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붓다’

지난 줄거리

부처님은 깨달음을 성취한 후 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받는다. 바라문 등 기존에 수행을 하고 있던 출가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부처님과 인연에 따라 설법을 듣고 상당한 경지를 얻은 이들도 많았다.
부처님의 아버지인 숫도다나 왕은 자신의 아들이 전륜법왕, 즉 붓다를 이뤘다는 소식을 듣고 부처님이 자신을 찾아와주길 학수고대 했다. 성도 후 6년만에 부처님은 고향에서 부왕을 만난다.
 


살인마 앙굴리말라를 제도하는 부처님. 부처님의 전법교화는 인도 전역에서 빈부와 신분에 상관없이 펼쳐진다.
아난 등 석가족, 부처님에게 대거 귀의
코삼비서 제자들 갈등 일자 교단 떠나기도
살인마 앙굴리말라 제도 등 감동일화 소개

41화에서 부처님은 드디어 숫도다나 왕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부처님은 왕자였던 나라로 돌아왔으나 걸식했고, 소식을 들은 부왕은 재가자로서 공양 올리기를 요청했다. 부처님은 그제야 왕궁으로 가서 부왕의 공양을 받았다. 부왕은 부처님에게 며느리 야소다라가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한다.

“그녀가 저를 보살피고 절개를 지켰던 것은 금생만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원망과 그리움으로 울고 있는 아내를 찾았다. 야소다라는 아들 라훌라에게 “아버지를 찾아가 유산을 달라 하라”고 일렀다. 라훌라가 찾아와 이렇게 말하자 부처님은 마하 목갈라나에게 라훌라의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혀 주라고 했다. 라훌라도 출가를 한 것이다. 이어 왕위를 물려받을 위치에 있던 난다 태자까지 출가했다. 그 뿐 아니라 사촌인 아난다, 밧디야, 아누룻다도 출가했고 왕자의 이발사였던 우빨리까지도 출가했다. 줄줄이 이어지는 출가에 숫도다나왕은 절망했다. 그리하여 한 명 남은 왕자 마하나마가 태자가 되었다.

빠세나디 왕을 귀의시키고, 석가족과 꼴리야족의 가뭄으로 인한 싸움을 중재하는 등 부처님의 전법행은 이어진다. 이후 까삘라왓뚜 큰외 큰 숲에서 머물던 부처님은 비보를 듣는다. 숫도다나왕의 위독함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부처님은 왕궁을 찾았다. 숫도다나왕은 아들의 손을 잡은 후 합장한 채 눈을 감았다.
장례 후, 어머니 마하빠자빠띠가 고운 가사 한 벌을 들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러 왔다. 부처님은 그것을 승가에 보시하라고 했다. 마하빠자빠띠는 또한 승가에 귀의하기를 청했다.

애초 부처님은 비구의 승가에 비구니가 들어오는 것은 새로운 혼란을 야기하기에 거절했지만, 마하빠자빠띠는 많은 여인들과 함께 치장을 걷고 화려한 옷을 벗은 채 맨발로 부처님의 먼 유행을 따랐다. 결국, 시자 아난다의 눈물겨운 청을 거절치 못하고 비구를 공경하는 여덟 가지 법을 지킬 것을 명하며 받아들이게 된다.

이처럼 부처님의 명성이 날로 높아지자 꼬삼비의 세 부자가 산더미 같은 공양물을 싣고 사왔티를 찾아 보름동안 설법을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정사 세 개를 지어 바쳤다.

꼬삼비에서는 우데나 왕의 첫째 왕비 사마와띠가 큰 공헌을 했다. 이를 안 셋째 왕비 마간디야는 우데나 왕에게 두 사람이 내통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버리고 비구, 비구니가 돼 버린 옛 일을 악연이라 여기고 있었기에 부처님을 미워했던 것이었다. 우데나 왕이 부처님을 살해하려 화살을 쏘았으나 우데나 왕의 화살이 낙엽처럼 떨어지자 그제야 우데나 왕도 귀의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법은 그렇게 먼 남쪽 아완다까지 퍼져나갔다.

부처님은 계속해서 전법행을 펼친다. 제자들도 점점 늘어 큰 교단을 이루게 됐다. 하지만 코삼비에서 여름 안거 중 교단 내에 큰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당시에 부처님은 여러 차례 화해를 하라고 권했다.

“너희들은 서루 싸우지 말고 시비하지 말라. 한 스승을 섬기는 제자들이니 물과 젖이 어울리듯 화합해야 한다.”

출가를 청하는 마하빠자빠띠
하지만 그들은 서로가 잘못했다며 대립을 계속한다.

“부처님께서는 걱정하실 필요가 없으니 참견하지 마십시오.”

부처님은 이들에게 부모를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나섰던 장생왕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 장수왕의 아들 장생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 범마달왕을 죽이지 않고 용서했듯이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라는 것이었다. 원한은 용서해야 갚아진다는 가르침이었다. 부처님은 거듭해서 이렇게 말씀했다.

“옛날 세속의 왕들도 싸우는 것이 어리석은 줄 알고 서로 참고 견디었다. 집을 나와 도를 닦는 그대들은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탐욕과 미움과 어리석음을 버려야 하거늘 안타깝구나. 그대들은 한 스승의 제자인데 싸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니 부디 싸우지 말라.”

그러나 그들은 끝내 부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부처님은 이들을 더 이상 설득하기가 어려운 것을 알고 코삼비를 떠나 밧지국으로 갔다. 그곳에는 아니룻다와 난디와 캄빌라가 수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규칙을 정해서 어떤 사람이 걸식을 나가면 남은 사람은 청소를 했다. 음식이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나눠먹었고 서로 다투거나 시기하지 않았다. 부처님은 이들을 칭찬하며 남은 우기동안 함께 안거를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제자들이 찾아와 용서를 구하며 마침대 교단은 화합을 되찾는다.

