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개천 건축가(국민대 조형대학 실내디자인과 교수)

화엄(華嚴)의 사상은 무한하고 끝없는 조화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받고 주고 살아갑니다. ‘화엄만다라’ 지면은 끊임없이 연기상생하는 우리네 이야기입니다.
현대불교신문은 ‘화엄만다라’ 인터뷰 섹션을 세분화 합니다. 불교를 기반으로 작품 세계를 구축한 문화예술가들의 이야기인 ‘산문밖의 禪’과 자비와 수행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대는 자비보살’, 시대의 지남(指南)들이 전하는 이야기 ‘리더에게 聽하다’, 함께 살아가는 인연의 이야기 ‘道伴의 향기’ 등으로 나눠집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만드는 화엄 세상을 독자여러분께 전해드리겠습니다. <편집자 주>

 

김개천 교수는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이며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이다. 동국대 선학과에서 동양철학과 선사상을 전공하였으며, <명묵의 건축>, <미의 신화>, <선의 건축미학에 관한 연구> 등 한국 미(美)의 조형사상과 현대건축 사상에 대한 저서와 논문들을 발표해 왔고, 이를 기반으로 현대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대통령 근정포장, APSDA EXCELLENT AWARD, RED DOT DESIGN, IFI AWARD를 수상했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첫 화두
유학대신 선택한 해외현장서
오랜 참구 끝에 들려온 한소식
“건축은 부처다. 툭툭툭 탁탁”

35세에 동대 선학과 입학
자신의 건축, 선에서 답 찾아
정토사 무량수전으로 실현
안주하지 않고 새 건축 고민

법당의 창호를 모두 열면 법당은 사라진다(?). 그런 법당이 있다면. 그것은 곧 선정에 들어 ‘나’를 없앤 것과 같은, 언어도단의 근처일 것이다. 그런 법당이 있을까. 그런 건축이 있을까. 있다. 2000년, 담양에 지어진 정토사 무량수전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근거는 법당을 설계한 건축가 김개천 교수다.

최초의 화두, 건축이란 무엇인가? 
“건축이란 무엇인가?” 김 교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진지한 자문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의 건축 인생에서 첫 번째 중요한 선택을 한다. 해외유학이라는 일반적인 선택을 버리고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건축을 경험할 수 있는 해외현장으로 간다. 마치 구법의 길을 떠난 선재동자처럼, 그는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세계적인 건축과 건축가들을 만나러 길을 떠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건축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저의 처음 화두였던 것 같아요.” 그는 10년 남짓의 세월 동안 스스로에게서 받은 화두를 풀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지역과, 미국의 로스엔젤레스, 알래스카 등지의 외국 회사에서 세계적인 건축과 건축가를 만나며 ‘건축이란 무엇인가’와 씨름한다. 그러던 어느 날 김 교수는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에 파견 나온 이태리 감독관으로부터 진정한 화두를 받게 된다. “건축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다.”였다. 지금까지 건축을 ‘배우기 위해’ 먼 길을 시작한 김 교수에게 그 한 마디는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보다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그야말로 ‘화두’를 들게 했다. 그리고 이태리 감독관이 덧붙인 또 하나의 말 한마디가 김 교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였다. 김 교수는 혼란스러웠다. 이태리 감독관은 김 교수가 이미 알고 있다고 말했으나 김 교수 자신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문은 점입가경. 제대로 화두에 묶인 것이다. 건축학도로서 당연히 가져야했던 의문이 이제는 인간 김개천을 흔드는 중대한 의문이 된 것이다.

