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사회 불교적 대안- 한국은 지금 ‘혐오’로 몸살 중

‘극혐’·‘~충’ 등 혐오 표현 급속 확산
온라인부터 대중문화까지 ‘혐오’ 고착
10~30대의 상태적 박탈감이 분노로
사회 약자·다른 가치에 무분별적 증오
한국도 ‘증오범죄방지법’ 필요성 대두

맘충, 노인충, 급식충, 자전거충, 김치녀, 극혐 등을 아십니까? 이 같은 말들은 SNS 등 온라인에서 흔히들 찾아볼 수 있는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 표현이다. 특정 계층과 집단을 벌레(蟲) 등으로 낮춰 부름으로서 조롱·멸시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상대방에 대한 멸시와 증오가 알게 모르게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혐오사회’로의 진입 단계에 서 있다.

들불같이 번진 여성 혐오
올해 한국사회에서 가장 폭발력을 보여준 혐오는 여성에 대한 혐오다. 일각에서는 올해를 ‘여성 혐오 폭발의 원년’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맘충’이다. 엄마를 뜻하는 맘(mom)에 벌레 충(蟲)을 합성한 신조어로 원래는 커피전문점·식당 등에서 뛰어다니거나 떠드는 아이들을 방치하는 민폐 엄마들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증폭되면서 사용 범위도 넓어졌다. 이제는 유모차를 끌고 카페에만 가도 ‘맘충 극혐’이라는 혐오 표현이 수식어처럼 따라 붙는다. 아예 ‘아이엄마 손님’과 ‘일반손님’ 간 갈등이 커지면서 일부 레스토랑이나 카페는 ‘노키즈존(No Kids Zone)’을 만들고 어린이를 입장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는 추세다.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미디어도 ‘여성 혐오’를 부추긴다. M.net 예능프로그램 ‘쇼미더머니4’ 참가자 송민호는 랩배틀을 통해 산부인과를 여성들이 다리를 벌리는 곳으로 묘사해 여성 비하 논란을 일으켰고 대한산부인과의사회까지 나서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블랙넛 역시 과거 발표한 높은 수위의 여성 비하 랩으로 문제가 됐다.

예능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출연자 송민호의 랩배틀 장면. 여성을 비하는 가사가 문제가 됐다. 이 같은 미디어의 여성 혐오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벌레’가 됐나
‘맘충’을 비롯한 여성 혐오는 한국사회에서의 혐오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특정 계층을 혐오하면 이에 적극적으로 공감·동조하고 이견을 제시하면 이 역시도 멸시하는 악순환이 문화가 되고 있다.

혐오의 악순환은 ‘~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자리를 타박하는 노인이나 의식 없는 어머니에 대한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이들을 벌레로 매도한다. 자신에게 실질적 피해를 주는 여부는 상관이 없다. 눈에 거슬린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충’을 만들고 ‘극혐’이라는 수식을 단다. 말 그대로 극도로 혐오한다는 뜻이다. 젊은 층들에게는 혐오 표현은 유머이자 해학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온라인 상에서 이 같은 부분을 지적하거나 진지하게 접근하면 이 역시도 ‘진지충’이라는 ‘극혐’의 대상 되어 버린다.

문제는 ‘~충’에 대한 혐오가 단순히 표현에 그치지 않고 정치·사회 영역으로 확산된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다문화 혐오인 ‘제노포비아’와 ‘노인충’으로 대표되는 노인 혐오다.

다문화 혐오는 다문화 정책 반대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 안티다문화 인터넷 카페만 수십개이며, 총 회원은 수 만명에 달한다. 대표 안티다문화 카페인 ‘다문화정책반대’는 회원 수가 1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값싼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 노동시장을 어지럽히고 있으며, 외국인 노동자들은 언제든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잠재적 범죄자’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카페 안에는 중국인을 ‘짜장’, 파키스탄인을 ‘파퀴벌레’라고 비하하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 표현이 넘쳐난다.

노인혐오도 마찬가지다. 선거 이후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노인들에게 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부터 ‘경로 무임승차 없애라’, ‘노인들은 신분증 검사도 거부한다’는 등의 근거없는 주장이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는다. 혐오의 고착화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속 ‘혐오’, 세상으로 나오다
한국사회의 혐오 문화 중심에 있는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도 비슷한 사례다. 2009년 만들어진 일베는 현재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자신의 입지를 키워가고 있다. 일베의 게시물들은 지역·여성·진보진영에 대한 비하와 혐오로 점철돼 있다.

