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 스님 中

 

▲ 강 스님 진영. 138×72㎝. 종이에 수묵 채색. 2015.

스님의 진영 그리며 구도정신에 비중둬

왜 스님이 우리시대 대선사인지 이해

풍모가 느껴지는 순간 먹을 갈았다

먹빛 속에라도 남겨 기록하고 싶었다

예술 작품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는 다양한 인식과정을 거친다.

먼저 창작가가 의도하는 이미지가 있고 다음으로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다. 두 사람의 생각과 이미지는 서로 다르다. 그것은 사회 통념을 통해 도달하는 인식과 각자 개인의 선천적인 인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마다 예술 작품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작품은 해석의 문제이다. 해석은 비울수록 본질에 가까워진다.

작품에 대한 해석은 폭이 넓을수록 좋다. 그럴 때 보편성을 획득한다. 따라서 감염력도 크다. 좋은 작품의 조건들이다.

전강스님을 그리면서 무엇보다 비중을 두어 고려한 것은 스님의 구도 정신이다.

나는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간절함을 읽었다. 이렇게 맑고 투명하며 바른 분이 곁에 계시다는 것이 긍지가 되었다. 내가 본 옛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왜 전강 스님을 우리시대의 대선사라고 칭송하는지 이해가 갔다. 대선사의 풍모가 전체로 느껴지는 순간 먹을 갈았다.

나는 그때 받은 그 느낌을 글로 정리했다. 그런데 어떤 말이나 글이 덧붙여질수록 본질과는 멀어지는 것 같았다. 생각과 글이 달랐고 생각이 깊어질수록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스님에 대한 느낌만큼은 그대로 젖어들었다. 진심이었다. 나는 그 마음만은 먹빛 속에라도 남겨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붓을 들었다.

전강스님의 형용을 분석해 본다.

스님의 일상은 매우 서민적이고 소탈하다. 법상에 올라 설법할 때나 맨땅에 앉아 사람과 대화 할 때 스님의 눈에서 내뿜는 빛은 다르지 않다.

키는 160cm 정도로 작고 체구는 마른 편이 아니다. 옷맵시는 어떤 권위나 허영도 없다.

얼굴을 중심으로 세밀히 살펴보았다.

먼저 얼굴형은 둥글넓적한 계란형이다. 그래서 넉넉한 인상으로 보이지만 단단하다는 느낌도 동시에 다가온다.

머리는 어느 한 곳 죽은 데가 없다. 머리털은 굵고 숱도 빼곡하다.

이마는 넓고 시원하다.

눈썹은 양쪽 모두 끝 부분의 숱이 적고 약하다. 그러면서 거의 대칭을 이룬다.

눈은 작고 눈 사이가 벌어져 있다. 동공의 아랫부분이 뚜렷하게 노출되어 있어 깊고 그윽하다. 선정에 든 모습이다.

코는 작고 단단하다. 코 망울은 넓지만 끝에 기운이 집중되어 있다. 대신 콧구멍은 뚜렷하게 보인다. 인중은 길고 넓다.

입은 윗입술이 가늘고 길지만 아랫입술은 두텁고 무겁다. 말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이 살아있다.

입에서 턱까지의 길이는 좁고 턱선은 완만하다. 귀는 대칭으로 귓바퀴가 크다.

수염은 코밑과 턱에 발달해 있다. 그래서 항시 푸르고 검은 잿빛이 감돈다.

스님의 얼굴형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턱과 입의 형태와 기울기이다. 균형을 깨고 있다. 정수리로부터 턱의 중앙에까지 선을 내려 그어보면 왼쪽 부위가 발달해 있다. 왜곡이다.

나는 이런 부조화를 보면서 그것의 원인으로 스님의 식습관과 수면 습관을 생각했다.

얼굴 골격의 특징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턱이다.

위와 아래의 턱이 똑같이 발달하면 족집게 교합이 이루어져 문제가 없다. 그러나 두 턱에 틈이 있으면 가위교합이 이루어진다. 이때 불균형이 발생한다.

턱의 변화는 대부분 식사와 잠 습관에 의한다.

우리는 식사를 할 때 좌우 어느 한쪽으로 음식물을 씹는다. 음식물을 씹는 사소한 습관이 골격에 영향을 미친다. 씹는 버릇이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평생 동안 하는 식사의 수를 생각하면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씹는 힘은 강력하다. 어금니에는 최대 60킬로그램의 힘이 작용한다. 나쁜 식습관이 장기간 지속되면 머리뼈는 좌우 불균형이 생성된다.

수면자세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긴 시간 잠을 잔다. 이때 옆으로 누운 자세는 얼굴 한쪽에 강한 압력을 가하게 한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얼굴의 골격은 변형된다.

아마 스님의 얼굴에서 턱과 입에 부조화가 발생한 것은 이런 습관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인지했다.

스님의 얼굴에서 위로부터 내려 코선까지는 거의 좌우대칭에 가깝다. 그러나 인중을 기점으로 입과 턱은 좌측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것의 차이는 명암으로 가려져 입체적일 때는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입체를 걷어내고 평면으로 환원시키면 비대칭이 드러난다. 스님의 얼굴에는 특이하게 대칭이 주를 이루지만 하악골을 중심으로는 비대칭이 엄존한다. 이것은 스님의 얼굴에서 신성한 느낌과 동시에 자유로운 정서를 느끼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나는 이런 부조화와 왜곡을 바로 잡아 그리려 생각했지만 불균형 또한 스님의 특성으로 보고자 했다. 그래서 스님 모습 그대로 그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막 입을 열려고 하는 찰나의 미발 상태가 느껴졌다. 그림 속 인물은 사진 속에서 보는 일체의 그림자를 제거했다. 대신 오악을 기준으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초본이 완성되었다. 그날 작업실에 혜영 스님과 보승스님 그리고 전강스님을 어릴 때 보고 자랐다는 처사가 함께 왔다.

그림을 보고 난 감상은 각자 달랐다.

스님의 말년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생경하다는 느낌, 스님을 뵌 적 없이 초상화로만 보았던 분은 너무 젊다는 느낌, 어릴 때 보아온 사람은 벨벧 모자를 씌워야 스님다운 느낌이 든다는 등 자유롭게 감상평을 했다. 세 사람 모두 전강 스님을 그리워하는 마음만은 같았다.

나는 그분들이 말한 느낌을 존중한다. 그래서 정밀한 사진을 구해 주거나 아니면 이런 모습을 그려 달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해 달라고 주문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다 해도 우선은 모실 수요자의 입장을 존중한다.

작업 중인 진영의 이미지가 문중 스님들께 전해지고 스님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냈다. 작업실에는 즉시 회의에서 결정된 초상화 원본이 배달되어 왔다.

발자크는 “ 표현된 형상은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마치 광활한 시의 세계와도 같다. 모든 이미지는 하나의 세계다. 그것은 고귀한 비전을 통해 포착되고 내면의 성찰을통해 창조된 후, 최초의 원시적인 표현 수단이었던 천부의 손에 의해 낱낱이 해부 되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초상이다”고 했다.

나는 스님의 성정을 빌려 도침지 속에 감추어 놓은 형상을 찾고 있다. 붓동은 서 있어 낭창낭창하지만 선은 고요하다. 대신 스님의 몸에 눌러 그은 철선묘는 붉게 살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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