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백담사

백담사는 피안의 사찰이다. 오르는 계곡은 피안의 세상을 여는 아늑한 통로다. 백담계곡을 가로질러 놓여진 돌다리 수심교는 속세와 백담사 경내를 연결시켜 준다.
신라 제 28대 진덕여왕 원년(647) 자장율사가 창건
만해 스님의 〈님의 침묵〉 〈불교 유신론〉 등 집필처
전두환 前 대통령 부부 유배생활 한 곳으로도 유명
수좌들 수행처…무금선원 무문관, 기본선원 갖춰


2월 21일 동안거 해제법회가 있는 날 찾은 백담사는 적막했다. 세찬 바람소리만 지나다닐 뿐 고요하다. 백담사는 내설악으로 오르는 길잡이다. 백담사를 거쳐 계곡을 계속 오르면 영시암이 나오고 마등령쪽으로 오르면 오세암, 수렴동대피소를 지나 구곡담으로 해서 오르면 봉정암이다. 봉정암은 해발 1,244m로 높기도 하거니와 가는 길이 험해 눈 쌓이는 겨울철엔 일반인들의 출입이 수시로 통제된다. 이곳에 있는 5층 석탑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뇌보탑이다. 탑 아래로 펼쳐진 장엄한 설악능선이 장관이다.

백담사는 피안(彼岸)의 사찰이다. 오르는 계곡은 피안의 세상을 여는 아늑한 통로다. 백담사는 또한 만해(卍海) 한용운 스님의 절이다. 깊은 인연 때문이다. 20세 때 처음 백담사를 찾은 만해 스님은 25세때 다시 백담사에 들어와 이듬해 이곳서 출가했다. 3ㆍ1운동 후 옥고를 치른 만해 스님은 다시 백담사에 들어와 시집 〈님의 침묵〉 등을 탈고했다. 오래전 만해 스님이 이 곳을 다시 찾은 그날도 지금의 고즈넉함과 여유로움이 그를 매료시켰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경외로움이 넘치는 이 백담사가 얼마전에는 TV드라마에 등장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바로 얼마전 종영된 tvN의 인기프로 ‘응답하라 1988’서 김성균과 라미란의 장남 정봉(안재홍)이 촛불을 들고 탑돌이 기도 모습이 나온 곳이 백담사다.

백담사를 찾기전 그 드라마를 다시 보니 이 장면서 백담사가 나온다. 백담사에 들어간 정봉은 법당서 전두환 前 대통령을 발견하고는 “TV서 많이 나오는 그 사람 맞죠?”라고 놀라며 말을 걸었다. 그 순간 정봉은 경호원에 의해 끌려나가 웃음을 자아냈다.

드라마가 설정을 한 것이지만 실제 역사적 사실과 무관치 않다. 5공 비리가 터지자 전두환 前 대통령은 1988년 11월 23일 백담사로 들어갔다. 드라마의 설정기간이 1988년이니까 딱 들어맞는 셈이다. 실제로 대웅전 왼편에는 조그만 방이 하나있는데, 전두환 前 대통령이 1년간 기거했던 곳이다. 지금은 방 앞에 ‘제 12대 대통령이 머물던 곳입니다’란 푯말이 붙어있고, 방안에는 당시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집기들이 작은 박물관 형식으로 전시돼 있다.

이렇듯 사연 많은 설악산 자락 품에 아늑하게 들어앉은 백담사는 신라 제 28대 진덕여왕 원년(647년)에 자장율사가 세운 절이다. 처음에는 한계사라 불렸으나 그 후, 대청봉서 절까지 웅덩이가 100개 있다고 해서 백담사라 이름 붙여졌다. 그래서 백담사의 백담은 흰 물웅덩이가 아니라 일백 백의 물웅덩이를 말한다.
10여 차례 소실됐다가 6·25전쟁 이후 1957년에 재건된 백담사는 민족의 질곡과 역사를 반영하듯 긴 세월 동안 소실과 중건을 반복하며 총 아홉 번의 환골탈태를 거쳐 오늘날의 백담사에 이르렀다. 사찰명도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축사 등 여러 이름을 거쳤고, 조선 정조때 비로소 백담사란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백담사 입구에는 얼굴이 비칠 정도로 맑고 깨끗한 물을 자랑하는 백담계곡이 흐르고 많은 방문객들이 저마다의 발원을 담아 쌓아올린 돌탑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아직 겨울이라 계곡물은 얼었지만 돌탑만은 건재하다.

