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덕 의지 말고 나와 남 위한 기도를”
“조상 덕 의지 말고 나와 남 위한 기도를”
  • 박아름 수습기자
  • 승인 2015.04.1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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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법사 지장천일기도 법문_심산 스님(홍법사 주지)
▲ 심산 스님은 … 1981년 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동국대 선학과와 불교문화대학원을 졸업했다. 대성사, 통도사 부산포교원 주지를 역임하고 현재 한나래문화재단 이사장과 불심홍법원 이사, 동련 이사장 등 소임을 맡아 포교 활성화를 이끌고 있다. 조계종 포교원 제10회 포교대상 원력상, 2002년 불이상, 2008년 행정안전부장관 표장 등을 받았다.

천도재(薦度齋)는 망자(亡者)의 넋을 기리며 극락정토로 인도하기 위해 지내는 불가의 의식이다. 일반적으로 49재가 가장 대표적이며 이밖에도 100일재·소상·대상 등으로 치러진다. 심산 스님은 4월 6일 지장재일(음력 2월18일)을 맞아 홍법사 대광명전에서 지장천일기도 입재식 법문을 설했다. 심산 스님은 “천도재를 지내는 의미는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마음 뿐 아니라 재를 지내는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라며 “의식을 올리는 사람 또한 천도재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법문의 요지다.

수륙·영산재·49재 등 천도의식은
중생의 이고득락·해탈 위한 행위
불교 목표는 살아생전 열반 얻는 것
악업·서운한 관계 소멸하고
본래 청정 모습 회복하면 열반 이르러
지혜로워야 극락에 갈 수 있어
지혜란 순간의 판단에서
가장 보편적 가치를 찾는 것
천도의식은 영가에 부처님법 설해
보편적 가치 알려 무지 일깨워줘

