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23〉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

부처님의 생애를 압축해 그린 팔상도와 오백나한상을 모신 팔상전 내부. 사천주 기둥에 황룡들이 용틀임하고 있다. 땅에서 솟아난 목탑 팔상전이 법화경의 ‘견보탑품’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찰주는 심검이자, 부동의 중도
열주공간은 우요삼잡의 동선
귀공포에 지붕 받쳐든 역사상

동양삼국에서 유일한 통층식 목탑

법주사(法住寺)는 ‘부처님의 법이 상주하는’ 화엄도량이자, 김제 금산사, 팔공산 동화사와 함께 미륵신앙 중심의 장육미륵부처를 모신 미륵도량이다. 1,450여년전 신라국 의신스님께서 인도에서 흰 말에 경전을 싣고와 이 곳에 모셨으니 법의 상주처일 것이고, 백제고승 진표율사의 법맥에 의해 김제 금산사처럼 장육미륵을 봉안하고 점찰법회를 펼쳤으니 미륵중심도량일 터이다. 그래서 가람의 배치도 두 개의 중심축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화엄계열의 대웅보전 중심축이고, 다른 하나는 미륵계열의 용화보전 중심축이다. 1990년 청동미륵대불을 조성하면서 일직선상의 석등과 석연지, 희견보살상 등을 이곳 저곳에 옮긴 탓에 지금은 그 축들이 사라졌다. 팔상전은 원래 두 중심축이 직교하는 교차점에 있었다.

법주사 팔상전(捌相殿)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와 오백나한을 모신 목조건축이다. 그런데 1960년대 해체수리과정에서 건물의 심초석에서 사리장치가 확인되었다. 사리장치를 봉안하는 곳은 탑이다. 팔상전이면서, 팔상탑이다. 그러니까 법주사 팔상전은 불보살과 오백나한을 모신 법당인 동시에 목탑이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5층목탑이다. 화순 쌍봉사에 대웅전으로 사용하던 3층목탑이 있었지만, 1984년 화재로 소실되는 바람에 팔상전이 국내 유일의 목탑으로 남았다.

팔상전 내부 3층 천정과 벽체에 장엄된 용, 넝쿨문양과 여래벽화. 단순 투박한 고전주의 힘이 느껴진다.
心柱는 우주목이며 생명나무

팔상전은 지상에서 상륜부까지 근 23m에 이르는 5층의 고층건축이지만 층층이 쌓아올린 적층식구조가 아니라, 실내가 하나로 트인 통층식 구조다. 한국, 중국, 일본의 동양삼국에서 유일한 통층식 목탑구조로 알려진다. 내부에서 보면 3층 천정까지 보이고, 4, 5층은 천정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건축구조를 보면 마치 전나무 한 그루를 보는 듯 하다. 건축의 중앙에는 전나무의 주간처럼 무게중심을 잡고 전체하중을 고루 분산시키는 심주(心柱)가 있다.

팔상전은 목탑이므로 ‘심주’라는 용어보다는 ‘찰주(刹柱)’가 더 옳은 표현으로 보인다. 찰주는 반야의 심검처럼 엄정하고 흔들림 없는 부동의 중도에 있다. 심주는 심초석에서 상륜부의 노반에 이르는 중심코어로 3개의 목재로 짜맞춘 것이다. 심주의 둘레는 4개의 하늘기둥, 곧 사천주(四天柱)가 정방형의 벽체를 형성하고 있다. 사천주는 4층 천정에 이르는 수직의 장대한 스케일인데, 내부중심의 위용이 대단하다.

수직의 높이를 추구하는 심주는 건축역학의 중심코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우주목이며 생명과 자비의 나무일 것이고, 부처께서 설하신 진리법이다. 심주는 부동의 자리이고, 무상정등각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 사천주는 불보살을 외호하는 사천왕의 위세를 스스로 갖추었고, 사천주로 둘러친 장대한 벽체세계는 그 자체가 신성한 불국토임에 분명하다.

거대한 불국토가 연꽃이 솟아나듯 땅에서 솟아나게 한 셈이다. 즉 한 시대의 건축역량을 거의 집대성하다시피 근 22년 동안 물량, 기술, 공력을 집요하게 공들인 것은 단순한 높이에의 추구가 아니라, 불국토의 장엄이라는 거룩한 종교적 신심에 기초하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백 년 넘게 황룡사를 구축해간 신라인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보이지 않는 심주에 단청을 입히고, 사천주 기둥에 심벽치기로 벽체를 만들어 그 벽체에 팔상도를 장엄하고, 불보살과 오백나한을 모신 것에서 이 건축을 통해 담아내고자 하는 한 시대 사부대중들의 분명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팔상전은 그 자체가 중층적 구조의 만다라이며 거대한 불국토인 것이다. 사천주 바깥으로는 고주와 평주를 차례로 경영했다. 그 열주들 사이로 예배 동선을 자연스럽게 형성했다. 동에서부터 동쭭남쭭서쭭북으로 도는 우요삼잡의 예배동선을 유도하고 있다. 각 면에 두 폭씩 해서 사방벽면에 팔상도와 오백나한을 모셨다. 팔상전은 영산전과 나한전, 탑돌이 공간이 두루 내포되어 있는 셈이다.

