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고 서고 자고 뛰고 하는 게 전부 참선입니다

내 주인공이 나를 형성시켰으니까
내 주인공만이 내 무명을 벗기고, 아프지 않고
그렇게 그냥 무명을 벗고 가게 할 수 있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2(남) 스님, 질문 한 가지 하고 싶은데요, 모든 것을 일체 자기 마음에다 다 돌려놓고 생활을 하면서요, 모두 주인공한테 맡기면서, 예를 들어서 어떤 병이라든가 인간이 만든 어떤 법이 있을 경우에는 그 법도 따라야 되는지, 아니면 자기 주인공에다 일체 맡겨 놓고서 거기에만 따라가야 되는지 그걸 좀 알고 싶은데요. 예를 들어서 인간이 만든 법이라는 건 몸이 아프면 약을 먹으면서 그걸 치료를 같이, 주인공에다 같이 해야 되는지, 아니면 그냥 주인공을 믿고 모든 거를 거기다 맡겨 놓고 여여하게 걸어가야 되는지요.

큰스님 그거는 이런 게 있죠. 모든 게 한계가 있듯이 아마도 그 사람의 근기에 따라서 그럴 거예요. 많은 사람을 접해 보니까요, 어떤 사람은 보약 하나도 안 먹고 자기가 생각에서 아예 그냥 보약을 먹고 있습디다. 모든 혈기도 그렇고 그런 것도 자기가 생각해서 ‘아, 거기서 기운을 내게 해야지, 응? 거기서 기를 넣고 해야지. 피가 좋게 해야지.’ 이렇게 해서 보약도 그냥 부처님한테 자기 성의대로 갖다 놓고는 자기들이 해요. 그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약을 먹으면서 하기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약을 아주 끊고선 공부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래요. 그러니까 그거는 자유예요. 근기에 따라서 그것이 되는 거지, 근기가 하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그거는 이렇다 저렇다 할 수가 없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고정됨이 없어요.
그러니깐 여러분의 마음대로, 자유대로 하세요. 편리하게 그렇게 하시려면 하시고 ‘진짜 우리가 공부를 해야지.’ 하는 문제가 있다면 좀 너그럽고 여유 있게 뭐 이런 거, 병으로 인해서 먹는 약이 아니라 나이를 먹으면 피로회복제도 좀, 간장약이 피로회복제라고 합디다. 그런 거를 좀 먹으면 좋겠다 할 때는 그냥 잡수셔도 좋고요. 거기에도 걸리지 말아야 되겠죠. 또 병원에 갈 일이라면 병원에 가는 것도 참선이고, 그것도 법이니까요. 그런데 병원에 가서도 이것이 외려 해가 될 병이라면 차라리 안 가는 것만 못하죠.
엊그저께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까도 전화가 왔습니다만 글쎄 넓적다리에 이렇게 부스럼이 났었답니다. 그런데 병원에 가서 진찰을 했는데 그거를 악성이라고 하면서 수술을 하고는 이렇게 잘라 내고 도려내고는 그걸 뭐? 뭐, 쬐는 거 뭐죠? 난 이름조차도 몰라. 무슨, 뭐요?

대중 가운데서 방사선.

큰스님 응, 방사선을 쬈던 모양입니다. 근데 그런 데다가 방사선을 쐐 가지고는 절대 안 된답니다. 그런데 방사선을 쐐 가지고 이 다리 하나가 그냥 이렇게 부었습니다. 그렇게 돼 가지고 울고불고 왔기에 그 남자를 데리고 들어왔는데요, 보니까 너무 착하고 너무 선량하고 너무 참 기가 막힌 일이에요. 그래서 “그러면 병원에서 퇴원시켜라. 퇴원시켜 가지고 좀 있다가 다시 한 번 다른 데로 가서 진찰을 해 봐라.”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방사선 쬐는 데서 끌어냈죠. 끌어내 가지고선 얼마를 저거 하다가 그 안의 모든 것이 좀 유해지고 물렁물렁해지고 그런 연에 “야, 병원으로 가라, 인제. 딴 병원에 아주 큰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해 봐라.” 그렇게 했습니다. 가서 병원에서 진찰을 하니까 이건 방사선 쬐지 않을 거를 쬈다 이겁니다. 쫴 가지고는 이게 살이 굳어져 가지고 도대체 마비가 되고 여기가 그냥 이렇게 자꾸 부어오르는 거예요, 살이. 그러니까 그 병원에서 다시 방사선기를 없애면서 수술을 두 번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것이 없고 인제 아물기만 하면 된다고 하면서 스님이 그렇게 나오란 말을 안 하셨으면 얘는 죽었다고 하면서 그렇게 울면서 고맙다고 아까 아침에 전화가 왔더군요.

