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 청년들을 위한 꽁트 - 샛별의 선물

그림. 강병호
우리는 외딴 봉우리를 지나고 다시 또 다른 외딴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외딴 봉우리라고 했지만 나지막한 언덕이라고 해도 그만이었다. 때를 맞추어 와서 가끔 송홧가루가 날리기도 했다.

“저것이 혹시 산지기 집?”

아저씨는 기대에 차서 말했다 .이 ‘아저씨’라는 존재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꽤 많은 글을 써야 하지만 여기서는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는 아버지의 고향 마을에 살다가 남북이 갈리는 통에 서울에 남아 우리 집에 출입하게 된 사람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아닌 남이었다. 그러나 일가붙이가 워낙 없었던 터에 마을 사람조차 거의 없었던 터라 우리 집에 살다시피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찍이 일본 유학도 했다 하는 ‘인테리’로서 내게 여러 가지 지식을 불어넣어주기도 했다.
그가 내게 시를 읽어주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중국의 이태백이나 일본의 마츠오 바쇼의 이름을 몇 번 듣기는 했었다. 이것은 아버지도 그랬으므로 두 사람은 아마도 같은 교육을 받자 않았나 생각되었다.

그가 가르키는 곳을 자세히 살피니, 아닌게 아니라 언덕 아래 흙으로 지은 작은 집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산지기 외딴 집일까요?”

작은 집이라 해도 반쯤은 허물어진 채였으나 나 역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누군가로부터 언덕을 넘으면 웬 흙집이 있다는 말에 찾아온 것이었다. 요새도 그런 풍경이 있다는 사실만이 신기할 뿐이었다. 나는 그런 풍경을 본 것만으로도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되었다. 마치 과거에 도착한 듯하기만 했다.

“암. 이제야, 이제야 성공.”
아저씨는 짧게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1946년에 태어난 나는 1967년에 시인이 되었다. 그러니까 스물 한 살에 시인이 된 것이다. 〈현대불교〉로부터 창간 21주년을 기념하는 글을 써달라는 전화를 받고 대뜸 그러겠다고 받아들인 건 그런 배경이 먼저 다가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21세의 내 출발을 21주년의 신문과 함께 놓고 본 것일까. 그것을 같은 운명으로 본 것일까. 아무튼 지금 내가 이렇게 나이 먹었어도 여기에는 스물 한 살의 어린, 젊은 시인이 있다. 그는 아마도 앞으로 50년 가까이 시를 쓰며 시인으로서 삶을 굳건히 일구어나갈 것이다. 나는 그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어야 한다.

시인이 된 그해 봄에 나는 아저씨로부터 좀 유별난 제의를 받았다. 내가 시인이 되자 당선작을 처음 읽어준 것이 그무렵 집에 와 있던 ‘아저씨’였다. 내가 시인이 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뜻밖에 우리나라 박목월 시인의 이름과 시 〈윤사월〉이 그의 입에서 나왔으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물론 이 시는 지금은 몰라도 예전에는 교과서에 나오는 시였다. 그러나 그가 우리 교과서를 읽을 나이는 아니었다. 어디서 그 시를 읽고 알았을까 나는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물을 계제가 아니어서 나는 듣고만 있었다.

“외딴 봉우리, 산지기 외딴 집이라....”
그는 무슨 생각에 잠긴 듯 눈빛이 아련해졌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묻고 싶었지만 웬지 입을 다물고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런 데가 어디 있을까?”
그는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외딴 봉우리야 산악국가로 꼽히는 우리나라의 곳곳에 셀 수 없이 많을 것이었다. 그러나 산지기라는 게 아직 있을까는 나로서도 아리송했다. 나도 한때는 산지기라는 직업이 있다면 그렇게 산속에 묻혀 살고 싶기도 했다.

이렇게 그가 내 당선작을 읽고 〈윤사월〉을 이야기했던 겨울이 지나고 어느덧 봄이 되었고, 소나무가 꽃을 피워 송홧가루 보얗게 날렸다. 그런 어느날 집에 온 그는 느닷없이 내게 제안했던 것이다.

“산지기 외딴 집을 찾아보자구.”
“녜?”

정말 무슨 말일까 싶었다. 그러자 나도 어디론가 그런 풍경을 찾아 떠나고 싶다는 열망이 불현듯 솟구쳤다. 하루하루 옛 모습을 잃어가는 풍경에 섭섭함이 지나쳐 걱정이 들던 참이었다. 그래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는데, 늘 눌러앉아 지지부진한 일상을 살고 있는 내가 답답했다.

