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26〉 주왕산 대전사 보광전

보광전은 화엄경 설한 보광법당
내부벽화 화엄경 요체 두루압축
꽃으로 장엄한 광대한 화엄세계
백학,청학,황학,홍학의 선학집합

보광전 천정 어칸 및 좌우협칸의 문양 전체를 이어 붙였다. 넝쿨문과 선학, 육엽연화문을 대칭, 자기복제, 순환을 통해 연기법계에 충만한 영원한 생명력을 표현하고 있다.

〈화엄경〉의 진리를 담은 법당

청송 대전사는 주왕산(721m)의 상징인 기암(旗岩)과 장군봉을 배경으로 자리잡았다. 진입동선에서 바라보면 기암과 장군봉이 좌청룡 우백호의 기세로 신령한 기운을 뻗친다. 주왕산의 암봉을 염두에 두고 거대한 스케일로 경영한 뜻이 읽혀진다. 땅 속에서 우뚝 솟아난듯한 암봉 그 자체가 사천왕이고, 금강역사의 형국이다. 절이 들어서기에 훌륭한 입지다.

들어선 절 이름도 대전사(大典寺)다. 큰 법전의 절인데, 여기서 큰 법전은 〈화엄경〉이다. 대전사의 법당은 보광전(普光殿)이다. ‘보광(普光)’은 드넓은 빛이다. 〈보광전 등촉게창설기〉 현판 내용중에 ‘보광’을 보다 구체화한 표현이 있는 바, ‘보조진광(普照眞光)’이라 서술하고 있다. 광대무변으로 비추이는 진리의 빛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드넓은 빛 ‘보광’은 진리 그 자체의 법신이신 비로자나불을 상징한다. 그런데 〈화엄경〉에서 보광전은 ‘보광명전(普光明殿)’, 혹은 ‘보광법당’으로 표현하고 있다.

80권본 〈화엄경〉은 7처(處) 9회(會) 39품(品)으로 구성되어 있다. ‘7처 9회’란 화엄경 진리의 설법이 모두 일곱 곳에서 아홉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의미이다. 1회 설법은 석가모니부처께서 정각을 이루신 직후 삼매에 들어 마가다국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행하신 설법이다.

2회, 7회, 8회의 설법은 마가다국 보리수 나무에서 멀지않은 보광법당에서 행해졌다. 즉 대전사 보광전은 화엄경의 진리가 깃든 법당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법당 좌우벽면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벽화를 그려 둔 뜻이 그제서야 풀린다. 〈화엄경〉에서 보살행을 설하는 설법주체, 곧 설주(設主)는 보살이다. 화엄경의 전체 39품 중 〈아승지품〉과 〈여래수호광명공덕품〉 두 품만 부처께서 직접 설하실 뿐이다. 나머지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여러 보살들이 부처님의 위신력과 광명으로 갖가지 삼매에 들어가고, 그 삼매 안에서 지혜를 얻어 설하는 방식이다.

‘보광전’이라는 불전명과 법당 안의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의 벽화를 통해 우리는 벌써 보광전이 갖추고 있는 화엄세계를 인식할 수 있으며, 그 단청과 벽화, 건축의장 등 장엄세계는 본질적으로 화엄경의 화장세계(華藏世界)임을 알 수 있다.

우물반자에 베푼 범자연화문과 선학문양 세부. 선학은 백학, 청학. 황학, 홍학 등으로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구현했고, 범자연화문은 불보살의 연화장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좌우벽면에 문수,보현,관음보살 벽화

보광전은 17세기 건축이다. 1976년 보광전 중수과정에서 ‘대전사 법당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상량문 기록에 의하면 강희 11년(1672년)의 건축으로, 340여년의 내력을 지닌 셈이다. 법당내부 곳곳에 고전의 빛이 배여 있다. 천정에 연등 하나 달려있지 않아 법당장엄의 아름다운 진면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내부공간은 건축의 뼈대와 가구, 회화, 조형, 단청이 어우러진 미(美)의 세계이며, 예경의 공간이며, 적멸이 흐르는 선(禪)의 세계이다. 고색의 색감이 묻어나는 단청의 빛에 시간의 퇴적층이 켜켜이 쌓였다. 내부공간은 황톳빛 서정으로 따스한 온기가 흐르고, 차분하며 고요한 적밀(寂密)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천정과 벽면은 온통 불보살의 화엄세계다.

