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하도인 신위
2. 자하도인 신위
  •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 승인 2015.08.2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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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 사상 사색한 수행자 같은 선비

서화에 능해 ‘시서화삼절’ 칭송
불교 승려와도 폭넓은 교류가져
화엄사서 패엽경 열람하고 공부
“釋誕日, 2월 8일”… 초의와 격론
추사·초의 “2월, 4월 고증 어렵다”

관악산 호수공원 내 자하정의 신위 동상. 1998년 조성됐다.
자하도인 신위(紫霞道人 申緯1769~1845)는 조선 후기 문예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외척세력의 득세로 그의 정치적 입지는 좁았지만 실제의 삶은 소요유(逍遙遊)의 자유로움과 선오(禪悟)의 경지를 체험했던 듯하다.
한때 병조참판이 되었다가 강화유수로 봉직되었던 그는 윤상도의 탄핵으로 곤욕을 당했을 때에 그를 도운 이는 풍고 김조순(楓皐 金祖淳1765~1832)이었다. 1831년에 다시 형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 무렵 용강에서 병을 치료한 후 시흥현의 자하산방으로 돌아온 그는 차를 즐기며 선오(禪悟)의 경지를 느낀 선객(禪客) 같았다. 이 해 8월, 초의가 지은 ‘북선암으로 자하도인을 찾아가다(北禪院謁紫霞道人)’에는 자하산방 시절, 그의 모습을 이렇게 노래했다.

문을 연 사람은 문을 닫고 돌아가는
사람임을 기억하지만(開門人記閉門旋)
잠깐 사이에 오십년이 지났구려(回首中間五十年)
비각에서 단련하는 옛 학사인 듯(秘閣丹鉛前學士)
범궁에서 향 사르는 대승의 선객인 듯하네
(梵宮香火上乘禪)
오래된 세 그루 회나무는 땅 가득 그늘을 드리우고
(綠蔭滿地三槐老)
구름을 뚫은 맑은 옥경 소리, 여운마저 그윽하네
(玉響穿雲一磬圓)
승려로써 아직 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慙愧?黎情想在)
새벽꿈에 의지해 은근히 서로 이끄누나
(憑將曉夢暗相牽)

당시 초의는 두 번째 상경했다. 이 무렵 그는 유산 정학연(1783~1859)과 추사와의 인연으로 홍현주(1793~1865), 윤정진(1792~?), 이만용(1792~1863), 홍희인, 홍성모뿐 아니라 김조순, 오창렬 등, 경향의 이름 높은 선비들을 만난다.

특히 스승 완호 스님의 삼여탑(三如塔)에 쓸 서문과 글씨를 받기 위해 찾았던 북선원에서 이틀간을 머물며 서로를 이해했다. 당시 자하의 모습은 마치 “비각에서 단련하는 옛 학사인 듯(秘閣丹鉛前學士)/ 범궁에서 향 사르는 대승의 객(梵宮香火上乘禪)”과도 같았다는 것인데 이는 벼슬을 사양하고 수행자처럼 살았던 삶의 일면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자하의 화답한 시에는 “도에 잠긴 동파 노인처럼 노니나니(道潛坡老共周旋)/ 이런 즐거움, 늙은 이 무렵에야 생겼다네(此樂衰年有此年)/ 쓴 차, 빈틈없이 다룰 때에 속된 기운 고칠 수 있고(苦茗嚴時宜?俗)/ 아름다운 곳, 좋은 시는 참선과 같은 경지라(好詩佳處合參禪)”고 하였다.

실로 자하산방 시절의 자하는 소동파(蘇東坡)처럼 물외(物外)의 경지를 읊조리고 시삼매(詩三昧)의 순일(純一)한 경계를 실천했던 듯하다. 자신의 거처를 북선원이라 불렀던 그의 사유세계는 이미 드러난 셈이다.

이처럼 인생의 공허(空虛)를 짐작했던 그의 생애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일찍이 강세황의 문하에서 서화(書畵)를 익혔고, 스승 강세황의 문인적인 화풍을 이었다고 한다. 특히 대나무를 잘 그렸으며, 시와 글씨에도 능해 시서화삼절(詩書畵三絶)로 칭송된다. 비교적 늦은 나이(1799, 그의 나이 30세)에 문과에 급제했고, 5년 후인 1804년에 도당회권(都堂會圈: 의정부에서 홍문관의 교리, 수찬 등을 선임하기 위해 추천)에 합격한다.

