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 스님 조계종 군종교구장

정우 스님은… 1965년 통도사에서 홍법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8년 통도사에서 홍법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71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해인사 승가대 대교과를 졸업하고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등 20여개 사찰을 창건했다. 조계종 9~12대 종회의원. 불교TV 사장 등을 역임했다. 조계종 포교대상 공로상. 만해사상실천선양회 포교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조계종 군종교구장 및 구룡사 회주로 있다.

공동체 살림 강조

사찰 20여 곳 창건, 조계종 등록
통도사 영농법인 설립, 일반개방
“사회 병폐, 공동체 정신으로 치유”


소외계층 자비보시행 서원

짜장면·핫팩 등 군장병에 보시
각계 어려움 돕기에 적극 나서
“화합, 공유의 마음을 지녀야”

세상이 시끄럽다. 배임, 횡령 등 공공요직에 앉은 많은 이들의 사심에 의한 행위가 연일 지탄 받고 있다. 공동체적 삶을 중시한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공심(公心)으로도 말할 수 있다. 자신을 내려놓고 주변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은 공심이 있기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5월 12일, ‘공심’을 주제로 조계종 군종교구장인 아산 정우 스님(64)을 만나 스님의 생각을 들었다.

정우 스님은 10대 초반 통도사에서 출가한 이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에 대형 도심사찰을 창건했다. 서울 강남서 가장 큰 절 중 하나로 꼽히는 구룡사를 1985년 창건한 이래 일산 최대 사찰인 여래사와 해외사찰 8개 등 20여개 사찰을 만든 도심포교의 주역이다. 스님은 구룡사와 여래사를 비롯한 대찰들을 모두 조계종 공찰로 등록했다. 그 이면에는 공동체 살림이란 ‘공심’이 있었다.

- 고양 여래사, 평택 자산사, 성남 장안사와 연화사, 인천 보명사, 대전 봉국사, 제천 운조암, 용인 법계선원, 미국 뉴욕의 원각사와 포틀랜드 보광사 등 스님이 손수 세우고 정성으로 가꾼 전법도량을 종단에 공찰로 등록했습니다. 왜 오랫동안 힘들여 일군 사찰들을 내놓으신 것입니까.

쑥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게 당연한 것인데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세상이 됐으니 말이다. 시주자들이 보시금으로 내놓은 삼보정재는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승가공동체의 것이었으니 내놓고 말고 할 게 없는 것이었다. 더 늙으면 괜한 욕심으로 종단에 횡포를 부릴까 염려돼 정신이 온전할 때 결심을 세웠다.(웃음)

수행자의 덕목은 불일부이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대에 와서 사설사암이라는 말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일각에서는 사찰을 빼앗긴다 등의 말이 있지만 오히려 상좌들이 살림을 잘 산다면 계속 꾸려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 못산다면 외부에서 개입이 있을 터이니 오히려 더욱 열심히 잘 살려야 하지 않겠나.

- 말씀하신 것처럼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는 세상이 됐습니다. 사회에서는 없는 이들이 더욱 기부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99개 가진 사람이 1개를 채워 100개를 만들려는 욕망으로 가득찬 세상이 됐습니다.

지금 현재 가진 것들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는 착각 때문이다. 부처님 가르침으로 진실로 돌아간다면 이런 것들이 허상이란 걸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소유’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것에 집착해 붙들려 있는 것이다. 집착에 얽메여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소유한 것은 내놓지 못하지만 원력으로 이룬 것은 그 자체로 만족이니 대중에게 원래대로 돌려놓게 된다. 공심이란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충실한 것이다. 승려로서 종단의 종지를 따르고 공유화된 살림을 살고, 그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 지역살림에 이바지한다면 더할 나위 없음이다.

군장병들이 자장면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정우 스님. 스님은 지금까지 군장병 2만여 명에게 짜장면을 보시하고 핫팩 30만개를 보내는 등 군포교에 앞장서고 있다.
- 창건 과정에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스님께서 원력에 따른 것이라면 공심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찰을 창건하신 원력이 궁금합니다.

