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과 현대미술- ⑩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유대계 러시아인 10대에 美이민
2차대전 등 변화, 예술 통해 극복
비정형·정형성 사이서 감정 표현
시각적 자극 탈피하고 본질 추구
“자유는 내면 성찰서 비롯” 주장

▲ 마크 루스코의 대표작 <빨강, 흰색, 갈색(Rot, Weiss, Braun, 1957, Oel auf Leinwand)>. 색면의 크기 등으로 자신의 감정 변화를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특정한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시각적으로 자극을 받는다는 것은 대상의 형상이다. 대상이 사라지면 형상도 사라지고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한계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각적 자극에서 벗어나서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인식과 형상화 작업을 하는 작가가 있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 1970, 러시아 태생·미국 활동)는 한 시대의 커다란 변화를 지혜롭게 극복하며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었으며 지금도 그의 예술적, 정신적 가치는 유효하다.

러시아에서 출생한 그는 유대인 부모로 인하여 1913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당시 러시아는 커다란 혼란 속에 있었으며 특히 유대인인 부모는 로스코의 미래를 위하여 뉴욕으로 이주를 하게 되며 명석한 로스코는 예일대학에 진학하였으며, 그 후 뉴욕 아트 스튜던츠에 입학하여 예술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젊은 예술가 로스코는 초기에는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당시 뉴욕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유럽의 작가들이 모여들며 새로운 예술에 대한 열정을 형성하던 시기였다.

새로운 시도는 용기와 창의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표현방식이나 재료, 기법 등을 형성하기 위하여서는 많은 실험과 창의적인 인식의 전환이 동반되어야 한다. 젊은 로스코는 이러한 시대적 패러다임을 잘 간파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30대 후반부터 자신의 특성을 드러내는 작품을 하기 시작한다.

대상에 대한 로스코의 인식은 비정형성과 정형성의 관계성을 통하여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대상은 특정한 형상을 지니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전혀 다른 형상과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다. 색면화 화가들의 형성에 많은 공헌을 한 로스코는 철학적 인식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색면파 화가들의 미학적인 토대를 구축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Ohne Titel, 1957, Oel auf Leinwand, 143x138cm)〉의 작품은 ‘제목이 없는 것’이 제목이다. 추상미술이 등장하면서 제목 없는 제목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제목이 없다는 것은 작가가 어떠한 의도나 목적을 관람객에게 강요하지 않기 위함이다. 특정한 제목을 작품에 부여하게 되면 그 작품은 작가의 의도가 분명해 진다. 즉, 작가가 인지하고 말하고자하는 자신의 철학적, 미학적, 사회적 관점을 제시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그러한 인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목이 없는 경우에는 이러한 작가의 의도가 사라지고 보는 사람의 감정, 지식, 경험 등이 작품에 도입되게 된다. 때문에 보는 사람과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특성은 비정형의 색면과 서로 약간의 간격을 사이에 두고 새로운 관계성을 형성하며 새로운 감정을 표출한다는 것이다. 색면의 크기가 각각 다르며 색면의 외곽 테두리는 확장성이 보이기도 한다. 다시 말해 색면의 시작과 끝이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색면들과 조화와 소통하기 위하여 자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주변의 다른 색면과 충돌하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존재성은 각각의 독립성을 유지하거나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존재성이 무너지면 자신의 존재가 무너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성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것은 명상적 관점에서 가능한 일이다.

로스코는 러시아에서 때어나 미국으로 이주하며 자신의 존재성 특히 유대인의 존재성에 깊은 애정과 더불어 불안감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유럽에 나치가 그 세력을 확장하자 로스코는 크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을 느끼게 된다. 1938년에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며 이름도 마르쿠스 로스코위츠(Marcus Rothkowitz)에서 마크 로스코(Mark Rothko)로 변경하게 된다. 이를 통하여 그가 경험했을 두려움과 공포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자신의 존재방식이 그의 예술이 된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은 삶을 떠나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예술가가 살아 있으며 창작을 하는 순간은 존재의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다 많다. 때문에 예술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삶에 대한 고찰이 있어야 한다. 작가가 창작하는 작품들은 그 당시의 시대적, 문화적, 철학적 관점들이 내포되어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삶의 존재방식이다.

