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추기경문화회관 초청강연 소설가 정찬주

 

▲ 정찬주 작가는 …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글쓰기로 오랜 기간 명상적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온 정찬주는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하늘의 도> 〈다불> 〈만행> 등이 있다. 1996년 행원문학상, 2010년 동국문학상을 받았다.

소설가 정찬주씨가 9월 20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KKH(Kardinal Koenig Haus, 추기경문화회관)서 초청연사로 초대받아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인과 불교’를 주제로 강연했다. 특히 정찬주 소설가는 ‘독일 불교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쇼펜하우어에게 영향을 받은 바그너의 오페라 대본 〈승리자〉에 대해 언급했다. 정찬주 소설가는 “〈승리자〉는 불교경전인 〈법구경〉 중 ‘자기를 극복한 자가 진정한 승리자’라는 가르침서 착안된 것”이라며 “불경 속 남녀 간의 사랑을 토대로 불교의 윤회를 소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리=박아름 기자

불교는 인본주의 종교
통합과 융합 평등의 가르침
나와 이웃 함께 행복 ‘추구’
쇼펜하우어는 독일불교 아버지
바그너·니체 등 제자도 영향 받아

소설가 정찬주씨가 9월 20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KKH(Kardinal Koenig Haus, 추기경문화회관)서 초청연사로 초대받아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인과 불교’를 주제로 강연했다. 특히 정찬주 소설가는 ‘독일 불교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쇼펜하우어에게 영향을 받은 바그너의 오페라 대본 〈승리자〉에 대해 언급했다. 정찬주 소설가는 “〈승리자〉는 불교경전인 〈법구경〉 중 ‘자기를 극복한 자가 진정한 승리자’라는 가르침서 착안된 것”이라며 “불경 속 남녀 간의 사랑을 토대로 불교의 윤회를 소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리=박아름 기자

 

한국의 옛 왕국 고조선

한국의 역사는 B.C 2333년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런 사실은 한국의 역사서로서 1천 년 전에 발간한 〈삼국유사〉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삼국유사〉는 일연 스님의 저서입니다. 저자인 스님은 고조선 건국을 설화 형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연스님은 왜 고조선 역사를 실화(實話)로 쓰지 않고 설화(說話)로 기록했을까요? 일연 스님이 살았던 당시는 대제국 중국의 원나라가 조그만 나라인 한국의 고려국 주권을 사사건건 간섭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므로 일연 스님은 강대국 중국을 의식하여 고조선 건국을 설화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역사의 뿌리를 밝히는 것은 한국의 정신을 일깨우는 일이므로 중국이 견제하는 일 중에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황제인 환인의 아들 환웅은 하늘을 숭배하는 강력한 부족국가의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곰과 호랑이는 곰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이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늘의 아들과 곰이 결혼하여 사람을 낳을 수 있겠습니까? 강력한 부족과 작은 부족이 결합했다는 상징일 것입니다. 같은 지역에 살았던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은 다른 곳으로 이주했겠지요. 곰은 인내와 덕을 상징하고 호랑이는 용맹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한국을 점령해야만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중국과 일본을 단 한 번도 침략한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억울하더라도 곰처럼 인내하면서 평화를 사랑할 뿐이었습니다.
제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갖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한국은 잦은 침략에도 어느 강대국 문화에 흡수당하거나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한국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한국인은 왜 불교를 좋아하는가

불교는 B.C 5세기경 인도에서 발생한 종교입니다. 교주는 붓다이고 교리는 붓다가 깨달은 진리입니다. 불교는 생로병사를 하는 삶이 고통이라는 데서 출발합니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의 원인을 스스로 제거해야 합니다. 불교에서의 구원과 행복은 그 방법 밖에는 달리 없습니다. 내가 나를 구원하는 것이지, 나 아닌 신이나 다른 초월적인 존재가 나를 구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불교의 입장입니다. 불교는 신본주의(神本主義)의 종교가 아니라 인본주의(人本主義)의 종교입니다. 불교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지키고자 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붓다는 세상의 계급사회를 부정하고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가르침을 폈습니다.
붓다가 살았던 당시의 초기불교는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최상의 목적이었습니다. 붓다가 열반한 이후에 나타난 대승불교는 진리를 구한 뒤(上求菩提) 세상의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는 것(下化衆生)을 목적으로 합니다. 대승불교는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해지는 것을 이상(理想)으로 삼습니다. 대승불교는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기도가 됩니다.
그 근거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소멸하므로 이것이 소멸한다’는 상호관계적인 붓다의 논리입니다. 내가 없으면 꽃 한 송이도, 구름도, 별도 없는 것이 됩니다. 해와 바람과 비가 없으면 나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이 행복해지면 나도 행복해지고, 남이 불행해지면 나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지요.
한국의 불교전래설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북방의 고대국가였던 고구려 소수림왕 2년(A.D 372)에 중국으로부터 국가 간에 외교적으로 불교를 받아들였다는 학설입니다. 또 하나는 남인도 아유타국의 허황후가 A.D 48년에 신천지를 찾아 나선 끝에 남방의 고대국가였던 가야국에 불교를 전래했다는 설입니다. 어쨌든 한국에 불교가 전해진 기간은 1600년이 넘습니다.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뒤 왕실과 민간사회에 빠르게 전파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투쟁보다는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인에게 불교라는 옷이 잘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의 한국에는 원시신앙과 도교와 유교가 미미하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이러한 것들과 갈등하지 않고 다 포용했습니다. 지금도 한국의 절에 가면 도교의 흔적인 칠성각이 있고, 산신을 봉안한 산신각이 있고, 유교의 선비들이 남긴 시문(詩文)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불교의 자비란 상대와 하나가 되는 일원론의 사랑입니다. 결코 나와 남을 구분하여 베푸는 이원론의 사랑이 아닙니다. 불교의 철학적 깊이와 위대함은 바로 이러한 허공 같고 바다와 같은 일원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리와 갈등이 아니라 통합과 융합이 불교의 특성인 것입니다.
둘째, 인내심이 많은 한국인에게 불교라는 옷이 잘 맞았습니다. 불교의 시간관은 현실만 있지 않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습니다. 그러니 현재의 삶은 지극히 짧은 순간일 뿐입니다. 이러한 불교의 시간관은 한국인의 느긋한 성품과 잘 들어맞았습니다. 한국인은 어른이 죽었을 때 ‘죽었다’ 하지 않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즉, 오늘 이 지점에서 어느 지점으로 갔다, 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우주관도 태양계만 있지 않습니다. 수없이 많은 태양계와 하늘이 있습니다. 붓다도 여러 하늘 중에 하나인 도솔천(兜率天)에서 호명 보살(Bodhisattva)로 살다가, 인간들이 스스로 번뇌를 소멸한 ‘완전한 행복’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한국인은 과거와 미래를 믿으므로 현재의 고난과 역경에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잘 극복해왔습니다. 결코 좌절하지 않는 생명력의 유전인자를 갖게 된 것입니다. 불교는 인욕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선행을 쌓으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행복을 위한 저축이 되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누구도 인과(因果)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누구나 공평할 뿐 특권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선한 씨앗을 뿌리면 선한 열매를 거두고, 악한 씨앗을 뿌리면 악한 열매를 거둡니다. 한국인의 속담 중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도 말이 있습니다만 이것도 역시 불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불교의 〈법화경〉 중에는 이런 가르침도 있습니다.