그러니까 우리가 갈 일에는 가야 하지만 안 갈 일에는 안 가야 합니다. 공부하는 데에 바로 그것도 있습니다. 이 공부를 하게 되면 가야 할 건지 안 가야 할 건지 벌써 자기가 먼저 압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 공부를 안 하시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이거는 무슨 기독교다 가톨릭교다 이런 걸 떠나서입니다. 부처님은 당시에 이런 공부를 그냥, 실상 속에서 실현을 하게끔 참선을 가르치시고 마음의 병을 고쳐 주셨지, 무슨 육신을 고쳐 주거나 이런 거를 원하시지 않으셨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마음의 병만 고친다면 육신의 병은 여러분이 자유자재할 수 있다 이 소립니다. 병뿐만이 아닙니다. 업보성이나 유전성이나, 유전성도 무섭습니다.
여러분이 그거를 모르실지 아실지 모르겠지만, 한 집안에 도둑질하는 사람이 대대로 나오는 집이 있습니다. 또 간질병 앓는 사람이 한 대에 있었으면 그 대에 또 나옵니다. 2대에 가서도 나오고 3대에 가서도 나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 무꾸리하던 사람들, 무당 하던 사람들이면 꼭 그 대에 가서 며느리 아니면 딸, 허허, 그렇게 또 나오죠. 그러니까 그런 유전성도 상당히 무섭습니다. 위암으로 죽은 집은 위암이 또 생기고, 나가서 죽은 집은 나가서 또 죽게 마련이고, 물에 빠져 죽은 집은 물에 빠져서 또 죽게 마련이고, 차로 죽은 집은 차로 또 죽게 마련이고 이렇게 유전성이 아주 급박하게 돌아갑니다. 지금 내가 옛날 얘기 삼아 조금 길더라도 질문은 조금 있다 하고 한마디 하죠.

그전에 원주에 있을 때 얘깁니다. 가만히 보니깐 형제가 여럿인데요, 형이 싸움을 하고는 버스에다가 휘발유 붓고 버스 안에서 그냥 자살을 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연대에 가서 동생이 차만 자기 게 생겼다 하면 꼭 죽게 생겼어, 내가 생각하니까. 그래서 그걸 말렸습니다. “승진을 한다면 절대로 너는 안 된다. 더 위로 올라간다면 차가 나오니깐 차가 나왔다 하면 너는 생명이 위태해. 그러니깐 절대 그럭하지 마라. 나중에 스스로 올라갈 테니까 그때에 해라.” 이랬거든요. 날더러 뭐라 그런 줄 아십니까? “스님은 산 구석에서 이 사회의 물정을 모르십니다.” 이겁니다. “모르시니까 나는 꼭 해야 되겠습니다.” 이겁니다. 아, 그러고 부득부득 우기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거기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하! 어쩔 수가 없구나. 어쩔 수가 없구나.’ 그러고 그 문을 열고 문고리를 잡고 눈물이 주루루 흐르는 거를 참고 돌아섰습니다. 며칠 안 됐습니다. 연락을 해 보니깐 엄마 아빠가 벌써 떠났다는 겁니다, 승진이 돼서. 그랬는데 웬걸요, 사흘 만에 차가 뒤집혀서 낭떠러지로 다 떨어져서 죽었다는 겁니다. 남편은 즉사하고 부인은 머리 이게 산산조각이 나고 다리도 뼈가 조각조각이 나고 이 뒤꿈치는 뭉텅 잘라졌고. 그러니 어떡합니까? 내 생각에 ‘자식들이 5남매나 되니 꼭 저 엄마는 살려서 자식들을 기를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다.’ 하고 원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 병원에서 지키고 있는데 영 깨어나야죠. 보름이 넘어서야 조금 깨어나는 겁니다. (머리를 짚으시며) 이거를, 산산이 갈라진 거를 꿰매고 그랬는데 그때서야 깨어납니다. 인제. 그리고 여기 산산조각이 난 뼈가 모두 흩어지고 그런 거를, 뼈가 갈라지기만 했으면 모아서 이렇게 할 텐데 쪽이 떨어져서 부스러진 거는 어떡합니까? 그러니까 대강 이렇게 맞춰선 그, 뭡니까? 저어 깁스를, 날 자꾸 가르쳐 주셔야 됩니다. 말이 안 나올 때가 있어요.

