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구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前 사회통합위원장·前 동국대 총장)

송석구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은… 1940년 대전 출생인 송석구 이사장은 동국대 철학과(박사)를 졸업한 뒤 동국대 교수, 총장으로 재직했다. 동양철학 중에서도 율곡사상연구에 매진해 율곡선생에 대한 수십편의 논문과 저서를 남겼다. 동국대 총장 시절에는 일산 동국대 병원 건립을 주도했으며, 경주캠퍼스 대학체제 개편 등에 앞장 섰다. 또 발전기금으로 725억원을 모금하기도 했다. 동덕여대와 가천의대 총장도 지냈으며, 세종시 민간합동위원장,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율곡대상, 일맥문화대상, 청조근정훈장, 동국청우상, 자랑스러운 동국인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사회 위기, 물질주의로 진단
“공동체정신 없어지며 갈등 증폭”
휴머니즘과 평등의식 회복 역설

중도적 분배로 계층갈등 극복
세대소통에는 민주적 결정이 큰 힘
북핵문제는 압박과 대화협력 동시에
“국민들의 연대의식이 가장 중요”

솔선수범 정신과 상호존중 강조
“보현행원 속 공경·참회가 단초”
말보다 뜻을 이해하는 소통법 제시

바야흐로 갈등의 시대다. 개인 간, 계층 간, 종교 간, 국가 간 갈등 등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갈등이 횡행하고 있다. 갈등을 화해로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세계경제는 침체 국면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갈등과 분쟁이 더욱 고조되어가는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국가 간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북한은 핵실험에 이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위협수위를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 34개국 중 사회갈등지수가 2위다. 그리고 사회 관리지수는 27위 수준 속에서 사회갈등 비용이 최대 240조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사회 갈등 치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닐까?

독실한 불자이자 사회통합에 앞장서고 있는 송석구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前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장·76)은 3월 8일 갈등을 푸는 방법을 중도연기에 입각한 소통에서 찾았다. 송 이사장은 사회를 이루는 인연, 그 매듭을 푸는 것은 상대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나를 바꾸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통해 갈등상황을 풀어나가자고 했다.

불자로서는 보현행원에 입각한 실천이란 자신의 신념을 드러냈다. 하심으로 항상 상대방을 공경하는 자세가 사회통합과 갈등해소의 첩경임을 강조했다.


- 우리사회는 최근 갈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어느 시대나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 시대를 위기라고 진단하지만, 현대 한국사회의 위기는 그 근본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는데서 문제가 심각하다.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정신과 물질 두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의 인간은 물질에 치중한 삶을 살다보니 정신적인 삶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일반화되며 정신보다는 물질을 위주로 한 삶을 살게 됐다. 현대의 대중들은 물신주의와 배금주의에 물들어 죽어간다.

인간적인 휴머니즘, 나누고 베푸는 따듯한 인의의 마음과 평등의식, 도덕률과 같은 것들이 무너져가는 현장을 보고 있다. 승자독식의 시대가되고 인간적인 가치는 그 승자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우리사회는 산업화를 통한 경제발전과 빈곤탈출에 사회적 역량이 집중됐다. 개발독재로 억압된 자유와 권리를 복원하려는 민주화 열망 또한 강렬했다. 1990년대 이후 사회구성원들의 목소리가 더욱 다양해졌고, 이전에는 볼 수 없는 복잡한 갈등양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인권, 환경, 성평등, 지역, 세대격차 등에 대한 주장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러한 문제들에 관심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양한 가치가 춘추전국시대만큼이나 돌출되며 사회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의 근본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중도연기에 대한 자각이 사라진데서 그 원인을 찾는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이뤄진다. 너가 없이는 내가 없다. 또 내가 없이는 너가 성립되지 않는다. 연기는 어느 한 곳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일즉다 다즉일이라 했다. 하나 속에 전체가 들어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들어있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 확실하다. 이러한 인식이 깨져버린 것이 갈등해소를 어렵게 하고 있다.