이 돌탑들은 백담사가 유명해진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수심교(修心橋) 주변 계곡에 펼쳐진 돌탑들은 백담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쌓은 것과, 관광객들이 쌓은 돌탑이 어울리고 합해져 신비로운 풍광을 연출한다. 얼핏보면 마이산 탑사의 축소판 같다. 어떤 이는 근심을 덜기 위해, 어떤 이는 취업을 소망하며 한 층 한 층 켠켠히 정성껏 쌓아 올린 돌들이 작은 탑이 되었다. 돌탑 중 일부는 계곡을 휘돌아 부는 바람에 무너지거나 한여름 폭우에 휩쓸리기도 한다. 백담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수심교를 지나면 백담사 전각들이 위용을 드러낸다. 경내로 들어서 삼층석탑을 지나면 정면으로 보이는 중심법당 극락보전에는 보물로 지정된 목조아미타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또한 이를 비롯해 산령각, 화엄실, 법화실, 요사채, 부속암자로는 봉정암, 오세암, 원명암 등이 있다. 특히 ‘오세암’은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도 한 유명 명소다.

백담사 경내 한쪽에 마련된 만해기념관에서는 만해 스님의 발자취도 찾아볼 수 있다. 만해스님의 〈조선불교유신론〉과 〈불교대전〉 등의 저서와 〈님의 침묵〉 초간본 등 100여종의 판본이 전시돼 있다. 만해 한용운 스님이 〈님의 침묵〉과 〈불교 유신론〉 등을 집필하며 독립정신을 깨달은 장소인 크지 않은 백담사 이곳저곳에는 그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백담사는 또 선원으로도 유명하다. 백담사 위로 출입통제 표지를 지나 150m 가량 오솔길을 올라가면 무금선원(無今禪院) 무문관(無門關)이 있다. 화장실이 딸려있는 2평 남짓 크기다. 수좌 스님들이 각자 화두를 들고 독방에 들어가 결재 3개월 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은채 방안에서만 ‘폐문정진’한다. 물론 문은 밖에서 걸어잠근다. 2년 전부터는 방앞에 작은 포행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하루에 단 한번 오전 11시 작은 공양구를 통해 식사만 전해질 뿐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다. 이번 동안거에는 9명의 구참 납자들이 해제를 맞았다.
무문관 반대쪽 백담사 만해당 뒤편에는 조계종의 기본선원이 있다. 젊은 스님들이 본격적인 선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공부를 하는, 일종의 ‘불교사관학교’다. 이 곳 역시 동안거에 70명의 스님들이 정진했다.

바깥 세상과는 단절한 때 시간과 맞서며 한철을 보낸 백담사 무금선원 수좌들은 보았을까? 고은 시인이 말한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을 말이다. 우리는 시인의 말처럼 우리 주변의 삶, 사람 들이 우리 곁에서 얼마나 충만한 기쁨을 주고 아름다웠는지를 함께 있을땐 잘 몰랐을 것 같다. 그것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서야 내려오고서야 선명히 알았다.

백담사는 만해 스님이 〈님의 침묵〉 등을 집필한 곳이다. 사진은 경내에 있는 만해 스님 동상.
백담사를 내려오는 길에 계속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말이 있었다. 조계종립기본선원장이자 신흥사 조실인 설악 무산 스님의 동안거 해제법어다. “살아온 생을 쭉 돌아보니 법(法)이란 그와 같고 이와 같은 것이다. 삼동 한겨울 백담사 계곡에는 들어오는 이가 없어 본 것도 없고 들은 것도 없어 아는 것도 없으니, 할 말도 끊어졌다.”

한편, 백담사는 일반인들에게 상시적으로 템플스테이를 진행함으로써 산사 생활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제12대 전두환 대통령이 머물던 백담사 내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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