과거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그것은 오늘 받는 이것이요,
미래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그것은 오늘 짓는 이것이라네.

셋째, 한국의 문화재 중 80%는 불교가 남긴 유산입니다. 한국문화와 한국 사상을 말하면서 불교를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종교와 정치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한국정부가 불교문화의 보존과 관리를 위해 지원하는 것은 불교라는 종교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한국의 전통문화와 전통사상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국가정책이기도 합니다.

왜 불교문학을 하는가?

한국의 불교문학은 한국의 고대국가인 통일신라시대부터 시작합니다. 7세기 중엽부터 10세기 초반까지 불교를 소재로 한 시(詩)가 유행했습니다. 그리고 고려시대 즉 10세기 초반부터 14세기 후반까지도 불교문학은 풍성하게 이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불교문학은 7세기 중엽부터 14세기 후반까지 한국의 중심부 문학이었습니다. 이후 조선시대 5백 년 동안 불교문학은 유교문학과 쌍벽을 이루며 발전했습니다. 불교문학이 한국예술의 중심부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것은 서구문학이 밀려들어온 근현대의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불교문학 혹은 불교예술이 한국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전통사상이기 때문입니다. 근현대를 맞이하여 한국의 불교문학이 한국문학의 중심에서 밀려난 사이 외국의 불교문학이 한국에 소개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한국인에게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인도의 대문호 간디의 시와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의 장편소설 〈싯다르타〉 등이 그 예입니다.
불교에 심취했던 저는 붓다에 관한 여러 전기나 소설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저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헤세의 〈싯다르타〉는 붓다의 일생 중에 반만 그린 소설입니다. 소설 〈싯다르타〉는 카필라왕국의 왕자인 싯다르타가 출가하여 진리를 깨달은 자인 붓다가 되기 전까지만 다룹니다. 인간 싯다르타의 고뇌와 사랑을 그린 것입니다. 그래서 더 감동을 주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청년 싯다르타는 우리들과 같이 고뇌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시절에 헤세로부터 아무리 뛰어난 성인이라도 작가는 인간을 이야기해야만 독자들에게 공감을 더 얻을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독일문학을 연구한 동국대학교 전 총장이자 저의 스승 홍기삼 선생님에게 쇼펜하우어는 유럽에서‘독일 불교문학의 아버지’라고 평가받고 있다는 것을 수업 중에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쇼펜하우어에게 불교적 영향을 받은 두 제자가 있는데 니체와 바그너입니다. 바그너가 구상했던 오페라 대본 〈승리자(Die Sieger)〉는 불교가극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승리자〉는 불교의 〈법구경〉에서 착안한 것이 확실합니다.
천민의 딸이자 여주인공인 프라그리티는 붓다의 제자인 아난다의 외모에 반해서 에로스적인 사랑의 감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붓다에게 ‘전생에 브라만의 딸이었던 프라그리티가 천민의 추장 아들이 사랑을 고백했을 때 그를 조롱하며 거절한 과보(果報)로 금생에는 천민의 딸로 태어나 사랑의 고통을 받고 있다’라는 설법을 듣고는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뒤 아난다와 정신적으로만 사랑하는 진리의 자매(姉妹)가 된다는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가극의 주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자기를 극복한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바그너는 영적인 친구 마틸데 베젠동크(Mathilde Wesendonk)에게 보낸 편지에 ‘세계가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현상은 ’세계정복자(Welteroberer)'가 아니라 ‘자기극복을 통해서 외계를 극복한 자(Wetuberwinder)'가 중요한 것이다.’라고 썼다고 합니다. 이는 바그너가 인간의 이성과 의지를 강조하는 불교의 교리에 얼마나 빠져들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그너는 죽기 전에도 오페라 대본에 불교 소재를 많이 차용하여 작곡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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