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로 읽는 古典 - 유불도 권선서 〈명심보감〉

14세기 유 불 도 사상 담아
조선대 유교 외 내용 삭제
‘부처님 말씀 중 가려뽑아’ 서문
소외된 이웃 배려, 헌신 봉사 강조

〈명심보감〉표지.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의미(좌) 옛 서당에서는 〈명심보감〉이 유교서적으로 익혀졌다.
 

〈명심보감>은 1368년에 편찬된 권선서로 유교·불교·도교 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인생의 철학과 행동의 규범에서 정치이념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상을 담고 있다. 도덕서로 중국·한국·일본·베트남 등의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널리 읽혀진 것은 물론 서양의 선교사들에게도 주목되었다. 그리고 1592년에는 동양의 한문 서적 중에서 최초로 서양어로 번역되어, 스페인·독일·프랑스 등의 서양인들에게 동양인의 심성을 이해할 수 있는 근원적인 서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현재 〈명심보감> 연구는 각국에서 독자적 방법으로 진행되면서 유불도의 3교합일 사상이 혼재된 서적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명심보감>의 불교사상에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명심보감>은 서문·발문 외에도 본문의 곳곳에 불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14세기 말에 편찬된 원본 〈명심보감>의 서문에는 ‘석존의 가르침을 모아 〈명심보감〉이라 한다’라고 불교적 요소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것을 확대 해석하면〈명심보감>이 불교를 중시했다고 할 수 있는 대목으로 〈명심보감>과 불교와의 관계를 파악하는 중요한 사항이다.

그러나 일찍이 서문의 일부 내용이 선교사들에 의해 삭제된 스페인 번역본처럼 본문의 불교적 내용도 삭제되었다. 또 유교국가인 조선에서는 불교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서문자체를 삭제하고 본문의 경우도 불교경전으로부터 인용한 내용을 완전히 삭제한 초략본 〈명심보감>(抄略本, 원본의 3분의 1의 분량)을 편찬 간행하였다.

이 초략본이 널리 유통되는 가운데 임진왜란 때 원본조차도 문화재 약탈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즉 불교적 내용이 포함된 원본이 조선에서 자취를 감추다보니 세월의 흐름 속에서 원본의 존재는 완전히 잊혀져버렸다. 그러한 연유로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초략본 〈명심보감>의 판본이 오랫동안 원본으로 둔갑되면서 지금까지 〈명심보감>과 불교와의 관련이 큰 조명을 받지 못하였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1454년 간행된 청주본이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소실되고 약 80년 후인 1637년에 간행된 초략본 〈명심보감>에는 출판 의도나 저자가 명시된 서문·발문 등의 기록이 없이 유교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출판되었다. 그 후에도 1844년(泰仁, 孫基祖)에 간행한 초략본과 1868년 서울 무교동에서 간행된 판본 역시 출판 의도나 저자를 확인할 수 있는 서문과 발문이 없이 간행되었다.

이와 같이 저자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1869년에 간행된 인흥서원 판본은 추씨 가문이 자신들의 선조로 고려시대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추적이 〈명심보감>을 편찬하였다고 저자명에 추적의 이름을 써넣었다. 이후 초략본(抄略本)에서는 ‘초(抄)’ 자를 빼고 완전 원본으로 탈바꿈하였으며 여기에 당시 명성이 높은 유학자들의 서문 발문을 붙여서 〈명심보감>의 유교 교육서 및 추적 편찬설을 확실히 하였다. 그러다가 이승만 대통령이 1959년 베트남 국빈방문 시, 베트남 공학회로부터 기증받은 〈명심보감>을 귀국 후 대통령의 명으로 한글 번역판이 편찬되었는데 그 때 편자를 추적으로 명시하면서 〈명심보감>의 추적편찬설이 고착하였다. 동시에 유교사상만을 발췌하여 편제한 초략본이 유교서적으로 정착하게 되면서 〈명심보감>의 불교적 내용은 잊혀 지게 된 것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에서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조선의 청주본을 비롯하여 중국의 명간본·청간본, 일본의 화각본에 있는 ‘불심(佛心)·번뇌(煩惱)·계율(戒律)·참선(參禪)·인연(因緣)·무상(無常)·중생구제(衆生救濟)’와 같은 불교적 특성이 있는 내용을 모두 삭제해버렸다. 이는 중국·일본이 〈명심보감>과 더불어 다른 권선서인 〈태상감응편>·〈음즐록>·〈공과격>을 함께 수용한 것, 또 중국·일본이 주자학과 양명학을 필요에 따라 동등하게 수용한 것과 달리 조선에서는 주자학만이 존중되면서 중시된 것으로 중요한 차이점이다.