팔상전 외부 장엄. 외부 귀공포, 벽체 등에 조영한 力士상과 벽체 소반장엄이다.
사천주에 황룡들의 극적 용틀임

팔상전 외부장엄은 외호와 결계, 법열로 충만하다. 1층은 5×5칸의 정방형이고, 그로부터 위로 갈수록 반 칸씩 줄어들어 3층은 3×3칸, 5층은 1×1칸의 한 칸짜리 사모지붕 건물을 이룬다. 1층의 외부벽체에서는 귀공포와 화반의 문양이 눈길을 끈다. 귀공포는 내부에서 몸통을 빼낸 용이 ‘ㄹ'자로 길게 몸을 뻗쳐 붉은 여의보주를 움켜지고 있다. 마치 보주를 움켜 쥐고 승천하려는 기세다. 초각한 살미부재도 용의 몸통에서 뻗쳐나오는 기운으로 표현하고 있어 용이 생명의 강력한 기운임을 알 수 있다.

용의 강력한 기세는 팔상전 내부에서 사천주 기둥에서 압권으로 나타난다. 사천주의 굵고 장대한 기둥에 폭포수처럼 드세찬 황룡들이 살아 용틀임하는 기세가 대단하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 내부 고주(高柱), 안동 봉정사 대웅전 고주에도 이런 극적인 장면이 그려져 있다. 기둥이 곧 사천왕이고 거대한 용이다. 기둥의 거침없는 수직성과 용의 용틀임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기둥에 내재된 힘과 에너지가 위엄을 갖춰 엄숙히 흐르는 느낌을 자아낸다. 화반(花盤)에 장엄한 용의 입에서는 굵고도 강력한 신령의 기운들이 무시무종으로 뻗쳐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고, 그 옆의 심미적 아름다운 구상을 갖춘 연꽃화반에서는 법열이 층층으로 미어터져 가이없어 보인다.

2층 귀공포에는 지붕을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인물상이 있어 주목을 끈다. 귀공포에서 추녀밑둥을 떠바치고 있는 사람형상을 일러 12세기 중국 북송의 토목건축책 〈영조법식〉에는 ‘각신(角神)’으로 부르고 있다. 북한의 심원사 보광전,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귀공포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장천1호분과 삼실총 등 고구려벽화고분에서는 이들은 신성한 세계를 떠받치는 거룩한 역사(力士)들이다. 그리스 신화 속 ‘아틀라스’와도 같은 존재들이다. 연꽃, 혹은 연잎 위에 앉아있다는 것은 신성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입에서 용이 나오는 조형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팔상전 전경
직선의 뼈대로 이룬 유기체

팔상전 내부의 가구구조는 대단히 역학적이며 중층적이다. 정교하게 짜여진 힘의 분산 및 결집체계가 살아있는 유기체의 생명력을 느께게 한다. 수평과 수직, 사선의 직선이 이루는 유기적인 구조들이 굵기와 길이에서 고저장단의 율동을 갖춰 힘을 실어 나르는데, 뼈대의 윤리적인 아름다움, 굳건한 신뢰감을 가득 안겨준다. 건축가구의 뼈대들은 역학의 부재들이지만, 단청장엄의 초빛, 이빛, 삼빛을 입는 순간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기케이블처럼 신령의 기운이 흐르는 전도체가 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겨울나무에 연두의 새싹기운이 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생명력은 경계 밖으로의 미어터짐이며, 나선형의 순환운동이고, 푸르름의 빛을 띄는 것이다. 목조건축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데 식물 씨방의 개화와 푸르름, 나선형 넝쿨만큼 훌륭한 소재는 드물다. 사찰건축에 씨방, 개화, 나선형 넝쿨무늬가 그토록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도 그 생명력의 운동성 때문일 것이고, 단청작업에서 겹녹화, 골팽이, 연화머리초 등이 주류적인 것도 대상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내적인 힘 때문일 것이다.

팔상전은 통층식 가구구조인 까닭에 천정은 3층 높이에 가설되었다. 천정은 격자 칸의 크기가 다채롭고 빗반자처럼 널판반자가 드러난 우물천정 형식이다. 천정에 베푼 문양은 용과 나선형 넝쿨문양이다. 문양의 느낌은 퇴색한 석간주와 삼청의 고색 느낌으로 중후하고 무거우며, 깊숙하기 그지없다. 어둠침침한 갈색 톤이 공간의 깊이만큼 차분하기 그지없다. 색채와 구도의 양 측면에서 상투적이거나 기교적인 매너리즘과는 떨어져 있는, 어딘가 단순, 투박하면서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고전주의적인 기풍이 흐른다.

넝쿨문양의 잎이나 용의 형상에서 격식을 갖추지 않은 단순하고 간결한 형태인데도 역동적인 힘과 격조있는 조화로움이 풍긴다. 짙은 갈색의 어둠에서도 생명력의 흐름에는 가는 흰빛을 풀었고, 범자종자불과 개화하는 꽃 송이에는 긴장을 해소하듯 밝은 빛을 던져 놓았다. 그 아래 벽체에서 오색의 신령함 속에 여래께서 고요히 나투신다. 법이 상주하시는 법주사이니 법화경 〈견보탑품〉의 오백 유순 높이의 다보탑이 땅에서 솟아있는 이치다. 일승의 허공법회의 방편으로 큰 보배 탑이 속리의 공중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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