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세계명상대전 법문 지상중계

혜국 스님심도선사아잔간하

225~28일 강원도 하이원리조트 컨벤션홀서 성황리에 폐막한 ‘2016세계명상대전’. 지난호 아잔브람 법문에 이어 이번호에는 혜국 스님 법문과 아잔간하(태국)의 질의응답, 심도선사(대만) 법문을 순서대로 실었다. <편집자 주>

혜국 스님

우리 본질 공성 연기법은
본래 청정해 허망한 생각만
놓아버리면 그대로 부처다

▲ 혜국 스님.
제가 깨달은 연기법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시거나 오시기 전에나 생하거나 멸하는 게 아니라 바로 영원 자체입니다. ()란 있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바로 지금 우리가 말하는 자리요 말을 듣는 자리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대진리가 우리나라에 와서는 많은 스승들이 연기법을 깨닫고 나서 과연 이것을 중생들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설명하고 이해하는 그런 길은 자칫 내 지식만 되지 지식 가지고는 결코 이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간화선 화두 참선법입니다. 그 화두 참선법이란 앞서 얘기한 스승들이 깨달은 내용을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의 언어, 연기법을 바로 말길이 끊어진 마음의 언어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 제자가 묻습니다.

스승님, 과연 부처님이 깨달은 연기법이 어떠한 것입니까?” “참나는 누구입니까?”

스승이 대답했습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

여기에서 두 갈래로 나뉘게 됩니다.

참으로 스승을 믿는 사람은 왜 저 거룩한 스승이 뜰 앞의 잣나무라고 했을까 고민할 것입니다. 전후좌우가 콱 막힐 수밖에 없겠죠. 스승을 믿지 않는 평범한 입장에서 들을 때는 저게 무슨 소리야라고 넘겨버리면 그냥 평범한 언어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간화선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스승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스승은 부처님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법()입니다.

우리나라는 제가 56년 전에 출가를 했는데 그 이후만만 하더라도 동산효봉금오성철 스님 등등 손가락으로 셀 수 없는 엄청난 스승들이 한사람 같이 화두 참선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부해 나갈 때 어떻게 자기 생각을 이겨내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내 성질 길들이기입니다. 56년간 살아오면서 수행한 방법을 볼 때 간화선은 과거 생각에도 끌려가지 않고, 미래 생각에도 끌려가지 않은 채 전후좌우가 콱 막힌 그저 모를 뿐인 상태일 때가 생각에 끌려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는 진리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는데 인생을 다 바쳐 중생을 위해 걸어가시는 저 스승이 왜 그런 되지 않는 말을 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어째서 뜰 앞의 잣나무라고 했을까하고 말이죠. 처음에는 생각으로 내가 있고, 잣나무라고 한 스승이 있고, 그런 생각을 해가다가 오직 모를 뿐인 게 깊어지고 깊어지다 보면 의심하는 나와 보는 대상, 주관과 객관이 둘이 아닌 자리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깊어지면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던 모든 것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즉 그 생각이 나라고 생각했는데 사라지면서 나는 없어지고 연기법만이 광명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간화선에서 또 중요하게 보는 것이 내가 본래 부처입니다. 본래 공성이 내 본질입니다. 그 공성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 온갖 잡념, 번뇌망상, 원망하는 마음만 놓아버리라고 합니다. 있는 것을 놓으라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함으로 인해 번뇌망상이 나인줄 아는 착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모를 뿐은 청정이 되면 집착은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그것을 우리 한국의 스승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공을 보여줄 수도 없기에 뜰 앞의 잣나무라고 한 것입니다. 오직 제자들로 하여금 콱 막혀서 생각에 휘둘리지 않도록 오로지 일념으로 걸어가는 방법을 화두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한국 간화선에서는 태어나도 태어난 바가 없고 죽어도 죽은 바가 없습니다.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은 우리 허망한 생각 속에만 있습니다. ‘우리 본질 공성 연기법은 본래 청정해서 다만 허망한 생각만 놓아버리라, 그대로 부처이니라.’ 그래서 부처님 연기법과 간화선 스승들이 보여주신 화두법은 둘이 아닙니다.

저는 어려서 교회를 다녔는데 모든 중생은 죄인이라고 합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을까 고민했습니다. 자라나서 부처님 법을 알고 죄란 우리들의 습관()을 의미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모든 생명의 본질은 죄에 물들지 않습니다. 허공에 똥물을 끼얹어도 묻지 않습니다. 텅 빈 허공에는 어떤 더러움도 물들지 않듯이 우리 마음만 비워버리면 마음의 본질은 죄에 물들지 않습니다. 근데 이 허망한 번뇌망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에 오직 모를 뿐입니다. 참모름이란 것은 허망한 마음에도 머물지 않고 진리라는 진리에도 머물지 않고 머물지 않는 자리에도 머물지 않으니 이때 한 생각 한 생각 모든 것은 진리 아닌 게 없습니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찾을 게 따로 없다든지 찾을 필요가 없다고 하면 이건 자기 생각에 크게 속는 것입니다.

