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절집의 빛⑭ 구미 도리사 극락전

극락전 내부벽면 공포 칸칸에 장엄한 구품왕생도 연화좌. 향우측 뒷벽의 하품하생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돌아 향좌측 뒷벽의 상품상생의 순으로 배치했다.
극락왕생 서원하면 칠보연꽃에 화생
연꽃 그림 위에 묵서로 극락구품 밝혀
건축 내부 공포 칸칸에 구품왕생 품계
상품상생 등 上生의 연꽃은 청색 채색

극락전 장엄 소의경전은 관무량수경
극락정토의 실상을 보이신 세 경전이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다. 정토삼부경은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의 세 경전을 말한다. 〈아미타경〉에서는 극락정토의 공덕장엄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10만억의 불국토를 지나서 한 세계가 있는데, 극락이라 하느니라. 그 곳의 부처님을 아미타부처님이라 하며, 지금도 극락세계에서 설법하고 계시느니라. 그 나라의 중생은 아무런 괴로움이 없고, 다만 즐거움만을 누리므로 극락이라 하느니라.” 그러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칠보로 이루어진 보배연못 등 극락정토의 장엄세계를 세세히 설명하신다.

〈관무량수경〉에서는 말씀의 묘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부처님의 광명과 위신력으로 청정한 극락세계를 마치 맑은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춰 보는 것처럼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신 것이다. 극락정토의 공덕장엄을 보이신 장면은 열 여섯 장면이다. 극락세계를 관상하는 16관법의 법문을 펴신 것이다. 관무량수경의 16관상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불화가 ‘관경16관 변상도’다. 제1관은 서쪽 하늘로 지는 붉은 해를 관하는 일상관(日想觀)이다. 제2관은 물을 생각하는 수상관(水想觀), 그리고는 극락세계의 칠보로 된 땅과 보배나무, 보배연못, 보배누각을 두루 관상할 것을 가르친다. 이어서 연화대를 관하고,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깊이깊이 생각하며 마음의 눈으로 관조할 것을 주문하신다. 여기까지가 극락정토의 장엄실상이고, 또한 염불수행의 실천이 누차 강조된 내용이다. 염불(念佛)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부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토는 아미타여래께서 과거 법장비구로 계실 때 세운 48대원으로 성취한 세계다. 즉 극락정토는 아미타불의 본원력으로 경영한 불국토로 극락왕생 서원의 구상적(具象的)인 세계다. 하지만 선종이나 화엄불교적 입장에서는 마음 밖에서는 찾을 수 없는 관념론적 유심정토(唯心淨土)일 것이다. 그 바탕에는 경전내용에 대한 일정한 의구심이나 주관적 알음알이가 작용되고 있는 점이 없지 않다. 경전에서 관상, 관경, 염불이 그토록 강조하는 것을 보면 차원과 경계 너머의 실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위치적으로 어디에 있으며, 장엄세계는 이러하며, 이 세계의 주체는 누구라는 것을 세세히 밝힌 대단히 실증적인 묘사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극락정토는 이미 아미타부처님에 의해 구현되어 있고, 중생구제 48대원의 본원력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문제는 극락왕생의 방도다. 〈무량수경〉에서 미륵보살께서 부처님께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사람도 태를 빌려 태어나는 태생(胎生)이 있고, 홀연히 태어나는 화생(化生)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신다. “부처님의 한량없는 지혜공덕에 대해 의혹을 품고 다만 자기 힘만으로 공덕을 닦아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원을 세워 수행한 이들이 변두리 칠보궁전에 태생으로 태어나느니라. 그러나 의심 없는 신심으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서원한다면 극락의 칠보연꽃 속에서 홀연히 화생하느니라.” 의혹 많은 중생은 태생으로 태어난다는 대목이 이목을 끈다. 하지만 자력과 타력의 조화로운 신행이 중도의 진리행에 합치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연지회상’의 묵서명. 이곳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표현이다.
반야용선의 방식, 연화화생의 방식
불교회화를 통해 나타나는 극락왕생의 방법은 세 가지쯤으로 매우 흥미롭다. 첫 번째 방식은 반야용선을 통한 대단히 직관적인 방법이다. 배라는 탈 것을 통해 바로 이상향으로 인도하는 방식이다. 〈반야용선도〉가 그것이다. 두 번째 방식은 아미타내영에 의한 연화화생이다. 화생이라는 극적인 통과의례를 통해 정화의 질적 변화를 거친다. 〈관경16관변상도〉의 16관 중에서 상,중,하 삼배관(三輩觀)을 강조한 ‘구품왕생도(九品往生圖)’가 그 장면을 담고 있다. 세 번째 방식은 매우 드문 사례인데 거인이 도자기 그릇 같은 곳에 왕생자를 담아 하늘세계로 받쳐 올리는 도상이다. 청도 대적사 극락전 내부벽화에서 희귀하게 나타난다.