본질적으로 화엄경의 교설(敎說)은 깨달음의 지혜와 끊임없는 자비의 실천 속에서 중생을 구제해나가는 자비이타행(慈悲利他行)의 교설이다. 그래서 화엄경의 중심에 문수보살이 있고, 관세음보살이 있으며, 보다 더 중심에 보현행원의 보현보살이 있는 것이다. 보광전 내부 좌우벽면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수월관음벽화가 베풀어져 있다.

향우 측에는 좌청룡의 청색으로 사자 탄 문수보살을, 향좌측에는 우백호의 흰색으로 코끼리 탄 보현보살과 선재동자가 법을 구하고 있는 수월관음도를 그려 놓았다. 좌우벽면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대대적(對待的)인 배치양식을 취하는데,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음(陰)과 양(陽)처럼 통일적인 전체의 합일이다. 서양철학에서, 특히 칸트철학은 선험적인 도덕률을 바탕으로 실천이성을 강조하였다면, 불교철학은 반야의 지혜를 갖춘 자비이타행의 보현행원의 실천이다.

서양철학이 존재론적이라면, 불교는 관계론적인 연기관이다. 세 보살은 각각 부처님의 지혜와 실천, 대자대비를 표징하는 대승불교사상의 꽃이며, 화엄경에서 일깨우는 여래출현을 위한 보살행의 중심적인 보살임에 분명하다. 특히 보현보살은 80화엄경의 7처 9회 39품 법회에서 처음과 끝을 포함해서 네 차례나 설법의 주체가 되는 화엄경의 실질적인 설주이시다, 보현보살의 보현행원과 설법은 오직 침묵한 채로 광명만을 놓으신 비로자나불을 대신한 것으로, 본질적으로 비로자나불의 위신력과 가피에 의한 대행(大行)이 아닐 수 없다.

화엄경에서 보현보살은 비로자나 법신불의 원력에 의한 전법륜의 보살이신 까닭이다. 물론 수월관음벽화는 〈화엄경〉의 마지막 39품인 ‘입법계품’의 집약적이며 극적인 순간을 그린 장면이니, 보광전 벽화 속에 탁월한 문학적 서사성을 지닌 〈화엄경〉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두루 압축하고 있는 셈이다.

좌우벽면과 닫집내부 등에 그린 별지화. 보현, 관음, 문수보살을 비롯해서 기린과 용, 수박, 가지 등 벽화의 소재가 다채롭고 풍부하다.
용, 기린, 사자 벽화, 신성한 기운 표현

진리를 설하는 공간은 자뭇 엄숙하고 거룩하며 신성하기 마련이다. 동양회화의 근본정신은 ‘회사후소(繪事後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바탕을 희게 만든 토대 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는 신념이다. 바탕인 질(質) 속에서 무늬인 문(文)이 입혀진다. ‘문질빈빈(文質彬彬)’의 회화정신이다. 형체를 그리되 정신과 생명력, 기운을 드러내는 것이 동양회화의 핵심요체다.

보광전 내부 대들보며, 창방 계풍, 포벽, 보아지, 동자주 등에 베푼 용, 기린, 사자, 코끼리, 천마, 넝쿨식물문 등은 바로 내부공간 기저에 흐르는 신성한 기운과 거룩한 정신의 표상들이다. 기운들은 역동적인 형태를 취하며 기운생동한다. 사자도와 기린, 대들보의 노란 고리문양 등은 통도사 영산전이나 대웅전 벽화기법과 매우 닮아 주의를 끈다. 특히 수월관음도 위 창방 계풍에 그린 수박과 가지모양의 공양벽화는 민화풍 소재장엄을 취하고 있어 이채로움을 더한다.