어려서부터 절에서 자랐지만 부처님 법이 그렇게 좋은 줄은 잘 몰랐다. 군대에 가니 부처님 법이 더욱 그리웠다. 그래서 부처님을 군대로 모시기로 결정했다. 의정부 26사단 호국 황룡사와 호국 일월사를 군생활하며 창건했다. 제대하자 월하 노스님, 벽안 노스님 등 대중들이 대중법회에서 새까맣게 젊은 저를 법상에서 법문하게 했다. 열린 사고를 가진 그분들이 후학의 울타리가 되어줘 그 기운으로 서울에 올라가 구룡사를 창건했다. 예전 큰스님들은 더 한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사찰을 창건했다. 그런 모습을 본받고자 대중들이 부처님법에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대중포교는 승려로서 놓을 수 없는 과제이기에 내세울 것도 아니다.

- 그래서 일까요. 스님의 사찰은 대중들에게 열려있는 공간인 것이 특징입니다. 통도사 주지로 있을 때도 그렇고, 구룡사, 여래사도 일반 시민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현대식으로 꾸몄습니다. 어떤 의도에서 산문을 활짝 여셨는지요.

불교는 모든 대중에게 열려있어야 한다. 대중들을 반갑게 맞이 하지 못한다면 불교가 아닌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관심, 친절에서 나온다. 부처님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바로 하심과 겸손이 그 실천이다. 사찰을 대중에 공개하는 것도 모두 그 일환이다. 사찰과 스님이 먼저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대중도 불교로 다가오고 공동체적 삶이 된다.

- 통도사 성보박물관에도 하나 둘 씩 문화재를 기부해 현재 스님이 기부한 문화재가 수백점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증받거나 구입한 문화재가 꽤 된다. 그때 그때 소중한 성보를 만나면 본사인 통도사에 보낸 것이 벌써 35년이다. 기증은 많은 이들이 찾는 통도사에서 함께 보면 더욱 좋지 않나 생각해서 이뤄졌다. 벌써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있고, 지정받을 만한 성보들도 많다.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면 박물관도 할 수 있겠지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보다 큰 사찰에서 보다 많은 대중들이 보니 얼마나 좋은가. 승려가 승려생활 동안 인연으로 모은 정재는 승가공동체로 돌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본사인 통도사를 믿었고, 대중들을 믿었다.
통도사 주지로 있을 때 구룡사 신도들과 함께 구성한 전답으로 영농법인을 만들었다. 당시에 밭과 논이 사찰 명의로 되지 않아 내 이름으로 되어있었다. 사후에 속가로 갈 위험이 있어 법인화를 추진했다. 영농법인이 만들어지고 도시사람들과 통도사 식구들이 함께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게 됐다. 잡목숲에는 매실수도 심었다. 많은 이들이 함께 농사를 짓고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 2011년 인도의 고려사 불법매각을 막고 정상화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아름다운 동행을 통해서도 각종 사업에 많는 기여를 하고 있고 달라이라마 방한에도 앞장섰습니다. 스님이 적극적으로 공동체 일에 동참하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조계종이 공공목적을 띈 기구를 출범시켜 좋은 곳에 정재를 쓰는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큰 수해가 났을 때 예전 같았으면 개별로 도왔다. 지금은 공식기구를 통해 도우니 참 좋다.
구룡사의 경우 30여년 본인이 사는 동안 선행에 먼저 나선 사찰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절박하고 급할 때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한 것이지, 있어서 넘쳐서 한 것은 아니다. 작은 사찰에서 나름 하는 일도 있는데 기금을 내놓기가 쉽진 않다. 하지만 더 절박한 피해가 있다면 응당 백짓장도 맞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일각에서 ‘얼마나 많으면 그렇게 할까’하는데 ‘아니야, 없어’라고 하고 싶다.(웃음)
인도 고려사 부분은 해외에서 한국 스님들, 한국불교의 위상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적극 나서게 됐다. ‘한국 스님들은 모두가 해외에 사찰을 지으면 불자들 돈을 가지고 도망친다’는 오명을 뒤짚어 쓸 위기였다.
착한 일을 하고 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된다는 것은 더욱 좋은 일이다. 누군가 짊어지고 가야할 일이라면 그 짐을 스스럼없이 짊어지고 갈 수 있는 내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종단 안팎에 많은 사업에 동참하는 것도 그 것이 전체 불교를 살리는 일이라 생각해서다.
그런 취지에 구룡사와 여래사 신도들, 또 많은 대중들이 동참해줘 감사할 뿐이다. 지난해 동티베트 스님들의 수행처인 야칭스를 갔는데 그 곳 상황이 정말로 열악했다. 올해는 야칭스 화장실 불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 현재 군종교구장으로서 특히 군장병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틈 날때마다 최전방 GOP까지 가고, 2013년 말부터 2만여 명의 장병들과 짜장면을 나눈 것으로 유명합니다.

