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려서 나를 얻는 소식이다. 탕!
나와 더불어 일체를 버려서 일체를 얻는 소식이다. 탕!
나와 더불어 나를 버려서 일체 나툼의 소식이니라. 탕!

▲ 그림 최주현

(지난 호에 이어서)
그랬듯이, 사람이 사람이니만큼 마음이라고, 마음! 벌써 문으로 들어올 때에 내가 마음이 그렇지 않으니깐, 나를 버리면 아무것도 두려운 게 없어! 내가 살려고 그러고, 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에 사고가 생기는 거야. 아무것도 줄 게 없고 가져갈 게 없어도, 악이나 쓰고 뭐 어쩌고저쩌고하면은 그거 좋을 게 뭐야? 그 사람도 사람이고, 그 사람도 어떤 어머니가 아들 낳았다고 좋아했을 테고, 또 나도 인간이고 그런데. 생각하면은 가엾고 안됐지. 그러니까 동생으로 생각을 해도 되고, 또는 그때 생각을 안 해봤지마는 지금 얘기하자면 동생이라도 몇째뻘 동생이더라고.


그래서 ‘에이휴, 만약에 내 동생이 저런다면 얼마나 속이 썩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고 그랬어. 그러니까 그게 아깝지도 않고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그 손에 죽는다 하더라도 아무 그것도 없어. 왜? ‘내가 하고 갈 게 있다. 내가 뭘 해야 할 텐데. 내가 꼭 있어야만 해.’ 이런 건 다 부질없는 얘깁니다. 아, 죽을 때 되면 그냥 죽으면 고만이고, 살 때 되면 사는 거고 그냥 그저 길을 걸어갈 뿐이죠. 구태여 뭐 ‘내가 이렇게 살아야만이 너희들이 잘 산다.’ 이럴 것도 없어요. 또 ‘내가 없으면 못 산다.’ 이럴 것도 없고요.


이 세상에 나왔으면 다 자기네 나오기 이전, 전생에서 짓고 나온 대로 악업이 많으면 더 많이 고(苦)를 당하고, 선업이 많으면 고를 덜 당하죠. 아, 국회의원도 표가 많으니까 국회의원 됩디다. 그런 거와 같은 겁니다, 우리가 악업 선업을 짓는 것도. 그러니까 걱정할 게 하나도 없이 내 한생각을 잘 돌려서 나라고 하는 거를 다 버린다면 이 속에 들어 있는 악업, 선업도 다 그냥 송두리째 버려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苦) 덩어리 하나 착을 두지 않는다면 멸(滅)하게 되고, 도(道)가 되죠.


그런 거와 같이, 서산 대사께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 길을 걸었답니다. 그 길을 걸었는데 그때 시대에는 칼이나 활을 썼죠. 창이나 그런 걸 썼죠. 비행기도 없었고 총도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때는 그 환경대로 육신통을 안 하면은 아주 어려웠을 때고, 또 중생들을 제도하는 데도 필요했고 어떠한 난리가 나도 그러한 술수가 참 필요했다는 얘기죠.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그 육신통의 술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됐죠. 그래서 그것을 잘 이끌어 나가고 참, 고도로 발전을 시켜서 대도를 이루신 분이 서산 대사죠.
그랬는데 어느 날 사명 대사(四溟大師)가 말입니다, 새를 한 마리 잡아 가지고선 덜렁덜렁 왔단 말입니다. 방에 들어와서 하는 소리가, 빼먹고 하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그건 안 해도 되니까. 우리가 공부할 수 있는 얘기만 합시다. 그래 와서 하는 소리가 새를 손에 쥐고 “이 새를 날려 보내겠습니까, 죽이겠습니까?” 하거든. 응? 그러니깐 서산 대산 아무 소리 없이, 같잖다는 것도 되지만 아무 소리 없이 일어나서 문지방을 걸터 짚고 서서, “내가 나가겠느냐, 들어오겠느냐?” 이러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명 대사가 고만 허무하게 뚝 떨어진 거죠.


그래서 절을 한번 하고 제자가 되겠다고 해 놓곤 ‘그래도 못 믿어! 저놈의 술수는 나도 할 수 있는 건데…. 응? 그거 뭐 육신통 했다고 정말 대도가 이루어졌는지 안 이루어졌는지 내가 알 바가 뭐야?’ 이러면서 또 한 가지 계책을 쓴 것이 계란 쌓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계란을 아래서부터 탁 쌓아서 지붕까지 붙였는데 서산 대사가 쓰윽 그걸 보더니 하는 소리가 “그 장난 참 심하구먼.” 하고선 “그럼 나도 장난 좀 한번 해 볼까?” 하곤 지붕에서부터 내려 꽂거든요. 허허허. 아, 그러니 아래까지 턱 내려놓고 하는 소리가 “그래, 이것이 옳은가 그것이 옳은가?” 이러고 묻더라는 겁니다, 사명 대사한테. 그러니까 사명 대사가 거기서 또 그냥 “아휴, 잘못했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는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하고 그냥 “잘못했습니다.” 하면서 백배사죄를 했죠.


