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행복하게 하는 ‘행복공식’

불행한 이유는 단 하나 뿐
원하는 것 갖지 못했기 때문
욕구 적을수록 작은 것에 감사
죽음명상통해 욕심 덜어내야

 

행복이란 무엇인가? 기분 좋음이다. 기분 좋음이란 무엇인가? 살아가는 일이 만족스럽고 흐뭇한 것이다. 그럼 어떤 삶이 만족스럽고 흐뭇한 삶일까? 어떻게 살아야 기분 좋은 삶을 구가할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한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막상 행복해지려고 하면, 뜻대로 안 된다. 남의 행복은 바로 내 눈앞에 있는 것 같은데 내 행복은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

그러나 행복하기 쉽다. 공식만 알면, 그래서 그 공식을 내 삶의 매순간에 바로바로 적용하기만 하면, 내 인생은 평생 무한 행복이다. 먼저 행복의 정의를 명확히 해두자.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2가지다. 복된 좋은 운수, 또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하거나 또는 그러한 상태를 이른다. 이것을 내 스승인 용타 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더욱 명징하게 정의해놓으셨다.

행복이란 욕구하는 것이 소유(성취, 실현, 구현)될 때 일어나는 긍정적인 느낌이라고. 행복=소유/욕구라는 말이다.

우리 삶을 불행하게 하는 원인은 많은 것 같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오직 하나다. 탐심(욕구, 욕망, 욕심) 때문이다. 전쟁도 싸움도 질병도 부패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 내 욕심이 빚어낸 인과율이자 결과물이다. 내가 원인을 짓지 않는다면 결코 질병도 없고 싸움도 없고 분노도 없다. 내가 불행한 이유는 오직 하나,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기, 혹은 못했기 때문이다. 욕구하는 것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틈새에서 행복공식은 작동한다. 내가 욕구하는 것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나는 더 많은 것을 갖게 돼 행복해진다. 그러나 내가 욕구하는 것을 갖지 못하면 못할수록 나는 더 많은 것을 갖지 못해 불행해진다.

반대로 내 욕구가 적으면 적을수록 조금만 가져도 내 인생은 한없이 즐겁고 흐뭇해진다. 조그만 소유에도 기뻐하고 감사하고 만족해한다. 소유에 비례하고 욕구에 반비례하는 것이 행복이고 행복공식인 것이다.

이때 바른 지혜가 필요하다. 소유의 폭을 너무 넓게 잡지 않는 것이다. 소유의 동심원을 너무 확대해 내 인생 끝까지 지름을 설정하지 않고, 바로 지금 현재(here & now)’로 잘게 쪼개서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용타 스승님께서는 소유를 완료형소유와 미래형소유로 구분해놓으셨다. 완료형소유는 글자그대로 내가 이미 이룬 것이나 갖고 있는 것을 말하고, 미래형소유는 앞으로 내가 성취(구현)해나가야 할 것()들을 말한다.

그 결과 완료형소유에 집중하면 내 인생 이미 갖고 이미 이룬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지족(知足)행복에 눈 뜨게 되고, 미래형소유에 집중하면 앞으로 내가 이루고 살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어 구현(具現)행복에 눈뜨게 되며, 행복공식에서 보는 것처럼 내가 갖고 싶은 욕구를 최소화하면 할수록 그 어떤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가볍고 흐뭇한 초월(超越)행복을 구가하며 기분 좋고 흐뭇한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말이 쉽지, 행복공식이 저절로 내 것이 되진 않는다. 거기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닦음은 필요하다. 노력도 하지 않고 날로 먹을 수는 없지 않는가. 일생생활을 하면서 언제 어느 때라도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욕심(욕구, 욕망) 닦음법이 있다. 죽음명상이 그것이다.

죽음명상은 현재 내 마음속에 들어있는 집착거리(욕심, 욕망, 욕구)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봄으로써 그 집착거리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실제로 명상을 통해 지금 현재 죽어가는 내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다보면 지금 현재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불필요한 집착덩어리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처음엔 잘 안될지 모른다. 더 살고 싶다는 생명에 대한 애착도 있을 것이고, 아직 못해본 것이 너무 많은데 지금 죽기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 것이고, 젊은 나이에 지금 죽기에는 한스러움도 많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죽음명상을 하는 이유다. 죽음에 대한 명상을 충분히 함으로써 내 마음속에 찌꺼기처럼 남아있는 집착덩어리(욕구, 욕망, 욕심)를 낱낱이 드러내 그 집착덩어리로부터 벗어나 언제 어느 순간에라도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죽음명상을 실감나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 내 앞에 정말 죽음이 닥쳐왔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실감나게 죽음명상을 해야 진짜 효과가 있다.

그런 상태에서 죽기 싫은(혹은 두려운) 마음이 생길 때, 지금 내가 왜 죽기 싫은가? 죽음이 두려운가? 그 마음을 찬찬히 직면해보는 것이 죽음명상의 진짜 목적이다.

실제로 한번 해보자. , 지금 저승사자가 바로 눈앞에 왔다. 저 저승사자를 따라 나는 지금 당장 문밖으로 나서야 한다. 그런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저승사자를 못 따라 나서겠다. 그때 그 상황을 정확히 직면해보는 것이다. 지금 무엇이 나를 문밖으로 못 나서게 하는가? 무엇 때문에 지금 내가 저승사자를 쉽게 따라나서지 못하는가?

그렇게 직면하다보면 마음속에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게 바로 내가 갖고 있는 집착덩어리(욕망, 욕심, 욕구).

그것에서 벗어나는 법은 간단하다. 용타 스승님께서는 그 답을 선명히 제시해주고 계신다. 죽음에 대한 내 관점만 바꾸면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어떤 여자 친구를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제대로 연애 한 번도 못해보고 죽으면 한이 맺혀 어쩌나. 안 돼. 이대로 도저히 죽을 수는 없어라는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을 어차피 지금 죽을 수밖에 없는데 어쩌겠니. 차라리 지금 빨리 죽어서 다음 생엔 그 여자 친구와 아예 부부로 태어나버려야지. 그러면 더 좋지 않겠어? 하고 생각을 전환해버리는 거다.

그렇게 지금 자기가 죽을 수 없는이유를 죽을 수 있는이유로 하나하나씩 전환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가슴이 툭 트이며 한없이 자유로워지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해탈이고, 행복의 극치다.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증일아함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을 선물로 드린다.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을 끊게 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노여움을 끊게 되며 남을 기쁘게 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괴로움을 끊게 되고 자기를 버리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과 성냄, 차별하는 마음을 끊게 된다. 이 네 가지 마음은 온갖 착한 일의 근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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