- 사회갈등 중 특히 계층갈등이 너무나 고조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모든 이데올로기에는 실질적으로 계층이 있다. 인간사회에는 계층이 있기 마련이고 그 계층의 간격을 좁혀가는 것이 과제다. 계층이 없는 사회가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에 계층을 좁히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야 한다. 계층을 좁히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계층의 간격이 벌어질 수록 사람의 존엄성과 관련된 인권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계층갈등의 원인을 가만히 살펴보면 경제적인 요인이 크다. 세계 경제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로 돌아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며 자본의 격차가 심해지며 이에 따른 갈등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분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균형을 잃고, 오히려 성장 동력도 헤치고 있다.

분배기능을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된다. 이미 미국의 대공황을 거치며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말해지는 자연적인 분배에 의존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 입증됐다. 성장을 해야 분배할 것이 있다는 논리도 통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분배기능이 보다 강화돼야 한다.

여기서는 중도적 분배가 대안으로 나올 수 있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이끄는 것이다. 계량적으로 부자들의 재산을 나눠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시간, 임금 등 경제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그 간격을 좁혀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직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덜 성숙한 우리나라에서 계층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복지를 갖추는 것과 함께 지도층과 부유층의 역할, 기부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젊은 세대는 헬조선이라던지 3포, 5포를 넘어 8포세대까지 비하하고 있다. 세대갈등도 심각한 상황이다.

불과 십여 년 만에 폭발적으로 세대갈등이 늘어난 것은 아무래도 고령화시대로 접어든 탓이 있다. 산업화 후기로 접어들며 인력의 수요가 줄고, 취업이 어려워지고 있다. 여기에 고령화로 젊은이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또 고령세대는 그 세대대로 젊은이들이 산업화 시대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못마땅하다. 이렇게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서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세대갈등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정책적 대안은 있다.

크게 일자리와 문화, 사회안전망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경제성장 둔화로 청년층 일자리는 늘지 않는데, 노년층은 은퇴를 미루는 실정이다. 많은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고, 최저 임금 수준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분업화 등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고, 함께 고통을 이겨가는 정책이 강력히 필요한 시대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간 격차를 해소하는 문화예술, 체육 등 매개체도 필요하다. 또 젊은 층이 고령세대를 부양하는 부담을 줄여주는 복지시스템 등도 도입돼야 한다.

이런 모든 활동의 기반에는 ‘연기’가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펼치는 창조경제도 ‘연기’로 보면 해법이 나온다. 사회구성원들이 경제 순환의 연기적 성향을 깨닫는 것이다. 정부와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신성장 동력을 찾고 이를 장려함과 동시에 청년층을 포함한 다양한 이들을 향한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 한다.

그 무엇보다 상대방의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연기’를 자각하고 인내심을 갖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하고, 이것이 세대 간 소통의 출발점이 된다.

- 최근에는 남북갈등도 큰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남북갈등도 대화와 협력, 압박 등의 유화와 강경의 두 방안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핵문제로 인해 최근 북한 제재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대화-협력-평화-통일이라는 그동안의 통일정책에 대한 접근 방식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는 평화만을 주장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 대화와 협력이라는 한쪽에 갇혀 또 다른 방안을 생각하지 못했다. 심각한 이분법의 오류다. 이런 결과가 개성공단의 잠정폐쇄로 드러났다.

또 최근에는 북 압박 정책에 매몰돼 기존의 대화와 협력이라는 정책이 아예 묻히는 느낌이다. 남북갈등 해소,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압박과 대화협력이 함께 가야 한다.

이런 ‘투트랙 전략’을 쓰기 위해서는 우리도 준비가 돼야 한다. 평화통일을 위한 기조는 유지하면서 전략과 전술을 세분화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여기에 우리는 단일민족으로 언젠가는 통일이 돼야 한다는 국민들의 마음을 모으는 작업도 필요하다. 대화와 협력, 평화와 공존, 통일이라는 기조를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여러 가지 현실에 맞는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 구체적으로 통일에 대비해서 우리가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국민들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작업부터 필요하다. 최근에는 많은 국민들이 통일의 필요성조차 절감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에서도 현재 통일과 관련된 과목이 전무하다. 통일에 대한 교육을 유치원 때부터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중고등학교에 통일 과목을 넣어야 한다. 통일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는 국민이 돼야 한다. 통일에 대한 의지조차 없는 국민들이 많다. 통일에 대한 의지가 없으면 통일에 대한 방법 또한 생겨나지 않는다.