그래서 이럭저럭 지내다가 어느 날 어느 길을 걷게 됐습니다. 사명 대사가 스님을 쫓아가는데 또 속으로 ‘키는 조그맣고 몸뚱이는 가냘프고 조그만 저것이 대도를 이루었을까?’ 또 의심이 난 겁니다, 인제. 허허허.  못생기기도 했지마는 ‘저거, 아유!’ 그 사명 대사, 자기는 출중하고 아주 훤출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보고선 스님을 보면 아주 천지차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속으로 중얼중얼하면서 인제 가는 거죠. ‘저거 정말 대도를 이루었을까, 과연? 내가 정말 스승으로서 모실 수 있는 그런 자격이 있을까?’ 생각을 하고서 뒤에 슬슬 쫓아가니깐 그냥 착 돌아다보면서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거든요. “이놈아! 그렇게 못 믿고 그렇게 보잘것없는 걸로 보이걸랑은 지금 빨리 가라!” 하고 말이야. 그냥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거든요. 그러니깐 거기서 자지러졌단 말이야, 그냥. 자지러졌어요. ‘야! 속까지 들여다보니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이걸 어쩌나.’ 하고선 속으로 생각을 하다가 생각을 굳혔습니다. 뭘 굳혔느냐 하면은,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인제는 믿겠다는 각오가 섰습니다. 그래서 그 스님이 거꾸로 간대도 “네. 옳습니다.” 했고 바로 간대도 “옳습니다.” 했습니다.


그렇게 믿고 지냈는데 어느 날 두 분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큰 구렁이를 만났단 말입니다. 그 순간에 서산 대사께서 사명 대사를 천야만야한 절벽으로 탁 밀어 던졌죠. 그러니 천야만야한 데로 떨어질 수밖에. 떨어지다 보니깐 자기 가는 지금 그 절의 부목이 나뭇짐 해다 놓은 큰 더미 위에 뚝 떨어져서 자기 몸뚱이가 출렁대더랍니다. 그래서 떠다밀어도 요런 데다 떠다밀었으니 “참, 스님! 고맙습니다.” 하고는 올라가서 백배사죄를 했죠. 그러니까 스님이 하신 말씀이 “떨어진 것이 화가 나느냐?” 그러니까 “아닙니다.” “떨어진 것이 옳은 일이냐?” “아닙니다.” “그러면 떠다밀지 않은 것이 옳은 일이냐?” “아닙니다.” 그러거든. “그만하면은 됐구나.”


그러고는 이튿날서부터는 또 뭘 해 줬느냐 하면은 날콩물 있죠? 날콩물에다가 솔이파리를 찧어서 그 시퍼런 물에다가 날콩가루를 타서는 한 그릇씩 먹는 겁니다. 그걸 먹고 나니깐 설사가 얼마나 나오는지 앉았다 섰다 할 수가 없이 그냥 앉았으면 서야 하고 섰으면 앉아야 하고, 이렇게 그냥 뭐 하루 종일 그냥 드나드니까, 똥이 나와서 그냥 죽겠어서 벌떡 일어나니까, 큰 작대기로다가 그냥 후려치며 “나는 먹고 된똥을 누는데 너는 어째서 먹고 설사만 하느냐.” 이거야. 물찌똥만을 누느냐 이거야. 응? 그렇게 해 가지고 지금 일본군이 쳐들어와서 난리를 쳐도 “이놈아, 설사하느라고 볼일을 못 보니, 된똥을 못 누니 어찌 네가 막대기 하나, 손가락 하나 쳐들 수가 있겠느냐? 술수만 배워 가지고는 절대 안 되느니라. 그건 급할 때 쓸 수 있는 거지, 진짜 우리가 도를 이루려면 그게 아니니라.” 하고선 그냥 어떻게나 작대기로 때리는지 설사 똥끝이 쏙 들어가 버렸어요, 그냥. 그래서 그날부터 된똥을 누기 시작했다는 얘깁니다. 허허허.
 

