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화엄산림대법회 혜남 스님(통도사 율주)

▲ 혜남 스님은 … 1963년 창녕 관룡사에서 득도, 67년 부산 대각 사에서 사미계를 받고 70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77년 대흥사 강원에서 운기 스님을 강사로 전강을 받은 후 1987년 일본으로 건너가 대정대학에서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국대 강사와 중앙승가대 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 제2대 조계종립 승가대학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영축총림 통도사 율주다. 사진=통도사 제공

국내 최대 규모의 대중법회인 화엄산림대법회가 양산 통도사(주지 원산)에서 구랍 22일 입재를 시작으로 1월 19일까지 열린다.
이 가운데 통도사 율주 혜남 스님은 구랍 25일 ‘세계성취품과 화장세계품’을 주제로 법문을 펼쳤다. 혜남 스님은 법문을 통해 “보현보살의 광대행원(廣大行願)을 익히고자 한다면 10가지 보현행원을 세워야 한다”면서 지혜를 갖추고 행(行)을 실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법문의 요지다. 문수보살의 지혜와 총명으로


의심 없이 실천하는 보현행 펼치고
공경·칭찬·참회 등 10가지 행하며
佛法대로 살면 열반·해탈 경지 이르러

 

보살행을 많이 하면 좋은 세계에 태어 날 수 있는데, 그 보살행의 내용을 대표적으로 담은 것이 보현행원품입니다.
〈화엄경〉은 3명의 성인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주된 주인공은 비로자나 부처님, 좌우 부처는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입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법신본불로서 입을 열어 설법하는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39품 화엄경 중 두 품은 부처님이 말씀하시고 나머지는 보살님이 법문하는데 그중에 보현보살이 가장 많은 법문을 하고, 그 다음 문수보살이 법문을 합니다.

보현은 행을 표현하고 문수는 지혜를 표현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자면 지혜가 있어야 하죠. 총명하다는 것은 귀 밝을 총(聰), 눈 밝을 명(明), 남의 말을 잘 듣고 잘 보아야지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잘 못 듣고 잘 못 보고 그렇게 남에게 전달해서는 안 됩니다. 눈이 밝고 귀가 밝으면 보고 들은 대로 정확하게 전달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총명한 사람입니다. 문수의 총명과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 지혜를 바탕으로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관념에 불과하며 성취 되는 것이 없습니다.
‘다음에 하자’ 그렇게 하면 언제 할지 모릅니다. 제일 고약한 말이 내일 한다는 말입니다. 계속 미루다가 죽을 때까지 못하는 거예요. 생각나면 실천해야 합니다. 문수의 지혜와 보현의 행원으로 실천하면 그게 바로 비로자나불이며 보현행인 것입니다.
화엄경은 ‘부처님의 과덕(果德)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공덕을 듣고, 믿고 이해하여 환희심으로 수행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이 칭찬 받은 것과 같이 칭찬 받을 수 있으며 인과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의 공덕을 듣고 의심 없이 믿고 실천하면 이 사람도 자신이 남을 칭찬 한 만큼 다른 사람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과덕을 성취하기 위한 실천행이 바로 열 가지 보현행원입니다. 그 10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예경제불(禮敬諸佛) 2. 칭찬여래(稱讚如來) 3. 광수공양(廣修供養) 4. 참회업장(懺悔業障) 5. 수희공덕(隨喜功德) 6. 청전법륜(請轉法輪) 7. 청불주세(請佛住世) 8. 상수불학(常隨佛學) 9. 항순중생(恒順衆生) 10. 보개회향(普皆廻向)입니다.

첫째 예경제불(禮敬諸佛)은 모든 부처님을 예배 존경하겠다는 원력입니다. 부처님이 발심하여 출가하고 마군 중을 항복받아 성도하시고 중생을 제도하심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여 예를 올리고 모든 보살님과 독각 아라한의 위대함에 예배하고 더 나아가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을 가진 부처님의 나타남으로 믿고 예배 존경하기를 발원합니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차별이 없어서 모두가 마음이 만든 것(一切唯心造)입니다. 부처의 마음을 쓰면 내가 바로 부처입니다. 내가 부처의 행을 하면 나의 행이 부처님의 행이고 내가 부처의 말을 하면 나의 말이 부처님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예배 공경하고 부처님을 따라 공부하는 사람을 예배 공경해야합니다. 부처님을 따라서 공부하는 그 마음이 바로 불심입니다. 그래서 불교 신자는 출가와 재가를 따지지 않고 모두 불자(佛子)라고 합니다. 부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모두 다 부처 같이 공경해야 합니다. 설사 불교를 믿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본래 마음은 청정한 것이니 이것을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라고 합니다. 이 마음 부처님과 중생이 다름없으니 똑같이 공경해야합니다.