다음에서는 1454년 조선의 청주에서 간행된 원본 〈명심보감> 서문과 발문에 보이는 불교와 관련된 내용을 발췌하여 〈명심보감>과 불교사상과의 관계를 확인하고자 한다. 청주본〈명심보감> 서문에 ‘이런 까닭으로 선현과 이미 풍속에 널리 알려진 여러 책에서 요긴한 말과 석존의 가르침 중에서 좋은 말을 모아서 한 권으로 엮어 명심보감이라고 하였다.(是故集其先輩, 已知通俗諸書之要語, 慈尊訓誨之善言, 以爲一譜, 謂之明心寶鑑)’는 말이 있다. 곧 ‘석존의 가르침 중에서’라는 이 한마디는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불교적 내용을 원 편찬자인 중국의 범입본(范立本)이 1393년에 작성한 서문을 비롯하여 본문의 ‘계선편’·‘천명편’·‘순명편’·‘안분편’·‘존심편’·‘계성편’·‘성심편’·‘언어편’에 ‘방편(方便)과 선행·인과응보·지족안분’ 등으로 순화돼 실려 있다. 특히 부처님의 자비와 공덕을 찬양하는 원색적인 불교 색을 풍기는 불심·작불·염불·예불·불도·불경·성불·간경·경전·무상·인연·삼악·부생·참선·번뇌·윤회·보시·계율·장경(藏經)·제전화상·도청화상·중생제도(衆生濟度) 등의 용어들은 여과 없이 빈번하게 거론된다. 이러한 불교사상이 포함된 내용은 1454년 조선의 ‘청주본’을 시작으로 그 후에 간행된 중국의 ‘명간본’·‘청간본’, 일본의 ‘화각본’에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명심보감> 판본에는 아쉽게도 불교적 용어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조선시대 중기이후 원본이 자취를 감추고 난 후 간행된 초략본 〈명심보감>에서 불교적인 내용을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명심보감>의 유교화를 시도한 결과이다.

이하에서는 〈명심보감>의 편찬자 ‘범입본’이 1393년에 작성한 글로 판단되는, 현존하는 청주본 서문에 보이는 불교관련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청주본 〈명심보감> 서두에서 인용한 〈태상감응편>의 ‘착한 사람은 선을 말하고, 선을 보고, 선을 행해서 하루에 세 가지 선을 행하나니 삼 년이면 하늘이 반드시 복을 내리고, 나쁜 사람은 악을 말하고, 악한 것을 보며, 악한 것을 행하여 하루에 세 가지 악을 행하나니 삼 년이면 하늘이 반드시 이에 화를 내린다.(伏覩太上感應篇曰, 故吉人語善視善行善, 一日有三善, 三年天必降之福. 凶人語惡視惡行惡, 一日有三惡, 三年天必降之禍)’는 인간의 선악행위에는 그에 상응하는 응보가 있다는 응보관으로 유가·도가·불가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사상이다. 이중 불가에서의 상벌은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 것처럼 전생(前生) 금생(今生) 내생(來生)의 삼세윤회가 반드시 있다. 이 삼세윤회는 인연업과로 구성된 필연적 연기 법칙에 따르기 때문에 심은 대로 거두고 지은대로 받는 것으로 좋은 씨앗을 뿌려서 잘 경작하면 좋은 수확을 할 것이고 나쁜 씨앗을 뿌리면 나쁜 수확을 하는 것이다.

불가의 인과법칙에 의한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는 사바세계의 인과로 세상의 어떤 법칙보다도 엄격하고 오차가 없이 정확하다. 한번 지은 업인(業因)은 곧바로 그 과보를 받지 않더라도 돌고 돌다가 지은 인연이 모여 만날 때 언젠가는 받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백겁 천겁이 지나더라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아니하여 인연이 만나는 날 과보를 다시 받는다.(?使百千劫, 所作業不亡, 因緣會遇時, 果報還自受). 과보를 받는 시기도 업보에 따라서 빨리 받는 것도 있고 늦게 받는 것이 있는데 현세에 받는 것을 순현보(順現報)라 하고, 내세에 받는 것을 순생보(順生報)라 하고, 그보다 더 나중에 받는 것을 순후보(順後報)라 한다. 즉 자신이 행한 악행의 죄는 언젠가 반드시 받게 되므로 세상 사람들이 이 인과의 법칙만 잘 이해하고 실천하더라도 세상은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옛 서당에서는 〈명심보감〉이 유교서적으로 익혀졌다. 하지만 본래 〈명심보감〉은 유불도를 회통한 권선서 였다.
서문의 마지막 대목은 불교사상의 기미가 물씬 풍기는 곳으로, ‘자애 깊은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을 만들어 이것의 이름을 〈명심보감>’이라고 하였다. 또 “모든 악을 짓지 말며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는데 그 뜻을 머물게 하라(諸惡莫作, 衆善奉行, 留於其意)”라고 하였다.