“매일 숨막히는 생활이란 말야.”
그의 말은 내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세상이 더 변하기 전에 가봐야 해.”

그의 말은 나를 더 이상 망설이지 않게 하기에 충분했다. 오히려 그의 마음이 변할까봐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것 저런 것 따지지 않고 곧 준비해서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지방의 소나무 우거진 ‘외딴 봉우리’를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그는 오랜 준비를 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흙집에 다가간 우리는 간단하게 챙겨온 야영도구를 그 안에 설치하고 하룻밤을 지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간 행운이 아니었다. 흙집이 반쯤 허물어졌다고 했는데, 한쪽은 제법 든든하게 지붕을 떠받치고 있어서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눈먼 처녀’가 과연 있어서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밝힐 수도, 밝힐 필요도 없었다. 그런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은 그만이었다. 예전에 방이 없어서 오늘은 어디서 보낼까 걱정해본 사람만이 그 집의 가치를 알 것이었다. 방이 없는 사람은 바닷가의 소라게조차 부럽기 그지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는 것이다. 한 편의 시를 써서 비로소 시인의 이름표를 단 사람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를 노래하면서도 목이 멘다.

우리는 준비해온 빵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흙집 안에 누웠다. 왜 내가 그러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또한 왜 내가 그러고 있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도 했다. 그 ‘밤으로의 여로(旅路)’야말로 내가 바라던 행로였다. 그가 아니었으면 그 이상한 여행은 없었을 것이며, 나는 인생의 중요한 하룻밤을 놓쳤을 것이었다. 이 또한 그해 내 21세의 시인됨의 뜻이었다. 나는 그것을 그의 선물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그는 그렇게 내게 ‘외딴 봉우리’를 선물해주었다. 더군다나 나는 그날 밤 잠깐 잠을 깨어 하늘의 별빛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지금껏 잊혀지지 않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무렵 열심히 읽은 어느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하고 노트에 옮겨놓은 구절에는 그날의 별빛이 빛나고 있다고 나는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별빛을 간직하는 방법을 배웠다.

별이 빛나는 밤 하늘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상한 여행은 끝났다. 그러나 이 글은 ‘꽁트’로 청탁받아 쓰고 있으므로 이제 ‘반전’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실 나는 반전을 싫어하기 때문에 굳이 안 써도 되리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른 새벽, 즉 여명의 때라고나 할까, 그때 깨어나 샛별이 어디에 있는지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내 앞에 나타난 사내의 이야기는 빠트릴 수가 없게 되어 있다. 하늘이 희붐히 동터오는 그때까지 눈에 띠게 크게 빛나는 별이 있다면 그게 샛별이라고 했다. 아직 곯아떨어져 있는 아저씨 옆에서 일어나 살그머니 밖으로 나온 나는 과연 샛별이 동쪽 하늘에 반짝이는 걸 보았다.

“아.”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웬 사내가 이미 내 곁에 다가와 있었다.
“누구십니까?”

내가 묻는 순간 그도 비슷하게 묻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뚫어져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산지기 외딴 집’을 찾아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듣고만 있던 그는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듯 눈을 꿈벅이더니 ‘이 집은 ‘산지기 외딴 집’이 아니라 ‘상엿집’이라고 했다. 마을의 상여를 넣어두었다가 혹시 쓸 일이 생기면 꺼내 쓰기 위해 지어진 집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을의 개발과 함께 상여도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런 집이…”

전혀 모르던 시골의 풍습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덤과 같은 집에 기어들어가 하룻밤을 묵은 셈이었다. 상여가 시골길을 가던 풍경을 본 지도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걸 넣어두던 상엿집....
그러고 보면 새벽에 나타난 그 사내가 진짜 산지기였다. 누군가 낯선 사람이 있는 듯해서 그는 일부러 와보았노라고 밝혔던 것이다. 그의 등장은 〈윤사월〉에 나옴 직한 모습과는 연결은 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찾던 ‘외딴 집’은 아니었을지언정, 그러나 그 여행의 모든 것, 그 흙집, 그 별빛, 모두가 하나같이 내게는 소중한 선물이었다. 아저씨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어도 내게 그토록 소중한 선물을 남겼다.

소설가 윤후명
그와 함께 나는 최근에 읽은 〈아함경〉을 펼친다. 문득 다음과 같은 글이 눈에 들어온다.

샛별이 나타날 때 부처는 태어나셨고
샛별이 나타날 때 숲속 고행을 벗어났으며
샛별이 나타날 때 가장 높은 도를 얻었고
샛별이 나타날 때 니르바나에 드셨다.
〈장아함2 유행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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