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목 스님, 성북구 정각사에 신개념 ‘미래탑’ 점등

10월 24일 점등한 유리구조 미래탑(사진 오른쪽)과 과거탑(고려석탑).
과거·현재·미래탑 한도량에
과거-고려탑, 동참불자-현재탑
미래탑 455 부처님 봉안
유리구조는 ‘진속불이’ 상징
현대미술 새장 연 불교조형물

둥그런 만월이 빛나는 가을밤, 성북구 언덕길에 위치한 정각사에 아름다운 탑이 불을 밝혔다. 탑 형태의 유리 구조물 안에는 작은 불상들이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 탑의 이름은 ‘미래탑’이다.

서울 정각사(주지 정목)는 10월 24일 경내에서 ‘미래탑’ 점등식을 개최했다. 십시일반 탑 건립에 참여한 2백여 불자들과 함께 개최한 점등식은 어쿠스틱 국악그룹 ‘재비’(단장 장태풍)의 창작곡 연주로 시작됐다.

먼저 점등식에서 탑의 기단부에 검은 상자 위에 우담바라 꽃과 같이 자리한 2028개의 광섬유가 가느다란 빛을 밝혔다. 음악에 맞춰 진속의 불이를 상징하는 양측면 유리벽에 밝은 빛이 들어오고 108개의 구멍이 뚫린 천정에서 다시 빛이 쏟아졌다.

미래탑의 유리벽 뒤로는 북한산 자락과 대나무 숲이 그대로 투과됐다. 미래탑 앞에는 고려시대 석탑이 위치해있어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자리였다.

이번에 점등된 ‘미래탑’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새로운 조형기법을 이용한 현대적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2.4m의 유리격벽 중간 중간에 금속 판으로 층을 세우고, 그 위에 작은 불상을 봉안했다. 이 불상들의 수만 455구에 달한다. 꽃이 핀 불상, 새가 어깨에 앉은 불상, 금색과 은색 가사를 입은 불상까지 똑같은 불상은 하나도 없다. 또 가슴이 뚫린 부처님 상은 보는 각도에 따라 나무와 뒤의 불상 등을 보여주는 입체미가 있었다.

미래탑 내부에는 불상 455구가 봉안됐다.
이 불상은 불자 공예가인 무형문화재 입사장 이경자 선생이 직접 하나 하나 망치로 두드리고 금과 은실로 문양을 장엄해 섬세함이 빛났다.

탑에 불이 들어오자 정목 스님은 낭랑한 목소리로 가을밤의 무르익음을 알리는 시를 읊었다. 바로 미래탑 불사에 감명을 받은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를 쓴 김재진 시인의 헌시 ‘허공의 붓다’였다.

허공의 붓다

내가 이 별을 떠난 뒤
남아 있을 사람들게
허공의 붓다를 남겨놓네

내가 이 별을 떠난 뒤 이 별에 찾아올
어여쁜 손님들께
화엄의 세상 하나 남겨놓네

과거, 미래, 현재가
동시에 굴러가는 법의 바퀴 같으니
떠난 뒤 내가 찾아갈
광활한 은하계에 길 밝혀 줄
지혜의 탑 하나 세워놓네

점등식에 앞서서는 ‘미래탑’의 불사과정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이 공개됐다. 이 다큐는 ‘길위에서’의 이창재 감독을 비롯한 3명의 영상전문가들이 불심으로 공동작업한 결과물이었다. 다큐 영상을 통해 참석한 불자들은 정목 스님이 불사를 결심하게 된 고뇌와 레미콘 차도 들어오지 못하는 골목길에서 불사를 진행한 인부들의 노고를 그대로 느꼈다.

미래탑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 현재의 공법이 아닌 마치 몇백년 전의 과거로 돌아간 듯한 시공법을 사용했다. 레미콘 차가 못 들어와 먼 옛날 몇십리 길을 돌을 지어 나르던 선조들의 모습처럼 시멘트를, 또 철골 구조물과 유리를 불자들이 어깨에 메고 들어가 쏟아 부었다.

탑 내부 불상에 일일히 입사하는 모습.
사실 정각사는 정목 스님의 은사인 광우 스님이 1958년에 세운 사찰로 매우 낡은 사찰이었다. 정목 스님은 2009년 은사 스님의 뒤를 이어 주지를 맡은 후 기존 가옥을 고쳐 정원을 만들고 현대식 요사채 등을 지으며 새로운 가람의 장을 열고 있다.

정목 스님은 “우리가 전통이라 보는 것도 당시에는 혁신을 통해 나온 것”이라며 “이 시대가 지난 후에도 후대가 지금 이 시간에도 염원한 불자들이 있었음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새로운 불사는 불교 조형물을 넘어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을 비롯해 많은 미술계 인사들이 찾아 탑을 보았다.

김순희 신도는 “스님께서 불사를 진행한다고 했을 때 이런 탑이 만들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흔한 일반적인 불사가 아닌 현대적인 불사를 전해 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차를 댈 수 없어 인부들이 수백년 전과 같이 직접 구조물을 나르고 있다.
미래탑 불사를 책임진 윤경식 한국건축 회장은 유리를 활용한 새로운 의미의 탑을 만들게 된 이유를 “진신사리를 탑 안에 모시는 이유는 탑 자체가 ‘니르바나’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회장은 “불상을 탑 안에 넣고, 외부와의 경계를 없애 불법이 빛의 형태로 시방세계에 퍼져 나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각사는 점등식에서 대중들에게 빨간 비단실로 산호보석을 꿴 목거리를 선물했다. 점등식에서 내빈으로 참석한 스님들이 직접 탑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대중들에게 목걸이를 걸어줬다. 보통 석탑 점등식에서는 오색실로 장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수호불을 전해준다는 의미였다.

금강경 독송으로 시작한 이날 법회에서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과 중앙승가대 교수 미산 스님은 모두 입을 모아 “오늘 이자리 있는 여러분이 미래탑, 과거탑과 같이 현재탑”이라며 “한마음 한뜻으로 소외계층을 위한 이 시대 불사를 진행하자”고 당부했다.

3시간 여의 이날 행사는 아카펠라 더 솔리스트의 하모니 사홍서원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미래탑 점등식에 참여한 불자들의 가슴에는 미래세대를 위한 새로운 불사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


“미래탑 불사는 자비나눔의 방편”
서울 정각사 주지 정목 스님

“이제 유형적인 불사는 끝입니다. 이 지역이 모두 정각사라 생각하고, 지역민들을 위한 불사에 나서겠습니다. 미래탑 불사도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방편입니다.”

정목 스님은 미래탑 불사 후 어려운 이웃을 위한 불사에 나선다. 스님은 “정각사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른 미래탑은 전통적인 석탑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세워졌다. 이 불사에 많은 이들이 동참해주셨다”며 “이 과정에서 기금모연에 함께 나섰다”고 소개했다.

스님은 먼저 미래탑 하단의 광섬유 인등을 활용해 기도비로 ‘길 위의 학교’를 10월 세워 진행 중이다. ‘길 위의 학교’는 아이들이 매달 한번씩 1박 2일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자리다. 소년소녀가장 청소년을 위한 봉사활동도 진행된다.

스님은 “해외의 많은 문화계 인사들과 시민들이 이 미래탑을 보러 와, 한국불교에 관심을 보이고, 또 불교계가 진행하는 자비나눔에도 관심을 갖게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목 스님은 “정각사는 신도도 얼마 되지 않는 작은 절이라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다. 그래도 항상 지역과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며 “다양한 활동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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