그래서 깁스를 해 가지고선 있는데, 병원에서는 두 번 세 번 수술해도 이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얘깁니다. 뒤꿈치는 뒤꿈치대로 나가고, 뼈가 부스러져서. 두 달 만에 깁스를 해 가지고 떡 정신을 차렸으니깐 나오라고 그랬습니다. “너는 나오는 게 어떠냐?” 하니까 “그럼 스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때 데었으니까. 인제 혼났거든. 생명이 위태하다고 그러지 마시고 죽는다고 하셨더라면 안 그럴 걸 갖다가 그랬다고 그러니 아니, 내가 그럼 죽는 사람 “너 죽는다!” 이러나요? 생명이 위태하다면 좀 믿어 줬으면 될 걸, 내가 무슨…. 그렇다고 해서 내가 큰 덕을 보는 것도 아닌데 아, 진실하게 그렇게 받아들여 줘야죠.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그 뒤에 어디 목욕을 하러 갔더니만 미친 사람이 막 뛰어서 재무 스님이 저것 좀 고쳐 주라고 하도 그러기에 거기서 잠깐 그냥 그 집에 들어갔는데, 마당에서 막 뛰어요. 기도하고 그냥 나왔죠. 말이 기도지 기도입니까, 어디? 그냥 갔다 그이네들 보는 데 그냥 방편으로 앉았다 나온 거죠. 근데 그 내외가 나아서 그 이튿날 참, 뭡니까? 이, 빵 종류 뭔가?

대중 가운데서 카스테라.

큰스님 카스테라. 그렇게 자꾸 가르쳐 줘야 돼요. 허허허. 그래서 그거를 사 가지고 왔어요. 참 촌뜨기라 그런 거 잘 몰라요.