서른두 살 때였다. 해외현장 생활도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어느 날, 불현 듯 자신을 끌고 다니던 의문에서 풀려난다. 가슴에서 피어오른 한 생각. “건축은 부처다.” 그리고 순간 입으로 터져 나온 노래 하나. “툭툭툭툭 탁탁.” 김개천의 건축은 “툭툭툭툭 탁탁”이었다. 화두 끝에서 들려온 소식이었다. ‘김개천 건축’의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건축이라고 하면 재료와 재료를 잇고 쌓고 붙여서 아름다운 형태를 추구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건축은 하나의 세계, 진리, 생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처’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 때의 일을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건축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고 할까요. 시작할 수 없었던 저의 건축이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선의 건축을 구현한 담양 정토사 무량수전은 김개천 교수의 선을 배경으로 한 건축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답은 선
“선을 배경으로 한 건축을 하고 싶어졌어요. 제 건축에 대한 답은 거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죠. 어느 날 문득, 한 생각이 찾아왔던 순간을 떠올리면 그 과정이 다름 아닌 화두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건축의 답이 선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공부는 가야할 길이었고, 저에겐 ‘건축은 깨닫는 것’이라는 문신 같은 문장이 가슴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선은 반드시 가보고 싶은 길이 되었죠.”
김 교수는 20대 초반부터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 신자로서의 의미도 있었지만 ‘불교’ 자체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많았다. 김 교수는 공부를 위한 공부였던 20대 초반의 공부에서 벗어나 제대로 불교를 시작한다. 그는 35세의 나이로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의 문을 두드린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학과는 승가의 영역이었다. 재가자가 없었던 선학과였다. 입학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끝내 그는 선학과에 입학하여 모든 과정을 통과한다.

안팎 경계 허물고 법문하는 법당
“건축 속에 담긴 선, 선을 담은 건축, 과연 선적인 건축이란 무엇인가.”
선에 대한 공부를 마친 김 교수는 ‘건축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이어 또 하나의 화두를 짊어지게 된다. 공부한 값이었다. 김 교수는 40대에 접어들면서 선의 건축을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2000년, 그는 선을 배경으로 한 건축을 시도한다. 정토사 무량수전이다. 정토사 무량수전은 1980년대 이후 일어나기 시작한 현대적 건축 양식의 시도 중 하나로 불교 건축사의 큼직한 사건이며, 김 교수의 역작이다.
정토사 무량수전은 네모 반듯한 콘크리트 건물이다.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도 볼 수 없으며, 때문에 그 곡선과 기둥의 조화는 더욱이 찾아볼 수 없다. 우아하게 빗물을 받아낼 지붕도, 가을날 기대서고픈 배흘림기둥도 없다. 하지만 정토사 무량수전에는 140개의 창호가 배흘림기둥을 대신하고 있다. 법당의 전체 벽면이 창호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 대신 최소화된 직선의 베젤이 건물의 외양을 마감하고 있다. 그 140개의 창호와 최소한의 베젤이 배흘림기둥과 추녀의 곡선을 대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단순히 디자인적인 형식이 아니라는 데 있다.

법당의 한 쪽에는 산이 서있고, 또 다른 한 쪽에는 너른 연못이 펼쳐져 있다. 법당의 140개 창호를 모두 열어젖히면 법당이 사라지고 산과 연못이 나타난다. 법당 전체가 창호로 둘러져 있으니 그 창호를 모두 열면 법당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실존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색과 공을 넘나드는 것이다.

“외부 공간이 내부 공간으로 들어와 안과 밖의 경계가 없어지고 함께 조응하는 것이죠. 그 순간 법당 안의 대중은 산과 물, 자연, 우주의 중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정토사의 무량수전은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을 건축으로 설하고 있는 것이다. 140개의 창호를 여는 것으로 안과 밖의 경계가 무너지고, ‘절대’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색즉시공’을 문자가 아닌 건축의 일면을 통해 설하고 있다. 공이란 색을 여의고 존재할 수 없다. 다시 140개의 창호를 닫으면 법당은 법당으로 돌아온다. 공은 색인 것이다.

“안과 밖이 따로 없다는 것을 법당을 찾는 이들에게 늘 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죠. 전통을 버렸을 땐, 버린 의미와 새로움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 교수는 정토사 무량수전으로 2001년 한국건축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건축상을 받았다.

김 교수는 정토사 무량수전 외에도 동국대 대각전, 만해마을 만해사, 법천사, 천안 황룡사, 목동 국제선센터 등 불교건축을 통해 자신의 건축관을 실현하기 위한 많은 시도를 해왔다. 시대가 요구하는 건축과 불교적 안목의 건축 사이에서 늘 고민해왔다.