①자존(慈尊), 즉 “석가의 가르침 중에 좋은 말을 모아서 한 권으로 엮어 ‘명심보감’이라고 하였다”의 석가모니 가르침의 불교를 명확하게 들어내는 것 외에도 ②“〈명심보감(明心寶鑑)>이라 한다”의 ‘명심(明心)’은 불교에서 즐겨 쓰는 용어인 마음을 밝힌다는 의미이다. 마음이 곧 부처(心卽佛)로 마음을 밝히면 본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명심보감(明心寶鑑)>의 ‘보감(寶鑑)’은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의미로 불교에서 자기 성찰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특히 불교의 선사(禪師)들이 마음을 거울에 비유한 이유는 거울은 사물이 다가 오면 비추고 멀어져 가면 비추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선한 것이라도 붙들어두지 않고 또 아무리 추하고 악한 것이라도 밀어내지 않는다. 선악미추에 관계없이 그대로 비추는 거울은 어떤 분별이나 집착함이 없는 불교적 사상을 잘 비유한다. 그리고 ③말미의 모든 악을 짓지 말며,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는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이라는 말은 〈감응편>과〈음즐문>에 인용되고, ‘칠불통계(七佛通戒)’에도 있는 내용으로 불교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칠불통계’에 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는 과거 일곱 부처님이 모두 경계한 게송이다. 과거칠불은 ①비바시불 ②시기불 ③비사부불 ④구류손불 ⑤구나함모니불 ⑥가섭불 ⑦석가모니불이다. 따라서 칠불통계게란 이러한 과거 일곱 부처님이 한 분도 빠짐없이 공통으로 금계(禁戒)한 게송이라는 뜻이다.

과거칠불의 공통적인 가르침으로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불교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정의로 흔히 “모든 악은 저지르지 말고,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 이것이 곧 모든 불교의 가르침이다(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라는 게송이다. 이 게송에는 현실적 질서와 윤리를 중시하면서도 생로병사, 즉 죽음의 실존적 한계상황으로부터 우리들 중생을 해탈시켜 구제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 불교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이는 이미 오래 전에 생활의 실천철학으로 친숙하게 정착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1454년에 청주본 〈명심보감>이 간행될 당시에 조선의 청주에서 유학교수관 유득화(庾得和)가 기록한 발문을 보자.

“〈명심보감>이라는 서적은 경전을 널리 상고하고 일상에 요긴한 말을 모아 나누어 20편으로 하였다. 이는 모두가 인륜에 절실한 것이며 일용에 그것이 필요하며 우선 사람의 마음을 밝히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後略) 경태 5년 갑술 11월 초하룻날에 봉직랑 청주유학 교수관 유득화는 삼가 발문을 쓴다.(寶鑑之爲書, 博考經傳, 采척要語, 分爲二十篇. 是皆切於人倫, 日用而其要, 不過先明諸心而已. (後略) 景泰五年甲戌十一月初吉, 奉直卽淸州儒?, 敎授官, 庾得和, 謹跋.)”의 ‘경전을 널리 상고하고 일상에 요긴한 말을 모아 나누어 20편으로 하였다.’에서 경전이라는 용어는 사실상 불교 경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상을 정리하면, ①서문에서 편찬자 범입본(范立本)이 석존의 가르침을 모아 〈명심보감>이라 한다고 했듯이 ‘명심(明心)’과 ‘보감(寶鑑)’이라는 불교용어와 ‘선인(善因)·선과(善果)’의 불교의 응보관을 기본으로 모든 악을 징계하고 선을 행하는 불교사상을 한마디로 요약 표현한 ‘제악막작 중선봉행’의 불교의 가르침과 불교용어를 통해 〈명심보감>이 불교의 핵심사상을 중시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불경과 곧바로 연결시키기는 어렵겠지만 당시 아직 유교가 국가이념으로 정착되지 못한 시기에 발문의 ‘경전’이란 용어와 본문의 ‘불심·작불·염불·예불·불도·불경·성불·경전·무상·인연·참선·번뇌·윤회·보시·계율 등의 원색적인 용어로

부터 이 서적이 유교와 도교뿐만 아니라 불교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 서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명심보감〉의 서문과 발문에서 확인한 것처럼 인간행위의 선악결과에 따른 인과사상의 중요한 요소를 발췌하면서 불교사상의 기본인 모든 악을 짓지 말며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는 불교의 핵심사상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환과고독(鰥寡孤獨)한 소외된 이웃을 배려하고 도우는 넉넉한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였을 때, 그 도움을 받은 이웃도 자신을 돌보아 준 따뜻한 사회에 감사하며 자신과 자신이 소속된 사회를 위해 헌신 봉사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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