아, 그래서 그런 것도 보고 저런 것도 봤으니 사람이 그 지언이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때 그렇게 해 가지곤 혼났으니깐 인제 말을 듣는 거죠. 그래서 나왔어요. 그래서 대추하고 쑥하고 북어하고 이렇게 해서 그냥 푹 고아서 그걸 국으로 국물을 자꾸 먹게 하고 나머지는 한 달이 좀 넘으니까 안되겠어서 그때는 강요했어요, 이 깁스 풀자고. 산에서 우정 거길 내려가 가지고. 그래 깁스 한 거 누가 잘라 줍니까? 그러니까 톱으로 썰어서는 이렇게 하고는 거기다가 다시금 베니어에다 솜을 두르고선 가제로 저거 해 가지고는 그냥 이렇게 대고선 묶어 놨죠. 그렇게 되면 이걸 쭉 뻗고라도 움죽거리죠. 아무래도 깁스 한 거보다 움죽거려지죠. 그래서 고스톱이라도 하라고 그랬습니다, 인제. 하이고 참, 기가 막히죠. 이거 말이니깐 그렇지 그 집 다섯 새끼가 말입니다, 옹졸옹졸 옹졸옹졸 하고 있는데 기가 막히지 않겠습니까? 아주 불쌍하고 기가 막혔습니다. 철부지는 글쎄, 아버지 제사상에 뭐 놓고 이렇게 하면요 아, 이거 맛있는 거 사 왔다고 좋다고 들고 나가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그거를 그럭하고선 동네 젊은 마누라들 한 너덧 명한테 일렀습니다. 매일같이 거기 가서 고스톱을 좀 해 달라고요. 왜냐하면 그것도 보살행이니까 그렇게 해 달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거기 가서 노냥 고스톱을 하니까 그 모든 걸 잊어버리고 한 달이 가 두 달이 가 석 달이 이렇게 갔습니다. 그래서 그때서부터 딛기 시작을 하는데 이 뒤꿈치도 다 나왔어요, 정상적으로. 쪼끔만 좀 요렇게 됐지. 그러곤 뼈가 부스러져서 모자라는 거는 그 액이 말입니다, 액이 자꾸 이렇게 붙어 가지고는 그게 뼈가 돼 버렸어요. 그래서 힘을 받으니까 그냥 일어선 거예요. 지금까지도 다리 아파서 못 다니지는 않아요. 미국에, 지금 L.A.에 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병이라는 것도 그렇고 자기 자신들의 생각이지, 자유지,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여러분의 자유지만 내가 이렇게 인도하는 거는 여러분의 근기에 따라서 자유스럽게 그렇게 해 나가라 이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는 정말이지 자기 스스로 원력이 생겨서 “아이고, 스님! 스님!” 하고는 그냥 어쩔 줄을 모릅니다. 왜 좋아하겠습니까? 내가 자기네들한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나를 왜 좋아하겠습니까? 지금 세상에. 허허허. 아니, 지금 세상에, 까고 까고 까고 까고 이렇게 된 세상에 누가 이익이 없는데 날 찾아오고 좋다고 합니까? 아니, 밥을 먹으러 가자고 누가 그럽니까? 아이고, 어림도 없어요. 돈 내버리고 왜 그래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나를 좋아하기는 하더라도 나를 믿지는 말라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을 믿어라 하는 것도 믿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네 속에 가깝게 부처님이 계시다면 왜 바깥으로 부처님을 멀리 찾느냐 이겁니다. ‘일체제불의 마음은 내 한마음에 있다.’ 아까 노래도 하셨죠? 설법을 했더니 그거를 그냥 가사로 붙여 버렸어요, 글쎄. 그리고 지금 한마음선원에는 선법가가 많이 있습니다. 여기도 있지만 거기에 다 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선법가가, 설법하는 데 이렇게 읊어 놓은 거를 다 그냥 노래로 만든 것입니다.

질문자3(남)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그전 말씀 중에 ‘공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참선하던 중에 아무 생각도 없는 적막에 들 때가 있습니다. 근데 적막은 좋다고 생각이 되는데 그런 무심의 상태하고 공에 빠진 상태하고 어떻게 다릅니까?

큰스님 무심은 그냥 일을 하면서도 무심이지만, 공에 빠진 상태는 바로 이 내면세계의 노예가 되는 거와 마찬가집니다. 그러면 목석이지 그게 사람입니까, 어디? 공에 빠지면. 그러니까 안에도 속지 말고 바깥에도 속지 말라 하는 뜻은, 그래서 길잡이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를 발견했다 하면 둘이 아닌 도리를 공부시키기 위해서 많은 파도가 일어납니다. 타의에서도 나를 괜히 으르릉거리고 못 잡아먹어서 그냥 안달을 하고요. 또 자의에서도 괜히 화가 나고요, 괜히 하나를 보기만 해도 신경질이 나고요. 그럭할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아하, 이것이 거기서 나를 공부시키느라고 이러는구나!’ 하고 거기다 다시 뭉쳐 놔야 될 텐데, 바깥으로 에이그, 저것이 그냥 나를 가지고 이렇게 해서 내가 어떠니 저떠니 하고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면 그냥 길길이 뛰게 되죠, 아주. 분하게 되고 그냥 이거는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고 그냥 이렇게 되죠. 안으로는 그렇고, 바깥으로 또 끄달려서 그렇게 한다면 아니 됩니다. 그러니까 그냥 맹목적으로 가만히 앉아서 거기에만 생각하고 앉아 있는 사람은 무기공에 빠진다 이거죠. 그러니까 그 사람네들은 움죽거리고 살면서 생활에서 그냥 그게 참선인 줄 모르고 아주 생활까지도 버리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있거든. 그러니 그게 바로 무기공에 빠진 사람들이다 이런 말이죠. 그러니 생활 하나하나 하는 게, 생각하면서 뛰고 뛰면서 생각하는 게 그대로 좌선이며, 좌선은 모든 걸 맡기고 사니까 마음이 편안한 것을 좌선이라 하고, 뛰고 앉고 서고 자고 하는 게 전부 참선이라 합니다. 그러니 둘로 보지 마십시오.

