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령 칼럼니스트

2006, 니까야 독송 7년 결사 시작
완독보다 경전 내용 이해에 주력
다함께 낭송삶과 수행 不二

초기불교 경전은 부처님 가르침에 가장 근접한다. 그렇기에 불자라면 누구나 초기불교 경전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내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10여 년 전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경전 읽기 모임이 최근에는 새로운 신행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런 신행모임이 활성화 된 이유가 뭘까? 이미령 칼럼니스트는 121일 개최된 불교평론 열린논단에서 경전번역과 신행의 지형변화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그는 경전 읽기 모임을 신행의 주체자로 거듭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정리=윤호섭 기자

이미령 칼럼니스트는…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 동대학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현재 YTN라디오와 BBS불교방송 등 각종 매체에서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다. 경전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그리운 아버지의 술 냄새〉,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붓다 한 말씀〉, 〈붓다의 길을 걷는 여성〉(공저) 등이 있다.
니까야 독송회 7년 결사
2006127일자 인터넷판 한국일보는 초기불교 경전 전부를 부처님이 쓰던 팔리어(고대 인도 언어) 원전에서 바로 옮긴 한글본으로 7년간 읽고 공부하는 신행 결사’(信行 結社)7일 시작됐다. 불교교육단체 동산반야회는 한글 니까야 독송회를 결성, 이날 저녁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동산불교회관 법당에서 니까야를 설명하는 첫 자리를 가졌다는 기사를 냈다.

지금은 각지에서 초기경전 읽기 모임이 많이 생겨났지만 당시에는 일반언론에서 다룰 정도로 신선했다. 왜냐하면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뒤에도 오랫동안 큰 사찰 불교대학에서 공부한 노보살님들로부터 니까야, 아함경이라는 경전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것이 당시 불교계의 사정이었기 때문이다.

모임에 동참한 50여 명의 대중들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항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석가모니 부처님의 친설이 담긴 경전이 니까야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둘째, 그동안 이런저런 신행단체에서 여러 경전들을 읽어왔지만 늘 뭔가 막연한 느낌이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초기경전인 니까야의 한글번역본을 읽어나가면 그 어떤 매개자도 필요 없이 부처님을 직접 만나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또렷하고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는 것이다. 우리글로 번역된 초기경전 읽기모임은 이런 설렘을 안고 출범했다.

하지만 초기경전은 어마어마한 양이다. 법화경이나 금강경을 생각하고 니까야 읽기 모임을 시작한다면 머지않아 질리고 지겨워서 그만두기 십상이다. 애초 동산반야회에서 시작한 니까야 읽기 모임 7년 결사는 50명이 넘는 인원으로 출범했지만,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 인원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체 뭐가 잘못되었던 걸까?

무엇보다도 상윳타 니까야를 완독한다는 자체가 사실 좀 무모했다. 똑같은 구절이 수도 없이 반복되는데 그게 퍽 지루했다. 그리고 뭔가 흥미를 돋울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경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지루하고 지쳐서 그만두는 사태를 바라보다가 형식을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그건 바로 그날 읽을 경전들에 담긴 배경을 설명하고, 각 경전마다의 주제나 중요한 단어를 간략하고 명쾌하게 먼저 짚어준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줄어들던 숫자가 멈추었다.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20명 남짓한 사람들은 결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완독에 의미를 두지 않고 경전 내용 이해에 의미를 두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자 사람들의 관심도가 커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는 설명이 필요했다. 배경을 들려주고 맥락을 훑어주면서 흥미를 가지고 접근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니까야의 구절들을 만나도 그 지루함과 피로감을 넘을 수 있는 영양제가 필요했다. 설명에 상식과 흥미를 담자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니까야 독송 7년 결사는 20131219일 회향했다. 사람들은 우리말로 번역된 니까야 읽기 모임을 통해서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번역경전 읽기 모임의 효과
몇몇 사람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들이 힘주어 말하는 대목들을 살펴보았다. 임희근 씨(상도선원 니까야 합송회)의 경우 현실성을 강조했다. 우리글로 번역된 초기경전을 읽으면서 안개 속에 부옇게 가려져 있던 것이 또렷하고 명백하게 현실적으로 다가왔다는 말이다. 수많은 불자들에게 불교란 어떤 것인가를 물으면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불교의 메시지가 워낙 크고 깊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불자들의 삶과 유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목소리로 불교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면 그런 신앙생활이 얼마나 위태롭겠는가. 하지만 초기경전은 질문이 정확하고 그에 대한 붓다의 대답도 명확하다. 실존했던 인물들과의 문답 속에서 이뤄지는 진리추구의 길은 재가불자들에게도 확고한 믿음을 안겨주었던 것이리라.