▲ <제목 없음(Ohne Titel, 1957, Oel auf Leinwand, 143x138cm)〉. 속칭 ‘무제(無題)’다. 이는 작가의 의도를 관람객들에게 강요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로스코 역시 젊은 시절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때문에 초기 작품들은 사실적인 표현들이 많이 나타나며 점차적으로 자신의 생각들을 실현시켜 나아가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들을 도입하게 되는데 이는 1940년대 이후의 작품들에서 나타난다. 

이 작품은 이러한 로스코의 삶의 과정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이미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이 어느 정도 성숙해 지며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본질적 자아를 찾아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Rot, Weiss, und Braun, 1957, Oel auf Leinwand 252.5x207.5cm〉는 로스코 작품 중에 대표작이다. ‘빨강색, 흰색, 갈색’으로 제목을 붙인 이작품은 자신이 경험한 나치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고자하는 강한 의지와 자유에 대한 열망이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유에 대한 열망과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아 뉴욕에 정착한 로스코는 당시에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깊은 성찰을 하며 동양의 선(禪)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며 이러한 그의 인식의 변화들이 점차적으로 작품에 나타나게 된다.

이 작품은 이러한 로스코의 집약된 인식의 상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두운 갈색에서 점차적으로 밝아지는 색면의 배치는 자신의 삶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으로서 가지게 되는 본능적 두려움과 공포감이 점차 사라지는 과정을 색면의 크기와 색상의 변화를 통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밑부분의 흰색은 면적은 가장 작지만 색의 강도는 가장 강렬하다. 이는 자유에 대한 열망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추상주의 화가가 아니다. 나는 그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싶을 뿐”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당시에 추상주의 표현들이 많이 등장하며 각각의 개념들을 표출하던 것에서 벗어나 로스코는 본질적 존재의 하나인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추상표현이 철학적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못하여 고정적인 패러다임을 형성해 가는 것을 지켜본 그는 자신은 그들과 다르게 인간의 본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두려움, 공포, 연민, 사랑 등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다양한 감정들이 화면 속에서는 색채로 변화하여 그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색상의 크기와 색상의 위치, 표현방법 등이 감정표현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지난번에 살펴본 뉴먼의 작품들은 절제된 감정을 커다란 화면에 분리하여 표현하였다면 로스코는 절제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로스코가 선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느낀 감정들이 이 작품에 잘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즉, 외부에서 오는 두려움이나 공포 역시 자신의 생각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모든 일어나는 현상은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을 인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로스코는 오랜 시간 자신의 존재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는 가운데 접하게 된 선사상의 핵심을 잘 이해하고 수용하였다고 보여 진다.

로스코의 작품을 본 많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커다란 화면에 그리다 만 것 같은 표현들과 강렬한 색채들이 거부감을 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관객의 관념적 사고 때문이다. 작품은 어떠한 단계를 거치며 완성이 되어야 한다는 관념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이 작품들을 대하기가 혼란스러울 것이다.

마치 연습생이 그리다 만 것처럼 일정한 형식적 틀을 가지고 있지 않은 로스코의 작품들은 시간이 흐르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진정한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로스코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는 많은 찬사를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그의 작품들은 그의 분신처럼 전 세계적으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경제적인 가치를 떠나서 그의 작품들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추상미술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작가이다.

추상미술의 발달이 유럽과 미국에서 거의 동시대에 일어나는데 이는 시대적인 변화와 교통수단의 발달에 기인한바가 크다. 또한 전쟁이라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시대적 아픔을 예술가들이 예술을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이 지역을 넘어서 진정한 자유에 대한 가치를 찾아가고자하는 노력의 결실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진정한 자유는 외부의 물리적인 자극에서 오는 것이 아닌 내면의 성찰을 통하여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을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각적 자극에서 벗어나서 본질적 존재와 가치를 찾아가는 로스코의 작품들은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인간의 존재가치를 찾아가는 한 부분으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보여준 소중한 그의 가르침은 현재에도 진행형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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