보광전 천정은 전통 목조건축의 가구체계를 절묘하게 경영해서 중중무진의 화엄세계를 기막히게 구현했다. 화엄세계는 광대무변이며 중첩적인 중중의 세계다. 천정구조 및 형식을 보면, 천정의 가장 낮은 곳인 앞뒤 바깥쪽 가장자리는 널판을 이은 물매 작은 빗반자이고, 세 칸의 중앙부는 한 층급 높이에 규칙적인 정형을 갖춘 커다란 우물천정을 펼쳤다.

전통사찰 천정의 일반적인 중중무진의 구조다. 그 구조성 위에 경전에서 표현하는 불보살의 화엄세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연꽃 위에 부처님이 앉아 계시고, 그 부처님의 시방(十方) 연꽃마다에 부처님이 계시면서, 또 그 한 분 한 분의 부처님의 시방마다 부처님이 거듭 앉아 계시는 삼천대천세계다. 그것이 곧 꽃으로 장엄한 광대무변의 화엄세계다. 절집천정의 우물반자 행(行)과 열(列)속에 범자연화문의 반복과 확산을 통해 영원한 대생명력의 세계인 화엄의 연기법계를 조형언어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천정 빗반자에 베푼 대단히 심미적인 넝쿨문양과 좌우벽면의 보살벽화.
천정은 사방연속 범자연화문의 장(場)

천정 빗반자엔 S자로 뻗어나가는 대단히 심미적인 넝쿨문양을 베풀어 놓았다. 순환과 반복, 자기복제 방식으로 전개하여 영원한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빗반자 넝쿨문양의 수류부채는 단청의 상록하단의 원리처럼 잎은 초록, 꽃엔 육색을 입혀 대비의 효과에 의한 선명성을 부각했다. 잎에서 붉은 새싹의 촉이 나와 가이없는 생명의 불멸을 드러냈다. 검은 바탕은 본질적으로 현묘한 태허(太虛)의 천공이니, 빗반자의 넝쿨문양은 결국 우주법계에 충만한 대생명력의 기운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물천정은 선학의 상징을 통한 깨달음의 세계와 범자연화문의 불보살의 세계다. 선학의 영역은 세상의 모든 선학을 구현한 집합체다. 백학, 청학, 황학, 홍학을 망라했다. 선학은 검은 미명의 어둠에서 별빛처럼 돋아나 돈오의 깨달음으로 자유의 경지를 취한다. 몇몇 선학은 여의보주를 취하듯 깨달음의 열매를 물고 있다. 열매는 궁구한 반야의 증득일 터인데, 검은 천공의 바탕엔 돈오의 꽃들이 폭죽처럼 미어터지고 있다. 환희지의 순간들이다. 중앙 세 칸의 우물천정은 범자연화문의 사방연속 필드(field:場)다.

검은 천공의 바탕에서 스멀거리는 듯한 기의 흐름들이 뾰족뾰족 뻗치고 마침내 법성의 연화로 미어터진다. 연화의 본성은 법신의 진리이자, 대자대비다. 연화문의 한가운데는 ‘卍’자, 혹은 범자 ‘옴’의 고도의 집약적 상징을 입혔다. 卍자는 석가여래를 상징하고, 범자 ‘옴’은 밀교에서 대일여래, 곧 비로자나불을 상징한다. 협칸 연화문의 여섯 꽃잎엔 ‘옴마니파드메훔’의 육자진언을 모셨다.

범자 낱낱이 반야의 진리와 자비를 갖춘 불보살의 문자불이다. 천정에 중중무진 연기법계의 화엄세계를 구현한 것이다. 스스로의 원력에 의해 화엄의 꽃은 광명으로 빛나고, 순환하며, 운동한다. 무릇 조화로움의 작용은 무위로 행해지는 것이며, 생명력의 기운을 만드는 일은 홀로 움직이는 법이다. 그 모두 여래출현을 위한 보현행의 실천이 꽃으로 피어나는 감동적인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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