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비명상 대표 마가 스님

참불선원 불교인문학 강좌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

한국사회에 힐링(healing)’ 열풍이 불어 닥친 지도 몇 년이 흘렀다. 힐링은 어느새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 잡았고, 상처 받은 이들을 위로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힐링이 계속 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가 아프다는 반증이다. 왜 점점 아파져만 가는 걸까? 발전하는 문명 아래 상처만 늘어가는 사람들. 힐링멘토로 잘 알려진 ()자비명상 대표 마가 스님은 52일 참불선원 인문학 대강좌 첫 주자로 나서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스님은 행복해지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을 고민하고,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정리=윤호섭 기자

▲ 마가 스님은… 1985년 도선사에서 현성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1989년 중앙승가대학 사회복지과를 졸업하고, 법주사·복천암 선방을 시작으로 5안거를 성만했다. 2003~2011 중앙대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사단법인 자비명상 대표와 동국대 정각원 교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내 안에서 찾는 붓다> <내 마음 바라보기> <고마워요 자비명상> <알고 보면 괜찮은> 등이 있다.
행복 위해 身口意 삼업 닦고
남 향한 화살 자신에게 돌려
항상 깨어 있으려 노력할 때
진정한 행복 나에게 찾아온다

21세기 한국사회는 기술집약산업이 말도 못하게 발전했습니다. 정말 힘들고 어렵게 살 때는 돈을 많이 모으면 행복할 줄 알았고, 산업이 발달하면 생산성이 높아져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 걸. 21세기 들어서 더 많은 아픔을 겪고, 더 많은 갈등을 빚어내고, 더 많은 자살과 이혼이 생겼습니다. 왜 물질의 풍요 속에서 정신적 공허가 올 수밖에 없었을까요? 오늘은 부처님 가르침 속에서 인간성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현대인들은 과학이 밝혀내는 것만 믿지 뜬구름 잡는 소리는 믿지 않습니다. 21세기 종교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고요. 자기 머리로 이해가 됐을 때 믿고 따라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부처님 가르침은 굉장히 과학적입니다. 콩 심으면 콩이 맺히고, 팥 심으면 팥이 맺힌다는 연기법을 과학으로 증명한 것이 불교 가르침이기 때문이죠.

먼저 여러분 지금의 마음을 입꼬리에 둬보세요. 그리고 내 입꼬리가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보세요. 다음으로 한번 미소를 머금어 보겠습니다. 그러면서 내 기분은 어떤지 바라보세요. 이것을 미소자각이라고 합니다. 입가에 미소를 띠면 마음엔 평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플럼빌리지 틱낫한 스님이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것이기도 하죠.

행복을 위한 첫 번째.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면 행복해지고, ‘그럴 수 없어라고 하면 불행해집니다. ‘컵에 담긴 물이라는 유명한 일화가 있죠. 물 반 컵을 보고 에이, 반밖에 없네라는 반응과 , 그래도 반이나 남았네라는 반응. 이 물은 감사하든 안 하든 반 잔의 양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음대로 생각하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은 어떤가를 늘 바라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컵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고 있는 자신을 보는 것이죠. 움직이는 내 마음을 늘 바로 보고 알아차리면 제대로 명상이 되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행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솔개의 일생을 아시나요? 저 작은 솔개도 40년을 살면 날개는 축 처져서 날기가 힘들고, 부리는 휘어져 음식을 먹기 힘들어집니다. 발톱도 낡아 사냥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죠. 이때 솔개는 죽을 각오로 바위산에 올라 부리를 쪼아 깨버리고, 발톱과 깃털을 뽑아버립니다. 그리고 100일이 지나면 새로운 부리와 발톱, 깃털이 돋아나 또 다시 40년을 산다고 합니다. 내 인생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것만 버리면 나는 행복해질 것 같다는 것을 한 가지 찾아보세요.

자존심, 미워하는 마음, 사치, 욕심 등 참 많겠죠. 한번 따라 해보세요.

부처님, 제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저는 이것을 버리겠습니다.”

이게 올바른 기도입니다.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하는 건 기도가 아니고 구걸입니다. 기도와 구걸을 꼭 구분하세요.

우리는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닦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행동은 과연 행복을 위한 것인지 불행을 위한 것인지, 또 나의 말과 생각은 행복을 위한 것인지 불행을 위한 것인지 바라봐야 합니다. 지금 나는 어떤 행동과 말,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보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이 됩니다. 그렇기에 수행도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깨어있으면 됩니다.

