....의 순으로 봉안하였다. 오른쪽 어깨에서 반시계방향으로는 2번 나무보명불, 4번 다마라발전단향불, 6번 나무전단향불, ....의 순으로 모셨다. 이런 방식은 송광사 국사전에서 16국사 진영을 보조국사를 중심으로 홀짝수 순으로 교대로 배열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곰곰이 살펴보면 특별한 작업도 보인다. 남아있는 진채벽화는 마감한 흙벽에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 종이 위에 그려 원벽화 위에 붙인 점 특이하다. 해남 미황사 대웅보전 천불벽화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나타난다.

그런데 왜 불조전이나 대웅전이 아니고 약사전에 53불을 모셨을까? 그것은 아마도 53불의 소의경전인 〈관약왕약상이보살경〉의 이름과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약왕보살(藥王菩薩), 약상보살(藥上菩薩) 두 분은 과거에 형제였다. 병의 처방과 치료에 능통하신 보살로 약사여래의 협시불인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의미적으로 대체하면서 경전 속의 53불을 모셔 약사여래의 서원을 극대화하려한 발원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협시불을 모실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인지 임진왜란에도 화를 입지 않고 남은 유일한 건물이 약사전이라 전하고, 또 관룡사에선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소문이 널리 퍼진 것도 그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하니 조형예술과 종교가 상응한 감화라 하겠다. 자그마한 한 칸 짜리 법당 건물에 50여 부처님들의 만다라가 펼쳐져 있다는 것은 대단히 농밀한 신심의 발현임엔 분명하다.

동서 양 측면에 민화 화조도 경영
약사전은 한 칸 건축이라 입체적 조형 장엄방식은 뚜렷한 한계를 지닌다. 벽면을 이용한 평면적 벽화 장엄방식에 역량을 쏟은 것으로 보인다. 창방 아래 내부벽 전면에 베푼 화조도는 특히 인상적이다. 조선후기 민화(民畵)의 흐름이 불교영역 깊숙이 들어와 자리 잡은 형국이 여실히 드러나는 단면들이다. 출입 창호 면을 제외한 세 벽면마다 각각 4등분하여 각 면에 네 폭의 화조도를 경영했다. 북쪽 면의 벽화는 단조로운 묵매의 거친 붓질이지만, 기운생동의 힘이 있어 야성과 고색의 매력을 남겨두고 있다.

동서로 펼친 여덟 폭의 화조도는 두텁고 깊은 색채운영, 필력이 밴 매끄러운 묘사력, 품위와 격식을 갖춘 중후함을 두루 소화해냈다. 절집 벽화로 만나는 화조도 치고는 돋보이는 작품이다. 매난국죽의 익숙한 사군자나 모란, 연꽃 등에 나비, 학, 물총새 등을 짝맞췄다. 무엇보다도 생명력이 충만한 화엄세계를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해서 눈맛이 시원하고 친밀해서 좋다. 대중의 요구에 눈높이를 맞추고 시대정신을 읽어가는 절집의 열린 마음을 본다. 포벽의 53불 부처님의 자비력과 무위의 자연이 두 개의 중층적 평행우주의 형국이다. 53불은 삼천불이니 삼천대천세계에 자비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한 칸의 작은 집에 불신보변시방중(佛身普遍十方中)의 법계우주를 태연히 들였다.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신 약사여래의 작은 집, 유마의 방이 삶의 가까이에 있었구나. 저 절집의 빛, 청산처럼 세세생생 푸르고 또 푸르라.

창녕 관룡사 약사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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