극락왕생의 장면은 대체로 회화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간간이 건축적 장치를 통해 구품왕생의 불국토나 아미타정토로 경영한 사례도 있긴 하다. 구품연지(九品蓮池)의 경영이 그런 사례일 것이다. 구품연지는 마치 궁궐의 구품 품계석처럼 아홉 위계를 갖춘 연당을 말한다. 부여 정림사지 동서연지나 익산 미륵사지 연지, 제주도 법화사 구품연지는 현재 복원되어 실존하고, 불국사 청운교 앞 구품연지는 유구의 흔적이 전해진다. 〈관무량수경〉의 경전내용을 건축으로 구현하려는 의지의 흔적들이다. 또 부석사 가람의 석단들처럼 정토신앙, 혹은 화엄사상에 의한 구품만다라로 거시적 경영을 펼친 사례도 있다. 그런데 목조건축 자체가 아미타내영도이고, 구품왕생도로 표현하고 있는 건축이 있어 주목할 만하다. 아도화상에 의한 신라불교의 초전법륜지로 전해지는 구미 도리사의 극락전이 그 건축이다.

‘연지회상’이라는 이색적인 묵서명
도리사 극락전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내부 공포 칸에 밝힌 장엄세계의 명확한 천명이다. 묵서명의 문자를 통해 건축장엄의 조형의지를 확고부동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향우측 뒷벽 공포 칸에 〈연지회상(蓮池會上)〉이라는 묵서명으로 성서로운 결집을 표방하고 있다. ‘연지회상’이라는 이색적인 용어는 이곳에서 처음 본다. 연꽃이 핀 연못에서 아미타부처님께서 여러 불보살, 성중, 왕생자가 모인 자리에서 설법을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인도 왕사성 기사굴산(영축산)에서 석가모니불께서 법화경을 설하신 장면인 〈영산회상(靈山會上)〉을 연상하게 한다. 조금만 더 내부벽면을 둘러보면 그 연못은 구품연지임을 알 수 있다.
건축 내부의 공포 칸칸에 구품왕생 품계를 적어 놓았다. 구품왕생은 왕생자의 연화화생을 선업과 공덕의 근기에 따라 하품하생(下品下生)에서 상품상생(上品上生)까지 아홉 왕생장면으로 나눈 것이다. 구품왕생도의 소의경전은 〈관무량수경〉이다. 관무량수경 16관 중에서 14, 15, 16관은 상,중,하 삼배관을 설명한다. 향우측 뒷벽 모서리에 하품하생을 배치하고 시계방향으로 돌아 향좌측 뒷벽 모서리 부분에서 상품상생으로 끝맺는다. 오른쪽 어깨가 부처님께 향하는 우요삼잡의 운동방향을 취했다. 구품의 방제들은 연꽃 그림을 그려 넣고, 연꽃잎 끝자락쯤 검은 먹의 바탕에 흰 글씨를 단정히 써 내렸다. 구품왕생도에서 각 품생의 방제를 써넣은 경우는 일본 지온인 소장 〈관경16관 변상도〉(1323년) 탱화에서도 나오고, 문경 대승사 대웅전 목각후불탱의 하단부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내부 벽면 공포 칸의 부처님들.
극락전은 입체적 극락왕생도

그런데 경전에는 각 품생의 층위에 따라 왕생자에게 내놓는 대좌가 다르다. 이를테면 상품상생은 금강대, 상품중생은 자금대, 상품하생은 금련좌, 중품상생은 연화대좌, ....등의 방식이다. 도리사 극락전 포벽의 도상에서는 모두 연화좌로 통일했다. 다만 각 품계의 상생의 연꽃들은 다른 붉은 빛의 연꽃과는 달리 청색 계열의 색을 입혀서 상층 층위의 깊이를 차별화 했다. 관무량수경의 구품왕생 장면을 건축의 공포 칸을 이용해서 구현한 장면은 유일무이한 사례일 것이다. 단지 고흥 금탑사 극락전의 공포에 ‘화장세계해(華藏世界海)’라는 글이 있어 서로의 참고가 될 듯 하다. 도리사 극락전 자체가 입체적 아미타내영도이고, 구품왕생도이다.

그런데 의문이다. 왜 ‘연지회상’일까? 또 이 회상(會上)에 모인 분들은 누구실까? 구품왕생의 자리는 또 왕생자 없이 비워 두었다. 내부포벽을 둘러보면 후불벽 뒷벽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불보살을 모셨음을 알 수 있다. 한 벽면마다 다섯 분씩 그려 넣었다. 열다섯 분의 불보살 중에는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 약사여래,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등으로 다채롭다. 특이한 점은 보살도 여래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아미타경〉에서는 항하사의 모래알처럼 많은 부처님들께서 그 분들이 계시는 곳에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미치도록 한결같이 찬탄하고 호념하시는 분이 저 무량수불이신 아미타불이라 밝혔다. 극락정토의 거룩한 공덕과 장엄을 들은 중생들은 마땅히 서원을 세워 저 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라고 누누이 당부했다. 한번 들면 보리심에서 물러섬이 없는 불퇴전의 경지에 이르고, 세상에 더없이 선량하고 거룩한 이들과 한 곳에 모여 사는 구회일처(俱會一處)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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