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관계가 힘든 청소년에게

어둔 마음, 그릇된 관계 생성
바른 가치관, 정견(正見) 토대로
올바른 자아관 갖춰야
궁극적 행복 얻을 수 있어

 

며칠 전 한 학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메일을 받았다.

스님, 몇몇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친구들이 하는 행동을 자꾸 따라 하게 됩니다. 제 생각대로 독자적으로 움직여 보려고 해도 어느새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어느 날은 저도 모르게 지나가는 애하고 어깨를 살짝 부딪쳤는데 그 애한테 시비를 걸고 있더라고요. 제 친구들이 길 가다 스치는 사람이 만만해 보이면 무조건 시비를 걸거든요.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니까 따라서 같이 피우게 되고요. 술도 같이 마시게 되고요. 친구들이 나쁘다기보다는 저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한테 문제가 있는 게 맞나요?

그렇다. 알고 짓는 죄보다 모르고 짓는 죄가 훨씬 무겁다. 알고 짓는 죄는 쉽게 뉘우치고 다시는 죄짓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있지만, 모르고 짓는 죄는 죄를 짓고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불편함만 없으면 계속해서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죄를 짓게 되고, 결국에는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대부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인간관계 중에서도 친구관계서 발생한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 대학입시라는 경쟁과 대립을 앞두고 극심한 이기주의와 공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보니 그에 대한 반동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나쁜 짓을 하기 쉽다. 끼리끼리 어울리다보면 양심의 가책이 무뎌져 잘못된 행동을 더 쉽게 저지르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무명(無明)이라 했다. 잘못된 의견이나 집착 때문에 세상을 바르게 살지 못하는 어두운 마음상태를 말한다. 바람직하지 못한 어두운 마음상태가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관계(친구관계)를 만들어내고, 이는 공동체를 파괴해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지혜와 자비를 강조하신 것도 그 때문이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이 있다. 중국 당나라 때 벼슬아치를 등용하면서 인물평가의 잣대로 삼았던 말이다. 훌륭한 인물이 되기 위해선 첫째, 풍채와 용모가 단정해야 한다. 둘째, 언변이 올발라야 된다. 셋째, 문필이 준수해야 하고, 넷째는 판단력이 정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같은 인격기준은 지금도 똑같다. 그런 인격은 동체의 일원으로서 바람직한 친구관계를 맺고 사는데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인격은 사람의 모양새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모양새가 나쁘다고 해보자. 세상에 유익하고, 다른 사람에게 평화와 행복을 주기는커녕,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전쟁만 일어나고 민폐만 끼치며 살게 된다.

하지만 인품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지고한 인품자가 되기 위해선 먼저 지고한 인품자가 되겠다는 간절한 마음과 노력이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더 중요한 건 마음씀씀이다. 속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얼굴이 좀 못났어도, 말주변이 좀 떨어져도, 글재주가 좀 떨어져도, 판단력이 좀 느려도 속 모습이 바르면 얼마든지 인품자가 되고 인격자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 나는 이러이러한 인품자가 되어야겠다는 자기만의 인품 모형을 그리는 것이다. 그 모형 중에 하나가 방금 말한 신언서판이다. 불교에서는 해탈과 자비와 자재를 최고의 인품 모형으로 제시하고 있다.

해탈은 내 마음이 온전히 열려 온전한 행복을 얻는 것을 말한다. 그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고 마음상태가 바람처럼 자유로운 것이다. 자비는 그런 마음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모든 존재들을 내 몸처럼 끌어안는 사랑이다. 내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의 아픔과 고통을 껴안아주고 도와주고 보듬어주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게 있다. 대자재(大自在). 대자재란 속박이나 장해를 전혀 받지 않고 어떤 일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큰 역량, 또는 그런 경지를 말한다. 즉 역할이 필요한 자리에서 그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것이다. 학창시절, 우리가 공부를 열심히 해 학문을 쌓고, 체력단련을 잘 해 건강한 몸을 가져야 하는 것도 자재를 잘 하기 위해서다.

바른 가치관 정립은 그 토대라고 할 수 있다. 흔들리는 청소년들을 보면 대부분 가치관 정립이 제대로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기에 이러한 가치관 정립은 매우 중요하다.

부처님께서도 이러한 삶의 가치관 정립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 사람이 바르게 살기위해 실천해야 할 여덟 가지 바른 길, 팔정도(八正道)를 이르셨다. 그 가운데서도 바른 가치관, ‘정견(正見; 바른 깨달음)’을 맨 앞에 설하신 것도 그 때문이다.

바람직한 가치관 정립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바른 가치관 정립이다. 자신에 대한 바른 자아관(自我觀), 자신에 대한 바른 정체성을 바로 갖지 않으면 아무리 원대한 꿈을 갖고 살아도 행복한 삶, 만족한 삶, 기쁜 삶을 살 수 없다.

긍정적인 자아관이 그것이다. 자신에 대해 항상 좋은 생각, 밝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사는 것을 말한다. 잘난 내가, 훌륭한 내가, 의젓한 내가, 착한 내가 함부로 담배피고, 술 마시고, 친구들에게 시비 걸며 거친 행동을 하고 살 리 없다.

좋은 책과 건전한 종교 활동·동아리활동·명상 등은 바른 가치관 정립에 매우 좋은 도구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도구가 눈앞에 있어도 실천하고 자재하지 않으면 공염불이다.

또 하나 중요한 가치관은 내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뭐니 뭐니 해도 행복이다. 그러나 나 혼자만 행복하게 사는 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진정한 행복은 우리 모두의 행복이다. 내 행복도 중요하지만 내 친구, 내 이웃, 지구촌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이 함께 행복해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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