“지금까지 없었던 형식의 건축을 하고 싶어요. 건축으로 이 시대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 건축 속에 선이 있고 불교가 있는 거죠. 저는 제 건축이 ‘Less but more(적은 그러나 많은)’이길 바래요. 유와 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런 건축을 하고 싶어요.” 김 교수는 ‘선적인 건축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으로 자신의 건축관을 말했다.

 

2014년 천안에 지어진 황룡사는 현대적인 건축과 전통의 건축이 공존하는 건축이다.

‘無心한 건축’과 ‘늘 흔들리는 건축’

“건축이 선이 될 수 있는가?”
김 교수의 선적인 건축은 앞서 말한 불교건축은 물론이고, 일반 주택과 빌딩, 미술관, 종교 시설 등 다양한 건축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엔 또 하나의 화두가 등장한다. ‘선적인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이어진 ‘건축이 선이 될 수 있는가?’이다. 불교적인 건축에 선이 투영되고 발현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건축에서 선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또 다른 생각이 필요했다.
김 교수는 선이 될 수 있는 건축을 위해 ‘무심(無心)한 건축’과 ‘늘 흔들리는 건축’을 말했다. 건축이 선이 되기 위해서는 애쓰지 않는 건축, 주장하지 않는 건축, 즉 ‘무심한’ 건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드러내고 보여주기 위한 건축이 아니라 덜어내고 덜어낸 소박한, 그러면서도 ‘건축’일 수 있는 건축이다.
또 하나, 건축이 선이 되기 위해서 고정되어 있지 않은 생각의 건축, 무상함에서 오는 흔들림(늘 변하는)의 건축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삼십대 초반에 지었던 일반 주택 하나를 소개했다. 블록으로만 지은 집이다. 돈을 들이지 않은 집이라고 소개했다. “사당동에 지은 집인데요, 그 집을 말로 설명하라고 하면 ‘무심한 집’이라고 하고 싶어요. 애쓰지 않은 집. 주장하지 않은 집, 이에요.” 김 교수는 ‘건축이 선이 될 수 있는가’하는 의문에 답할 수 있는 건축으로 사당동 집을 말했다. 김 교수는 요즘 다시 그 집이 생각이 난다고 했다. 無자와 空자로 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최근에 지은 집 하나를 또 소개했다. ‘늘 흔들리는 건축’이라고 할 수 있는 ‘한칸집’이다. 2014년에 지은 ‘한칸집’은 매스컴의 많은 조명을 받은 건축이다. 경기도 양평군 송현리에 지어진 주택이다. ‘한칸집’으로 불리는 이 집은 실질적인 넓이가 가로세로 9m이다. 내부를 전부 움직이는 미닫이문으로 달아 문을 열었을 때 한 칸으로 모이고 문을 닫았을 때 아홉 칸으로 나뉘는 구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집은 처음에는 아홉칸집이라고 이름 붙였다가 한칸집으로 바꿨다. ‘늘 흔들리는 집’이다. 고정화되어 있지 않은, 늘 무상함을 전제로 서 있는 집이다. 한칸집의 건축주 이내옥 씨는 노후를 보내기 위한 방으로 조선시대 사랑방을 닮은 검소하고 작은 집을 원했다고 한다. 오래된 주변과 어긋나지 않는 집이길 바랐다.

건축주가 김개천 교수를 찾아간 이유는 김 교수가 담양 정토사에 무량수전을 짓는 것을 보았던 인연 때문이었다. 김 교수는 건축주의 요구를 자기 식으로 받아들였다. “내 생각에 주변과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은 조화를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주변과 닮거나 비슷한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고유성을 갖고 생명성을 획득하면 조화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부 평면에서 그 부분을 구현했다.”고 말하는 김 교수는 “이 집이 보기에 따라서는 한 칸도 될 수 있고 백 칸도 될 수 있는 집이다.”고 덧붙였다. 건축이 선이 되는 순간이다. 선은 산문 밖에도 있었다. 김 교수는 2015년 ‘창의적 리더와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건명원 건물(한옥)의 리뉴얼 작업을 했다. 또한 예술분과 강사로도 참여하며 또 다른 건축을 찾아 여전히 선재동자의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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