사명 대사가 그만큼 했으니 지금까지도 일본은 사명 대사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 때문에, 하다못해 우동 가게 앞에까지도 그 개집처럼 해 놓고 있죠. 얼마나 놀랐으면…. 허허허. 그래서 지금 하오리를 입은 것도 조선의 도포를 보고 그렇게 했고 참, 공깃밥 먹는 것도 우리 발우공양 하는 걸 보고, 또는 각반을 친 것도 우리 행전을 보고 그렇게 했고, 또 오조가사를 보고서는 총받이를 만들었죠, 여러 가지로 잘 생각해 보세요. 2차 대전 때 그 폭탄 하나로 인해서 일본이 사경을 헤맸던 그 이치를 생각해 볼 때에 꼭 주면 받고 받으면 줘야 하는 그런 이치가 있다는 거를, 일본이 그렇게 혼나고 난 뒤에야 깨달았죠. 그리고 그전에도 참 미국 사람한테 너무 까불다가 한 번 혼났고, 또 너무 까불다가 사명 대사한테 혼났고, 그래 가지고 아주 자지러져서 이제는 저 국수 가게까지도 갖다 놨습디다.


그러니 모든 게 자기가 행한 대로 받는 겁니다. 좋은 일을 했으면 좋은 결과가 오고, 언짢은 일을 했으면 언짢은 결과가 오는 거는 당연하겠죠. 그러니 우리가 이 공부 하면서 사명 대사도 서산 대사도 이 조국을 위해 애쓰신 걸 잘 생각해 봐야죠. 그분들은 일본 군사가 붙들러 오면 이쪽으로 가면서도 짚세기를 거꾸로 신고 갔단 말이야, 짚세기를. 거꾸로 신고 담을 뛰어넘어 가니까, 담을 뛰어넘어 온 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붙잡히질 않고 그렇게 우리 국민을 위해서 많은 애를 쓰시고 그랬는데,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점이 있는 것이 있어요.


내가 서른 안짝으로 나이가 적었을 때 얘깁니다. 가만히 생각을 하니까, 산으로 다니면서 이럭저럭 지내다가 뭘 생각을 했느냐 하면, 그전에도 얘기했지만 여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사정이 있는 이치가 있어서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걸 맹물에다 빨아서, 물이나 뭐 맹물이나 어디 그렇게 있습니까, 산에. 그런 것도 없는 데다 빨아서 입었으니깐 너무 추웠습니다. 내가 이런 소릴 지금 세 번째 하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먼발치에서 불이 깜박거렸습니다. 그래서 ‘서산 대사처럼 축지법을 했으면은 내가 이런 추위를 모면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다가 문득 무슨 생각을 했습니다. ‘아하! 그때는 시대가 시대니만큼 활이나 칼이나 창을 쓰던 시절이었지만, 만약에 지금 몸뚱이로다가 그렇게 해서 국민들을 혼란시키고 이런다면 그건 몹쓸 일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어찌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으랴. 몸뚱이가 가지 않고 내 이 춥다는 의식 자체를 빼서 좀 뜨듯하게 만들면 되겠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시대가 시대니만큼 태양이 크게 확산이 돼서 만약에 우리 국민을, 아니 국민보다도 이 지구의 주인들을 그냥 삽시간에 다 삼켜버린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우리의 생각에 의해서, 지구도 그렇지마는 저 태양도 우리 손아귀에 들어 있다고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뭐든지 마음대로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될 수 있는 그런 나툼. 그래서 내가 그런 말을 했죠? 세 번째도 죽어야 한다. 일체 나와 더불어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는 나툼을 알아야 하겠기에 또 죽어야 한다, 이런 말을 했죠.