망자를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천도재
지난달 지장천일기도 회향에 이어 오늘 새로운 지장천일기도 입재를 맞았습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천도재는 영가를 이 사바세계의 고통이 아닌 즐거움으로 가득 찬 극락정토로 인도하기 위한 시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천도의식 가운데는 수륙재뿐만 아니라 49재, 영산재 등도 포함을 합니다. 그 재들이 가진 공통의 뜻은 이고득락(離苦得樂), 모든 중생이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어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의식을 베푸는 행위입니다.
얻고자 하는 즐거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법에 의한 즐거움, 즉 진리에 의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 재를 지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도재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과일이나 떡, 초와 향 같은 재물을 많이 차리는 물질적인 천도가 아니라 영가 앞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설하고 그 진리에 의해 영가가 행복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살아있는 후손 제자들의 입장에서 천도재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망자의 원한관계나 모든 악업 등을 소멸하고 청정한 마음을 회복해서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것이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이 천도재를 하는 이유겠지요. 다시 말하자면 영가가 지었던 모든 악업과 업장을 소멸할 수 있도록 하고, 또 혹은 살아생전 지었던 인간관계 속에서의 모든 원한이나 불편한 마음을 다 접고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회복하도록 해서 극락왕생으로 인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돌아가신 분들을 일컬을 때 환지본처(還至本處)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본래의 그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또 반대로 극락에 머물지 말고 속환사바(速還娑婆)하라는 말도 있습니다. 속히 사바세계로 돌아와 중생들의 마음을 다스려 달라는 말이지요. 우리 삶은 사실 때 하나 묻지 않고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살아갈수록 점점 더 많은 어려움에 휩싸이고 힘든 일을 겪게 되는 것이 인간의 삶이지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업을 짓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본래의 청정한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인 환지본처의 숨은 뜻은 ‘죽음으로 가는 것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 세상의 시기질투와 시비선악의 모든 고리를 끊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열반에 이르렀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살아있는 동안 열반을 얻는 것입니다. 모든 선악, 시비 모든 관계의 복잡함을 끊는 것을 열반이라고 하는데 중생의 삶 자체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시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나 스스로의 내면에서도 선악 시비가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살아서 그런 마음을 모두 끊고 그저 삶에 대해 감사하게만 생각하면 되는데 그것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열반의 단계에 이르기 위해선 모든 의식작용, 안이비설신 모든 감각이 멈춰버려야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모든 악업, 서운한 관계 등을 소멸하고 본래 청정의 모습을 회복하는 그 계기의 시간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극락도 지옥이 될 수 있다
돌아가신 영가를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개인마다 이런저런 아쉬움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미안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천도재는 그 마음들을 모두 접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49재를 지낼 때 영상편지를 영전에 보내지요. 그것을 보면 누구든지 간에 돌아가신 분 앞에서는 서운함 아쉬움 애석함 섭섭함 등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을 갖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천도재에서 죄의식을 가지기도 합니다. 천도재는 어떤 조건, 어떤 형태로든 그 모든 것을 다 소멸을 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살아남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망자가 지었던 모든 악업과 원한을 소멸하고 청정한 마음을 회복해 극락으로 왕생하십시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망자의 입장에서 천도재의 의미를 살펴보면 불교에서 우리의 삶을 표현할 때 사유(四有) 네 가지가 있다 말합니다. 생유(生有), 본유(本有), 사유(死有), 중유(中有)가 바로 그것입니다. 생유(生有)는 태어남을 의미하고, 본유(本有)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유(死有) 죽을 때, 중유(中有)는 죽어서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시간을 말합니다. 태어난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이지요. 생유와 사유는 본유나 중유와 비교해서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순간은 예상치 못한 찰나이거나 예상한 짧은 순간인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러나 본유(本有)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시간으로 사람마다 모두 다른 모습과 시간을 보냅니다. 업에 따라 그 모습이 다양합니다. 그런데 사는 동안만이 아니라 죽은 뒤 다시 태어나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 다 다릅니다. 불가에서는 보편적으로 49일 만에 새로운 몸을 받는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어떤 경우에는 49일이 되지 않았는데도 다른 몸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이가 살아생전 업을 잘 지으면 굳이 49일이 지나지 않아도 바로 극락세계에서 왕생을 할 수 있는 것이요, 49일이 지나고도 새로운 몸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중음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음신이란 이승에도 저승에도 안착을 하지 못하고 떠드는 영혼을 말합니다. 또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 새로운 몸을 얻을 때까지 49일의 기간을 중유(中有)라고 하는데 이 중유의 시간에는 영혼이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전에 보다 훨씬 더 똑똑한 머리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영가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합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을 때 왜 영가보다 덜 똑똑한가 하면 어떤 사람은 눈이 침침해서 글이 안보이고, 귀가 멀어서 안들리는 등 여러 가지 신체적 조건에 의지하게 되면 그 능력의 한계가 전부 다르기 때문에 각 사람마다 각기 다른 배움의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망자를 위한 천도재의 의미가 있습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을 때는 두뇌, 청력, 감각 등의 한계 때문에 잘 모르던 사람도 영가가 되고 나면 모든 것에 전부 통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때에 영가에게 진리를 설해 준다고 하면 바로 지혜를 터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천도의식을 하는 동안 우리가 외는 염불을 영가가 듣는 순간 이해하고 지혜광명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영가가 육신을 가진 인간보다 더 똑똑한 것은 맞지만 사람도 똑똑하고 덜 똑똑한 사람이 있듯이 영가 중에서도 똑똑한 영가가 있고 덜 똑똑한 영가가 있습니다. 탁한 영혼, 맑은 영혼들이 다 각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돌아가셨다고 해서 다 완전한 청정으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살아생전 어떤 업을 짓느냐에 따라서 업의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 영가가 돼서도 지혜를 깨달음에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생을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마음씀씀이가 저 세상의 업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생에서 업을 잘 쌓아야 하며, 놓을 것은 놓고 가야 다음 생에서도 업과 습에 의해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극락세계가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해도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해야 얻을 수 있는 것 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워야만 극락에 갈 수 있습니다. 똑똑하다, 즉 지혜롭다는 이 의미는 단순히 암기력이 좋거나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판단에서 가장 보편적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내 욕심을 기준으로 한 가치가 아닌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공통된 가치를 아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요즘 핸드폰은 날씨, 검색, 사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만능 스마트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핸드폰이 만능이라고 해도 핸드폰을 조작할 수 있을 때 만능인 것이지 핸드폰이 만능이라고 해도 내가 어떻게 조작하는지 모른다면 나와 상관없는 것입니다. 이 말은 즉, 극락세계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극락세계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내가 알 때 극락이 극락이 되는 것이지 내가 모르면 극락도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도의식은 영가에게 부처님 법을 설해서 보편적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그동안 자신이 사리사욕에 잡혀 살았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상근기(上根機)로 천도재를 행하라
요즘은 일반 사람들은 천도의식에 대해서 간혹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들에 우리는 현혹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천도의식을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첫째는 영가가 지었던 모든 악업이나 영가와 나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감정들을 소멸하고 영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기원하는 것이며, 둘째는 생전보다도 훨씬 똑똑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경전을 설했을 때 더욱 빨리 지혜를 얻게 되니, 그 지혜를 얻음으로써 영가를 극락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천도재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아주 현실적입니다. 바로 천도재를 모시는 이유가 돌아가신 영가를 위한 것이 아닌 살아있는 나를 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지장경>에서도 이르길 제사를 지내는 공덕의 7분의 1은 영가에게 가지만 7분의 6은 제를 지내는 사람에게 공덕이 온다고 합니다. 그러니 영가의 존재 유무를 막론하고 내가 내 마음의 조상님을 생각하고 천도재를 지내는 것은 사실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마음속에 죽은 사람을 품고 살아갑니다.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형제 친구 모든 사람들을 잊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갑니다. 그 마음을 살펴보면 생전에 함께 지낸 인연이 있는 사람의 죽음이 아쉽고 애석하며 때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영가를 보낼 때 이러한 마음도 모두 다 보내드려야 합니다. 내 마음 속에서 그분들의 대한 감정도 모두 보냈을 때 나와 영가가 모두 함께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도재를 지내며 영가를 위해서 불경을 외면 그것은 나의 공부입니다. 그 분을 생각하며 부처님 공부를 하는 것이 내 삶의 큰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은 천도재를 지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합니다. 영전 앞에서 내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를 반성하며 나를 성찰하게 됩니다. 그러니 천도의식은 영가를 위하기보다 영전 앞에서 그분의 모습을 거울삼아 내 삶을 돌아보고 그분이 보신다면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살겠다는 내 마음의 상징적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니 한 달에 한번 지장재일을 잊지 않고 절에 와서 영가를 기리는 것은 자기 자신을 다독이고 견고하게 돌아보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도재를 지내는 사람의 모습은 근기에 따라서 다릅니다. 천도재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행하는 것은 상근기(上根機)입니다. 중근기(中根機)는 내 도리로써 한다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근기(下根機)는 조상에게 그저 한탄하는 마음으로 재를 올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자신이 힘든 상황에 놓여있을 때 이유도 없이 조상님에게 의지해서 덕만 보려고 하는 마음이 하근기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조상과 내가 함께 행복에 이를 수 있도록 지혜를 얻는다는 마음인 상근기로서 천일기도에 임해야 합니다.

천도재는 망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빨리 얻어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왕생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의식입니다. 동시에 나의 지혜도 함께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입재한 여러분은 3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재에 임해 영가와 내가 함께 천도에 이를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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