제 눈에 안경
안경에 때가 껴 있으면 잘 안 보이겠죠. 즉 안경 닦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제 눈에 안경으로 보고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죠. 명상은 그런 판단을 하는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고집 센 놈이라고 한다면 내가 더 고집 센 놈이다고 자신를 들여다보세요. 이를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화살을 돌려 지금의 나를 보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늘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모습, 음성, 얘기를 듣고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자기만의 잣대를 갖고 재봅니다. 자기를 보지 않고 대상을 바라보고 마음만 내죠. 번뇌망상이 시작되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사진을 찍고 있는지 그것을 바라보세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을 마음의 노예라고 하고,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사람을 마음의 주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상대방을 향해 이렇게 해라고 주문합니다. 근데 수행은 그런 내 자신을 바꾸는 것입니다. 문제없는 인생은 없어요. 다만 문제를 잘 못 푼다는 겁니다. 그래서 도망을 치고요. 하지만 문제를 풀지 않고는 절대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사성제(四聖諦)입니다. 고집멸도(苦集滅道). 이 고집멸도를 설명하려고 84천가지 방편을 쓰셨습니다. 왜 괴로운가.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가. 그것이 도에 나와 있습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즉 고집을 버려야 행복해진다는 겁니다.

해우소에 가면 입칙오주(入厠五呪)라는 말을 접하게 되는데요. ‘버리고 또 버리니 아니 큰 기쁨이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내 마음의 탐진치도 이와 같이 버려서 행복해지자는 겁니다. 우리는 똥은 버릴 줄 알아도 똥고집은 버릴 줄 몰라요. 그래서 괴로움 속에 살아갑니다.

저는 어릴 적 저희 아버지를 보면서 저건 아버지도 아니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는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틀이 있었던 것이죠. 예를 들면 아이를 사랑으로 보살피고, 뒷바라지하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워낙 잘생긴 탓에 다른 여자가 스카우트 해갔어요.(웃음) 아버지 없이 태어나니까 속에 울분이 쌓이더군요. 그래서 세상이 다 안 좋게만 보였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제 눈에 안경이 된 거죠. 이런 저에게 주변 사람들은 너나 잘하라고 했지만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과 그럴 수 없어라는 마음은 극락과 지옥만큼 차이가 큽니다.

당신의 역할은
저에게는 스님 배역이 주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배역을 잘 소화하고 있나요? 순간순간 변하고 있는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는 말이죠. 여기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나뉩니다.

<옥야경><선생경>에는 아내의 역할이 나옵니다. 어머니와 같은 아내, 누이와 같은 아내, 친구와 같은 아내, 며느리와 같은 아내, 종과 같은 아내, 원수와 같은 아내, 도둑과 같은 아내 등 7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보세요.

연꽃이 왜 불교의 상징이 되었을까요? 연꽃은 더러움 속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변을 탓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남을 탓하지 않고, 내 가정환경 탓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게 바로 주인공입니다. 그러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세요. 그리고 이 순간 나의 행동은 주인의 자격에 어울리는지도요.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죽을 땐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이 세 가지는 진리입니다.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진리 앞에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죠. 자기가 지은 복은 자기가 가져간다고요. 희망이 생기지 않나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바로 복을 짓는 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만나는 사람과 따뜻하게 손 한번 잡으면 1억 원어치 복이 되고, 나 몰라라 나만 위해 산다면 1억 원어치를 까먹습니다. 나만 잘 되고, 내 가족만 잘 되기를 바란다면 오히려 문제가 커집니다. 나는 잘 살고 있는데 못사는 집 사람이 불을 지르고 돌을 던질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세월호 참사에서도 선장이 나만 살겠다고 뛰쳐나갔죠. 그와 우리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모두가 고해에 빠져 있는데 나만 잘 살겠다고 외치는 불자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세요.

우리는 늘 상대방의 단점을 찾아 꼬집는 걸 많이 했습니다. 칭찬보다 비난하는 일이 많고요. 하지만 관세음보살님은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으로 고통 받는 중생을 안아줍니다. 우리는 두 손과 두 눈을 가진 관세음보살님의 작은 아바타입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그 마음으로, 부처님 자비로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안아주세요.

불교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큰 복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죠. 무량대복(無量大福)이라고도 하는데요. 당신은 부처가 될 사람이기 때문에 가벼이 여기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해보세요.

오늘 당신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당신도 나와 똑같이 슬픔과 괴로움과 절망을 겪어 알고 있습니다. 당신도 나와 똑같이 삶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욕심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마음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행복하길 바랍니다. 얼굴과 낙하산은 펴져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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