하지만 그의 환로는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니 이는 병고와 외척 세력의 견제 때문이었다. 정치적으로 어려웠던 시기 부인의 죽음은 그에게 많은 회한을 남겼으며 인생무상을 느끼게 했는데 이런 상황은 그가 불교를 가까이한 요인이었다. 이외에도 추사 김정희의 불교에 대한 관심은 그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자하도인 신위가 쓴 ‘전다삼매’. 시서화에 능해 ‘시서화삼절’로 칭송받았다. 불교적인 학식도 풍부했다.
한편 1812년 7월, 주청사서장관 이시수와 부사 김선을 수행하여 연경에 사신을 갔는데 추사는 ‘연경으로 가는 자하를 전송하며(送紫霞入燕)’라는 전별시에서 “자하 선배도 만 리 길을 건너 중국에 들어간다 하니 진기한 경치와 위엄 있는 광경을 보겠지만 그러나 저는 본 적이 없는 수많은 경관을 본다 하더라도 한번 소재노인(옹방강)을 보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紫霞前輩 涉萬里入中國 ?景偉觀吾不知其千萬億 而不知見一蘇齋老人也)”고 하였다. 바로 소재(옹방강)를 만나보라는 간곡한 뜻을 전한 것이다.

실제 추사는 옹방강을 만난 이후 자신의 학문관이나 불교, 예술, 차 뿐 아니라 고증학에 대한 안목을 높였기에 자하도 옹방강을 만나는 것이 좋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에 앞서 자하는 이미 옹방강의 인품과 학문적 성취는 익히 들었던 터다. 이뿐 아니라 스승 강세황을 통해 옹방강의 묵적을 일람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문예의 거두, 옹방강을 만난 후에 일회만감(一會萬感)이 교차되었으리라.

더구나 그는 평소 품성이 호탕해 당색(黨色)을 불문하고 폭 넓은 탁마지우(琢磨知友)를 사귀었다. 초의처럼 불교에 귀의한 승려들과도 폭 넓게 교유했다. 실제 그는 1830년 경에 각기병이 심해져 2년 정도 용경(蓉涇)에서 머물며 요양했는데 이때 산인(山人) 청당(靑棠)은 연훈법(煙薰法)으로 자하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 따라서 1831년 8월에 초의를 만났을 때에는 용경에서 자하산방으로 돌아온 직후인 듯하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초의는 자하에게 완호의 삼여탑(三如塔)의 글씨와 서문을 받기 위해 찾아간 것이다. 자하가 탑의 서문과 글씨를 쓰게 된 것은 홍현주의 요청 때문이었다. 초의는 자신이 만든 차를 선비들에게 주었다. 자하산방으로 자신이 만든 보림백모차를 보냈던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었다.

이런 초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하의 글씨와 서문을 제때 받지 못했다. 몇 차례에나 초의는 금선암(金仙庵)에서 자하를 만나고자는 했지만 한질(寒疾)과 형역(亨役)을 겪었던 자하는 초의를 만나지 못했다.

원래 금선암은 북한산에 위치한 암자로 선홍(善洪)스님이 주석하고 있는데 신위와는 이미 내왕이 있었던 사이였다. 이 밖에도 자하는 화엄사 법능(法能)스님과도 교유했다. 어느 해에 화엄사의 법능 스님을 찾아가 스님의 방에 묵으며 패엽경(貝葉經)을 열람했던 자하는 당시의 정황을 “패엽경의 소문을 오래 전에 들었는데(貝多梵夾聞名久)/ 새벽에 일어나 손으로(패엽경을)들추니 향기로운 기운이 피어나누나.(曉起手披香氣?)”라 하였다.

이외에도 자하는 초의와 석가모니 탄신일이 2월 8일인지 아니면 4월 8일인지를 논쟁했는데 이는 추사까지 가세되었다. 우선 자하의 ‘2월 8일이 석가의 탄신일이라(이월팔일작불신(二月八日作佛辰)’의 중요한 내용을 살펴보면 “석가의 생신을 오늘 아침 만났다함은(釋迦生辰遇今蚤)/ 내가 근거 없이 우겨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증함이 있다네(非我臆說亦有考)”라고 하였다. 바로 자신이 주장한 석가탄신일은 2월 8일이라는 주장은 고증을 거친 것이다. 4월8일은 잘못된 것이라 주장한다.