그리고 요 말을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내가 만약에 재주가 훌륭해서 여러분의 그 재료를 내가 가지고선 다 해결을 한다면 여러분은 뭐 가지고 공부를 합니까, 네? 그러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애고, 그 괴로움 이런 거를 여러분이 가지고 하시라 이겁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하시면서 지극한 정성과, 즉 말하자면 보이는 데서도 정성, 안 보이는 데서도 내 마음으로 정성, 항상 거기 놓고 그렇게 가고 그러면 훌륭한 자기 자력이 되고 또 식구들의 제삼자 하나하나가 바로 걷혀 들어갑니다. 모든 업과 모든 병과 모든 것이 다 없어집니다.

어떤 때는 그럽니다. 우리 보살님들도 그렇고, 다들 뭐 수정과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 정성이라 하는 것이 그 마음입니다. 나를 맛있게 먹으라고 하는 그 마음이 바로 자기 정성입니다. 자기입니다. 나를, 이 고깃덩어릴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아하, 내가 이런 정성이라도 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렇게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하나가 남 주는 게 아니고, 꽃 한 송이 갖다 꽂아 놓는 것도 남을 주는 게 아니라 바로 자기 겁니다. 자기 거기 때문에 하나 해 놓는 데 자기가 그 백분지 일이 없어지고 또 하나 하는 데에 또 없어지고, 하나 하는 데에 또 떨어지고 이렇게 왜, 봄이 되면 고드름 조금조금 떨어지는 거 있죠? 아주 얼어붙은 게 조금조금 떨어져서 녹아요. 그렇게 봄이 올 수 있다 이 소립니다. 이거는 장담하죠. 여러분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그 점이요.

질문자4(남) 스님, 질문 한 가지 있는데요, 우리 신도들이 마음공부를 계속하다가요, 다 깨치기 전에 옷을 벗고 다음 생으로 가시는 분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분은 어떻게 되는지요.

큰스님 그거 한생각이에요. 예를 들어서 ‘내 주인공이 나를 형성시켰으니까 내 주인공만이 내 무명을 벗기고, 아프지 않고 그렇게 그냥 무명을 벗고 가게 할 수 있다.’ 하는 믿음을 가지시면 그대로예요. 그러니까 실험도 안 해 보고 날 가지고 뻔히 쳐다보고 ‘저이가 미쳤잖아?’ 이러지 마시고, 여러분이 실험을 하시면서 경험을 얻고 체험을 얻고 이렇게 가정에서 하시는 겁니다. 뭐, 내가 무슨 장사꾼인 줄 아십니까?