둘째로 칭찬여래(稱讚如來)는 즉 부처님을 칭찬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의 공덕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이(利)·쇠(衰)·훼(毁)·예(譽)·칭(稱)·기(譏)·고(苦)·낙(樂)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팔풍(八風)에 휘둘림이 없으십니다. 그래도 우리는 부처님께 예불로써 부처님을 찬탄한 다음에 축원을 올립니다. 스님들도 칭찬 받는걸 좋아합니다. 법문하러 왔는데 별 반응이 없으면 ‘오늘 괜히 왔구나’ 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일반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조금 마음이 없어도 칭찬 하는 게 좋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칭찬은 식물도 좋아한다고 합니다. 기계도 칭찬해주면 좋아해서 잘 돌아갑니다. 사람도 능력을 발휘 하도록 해주는 것, 그것도 보시입니다. 칭찬해서 그 능력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 광수공양(廣修供養)은 공양 올린다는 것입니다. 꽃·음식·의복 향 등 공양을 올리는 것입니다. 여러 공양 중에서 법공양이 중요합니다. 부처님 경전을 열심히 읽고 수지하고 독송하고 사경하고 해설 해주는 것 그것이 공양입니다. 법문해주는 것도 복 짓는 것이며 듣는 것도 복 짓는 것으로 공양입니다. 또 부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여설수행(如說修行)’ 말 한대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피를 받으려면 부처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부처님 섬기는 법은 간단합니다. 부처님이 살아계시는 걸로 생각하고 실천 하면 됩니다. 경전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하지 말라고 한건 하지 말고 부처님의 생각대로 생각하고 말한 대로 말하고 행 한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참회업장(懺悔業障)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참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소인은 허물이 있으면 숨기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죄를 키워갑니다. 군자는 자신의 허물을 바로 들어내고 바로 참회합니다. 비가 오기 직전에 꾸물거리던 날씨가 소나기가 내리고 나면 시원해지고 시야가 확보됩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처님 되기 전에는 모두 다 허물이 있습니다. 좋은 뜻으로 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고 선의로 해도 지혜가 없어서 안 좋을 수 있습니다. 비온 뒤 더 밝고 땅이 더 굳어지듯이 군자의 허물은 그런 것입니다. 그게 군자와 소인이 다른 점입니다.

다섯 번째 수희공덕(隨喜功德)입니다. 함께 기뻐하는 공덕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주 안 좋은 속담이 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 그게 시기 질투심 때문입니다. 수희 공덕은 그 폐단을 사라지게 합니다. 남이 잘되면 덩달아 좋아하는 것입니다. 배가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것,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좋은 곳에 못갑니다. 남의 일에 쓸데없는 간섭은 안 되지만 박수 쳐주고 축하해줘야 합니다.

여섯 번째 청전법륜(請轉法輪), 법륜 굴리기를 청한다는 것은 법문을 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교만심을 꺾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겠다는 자세입니다. 내가 눈이 열리면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선지식입니다.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 보면 따라 해야 하니 선지식이고 설사 나쁜 일을 보아도 그걸 보고 ‘나는 저렇게 안해야 되겠구나’ 하니 반면 교사가 됩니다. 모두가 선지식인거죠. 산에 가면 높은 걸 배우고 바다를 보면 넓은걸 배우고 봄에는 따뜻함을 여름은 무성함을 가을은 수확을 겨울은 감춤을 배울 수 있으니 만물이 삼렬함에 모두 배울 것이 있으니 내 스승 아닌 것이 없습니다. 미친 사람의 헛소리에도 성인이 배울 것이 있다했습니다. 자기가 잘 난체 하는 사람은 배울 것이 없다합니다. 법문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들을수록 배울 것이 많아집니다.