부처님의 행보는 살인마 앙굴리말라를 귀의하는데도 이어졌다. 부처님 당시 희대의 살인자 앙굴리말라의 어릴 때 이름은 아힘사까(Ahimsaka)인데, 그가 도둑의 별자리를 타고 났기 때문에 ‘아무도 해치지 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앙굴리말라는 사왓티에 마니발타라 사문 및의 수행자였지만 그에게 연심을 품은 마니발타라의 아내의 거짓말로 잘못된 수행법을 전해받은 상태였다. 그는 100명의 목숨을 앗아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면 수행이 완성된다고 믿고 있었다.

99명이 희생된 소식을 접한 부처님은 앙굴리말라가 살인을 저지르는 거리로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탁발을 나가셨다. 마지막 한 명의 목숨만 빼앗으면 목표가 달성될 순간, 살인자가 되었다는 아들의 소식을 접하고 거리로 나온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를 죽이려는 찰나 부처님을 만난 앙굴리말라는 잘못을 참회하고 부처님께 귀의해 출가 수행자가 됐다.

코삼비에서 서로 다투는 부처님 제자들
“꼼짝말고 거기 섰거라. 내가 바로 앙굴리말라이다.”

“나는 지금 이렇게 서있다. 어리석은 마음에 무수한 생명을 헤쳤고, 또 나를 헤치려 하고 있다. 자, 지금 나는 이렇게 있어도 두려움 없이 마음이 평온하다. 너에게 이제 지혜의 칼을 주리라.”

“저는 살기도, 죽기도 바라지 않으며 다만 때가 오기를 기다려 정진할 따름입니다.”

47화까지 부처님의 전법교화행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인연마다 지혜를 전하시니
리뷰 - 법현 스님이 본 드라마 ‘붓다’

종반의 드라마틱 요소 눈길
사랑이야기 등으로 재미 배가

부처님은 근본 가르침이 연기(緣起)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고 한다. 연기는 ‘연(緣)해서 일어난다’,‘연(緣)해서 있다’는 말이다. 발생과 존재의 원리를 알려주고 있다. 세상에 태어난 이는 괴로움을 겪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함께 생겨났고,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함께라는 말은 ‘연해서’로 이해해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어떤 일과 어떤 사람(단체)이 아예 없으면 괴로울 일이 없다. 그러나 없을 수도 없고 어려우니 두 번째를 찾아야 한다. 부처님은 이러한 존재와 일의 원인과 결과를 알아내셨다. 근원적으로는 뭇삶(衆生,satta)의 존재와 그 발생의 고리를 알아낸 것이다. 그러기에 깨달음을 얻고 읊으셨다고 한다. 불교,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려면 연(緣)을 알아야 하고,연을 알려면 사이(間)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드라마 붓다에서의 사람사이를 이해하는 것도 그래서 중요하다.

드라마붓다가 종반으로 향하면서 더욱 드라마틱한 일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드라마붓다가 TV에서는 이미 종료되었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앙굴리말라의 스토리는 드라마틱하다. 스승의 부인이 그를 연모하였으나 원래 품행이 방정하고 스승을 존경하는 탓에 그녀가 꿈을 이루지 못하자 남편인 스승에게 거짓으로 고해서 화가 난 스승이 아주 나쁜 것을 요구했다. 그것은 100개의 엄지손가락으로 목걸이를 해서 걸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解脫)하리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그대로 믿은 그는 사람들을 죽여 99개나 되는 손가락을 꿰어서 목걸이를 하고 다녔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손가락목걸이라는 뜻의 인도 고어인 빠알리어로 ‘앙굴리말라(Angulimalla)’이다. 나라 안에는 살인귀가 출몰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국왕도 알게 되어서 체포명령이 내렸다. 그러나 어찌 날랜지 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대로 나머지 한 개를 채우려고 휘번거리며 다니다가 붓다를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빨리 쫓아가도 손에 잡히지 않자 “멈춰라”고 외쳤다. 그 때 붓다는 “헐떡이는 내 마음을 먼저 멈춰”라 하였고, 이상하게 힘이 빠진 그는 붓다에게 엎드려 잘못을 빌고 교화를 받아 출가비구가 되었다. 그는 탁발하는 발우에 모래를 붓기도 하고 지나는 길에 돌과 몽둥이로 맞기도 하였으나, 출가한 뒤로는 화를 내지 않았고 해산하려는 여인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들려주어 기운을 내게도 하였다고 한다. 앙굴리말라 이야기는 경전 속의 감동스토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훌륭하게 드러내는 이야기가 되는 대표적인 이야기다. 그 어느 누구도, 아니 그 어느 것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이야기는 더 나아가 불성, 즉 부처님 성품을 어떤 존재라도 다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로 발전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사랑이야기가 빠지면 약방문에 감초가 들어가지 않은 것과 같을 것이다. 드라마 붓다에도 여러 가지 사랑이야기가 나오지만 국제미남 출신의 아난다스님과 마탕가족의 아가씨 프라크리트이야기는 특별하다. 그녀는 하천민이면서도 스님인 아난다를 사모해서 주술(呪術)를 잘하는 어머니에게 눈물로 호소하여 탁발 나온 아난다를 곤경에 빠뜨린다. 공양청을 해서 집안으로 끌어들인 뒤 아난다스님의 공양물에 이상한 것을 넣고 주술을 걸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한 뒤에 음행을 하고자 한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사띠(sati)를 유지하여 즉 정신을 차려서 위기를 벗어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 스토리는 나중에 대승경전인 능엄경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엄격히 계율을 지키지 않고 수행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것과 같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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