 

심도선사

모든 선 받들어 행하며
끊임없는 원력 다져야
극락세계에 가까워진다

▲ 심도선사.
모든 현상은 우리들의 마음이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그 현상은 인과의 순환입니다. 인과와 윤회, 선악, 업이 모두 다 우리들의 마음으로 비롯된 것이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현상을 떠나 공성(空性)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탐진치만의(貪瞋痴慢嫉) 5가지를 오독(五毒)이라고 얘기합니다. 이 오독은 생명간의 인과관계를 만들어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독을 잘 다스려 선업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탐욕이 생겼을 때는 보시로, 성내는 마음은 자비로, 어리석은 마음이 들 때는 불법을 듣고 경전을 읽으며, 오만함은 겸손함으로, 의심은 정념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오독은 선업의 인연을 파괴하기 때문에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라[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는 가르침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 오독을 바로 다스렸을 때 그것은 우리들 복덕의 근원이 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3가지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먼저 몸으로는 불살생불투도불사음을 행해야 하고, 입으로는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또 탐진치가 생기지 않도록 마음을 잘 써야 합니다.

그럼 불자로서 관념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사랑의 마음을 내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없으면 사랑의 근원도 고갈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입니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원력입니다. 수행에 있어 원력이 없으면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듯이 원력의 중요성은 강조하지 않아도 여러분 모두 잘 아실 겁니다. 또한 원력이 없으면 나를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도 실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체제불께서는 원력으로 불국정토를 이루셨습니다. 아미타부처님께서는 48대원을 세우고 극락정토를 이루셨습니다. 약사여래부처님은 12대원을 세우고 유리광정토를 이루셨죠. 석가여래께서도 500대원을 세워 사바정토를 이루셨습니다.

사바세계에서 극락세계까지는 100만억개의 국토를 지나야 합니다. 그 극락세계는 환상이고 허구적인 세계가 아니라 한 은하계입니다. 부처님은 위대한 원력으로 불국정토를 이루셨고, 그것은 바로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편 불법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흔히 두 가지 단계를 얘기합니다. 첫째는 열반증득해서 생사해탈을 추구하는 것이고, 둘째는 발보리심해서 극락정토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단계를 이루기 위해 수행을 하는데 어떻게 해야 깨달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세세생생 몸을 바꿔가면서 끊임없이 보리심을 내 차츰차츰 이뤄나가야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불법을 배우는 것은 불생불멸 마음의 본질을 증득하기 위함이고, 여기에는 끊어지지 않는 원력과 발보리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불법을 배우는 것은 일시적 활동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입과 몸과 생각, 바로 3가지 신구의를 어떻게 관리하고 경영하느냐에 따라 부자와 같은 삶이 되거나 가난한 삶이 될 것입니다. 본인의 선업과 악업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맞춰 궁극적으로 인생을 운영해나가다 보면 무아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그것은 곧 자비행의 생활화가 됩니다. 그로써 복덕과 지혜를 갖춰 중생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무상미묘법입니다. 우리가 성불하기까지 신심을 퇴색시키지 않고 굳건하게 매진해나가야 합니다.


아잔간하 질의응답

무언가 바라고 명상하지 말라
모든 고통은 욕망서 비롯된다
내 행동 보고 지금에 집중하라

▲ 아잔간하.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인간의 본성은 선행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는 전생으로부터의 좋은 것 나쁜 것을 모두 갖고 태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이 우리가 이번 생애서 계속 좋은 일을 해서 과거생으로부터 가져온 나쁜 습관을 없애야 합니다. 바로 지혜와 알아차림을 통해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명상할 때 시간이 지나면 편안함보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자연스럽게 하십시오. 가만히 앉아 있고 싶은 욕망도 갖지 말고 답답함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욕망도 버리십시오. 우리의 고통은 이런 욕망에서 옵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혼잡한 교통에 스트레스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스트레스는 더 빨리 가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가난하면 더 부자가 되길 원하고, 못생겼으면 예뻐지고 싶어 하고, 아프면 빨리 낫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좋은 성적을 얻길 바랍니다. 나이가 들면 더 오래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갖고 살아가는 이런 모든 욕망, 바람들은 결국 우리의 가슴에 해가 되는 겁니다. 이러한 스스로의 욕망을 볼 수 있는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혜로운 알아차림을 매 일상에서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욕망에서 오는 모든 고통을 끊을 수 있습니다. 지혜와 알아차림 갖추고 과거에도 미래에도 집중하지 말고 지금에 집중하십시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보셔야 합니다.

자살하면 지옥에 떨어져 아귀, 축생, 아수라로 태어나나요?

그렇습니다. 진실입니다. 자살하고자 한다면 이미 자살하기 이전부터 지옥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고통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과 지혜가 있다면 마음이 고요해져서 문제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화를 안 내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튀어나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늘 마음을 바라보고 고요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면 점점 좋아질 것이다. 이런 마음의 고요함과 평화를 기르도록 노력하십시오. 언젠가는 웃는 마음이 됩니다. 늘 자비심을 기억하고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하십시오. 무슨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회라고 보십시오. 알아차림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말입니다.

알아차림과 지혜를 갖추면 마음이 지금 현재에 머물게 됩니다. 늘 과거만 보는 사람은 썩은 음식을 먹는 사람과 같습니다. 분노나 질시, 질투는 오래된 음식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속에 알아차림과 지혜가 있다면 그것이 곧 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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