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5가지 원리

부정적 생각 들면 그러나떠올리면
긍정적 결론, 마음 지배하게 돼
우주만물 행복 원대 소망품어야
행복의 질, 마음먹기 달린 것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은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삶이다. 삶이 없다면 자신도 없고, 자식도 없고, 부귀영화도 없고, 행복도 없을 것이다.

그토록 소중하고 값진 삶을 어떻게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사람들이 물어올 때 나는 삶의 5대 원리를 제시한다. 정체(正體), 대원(大願), 수심(修心), 화합(和合), 작선(作善). 5가지 원리다. (출가하기 전 내게 고난이 닥쳤을 때 스승이신 동사섭 행복마을 용타 큰스님께서 가르쳐주신 원리다.)

정체의 원리란 자신에 대한 바람직한 정체관, 즉 바람직한 자아관을 갖는 것을 말한다.

평소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야’, ‘나는 그저 그럭저럭한 사람이야라는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사는 사람은 항상 그저 그런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아주 착한 사람이야’, ‘나는 매사에 훌륭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야라는 믿음과 가치관을 갖고 사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항상 착하고 훌륭하게 살아간다.

사람에 따라 자아관은 각기 다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는 4가지 차원의 자아관이 있다. 보편적 자아관이다.

첫째, 부정적 자아관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야’ ‘항상 별 볼일 없는 사람이야’ ‘나는 왜 키가 160센티밖에 안 될까?’ ‘나는 왜 영어를 잘 못할까?’ 하고 자기를 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자아관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사람은 열릴 운세도 열리지 않는다.

운세가 열리는 법은 간단하다. 부정적인 자아관이 인식되는 순간, 바로 그 뒤에 그러나를 붙여버리면 된다. ‘그러나가 바로 묘약이다. 예를 들어 나는 왜 영어를 못할까? ‘그러나굿모닝은 할 수 있잖아”, “나는 하는 일마다 왜 이 모양이야. ‘그러나커피 하나는 잘 타잖아라며 부정적인 인식이 드는 순간 바로 그 뒤에 그러나를 붙여버리면 부정적인 자아관은 순식간에 긍정적인 자아관으로 바뀌어버린다.

진공적 자아관은 나는 없다’, ‘실체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허공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삼법인가운데 제행무상과 제법무아가 여기에 해당한다.

묘유적 자아관은 성철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할 때의 그 산과 물과 같은 자아관을 말한다.

 

산시산 수시수(山是山 水是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더라)

산시비산 수시비수(山是非山 水是非水,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더라)

산산수수(山山水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더라)

 

마지막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처럼 아무리 부정해도 끝내는 묘하게 현존하고 있음, 그때의 자아가 바로 묘유적 자아관이다. 반야심경에서는 그것을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바로 묘유적 자아관이다.

우리가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진공묘유적 자아관까지는 못가더라도 최소한 긍정적 자아관은 갖고 살아야 한다.

대원의 원리는 커다란 소원, 즉 원대한 바람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다. 그러나 나 혼자만의 행복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음 만으로라도 우리 사회, 우리 국가, 우리 민족, 전 세계 인류, 파리, 모기, 아메바, 잡초 등 전 우주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유정 무정물들의 행복까지 위해서 산다는 커다란 바람을 갖고 살 때, 우리들의 행복수준은 그 어떤 자로도 잴 수 없고, 그 어떤 저울로도 달 수 없을 만큼 넓고 깊고 숭고해질 것이다.

수심의 원리는 이기적인 마음을 잘 닦고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는 원리다. 서양 격언에 나도 살고 남도 살자는 말이 있다. 내가 먼저 행복하게 잘 살아야 남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수심이다. 자기 마음을 잘 닦고 관리하는 것이다. 수심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절대 행복을 창출할 수 없다. 질료가 없는데 어떻게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평소에 우리가 보시를 많이 하고, 봉사활동을 많이 다니고, 계를 잘 지키고, 참선과 명상을 많이 하고, 바쁜 시간을 쪼개 절에 다니고 법회에 참석하는 것도 바로 수심을 위해서다.

화합의 원리는 내 가족은 물론 모든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화목하게 잘 사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무리 행복해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기쁘고 즐겁게 살아갈 때 진정한 행복이 온다. 우리가 이웃들과 더불어 화합을 잘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내 가족, 내 이웃, 내 국가, 내 민족, 우리 지구촌이 행복하지 않으면 내 행복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가장 먼저 화합하고 살 곳은 가정이다. 가족 간에 화합도 못하고 사는 사람이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고 잘 살 리 만무하다. 설혹, 다른 사람들과는 화합을 잘 하고 산다고 해도 집에만 들어오면 가족 간에 전쟁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겠는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화합의 첫 단추는 상대방의 행복을 진정으로 빌어주는 것이다. 내 가정에서부터 시작해 매일매일 일터와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 순서대로 상대방의 행복을 기쁘게 빌어주며 화합과 친교를 잘 해나가면 행복과 평화는 절로 넘쳐난다. 행복과 평화가 넘쳐나는데 삶이 기쁘고 즐겁지 않을 리 없다.

작선의 원리는 착하고 바람직한 행동, 즉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매사에 자기에게 주어진 일 즉, 소임과 비소임의 일까지 더 잘하고 살아야 한다는 원리다.

소임(所任)의 일은 무슨 일을 할 때 책임과 의무가 뒤따르는 일이다. 비소임(非所任: 비소임의 소임)의 일은 봉사활동이나 취미생활처럼 꼭 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행복한 인생을 위해 다양하게 하고 사는 일체의 일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행복의 질은 비소임의 일에 달려있다. 소임의 일이야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지만, 비소임의 일은 먹고 사는 것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소임의 일을 잘 하고 사는 것은 자신의 행복지수를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비결 중에 비결이다.

이처럼 이 우주에서 가장 소중하고 존귀한 나는(정체),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대원), 마음을 잘 닦고 관리해서(수심), 내 가정은 물론 모든 이웃들과 더불어 서로 화합하고 친목하며(화합), 착한 일,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살겠습니다(작선)”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음속으로 세 번만 명상하고 하루를 시작한다면 행복은 넝쿨째 굴러들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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