하여튼, 그 마음에 달렸다는 얘기 한번 할까요? 두 친구가 장사를 하러 갔습니다. 근데 옛날에는 일주일 일주일 장이 서죠. 그래서 일주일 장을 볼 양으로 두 친구가 갔는데 아, 부처님이 설법을 하고 계시거든요. 한 사람은 뭐라고 생각했느냐 하면 ‘아이, 사기꾼이 말만 잘해 가지고 사람을 현혹시킨다.’ 그렇게 생각을 했고 한 사람은 ‘아유, 저 사람은 참 이 세상의 왕 같구나. 참 저 사람은, 내가 저 소릴 들으니까 정말이지 저 부처님을 잊을 수가 없구나.’ 감동이 돼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그날 저녁에 그렇게 나쁘게 생각한 사람은 술을 잔뜩 먹고 길에 쓰러졌어요, 주막에 들어가질 못하고. 그러니까 친구가 기다리다 기다리다 보니까, 새벽이면 옛날에는 우마차가 그냥 백 대 이백 대 이렇게 막 갔거든요. 그냥 거기에 깔려서 죽었어요. 그랬는데 글쎄, 그 동네에서 그 둘이 장사를 하러 나왔다가 어떻게 혼자만 들어갑니까? 그 친구는 홀어머니가 계신데. 그래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옷감을 산 보따리를 짊어진 채 강을 건너서 딴 나라로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 가자마자 보니까 그냥 양면으로 좌악 사람들이 서 가지고 인군을 뽑는 날이더랍니다.

그런데 인군을 사람이 뽑는 게 아니고 인군을 태워 가지고 다니는 말 있죠? 말이 인군을 뽑는 겁니다. 그냥 금으로 금테두리를 하고 그럭하고선 말이 척 나오더니, 다른 사람들은 다 이렇게 앞에 가도 탁 뿌리치고 뿌리치고 뿌리치고 이럭하고선 나오더니, 보따리 멘 그 사람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을 앞에 이렇게 놓더니만 궁둥이를 탁 댄 거예요, 타라고. 이 다리를 꾸부리고 앉아서. 그러니깐 그 보따리 멘 채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타려도 안되고 그러더니 그 사람을 타라고 떡 올려놓으니까 착 일어나서 그냥 들어가거든요, 궁으로. 그래서 인군이 됐어요.

그 생각하기에 달렸지 않습니까? 생각을 그렇게 한다면 자기는 망하는 거죠. 여러분도 생각을 더불어 같이 이익 하게 생각을 하세요. 꿈을 꾸고도 이익 하게 생각하시고요. 생시에도 이익 한 생각을 하시고. 자식들한테도 함부로 욕하지 마시고 남편한테도 함부로 “망해라. 뭐 네가….” 싸움하고는 뭐 별소릴 다 합디다만 그렇게 하시지 마시고요. 그렇게 함부로 생각하고 함부로 말하는 게 그렇게 그냥, 그냥그냥 재깍재깍 떨어진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걸 진짜 사랑을 하려면 그렇게 하지 마시고 아무리 속상하더라도 주인공에 맡겨 놓고 부드럽게 말해 주고 부드러운 낯으로 이렇게 한다면 가정이 얼마나 화목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마음이 그대로 간다면 이 세계에 아마 평화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한인들이 한마음으로 뭉칠 겁니다. 그리고 한인 회관이 빛이 날 겁니다. 그뿐입니까? 불교인들이 바로 한마음 한뜻이 될 겁니다. 아니, 불교인뿐만 아니죠. 기독교고 가톨릭교고 한국인들은 전부 한마음이 될 겁니다, 아마. 아니,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왜 갈라집니까, 한인들이? 아니, 그건 그것대로 믿고 이건 이것대로 자유지, 믿으면서도 마음은 왜 그렇게 갈라집니까, 또? 이상하잖아, 요상하고. 난 참 이상하고 요상해요. 그러면 인제 그만 끝내도 될까요?
여러분! 인제요, 꼭 명심하시고 모든 것에 아무리 아는 게 많으시다 하더라도, 권세가 있다 하더라도, 돈이 많다 하더라도 ‘아하, 나는 관리인밖에 안 되는구나. 내 주인공의 거지, 뭐.’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 돈이 한만히 나가질 않아요. 그러나 이게 내 돈이라고 한다면 그저 쓸 데 안 쓸 데 그냥 자꾸 쓸 일이 생겨요. 그러니까 그쯤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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