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

북쪽 소나무 숲에서 바라본 금강계단과 적멸보궁 전경.
‘통(通)’은 통과의례, ‘도(度)’는 건너는 것
부처님 법대로의 결사청풍을 구현한 건축
2단의 기단부 위에 석종형 사리탑 경영
조선왕릉의 공간배치와 유사

계율, 승가공동체 존속의 생명력

통도사의 근본은 금강계단에 있다. 부석사 가람배치의 기승전결에서 궁극의 결절점이 무량수전이라면 해인사 동선의 정점은 장경판전일 것이고, 통도사의 소실점은 금강계단으로 귀결될 것이다. 통도사가 금강계단이고, 금강계단이 곧 통도사다.

계단에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모셔 ‘불지종가(佛之宗家)’, 즉 절집 종가의 위의를 갖추었다. 통도사의 이름도 금강계단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금강계단(金剛戒壇)의 ‘계단’은 층계를 오르내리는 ‘계단(階段)’이 아니다. <삼국유사> 권4 ‘전후소장사리’조에 언급하고 있듯이 계를 받는 단, ‘계단(戒壇)’이다.

출가자는 6개월 정도의 행자생활을 거치고, 사미(남), 또는 사미니(여) 계를 받는다. 4년 동안 의무적으로 밟는 사미(니) 과정은 예비스님 과정이다. 동국대 불교학과나 중앙승가대학, 사찰 강원 등에서 4년 동안 경전 교육을 받고 스님으로서의 소양을 익힌다. 그 이후에야 비구(니)계를 받고 승가의 일원으로 정식 스님이 된다. 비구(니)의 계를 ‘구족계(具足戒’)라 한다. 구족계라는 말은 모든 계율을 두루 익히고 갖추어서 받는 계라는 의미다. 비구는 250계, 비구니는 348계에 이른다.

그 많은 계율들은 삶을 얽매는 족쇄가 아니라, 청정한 가풍으로서 불가 존속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계율은 율장에 바탕을 둔 승단의 규범들이다, 부처님 생존 당시 제정한 것이 율장이다. 청정한 몸과 삶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깨달음의 원동력 그 자체다. 계율이 무너지면 중생의 믿음이 무너지고, 곧 불가가 무너진다. 그래서 계율은 금강처럼 굳건한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또 구족계의 전통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온 승가공동체 성립의 알파요 오메가에 해당한다. 그러니 깨뜨릴 수 없는 불멸의 의식이 되는 것이다.

2단의 기단부 위에 모신 부처님 진신사리탑.
금강계단, 수계계단의 원형이자 전형

수계의식은 원래 단을 갖춘 계단에서 이뤄진다. 통도사, 해인사, 범어사의 수계는 익히 알려져 있다. 총림의 숲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수계의 무대장치 형식을 갖춘 절집은 흔하지 않다. 김제 금산사 방등계단, 달성 용연사 석조계단, 완주 안심사 계단 등 서너 곳에 지나지 않는다. 통도사 금강계단은 역사적 정통성과 형식성을 두루 갖춘 수계계단들의 원형이자 전형이다. 존재 그 자체가 한국불교의 율장을 불문율로 상징한다.
계단은 석가모니께서 비구들의 수계의식을 진행하기 위해 기원정사 동남쪽에 단을 세워 행한데서 비롯되었다. 금강계단은 금강석 다이아몬드처럼 깨뜨릴 수 없는 계율의 엄중함과 영원성을 상징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는 계단에서 계를 받는 것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법식에 따르면 삼사(三師)와 칠증(七證)이 동석해서 수계의식을 증명한다. 최고 최상의 규범을 갖춘 계율의 전수와 승인과정이 아닐 수 없다.

그 때 통도사의 사찰명도 자연스레 풀린다. 통도사의 ‘통(通)’은 통과의례, ‘도(度)’는 건너는 것이다. 법도의 '도(道)'가 아니다. 금강계단에서 구족계를 받음으로써 정식스님의 통과의례를 거친 것이고, 수행자의 길에 들어서 청정승가의 일원으로 건너 온 것이다. 자장스님께서 영축산 자락에 계단을 축조하고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을 마련해서 몰려드는 출가자들에게 계를 내린 뜻의 가닥이 비로소 풀린다. 청정승풍의 스님으로 건너가는 출세간의 길이 금강계단에 있음을 일깨운다.

통도사 창건주인 자장스님은 한국 불교역사에 계율학의 율장을 마련한 시조로 평가된다. <삼국유사> 권4 ‘자장정률(慈藏定律 ); 자장이 계율을 정하다’편에 율사로서의 자장스님 면모가 잘 드러난다. 나라의 재상 자리를 거듭 청함에도 수행에서 나오지 않자 왕이 엄포를 놓았다. “나라의 부름에 나오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 자장이 말했다. “내 차라리 하루 동안 계율을 지키다가 죽을지언정 파계하여 100년 동안 살기를 원치 않는다.” 자장은 636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다. 7년 유학 중에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를 전해받는다. 부처님의 머리뼈, 치아, 진신사리 100과, 석가모니불의 비라금점가사 한 벌과 경전 등을 망라한다. 하나같이 불교교단의 정통성과 강력한 위임부촉을 내포한 성보들이라 놀랍다. 선덕여왕의 부름을 받고 신라로 돌아온 때가 643년이다. 귀국 후 자장은 최고위 승려직인 대국통에 올라 불교정비에 박차를 가한다. 통도사 창건과 함께 금강계단을 마련해서 사방에서 오는 출가자들이 계율을 받고 불법에 귀의케 함으로써 출가 수행자들의 규범을 바로 잡아 나갔다. 금강계단은 이로써 한국불교 계율의 근본으로 자리 잡았고, 통도사 가람의 불후의 중심이 되었다.