일곱 번 째는 청불주세(請佛住世)입니다. 부처님이 오래 세상에 머물기를 청하라는 것입니다. 부처님 뿐 아니라 선지식 큰 스님이 오래 머물기를 청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시자 중에 아난이 부처님 시봉을 가장 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가섭존자와 대중 스님으로부터 아난은 심하게 질책을 받았습니다. 빨리본 〈대반열반경〉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누구일지라도 사신족을 실천하여 닦고 성대하게 한 사람은 만일 바라기만 한다면 일 겁 동안이라도 이 세상에 머물 것이다. 혹은 그 겁의 나머지 부분이라도 이 세상에 머물 것이다” 라고 말씀 하셨을 때 두 세 번 거듭 말씀 했음에도 아난이 ‘부처님 오래 세상에 머물러 중생을 이롭게 하옵소서’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처님이 열반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머물기를 청한다는 것’은 더불어 같이 살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다’라고 합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그 사람의 사람됨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스승을 가까이 하는 것은 우리도 자연히 이분들처럼 도에 가까워지고 어질고 착한 심성이 자라나 필경에는 이분들처럼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말할 것도 없고 보살 연각 성문 유학 무학 선지식 가릴 것 없이 올바른 수행자가 사바세계의 인연을 끓고 열반에 드시려고 하면 우리들은 마땅히 만류하기를 “열반에 들어가지 마시고 일체불찰미진수겁이 지나도록 일체중생을 이롭고 즐겁게 하옵소서”하고 간절하게 청하여야 합니다.

여덟째는 상수불학(常隨佛學),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워야합니다. 또한 스승을 잘 만나야 합니다. 스승을 바르게 만나면 바르게 배우고 그렇지 않으면 바른 길로 못 갑니다.
칡은 땅 밑으로 기어가는 것이 본성입니다. 근데 이것이 소나무에게 덩굴을 걸쳐 버리면 열 길이고 스무 길이고 자라납니다. 본래 내 자질이 시원찮아도 좋은 스승과 도반을 만나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우승은 못해도 끌려는 갑니다. 칡이 소나무에 걸친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소나무는 열 길 스무길 크는 게 본성인데 갈대밭에 떨어지면 세 자 이상 크질 못 합니다. 그래서 좋은 스승을 만나고 좋은 도반을 만나고 좋은 도량을 만나야 공부에 도움이 됩니다.
부처님 같은 스승이 없으면 부처님이 설하신 계로써 스승을 삼고 경으로써 스승을 삼아야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뭐라고 해도 부처님의 경율(經律)에 맞으면 맞는 말이고 경율에 어긋나면 틀린 것입니다. 항상 부처님 말씀을 기준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아홉째는 항순중생(恒順衆生)입니다. 항상 중생들의 갖가지 근성을 수순하여 그들을 요익하게 함을 말합니다. 보현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항상 동체대비의 마음으로 대상과 나를 융통시켜야 합니다. 우리 편 남의 편으로 갈라놓고 분쟁의 씨를 만들지 말고 상대의 의견도 충분히 듣고 존중해줘야 합니다. 부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대자비로 몸을 삼은 분이셨습니다. 대자비로 몸을 삼아 병든 이에게는 의사로 길 잃은 자에게는 길잡이를, 어두운 밤에는 등불로, 가난한 이에게는 보배 창고로, 또 어린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어린아이로 나타나 안내 해주셨습니다. 보현행원품에서는 “중생은 깨달음을 이루는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저 사막에 나무가 있으면 뿌리를 깊이 박아야만합니다. 그래야 물을 빨아들여서 줄기와 가지가 뻗고 꽃이 피고 잎이 나며 열매를 맺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고통 받는 중생을 인하여 연민히 여기는 마음 즉 대비심을 일으키고 대비심을 인하여 보리심을 일으키고 보리심으로 보살행을 실천하고 보살행으로 인해 성불하니 나를 성불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주는 자가 중생인 것입니다.

열 번째는 보개회향입니다. 널리 모든 것을 회향 한다는 말입니다. 요즘에는 기도를 끝내면 회향 한다고 합니다. 참다운 의미에서 ‘회향廻向’이라 할 때 ‘회(廻)’라는 것은 회전을 말하고 ‘향(向)’이라는 것은 취향(趣向)을 말함이니 자기가 쌓은 좋은 공덕을 보다 크고 높은 다른 곳으로 돌린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내가 지은 공덕을 나 혼자 차지하지 않고 일체 중생에게 돌리고 현세 이익을 바라지 않고 바른 깨달음을 얻기 위해 돌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생각까지 뛰어넘어 실제의 진리를 위해 돌린다는 것입니다.

화엄경에도 열 가지 회향을 설명하는 십회향 품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돌려서 더 크게 넓게 써서 뜻을 세우고 마음 쓰기를 허공계와 같이 써서 번뇌, 집착 다 털어버리고 화엄 법회 끝날 때 쯤 마음도 몸도 건강하고 소원성취 하며 행복한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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