또 북한 주민들에게도 미래의 사회통합, 남북통일이 됐을 때 통일사회에서 민주주의 체제 하에 사는 것이 좋다는 인식을 조금씩이나마 심어줘야 한다.

국제적인 연대 또한 지속적으로 강화해나가야 한다. 북핵문제도 사실 중국이 제재에 동참하면 해결 방안이 보인다.

- 중도연기에 대한 삶의 철학이 드러난다. 양변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쉽지는 않은 문제인데, 개개인이 중도연기의 삶을 살기위한 보다 쉬운 방안은 있는가.

방법론으로는 수처작주(隨處作主)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체적으로 임하라는 말이다. 어디가든 주인이 되는 것은 다시 말하면 어디가든 솔선수범, 일꾼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솔선수범해서 일을 할 때 주인이 되는 것이다. 항상 모든 주어진 일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모든 것들에 대해 ‘아, 이것은 내가 다가온 연기다. 그 가운데 내가 있어 살아있구나’ 생각한다.

연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주인으로서 움직여야 한다. 구더기가 독 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죽으면 된장이 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주체적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 내가 솔선수범해서 남을 위한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 남을 위한 일이 나를 위한 일이다.

사회 통합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들의 상호 존중이다. 내 것만 소중하고 남의 것은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사회 통합이 되지 않는다. 상호 존중을 위해서는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 불자 개개인들은 이러한 국면에서 중도연기를 어떻게 실천해 나가야 하는가.

보현행원에서 중도연기의 실천법을 찾을 수 있다. 가장 쉽게 ‘내가 모든 사람을 예경하는가’를 생각하면 된다. 매 순간 ‘내가 지금 내 앞의 이 사람을 칭찬하고 있느냐’ 등을 돌아보는 것이다. 둘이 말하면서 내가 이 사람을 진정으로 공경하는가를 생각하면서 행주좌와 참구하는 것이다.

내가 가난하더라도 예배하고 공경하면 내 가난함이 없다. 참회하면 업장이 붙어있을 수가 있다. 예경하고 참회하고 칭찬하면 그 공덕이 나에게로 온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갈등해소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사회 통합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원효 스님이 활약한 시대에도 공론(空論)과 유심론(唯心論) 등 각종 사상이 전개돼 치열한 논쟁이 있었고, 왕족과 백성들의 계층 갈등이 있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원효 스님은 <화쟁론(和諍論)>에 통합의 키워드를 담았다.

원효 스님은 <화쟁론>에서 갈등을 치유하는 것을 ‘화쟁(和諍)’이라고 했다. 화쟁에서 쟁(諍)자를 살펴보면 ‘말(言)’과 ‘싸움(爭)’으로 구성돼있다. 이 세상의 대립 갈등은 말로 인한 것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금강삼매경론>에는 ‘여언이 취개불허(如言而 取皆不許) 득의이언 무불허(得意而言 無不許)’란 말을 전한다. 말 하는 대로 들으면 용서할 수 없는 말이라도 뜻을 잘 새겨들으면 용서하지 않을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현대사회에 적용해도 딱 들어맞는다. 다시 말해 소통이야말로 통합의 전제조건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라도 직접 말을 해야 알아듣는다.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생각과 말하는 법, 듣는 법을 제대로 알아야 통합이 가능하다.

갈등의 당사자들이 서로를 비난할 때 비난의 말만 들으면 갈등은 고조된다. 하지만 그 근본의 뜻을 이해하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갈등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말 뿐만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한 갈등도 그 근본본질을 이해한다면 우리사회에서의 갈등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갈등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이런 갈등을 해결하는 기술과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사회 지도자층의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는 송석구 이사장. 그가 말하는 소통 속에는 이웃에 대한 애정과 자신에 대한 성찰이 느껴졌다. 갈등고조의 한국사회, 이제는 소통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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