그러니까 우리는 열심히 서로 문답식으로 차차 해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요 말을 왜 하느냐 하면은 지금은 내 영력으로써 이 몸속에 들어 있는 모든 생명들이 들고 나면서, 수십억 마리가 다 모습을 바꿔 가면서 급하면 급한 대로 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생각에. 그러면 멀고 가까움도 없는 겁니다. 한 찰나입니다. 저런 혹성세계에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문제가 있으면 벌써 은하계하고, 그 별성과 더불어 나와 둘이 아니라는 걸 아셔야 돼요. 그렇게 해서 모든 게 천지가 다 통신이 되고 천지를 다 볼 수 있고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시대에는 보이는 몸뚱이가 이리 가고 저리 가고 감추고 이래서 되는 게 아니고, 이 마음이 한생각을 해서 ‘내가 이거는 이렇게 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있다면은 그게 내가 돼서, 바로 나는 여기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도 내가 천백억도 될 수 있고…. 그, 말로 어떻게 합니까. 그 수효를. 그렇게 일체가 다 내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걸로 인해서 요 말씀을 드린 겁니다. 그리고 두뇌의 얘기도 해 드리고 그랬으니까, 이것이 우리가 다 갖추어 가지고 있다는 걸 아시면서 우리 오늘 질문으로 들어갑시다. 어때요? 질문하실 분, 어떠한 문제라도 질문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시더라도 또 때에 따라서는 모르는 분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1(남) 스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육신의 내가 내가 아니고 주인공이 진실한 나이며, 너와 나는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은 그 하나라는 부분에서 의심이 가는 거는 나의 주인공, 너의 주인공이 따로따로 있으며 그것을 관장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어서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이냐, 아니면 본래부터가 너와 내가 없이 태양같이 하나가 있어 가지고 그 전체를 관장하는 주인공이 구분이 없이 하나이냐? 거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큰스님 그러면 이거 한마디 묻겠소. 당신의 마음과 지금 말하는 그 이치가 있는 것도 당신이 하나가 있기 때문에 있죠? 그러면 지금 말씀하신 거 내놓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질문자1(남)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큰스님 그러니까 둘이면서도 둘이 아니죠?
질문자1(남) 네.


큰스님 네. 일체가 다 한마음에 벌어진 일이죠. 그런데 그 마음조차 없어요, 원칙으로는. 마음조차 없다는 것은, 아까 얘기했지. 만약에 시계추가 있는데, 시계가 있고 시계추가 있죠? 왔다 갔다 하니까 이쪽으로 갔다고 말할 수도 없고, 저쪽으로 갔다고 말할 수도 없죠. 고정되게 묶여 있지 않으니까. 그것이 당신이라면 어떻게 내놓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깨달아야 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비밀이라는 얘깁니다. 그래 죽어야 자기를 알죠. 자기를 버려야 자기를 얻죠. 자기를 버리지 않으면 자기를 얻지 못해요.
가정에서 살아나가는데 이런 예가 있어요. 나를 발견했는데 그것을 어느 절에 가서 큰스님한테 여쭤 보니까 “너는 귀신이 잘못 들렸으니까 시식을 해라.” 했다고 합디다. 그래도 낫지 않아서 왔다고 하는데, 아무리 영계가 들었다 하더라도 내가 그 사람을 받아들일 땐 그렇게 해 줘선 안 되죠. 아무리 영계가 들었다 하더라도 ‘그건 너 자신의 주인공이다.’ 이렇게 말을 해 줘야 되겠죠. 왜냐? 마음은 체가 없으니까 영계가 들어왔다 하더라도 들어온 사이가 없는 거니깐요.


그래서 이거를 어떻게 거기에 대치를 해 주느냐면 ‘그게 주인공에서 나오는 거니까, 어떠한 문제가 보인다 들린다 하더라도 전부 거기서 나오는 거니까 거기서 안 나오게 할 수도 있다.’는 그런 믿음을 가져라 하고 거기 맡겨 놓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점점점점, 더딘 사람도 있고 빠른 사람도 있고, 그렇게 해서 정신을 가다듬고 나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또 뭐를 했다? 무슨 호흡인가 뭐를 하다가 열이 머리로 올라와 가지곤, 선생님인데 학교에 나갈 수도 없다고 그러더군요.


그랬는데 그것을 가만히 생각해 볼 때에 모든 걸 놓지 않고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자기라는 걸 놓지 않고 항상 그 머리에 열을 올려 가지고 이거다 저거다 하고 그렇게 하니까. 이 몸뚱이는 호흡법을 해도 피를 모아서 사대(四大)로 탁 펼치는 반면에 그 몸의 피로한 거를 풀기 위해서인데, 그 몸을 풀기 위해서도 주인공에 맡겨 놓으면 다 여기 생명들이 운반해 줘서 건강해질 텐데 구태여 그걸 꿇어앉아서 말이야, 그 피를 모아서 하다가 잘못되면, 머리로 올라가면 그건 고칠 수 없는 거거든. 그러니까 그렇게 위험한 짓은 하지 말아야지. 그래서 나는 여러분이 위험치 않게…. 여러분이 위험하면 내가 위험해. 왜? 나니까. 하하.
 