그가 2월 8일이라 주장한 근거는 바로 주나라와 하나라의 정월이 각각 인(寅)과 자(子)이므로 2월과 4월로 바뀐 것이란다. 따라서 하나라 월력은 2월이므로 태사(太史) 소유(蘇繇)가 기록한 날은 2월 8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하가 언급한 태사 소유의 고사(古事)는 어떤 내용일까. 바로 <주서(周書)> ‘이기(異記)’에 “주 소왕(昭王)이 즉위 24년 4월 8일에 강과 하천이 범람하여 우물이 넘치고 산천이 진동하고 오색 빛이 태미(太微:별 이름)로 들어가 꿰어 사방에 퍼져 모두 청홍색이 되었다”고 한다. 태사 소요가 ‘대성인(大聖人)이 서방에서 태어났는데 1천년 후에 성스러운 가르침이 여기까지 미치겠다’고 하였다. 이는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도에서 태어나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실제 소왕이 이런 사실을 기록하여 남쪽에 묻으라고 명하여 돌에 새겼다고 전해지는 데 이것이 바로 소유각석(蘇繇刻石)이다. 아무튼 자하는 세존의 탄신일이 2월 8일인대도 와전되어 4월 8일을 석가탄신일이라 하여 등불을 밝히고 떠들썩하게 기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내 이제 늙어 선탑에 의지하니(我今絲寄禪榻)/2월 8일 봄 강의 새벽일세(二月八日春江曉)/ 내 등불은 무진하여 본래 등불이 없으니(我燈無盡本無燈)/ 불사의 시를 지어 마음으로 공경히 기도하누나(作詩佛事心虔禱)”라고 하였다.
신위는 서화 중 특히 대나무 그림으로 유명했다. 사진은 간송미술관에 있는 ‘청축’
하지만 초의는 그의 이 설에 대해 ‘자하 시랑의 2월 8일 이라는 시에 화답하여(奉和紫霞侍郞二月八日之作)’를 지어 자하가 고증한 내용도 “자세히 살펴보면 주나라 소왕에 그친 것이 아니고(細考又不止周昭)/ 무을(武乙)이나 하나라의 걸(傑)까지 거슬러 올라가네(上溯武乙幷夏傑)”고 하였다.

실제 “오색이 밤을 밝힌 것은 오히려 장왕 때의 일이라(夜明還是莊王時)”라 고증하였으니 자하와는 견해의 차이가 분명했다. 이어 초의는 소왕 때라는 것도 “갑오니 갑인이니 하여 시끄럽다(甲午甲寅復相?)“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석가탄신일이 2월 8일이나 4월 8일이라는 주장은 실제 정확한 고증이 어렵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그러기에 초의는 ”백천의 등불이 석가모니를 보좌하니(百千燈影攝牟尼)/ 2월이든 4월이든 아무런 해로움이 없다(二月不妨作四月)“고 한 폭 넓은 견해를 나타냈던 것이다. 당시 자하와 초의의 이 논쟁은 유학자들에게 회자된 듯하다.

불교에 밝았던 추사는 ‘2월 8일 작불신에 답하다. 초납을 대신하여(答二月八日作佛辰代草衲)’를 지어 초의의 입장을 옹호했는데 추사의 견해는 초의의 설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다만 추사는 4월 8일로 굳어진 것에 대해 “소문이 퍼져 조선에 그대로 굳혀져(聲聞依滯方隅)/가섭이 죽은 지 오래되자 말이 잘못 전해진 것이라(離迦飜轉恣?脫)”고 하였다.

따라서 “화호경에도 근거라곤 전혀 없어(化胡經又沒巴鼻)/ 이 송사 질질 끌어 언제나 끝날까(此訟漫漫無時畢)”라는 자신의 뜻을 나타냈다. 결국 4월 8일이니 2월 8일이니 하는 논쟁은 이를 고증할 근거가 그리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고대사에 대한 고증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의 간극(間隙)은 이처럼 각설을 만든다. 하여간 이 논쟁은 부처님의 탄신일을 두고 초의와 자하, 그리고 추사 등 고증학에 밝았던 인물들의 학문적 방법론을 설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와 함께 자하의 불교관은 공(空)이나 평등사상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자하는 “일체의 영욕은 본래 평등한 것이라(一切榮辱本平等)/ 다시 업장을 바로잡아 번뇌를 소멸하리(再要業障消煩惱)”라고 한 것은 아닐까. 실로 “머리를 조아려 부처께 아뢰어도 부처는 말이 없는데(稽首白佛佛無言)/ 뜻으로 전하는 묘체를 절로 마음에서 알아차리네(意援妙諦心自了)”라 하였다. 따라서 자하는 실로 “범궁에서 향을 사르는 선객”으로 살았던 듯하다.

그의 제자 금령 박영보(1808~1872)는 자하의 ‘2월 8일이 석가의 탄신일이라(二月八日作佛辰)’를 읽고 “이월팔일춘강효(二月八日春江曉)의 일곱 글자는 선의 깨달음을 갖춘 것이라(余讀釋迦生日詩至二月八日春江曉之句曰此七字便具禪悟)”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자하는 “이월팔일봄강의 새벽에(二月八日春江曉)/ 그대는 선의 깨달음을 드러냈다고 하였네(問汝從底見禪悟)/ 시구 중에 있는 것도 아니며 시구 밖에 있는 것도 아니라(不在句中不在外)/ 생각에 사로잡혔다가 겨우 무시처(無是處)를 찾았네(着意?心無是處)”라고 하였다. 실로 그는 불교를 료해(了解)했던 선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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