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 발자취 따라 경기도 사찰순례 (상)

 

한국불교에서 원효대사만큼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없을 것이다. 전국 곳곳 수많은 사찰에서 스님의 수행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민중 속에서 포교하며 그들을 교화시킨 이야기 또한 감동을 안겨 준다.

전설 속에 갇혀 있기만 했던 원효 스님의 자취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눈길을 끈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는 경기도내에 원효대사가 창건했거나 구도한 원효대사 관련 사찰 10곳을 연계한 순례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 원효성지 순례 프로그램’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원효대사의 발자취를 좇아 여행객들이 마음을 비우고 사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경기도 관광공사는 “해골물을 마시고 득도한 원효대사의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이후 원효대사가 경기도 일대 산사에 반해 그 곳에 터를 잡고 수행한 후일담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경기관광공사는 원효대사가 머물고 수행했던 대표적인 순례지 열 곳을 선정했다”며 취지를 밝혔다. 그 순례의 발자취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 동두천시에 위치한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수도정진을 위해 초막을 짓고 살던 중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와 스님을 유혹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초막 짓고 수도정진 관음보살 친견 '자재암'

동두천시에 위치한 자재암은 속박이나 장애가 없이 스스로 자유로운 마음이라는 뜻의 ‘자재’에서 이름을 따왔다. 원효대사가 수도정진을 위해 초막을 짓고 살던 중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와 스님을 유혹했다는 유명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여인은 온갖 방법으로 스님을 유혹했고 경계에 부딪힌 스님은 초막을 뛰쳐나와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나가 개울물에 몸을 담궜다. “왜 나를 유혹하려 하는가?”라는 스님의 질문에 여인은 “유혹이라니요? 스님이 저를 색안으로 보시면서”라는 한 마디에 마음의 도리를 깨우쳤다고 한다. 이후 스님은 그녀가 변신한 관세음보살이었음을 깨달았고 이를 기리기 위해 자재암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식수가 부족한 마을 주민들을 위해 원효 스님이 지맥을 찾아 샘을 만들었다는 원효샘도 주목할 만하다. 이후 위장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마시면 병이 낳는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고 한다. 또한 찻물로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수로 알려져 시인 이규보는 ‘젖같이 맛있는 차가운 물’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 상운사. 원효대사가 북한산 수행 중 창건했다고 한다.
천혜의 비경 배경으로 한 수행터  '상운사'

상운사는 서울과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를 이루는 원효봉 남쪽 중턱에 위치해 있다. 1722년 승병장 회수 스님이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노적사로 바꾼 것을 1813년 승병장 태월 스님과 지청 스님이 중건, 원래의 이름인 상운사를 되찾았다. 상서로운 구름 속의 사찰이란 이름을 담고 있는 상운사는 원효대사가 북한산에서 수행하던 중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조선 중기 이후에는 승병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절 뒤편에는 원효대사가 좌선하고 수행한 바위가 있다.

이곳을 찾는 이라면 왜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행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원효봉, 영취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등 수려한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친 천혜의 비경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하지만 등산로에서 비켜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절경을 배경으로 좌선에 든 원효 스님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 석굴 나한전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원효사
나한전 석굴에 깨달음 향한 흔적이 '원효사'

 

의정부시에 위치한 원효사는 경내에 석굴이 있다. 이곳은 나한전으로 석가불상이 모셔진 것이 인상적이다. 그 옆으로는 맑은 계곡이 흐르고 여러 암석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사찰을 감싸 안고 있다. 스님은 이 석굴 안에서 지극한 깨달음을 얻고 나오면서 절경을 경험했을 것이다. 때문에 원효대사의 동상을 모시고 절의 이름도 원효사라 하였다. 1954년 재창할 당시에 절터에서 불기, 수저, 기와, 구들, 동전 등의 유물이 나오기도 했지만 사적 기록이 없어 정확한 창건 기록 등의 역사는 남아 있지 않다.

 

 

 

▲ 원효대사가 약사여래불을 모셨다는 흥국사

석조 약사여래불을 만나다 '흥국사'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흥국사는 약사여래불로 유명하다. 원효대사가 북한산에 머물며 수행하던 중 어디선가 상서러운 기운이 일어나 따라가보니 석조로 된 약사여래불이 있었다. 원효대사는 감동해서 절을 짓고 약사여래상을 본전에 모셨다고 한다. 스님은 “상서로운 빛이 일어난 곳이라 앞으로 많은 성인들이 배출될 것”이라며 절 이름을 흥성암이라 칭하였고 이곳이 오늘날의 흥국사가 되었다. 이후 1686년(숙종 12년)에 중창하고 영조시대에 약사전을 중창하는 등 큰 발전을 이뤘으며 왕실의 안녕과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사찰이 되었다. 창건 후 13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건강을 기원하는 대중들이 찾아와 마음의 위안을 얻어가고 있다.

 

 

 

▲ 원효암, 산신각에 원효대사가 수행한 바위를 모셨다.

수행한 바위 산신각에 모신 '원효암' 

원효암은 고양시의 북한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북한산 중에서도 특급 조망터로 알려진 원효봉의 길목, 가파른 암벽에 위치한 작은 암자다. 이곳 산신각에는 바위 하나가 모셔져 있다. 이 바위가 원효 대사가 앉아 수행한 자리라고 한다. 스님이 좌선하면서 직접 창건했다는 설도 있으나, 조선 숙종 때 승병장 성능(聖能)이 원효대사를 기리기 위해 창건하고 원효암이라 칭했다고 하는 설이 더 지지를 얻는다. 그 뒤 북한산성을 지키는 승병이 머무르는 사찰로 전승되었으며, 1734년(영조 10) 2월에 불타버린 뒤 곧바로 중건에 착수, 1938년에 주지 영운 스님과 그의 제자들이 법당을 중건했다. 6·25 때 다시 불탄 뒤 월해 스님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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