그러니까 여러분이 아파 우는 걸 보면은 내가 아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픈 짓은 안 하죠. 그러니 여러분이 사고 나지 않도록 시키기 위해서 주인공을 믿고 ‘당신이 오다가 엎드러졌으면 당신이 일어나야지 누가 일으켜 주는 게 아니다. 전생에 내가 살면서 악업 선업을 지었다면 그 속에서 다 악업 선업이 나오는 건데, 나오게 되면 한번 거기다 다시 넣어라. 거기서 악업 선업도 지은 거니까 그 악업 선업을 무너뜨리는 것도 거기다.’ 하곤 탁 놓는다. 또 안되는 것도 거기서 되게 할 수도 있는 거니까 거기다가, 잘된다 하면 또 ‘잘됐으니까 감사하다. 우리가 지수화풍으로서 지수화풍을 먹고 사는데 이렇게 감사할 수가 있나?’ 하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하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질문하실 분 없습니까, 또?


그래서 오늘 마지막으로 우리가 한 번 죽고 두 번 죽고 세 번 죽어야 한다는 요 말 한마디를 이렇게 해 보죠. “나를 버려서 나를 얻는 소식이다.” 하고 탕! (주먹으로 법상을 치시며) 이렇게 칠 수 있는, 이런 겁니다. 또 “나와 더불어 일체를 버려서 일체를 얻는 소식이다.” 탕! 이렇게 치고. 이 소식이 이게 광대무변해서 말로는 할 수 없어서 이렇게 하는 거죠, 옛날 분들도. 그러면 또 “나와 더불어 나를 버려서 일체 나툼의 소식이니라.” 하는 것을 그 말로는 할 수 없으니까, 이게 탕! 이렇게.


여러분이 이 세 가지의 소식을 아신다면 나와 같이 동등하고 또는 일체와 같이 동등하고, 일체 우주 천하가 도량이고 일체 천하가 다 나 아님이 없고, 또 내 몸 아님이 없고, 참 내 아픔 아님이 없어서 정말 옛날에는 창, 칼, 활로 전쟁이 나도 그렇게 쓰던 건데, 우리가 이 도리를 알면은 그냥 보이지 않는 데에 까마귀 떼 가듯 해서 그 참, 의식 속에 들어가서 서로 해치지 않도록 돌볼 수 있는 그런 능력으로 중용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니 여러분이 이 공부를 잘해서 전체의 모든 남과 나를…, 나도 남도 다 둘이 아니에요. 그러니 일체를 구하려고 든다면은, 만날 싸움질들을 하니까 싸움하게 놔두었다가…. 재미로 보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거죠. 좀 재미로 봤다가 나중에 이게 큰 어른 싸움이 나겠구나 이러면 말려야죠. 그 말릴 때에 창이나 칼이나 활이나 이런 걸 가지고는 지금 세상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으로 육신통을 해서 술수를 안다 하더라도 그거는 소용이 없는 겁니다, 지금 세상에는. 시대적으로 볼 때.


그러니까 이 마음으로써 뭐든지 내가 될 수 있고, 나툴 수 있고, 또 내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과거를 알 수가 있고, 현실의 그 마음을 알 수가 있어서 내가 바로 결단적으로 누진(漏盡)을 통해서 대뇌를 통해서 내가 어떠한 거를 결정을 짓는다, 이럴 때 바로 우측, 그 바른쪽으로 나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결단을 하는 거는 우측에서 하고, 나와서 일을 하는 거는 바로 좌측에서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남을 해치려 드는 한 사람이 열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면 그 한 사람을 죽여도 살인이 되지 않는 거죠. 살생이 되지 않는다 이 소리예요. 이것도 자비니까. 그렇게 쓸 수 있는, 싸움을 막을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바로 여러분이 원심력에서 원통력을 굴릴 수 있는 데 있다는 얘기죠.


그러면 여러분이 가정에서도, 내 몸 이 혹성 안에서도, 내 이 혹성 안에 들어 있는 이 생명들도 마음대로 운전할 수가 있는 거죠. 그러니 뭐 걱정입니까? 야, 여기서 신호가 오면은, ‘내가 죽겠다.’그러걸랑은 ‘그럼, 그거 얼른 공장장한테 얘기해서 고쳐!’ 그러면 되지 않겠습니까. 응? 그걸 그냥 애를 쓰고 그러는 건 여러분이 여러분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살고 계신 것도 그 속에 악업 선업의 그 생명들이 돌아가면서, 육체로는 돌아가면서 그 악과 선을 자꾸 풍긴단 말입니다. 그래 가지고 보이지 않는 데서 풍기니까 보이는 데로 나올 수밖에. 그러니 여러분이 고(苦) 덩어리죠. 그래서 고 덩어리를 면하려면 그 고 덩어리가 나온 데다가 고 덩어리를 그냥 되놔라 이거야.
오늘은 이것으로써 마치고요, 요다음 법회 때는 질문을 하실 거를 간단하게 써 가지고 나오셔서 질문하세요. 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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