조성애 씨(초기불전공부모임)역사성이란 말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초기경전을 공부하면서 성지순례를 떠나보니 우리가 우러르고 겸손히 받아들이는 가르침이 진짜로 이곳에서 펼쳐진 것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 기반 위에서 대승의 가르침도 무난하게 소화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서 불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 역사성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변택주 씨(붓다로살자 연구원)의 경우 우리말로 부드럽게 번역된 경전을 합송할 경우의 효과를 강조했다. 우리말의 장점은 문자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삶으로 고스란히 구현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큰소리로 천천히 합송하는 그 자체만으로 경전 속 가르침을 실제로 체험하는 듯한 효과까지 낼 수도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경전 관련 모임이 누군가 한 사람의 강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함께 한 목소리로 낭송하는 방향으로 필히 이어지는 것은 수행이 삶 속에서 그래도 펼쳐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런 장점을 가진 경전 독송이 공동체 안에서 꾸려질 때는 어떤 효과를 갖게 될까? 무엇보다 한문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많은 독송자들이 편안하게 생각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문경전은 어렵다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팽배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한문이라서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한문으로 쓰인 경과 논을 풀어내는 사람들이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한문이라는 문자는 글자 하나하나마다 수많은 뜻을 동시에 담고 있어서 똑 부러지는 해석을 유도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중역 경전을 공부하는 경우,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기보다는 한문을 공부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하지만 원전에서 우리글로 직역된 경전을 만나면서 사람들은 글자(문자)풀이보다는 내용 파악에 주력하게 되었다. 또한 맥락을 파악하는 것도 쉬워졌다. 주석서 등의 도움을 받으면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가면서 실재한 인물들과의 문답을 통해 붓다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은 불자들에게 자신이 살아 있는 부처님을 친견하고 그 회상(會上)에 동참했다는 뿌듯함을 안겨준다. 그 뿌듯함은 신심과 직접적으로 이어진다.

예전에는 그 어려운 경과 논을 먼저 공부한 스님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부처님 가르침을 만났다면 이제는 달라졌다. 직접 부처님 회상에 참여해서 그때 일어난 일들을 독송하게 된 것이다. 필터를 통해서 받아들이는 가르침은 아무래도 변형되기 십상이다. 부처님 가르침이 온전히 전해지기보다는 전달자의 취향과 근기에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한글로 번역된 경전을 접하면서 재가불자들은 그 어떤 중간 전달자를 거치지 않고도 부처님을 대면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재가자는 전문수행가인 스님과 동등하게 불제자로서 신행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늘 절대적 존재(관세음보살 등)의 구원 대상으로서, 전문적 수행자(스님)에 비해 한참 낮은 차원의 후원자로서 존재하던 불자들 사이에서 이제는 직접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고 합송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글로 번역된 경전 읽기 모임은 단순히 경전공부 차원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초기경전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수행법을 익히면서 실제로 명상과 참선 수행으로도 이어가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살아 숨 쉬는 가르침으로
뿐만 아니라 한글번역경전이 유통되면서 불교계 안에만 갇혀 있던 부처님 가르침이 일반대중 속으로 파고들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것도 짚어보고 싶다. 초기경전 니까야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주제들이 다뤄지고 있다. , 부부, 사랑, 자연과 생태, 음식, 외도, 대화법, 심리치료 등 이런 주제들을 해당분야의 불자전문가가 다룰 경우, 붓다 가르침의 사회파급력은 매우 크다. 실제로 행정학, 경제학, 경영학을 전공한 윤성식 교수는 초기경전에서 다뤄지고 있는 에 관한 책을 냈다. 그의 책 부처님의 부자수업은 불교계뿐만 아니라 일반사회에서도 관심을 보여서 연합뉴스, 머니투데이, 서울경제 등 경제일간지가 앞 다퉈 이 책을 소개하고 있다. 전문 수행가인 스님이 아닌, 실물경제에 밝고, 세계적으로 경제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가 부처님의 말씀을 경전에 근거하여 거론한다는 것이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초기경전을 공부하는 옥복연 종교와젠더연구소 소장의 제안이 없었더라면 그와 내가 함께 쓴 붓다의 길을 걷는 여성도 세상에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책은 오마이뉴스와 인천일보, 그리고 한겨레신문에서 관심을 보였는데, 재가여성불자의 이야기를 여성학전공자와 여성칼럼리스트가 썼다는 사실이 호기심을 유도한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은 초기경전의 내용을 파악하느라 급급한 시점이지만, 우리글로 번역된 초기경전을 각 분야의 전공자들이 만났을 때 이 시대 난제의 해법을 부처님 가르침에서 끌어올 수도 있다. 또한 사회 각 분야에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난제들에 대해서 불교적 이론정립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는데, 이런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금강경화엄경의 사상만으로는 속 시원하고 명쾌하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초기경전 공부를 통해 진정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장에 입각하여 이론을 세우고 제시한다면 불교의 대() 사회적 역할은 충분히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글 번역경전 읽기 모임은 개인에게는 경을 합송하며 개인의 종교적 심성을 키우고, 현실생활에 적용하면서 알차게 불자로서의 삶을 가꿔가게 해준다. 나아가 이런 개인불자들이 만나 경전읽기 모임을 이끌면 재가불자들이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부처님 제자로서 부처님 회상에 나아가게 된다. 재가불자의 주체적 신행생활은 불교가 시대에 발맞추고 시대의 난관에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며, 희망을 안겨주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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