남쪽에서 바라본 적멸보궁. 금강계단과 일체화된 유기적 건축이다.
금강계단과 적멸보궁, 일체화된 건축

금강계단의 건축적 배치방식과 운용은 대단히 독특하고, 극적이다. 석조건축 금강계단은 목조건축 대웅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웅전은 동시에 적멸보궁이다. 석가모니불은 보리수나무 아래서 위 없는 정각을 얻었을 때 법신불인 비로자나불과 일체의 한 몸을 이루셨다. 그런데 비로자나불은 형상도 소리도 없는 진리 그 자체이므로 공(空)과 같다. 공의 인격화로서의 법신이지만 일체만물은 비로자나불의 현현이다. 다만 국토에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의 실상을 본래면목 그대로 드러내거나 위신력으로 여러 대승보살을 대신 설법주체로 내세울 뿐, 법신은 침묵과 광명으로 대신할 다름이다.

그러므로 적멸보궁은 일체의 번뇌가 사라진 침묵의 집이자 적멸의 공간으로 간주된다. 불상 같은 예배의 존상이 모셔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종교예술과 건축은 관념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현실화하고 구체화해서 사람들의 신심을 고양함을 목적으로 한다. 모든 종교장엄은 그 추상적 관념의 구체적 산물이다. 적멸보궁은 침묵과 고요로 비워 두어 관념의 정신세계를 무한으로 확장하고 있다. 우주법계의 '텅 빈 충만'이다. 대신 유리창호 프레임 너머 금강계단에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탑을 경영함으로써 예배자로 하여금 심원한 종교적 깊이와 숭고함을 추체험하게 이끌고 있다.

건축은 한 사회의 시대정신과 철학적 관념을 담고 있는 사회구조물이다. 건축 속에 시대정신이 배게 마련이다. 저마다 건축은 한 시대의 고민을 담고 있고, 또 표정을 갖추고 있다. 적멸보궁과 금강계단의 배치 양식은 조선 유교사회의 성리학적 세계관이 불교조영에 깊숙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적멸보궁은 사방에서 볼 때 지붕의 용마루 선이 T자형으로 중첩해서 정자각 형태를 띈다. 앞에 있는 적멸보궁이 배향공간이고, 뒤에 있는 금강계단은 불사리를 봉안한 능침공간으로 비견한다면 조선왕릉의 정자각-왕릉의 능침공간 배치와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병산서원, 도동서원, 옥산서원 등 조선중기 서원의 전형양식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와도 꽤 닮아 보인다. 현재의 적멸보궁 건물이 임진왜란 이후 1644년 조선중기에 재건한 것이란 점에서 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계, 정, 혜 삼학의 통일장

금강계단은 2단의 상하 사각형 계단을 증축한 후 상층 계단의 중앙에 석종형 진신사리탑을 모셨다. 2단의 중축형 기단부 위에 석종형 사리탑을 경영한 구조가 계단의 전형양식을 이루고 있다. 금강계단 중앙의 불사리탑은 범종 형태를 빌렸다. 범종은 일승원음의 방편반야다. 범종의 소리는 진리법의 설법이다. 범종이 있는 곳, 무진연기의 법계다.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 진영 너머로 영축산 자락이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 영축산은 석가모니불께서 <묘법연화경>을 설하고 염화미소로 꽃을 들어 보이신 영산회의 성산이다. 둘러보면 이곳에 계(戒), 정(定), 혜(慧) 삼학이 결집해 있다. 그런데 통도사에서 삼학의 중심은 엄연히 계율에 있다. 금강계단이 통도사의 근본이자 역사인 까닭이다.

적멸보궁, 대웅전, 영축산과 불사리탑, 금강계단, 그 건축과 조형에 율장의 계율(戒律)과 법계의 교(敎), 선정의 정(定)이 두루 중첩하고 교차하고 있다. 적멸보궁-금강계단의 일체화된 유기적 건축체제는 계, 정, 혜 삼학의 거시적 통일장을 구현한다. 특히 금강계단의 계율을 근본으로 삼아 삼학을 통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강계단은 한국불교의 생명력을 추동하고, 수행에서 계, 율, 청규의 승가규범의 강력한 정통성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오직 진리를 구하고 요익중생을 위해 부처님 법대로의 결사청풍을 구현한 건축적 방편, 그것이 금강계단의 본질이다.

금강계단의 석종에 율장의 커다란 울림이 내장되어 있다. 자장율사께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와 계단을 쌓은 본질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도 깨뜨릴 수 없는 금강의 계단이라면 그 뜻은 확고하다. 이 땅에 율장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 불교의 계율과 청규, 종법도 금강계단의 거울에 비춰보아야 한다. 계단의 중심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적멸의 고요에 계신다. 그곳은 부처님 법대로를 일깨우는 부동의 구심점이다. ‘고귀한 단순, 고요한 위대’의 조형정신이 금강처럼 빛나는 그 절집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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