군포교 또한 이 분야가 시급한 분야이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따뜻한 병영생활이 되도록 불교가 장병들에게 비타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이번에 부처님오신날에는 서해 최북단 도서지역인 백령도와 연평도의 해병대를 방문해 위문품인 ‘자비의선물’을 전달했다. 매년 자비의 선물 3만여개를 90여 부대에 보내고 있다. 군대에 있을 때 직접 느꼈던 어려움이 원동력이다. 작업할 때 조금이나마 덜 힘들라고 목장갑과 핫팩도 보내고 있다. 작은 정성이지만 장병들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된다.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면 군대에 있을 때 가장 생각나는 음식은 짜장면이었다. 힘든 신병교육대 훈련병 시절과 초임부사관, 장교 등을 대상으로 짜장면을 함께 먹으며 마음을 나누고 있다.
요즘 장병들은 정서적 안정도 중요한데 오지에 있는 철책선 근무 병사들에게는 책말고는 다른 정서안정책이 딱히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사랑의 독서까페 사업도 하고 있다. 많은 군장병들이 군생활 동안 부처님 법을 조금이라도 접하고, 제대 후 사찰에 찾아오는 이가 생겨난다면 이 또한 보람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찰들이 1:1 자매결연을 통해 동참해주었으면 한다.

정우 스님은 2015년 11월 독립영화 ‘원효-춤추는 붓다’ 제작비를 지원했다.
- 1987년 극단 ‘신시’를 창단해 문화포교에도 앞장섰습니다. ‘맘마미아’ 등 다양한 뮤지컬로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극단이 됐는데 뿌듯하실듯 합니다. 독립영화 후원 등 아직도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듯 합니다.

1980년대 중반 연극 ‘님의 침묵’을 공연했는데, 당시 함께한 출연진과 스태프들의 마음을 모아 극단을 만들었다. 연극도 포교에 좋은 방법이 되리라 생각했다. 붓다TV나 <월간 붓다>도 마찬가지이다. 도심포교에서 극단을 만들고 인터넷TV를 운영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다.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미리 준비해나가야 한다. 〈구룡사보〉로 시작된 〈월간 붓다〉는 내년이면 30주년이다.
현재 불교계는 많은 부분에서 시대흐름을 놓치고 있다. 단순히 수행과 전법하는 불교가 아니라 문화,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도적으로 투자하고 그 효과를 맛보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현재 창건한 각 사찰의 회주로서 후학 양성에도 나서고 계십니다. 스님께서는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고, 국민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40년 넘게 절에 살고 있으나 그동안 큰 어려움은 없었다. 어른 스님의 큰 그늘에서 살아서 그런가 보다. 이제는 어른 스님들이 하셨던 것처럼 후학의 그늘이 되어주고 앞선 어른의 울타리가 되어 당신들의 업적을 조명하고자 한다. 이를 후대의 가르침으로 남기는 일이 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에 어른 스님이 없다는 말이 많다. 후학들의 잘못이다. 근현대 불교의 많은 어른을 조명하고, 또 우리들이 그 길을 따르기를 발원하고 행해야 한다.
우리는 수행자여야 한다. 종교인이 직업이 돼서는 안된다. 하심하고 인욕해야 한다. 셰익스피어도 ‘수행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의 완성이다’고 했다. ‘죽음의 가치를 진정한 삶의 가치로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너그러움을 지닌 사람들이 되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승려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나 자신부터 성찰하고 이웃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불교 뿐만이 아닌 우리 시대 모두가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정우 스님은 대화 내내 승가는 화합을 우선하며 모든 것들을 공유하고 지역사회와 어울리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흔히 사람들은 큰일을 앞두고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곤 한다. 하지만 수많은 불사를 이뤄낸 정우 스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모두를 위한 일이고,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나서면 못할 일이 없다.”

2015년 북인도 성지순례에서 달라이라마를 친견한 정우 스님. 스님은 달라이라마 방한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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