박가분이라는 필명을 쓰는 저자가 <일베의 사상>을 통해 지적했듯이 일베 이용자들은 여성, 지역 등의 혐오를 일종의 ‘문화적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이는 타인에 대한 반말이나 시비조의 말투가 일상 문화로 이뤄지는 ‘상호 비존중의 원칙’으로 굴절돼 나타난다.

이에 대해 박가분은 “일베는 혐오문화를 기반으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정체성, 세계관, 상호 인정의 질서를 만들어낸 인터넷 커뮤니티”이라면서 “관리자 역시 그 점을 인식하면서 ‘의외성’의 재미 그리고 남고생들 특유의 ‘말초적’인 쾌감을 발견한다”고 비평하고 있다.

문제는 온라인의 일베가 세월호 참사를 기폭제로 오프라인으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단식투쟁에 맞서서 폭식투쟁을 한 것이다. 일베 유저의 폭식 투쟁에 우익 계열 청년단체와 시민들이 연대했으며, 한 50대 사업가는 피자를 지원하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신은미·황선 콘서트에 한 고등학생이 사제 폭탄을 제작해 테러하는 사건에 일어나기도 했다. 일베 등 극우 단체들은 이 학생을 ‘열사’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한국 혐오 문화의 중심에 있는 일간 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 일베는 지역, 여성, 정치 진영 등 전반에 걸쳐 특정 대상을 혐오하고 있다. 한국 혐오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분노 해방구 없는 한국사회
왜 한국사회는 ‘혐오’로 놀이를 하고 이를 문화로서 받아들이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숨막히는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사회의 현실에 기인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사회학자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20대의 자화상>를 보면 자신이 가르친 대학생 중 적지 않은 인원이 ‘인서울= 정규직’, ‘지방대= 비정규직’과 같은 차별의 등식을 인정하고 있다. 자기 계발 담론에 매몰된 20대에게 차별은 최선의 방어이자 공격의 수단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 레이스에서 불이익을 보게 되는 요소나 반사 이익을 받는 다문화, 여성, 노인 등에 계층에 대한 제거가 우선적인 생존본능으로 자리잡았다.

배려와 관용이 부족한 사회풍토도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박명호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해 1월 발표한 ‘지표를 활용한 한국의 경제사회발전 연구: OECD 회원국과의 비교분석’ 논문에 따르면 장애인노동자 관련 법률 수와 타인에 대한 관용·외국인 비율 등으로 구성된 ‘관용사회지수’와 실업률·노령자에 대한 사회지출·노령 고용률·도로사망률·건강지출비율·자살률 등으로 구성된 안전지수의 순위는 31개국 중 31위로 모두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옥복연 종교와젠더연구소 소장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기가 힘들다는 피해의식이 젊은 세대에 굉장히 팽배해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라든지 약자에 대한 배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의 존중 이런 것들이 이미 무한경쟁사회에서 사라지게 됐다”고 진단했다.

증오범죄방지법 대안될 수 있나
혐오 문화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적극적인 법적 제재 조치인 ‘증오범죄방지법’ 제정에 대한 필요성도 함께 제시되고 있다. 증오범죄방지법은 종교, 인종, 민족 등에 관한 편견과 증오를 범죄로 규정해 처벌하는 것으로 프랑스의 경우 개종을 강요하는 행위를 징역형으로 다스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법 개정이 추진됐으나 보수 개신교의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사회도 증오범죄에 대한 경종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감하면서도 혐오 문화를 근절할 수 있도록 사회 구조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장 만당 스님은 “우리 사회는 이미 혐오와 차별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서 거의 임계점에 다다랐다. 갈등의 골이 폭력적 폭발한 뒤에 바로 잡기는 매우 어렵다”면서 “한국 사회도 이 시점에서 조속히 증오범죄방지법 또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불교계도 부처님의 생명존중과 자비의 정신을 실생활에 구현하고 삶속에 체화시킬 수 있는 운동과 교육활동에 매진해야 한다”면서도 “사회적 혐오 문화는 불교계만으로는 일일이 대응하기가 어렵다. 모든 종교가 미래 세대를 위해 발벗고 나설 문제”라고 주장했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입법 취지가 공적 영역에서의 증오·차별 행위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알고 있다. 법보다 우선돼야 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라면서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 공간이 필요하다. 젊은이들을 다시 광장으로 이끌어야 한다. 기성세대 역시 일방적 훈계가 아닌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역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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