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구멍에 모든 걸 입력하면 큰 보배력 얻을 수 있다

▲ 그림 최주현

저승과 이승을 넘나드는 데는 한군데밖에 없습니다.
내가 나온 자리로 파고 들어야 들고 나는 데에 손색이 없죠.
그래서 저승 이승 양면을 들고 나고 들고 나고
왕래할 수 있다면 생사가 벗어지고
벗어지게 되면 구경에 이르기는 누워서 식은 죽 먹기다 이겁니다.


(지난 호에 이어서)

질문자3(남): 큰스님, 감사합니다. 간단하게 질문드리겠습니다. 생각과 공덕, 비밀 정토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십시오.
큰스님: 생각의 비밀?
질문자3(남): 생각과 공덕, 비밀 정토에 대해서 한 말씀해 주십시오.
큰스님: 비밀 정토라…. 그건 공덕이 되는 것도 둘로 보지 않는 거. 일체 모습이 내 모습과 둘이 아니고 일체 차원을 논하지 말고. 예를 들어서 5차원이라면 아주 어리석은 1차원 2차원 이런 거 따지지 말고 어리석은 사람이 앞에 닥쳤으면 내가 어리석어 주고, 똑똑한 사람이 앞에 닥치면 내가 똑똑해지고,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돼 주란 얘깁니다. 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부가 공덕입니다. 공덕이 아닌 게 하나도 없죠. 정토의 비밀도 그 마음이 그래서, 모든 육체 안에 있는 의식들이 보살로 화해서 즉, ‘법가지’ 또는 ‘보현가지’ 또는 ‘자비가지’이 가지 가지가 전부 보살로 화해서 그 응신이 돼준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그것은 남의 눈에 띄지 않고 하는 거기 때문에 비밀 정토죠. 이 모두가 남의 눈에 띄려고 애쓰지도 말고 내가 할 일 꾸준히 그냥 진실로서 실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비밀 정토를 알고 있다 이런 겁니다. 어때요? 대답이 시원치 않습니까?

질문자3(남): 좋습니다.

큰스님: 허허허허.

질문자3(남): 부처와 도에 대해서 좀 한 말씀 해 주시죠.
큰스님: 부처라는 것도 이 세상이 둘이 아닌 까닭에 부처입니다. 예를 들어서 댁의 몸뚱이 속에 있는 그 의식들 생명들이 있는데 댁이 봤다고 해서 혼자 본 겁니까, 들었다고 해서 혼자 들은 겁니까, 움죽거렸다고 그래서 혼자 움죽거린 겁니까? 전체가 다 그냥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이 더불어 같이 움죽거린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라고 한 겁니다. 모두 부처 아닌 게 없다 이런 겁니다. 그렇죠? 이해가 갑니까 안 갑니까? 나 혼자라도 혼자 ‘나’가 아니거든요. 더불어 같이 살고 있는 한 덩어리의 개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 아닌 게 하나도 없느니라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물 먹었을 때 어떤 게 물을 먹었을까? 더불어 같이 먹었죠. 그러니까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그것이 내가 한 겁니까? 더불어 같이 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부처라는 건 영, 공해서 찰나찰나 나투면서 화해서 응해 주는 그 마음이 부처인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거 할 때 내가 했다고 할 수 있으며, 어떤 거 됐을 때 내가 됐다고 할 수 있으며 뭐든지, 내가 됐다 내가 했다, 내가 간다 내가 봤다, 내가 들었다 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부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처인 까닭에 도는 거기에서, 부처가 그냥 생활하고 그냥 가는 게 전부 도지 도 아닌 게 없죠, 또.
그러니까 그러한 부처님의 생각 자체가 바로 도입니다. 도의 근원이 되고 그 근원에서 일거수일투족 그 공법이 나오고 그러기 때문에 ‘도’라고 하죠. 말로 알려고 하지 마시고 스스로서 여기에다가, 알더라도 거기다 그냥 다 맡기세요. 맡기시면서 그 속의 진의를 알게끔 스스로서 자꾸 만들어 나가세요.

질문자4(남): 아까 누군가 살생에 대해서 질문하는 거를 듣고 큰스님 말씀하시는 중에 그전에 한번 제가 살생에 관해서 어떤 생각을 하던 바가 있어서 이렇게 질문을 드리면 저에게도 도움이 되고 많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질문드리겠습니다.
지난 8월달에, 제가 지금 회사를 다니는데 휴가 받아서 진주에 내려갔습니다. 집이 진주니까. 내려갔는데 진주지원에서 사나흘을 왔다 갔다 다니다가 휴가 끝나는 날 제가 차를 몰고 진주에 장 총무님이라는 분하고 진주 시내로, 진주지원은 시내에서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밤이어서 헤드라이트를 켜고 가는데 토끼가 한 마리 도로로 뛰어드는 걸 보고, 제가 그때 속도를 좀 내고 있었기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아야 되겠다.’ 생각하면서도 이미 토끼가 뛰어들어왔기 때문에 이건 늦었구나 싶어서 토끼를 차 바퀴 그 안으로 지나치려고 그냥 그대로 완전히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채 속도를 줄이면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토끼가 그 안에서 계속 뛰었나 봐요. 순간적으로 오른쪽 바퀴에 토끼가 밟혀서 물컹하는 걸 제가 느끼고 순간 ‘아, 밟았구나. 죽였구나.’ 하는 생각에 핸들에 머리를 박고는 한 5분 정도 아무 말 없이 있었습니다. 선원에 다니면서 책 같은 걸 읽어도 ‘어쩔 수 없이 생물을 죽여도 주인공 네가 한 것이고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니 더 좋은 몸 받아야지.’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데 물론 저도 그런 글귀를 몰랐던 건 아니고 그렇게 하려고 그랬지만 순간적으로 정신이 너무 없었고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한 5분 동안.
옆에 장 처사님이 저한테 어떻게 할 거냐 그래서 제가 차를 다시 돌려서 헤드라이트를 비춰 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토끼가 크지도 않아요. 조그마한 토낀데, 토끼 창자는 이쪽에 있고 껍데기는 저쪽에 있고 그래서 그 모습을 보니깐 저것도 시첸데 치워 줘야 되겠단 생각이 들어서 가까이 가니깐 그 내장에서 풍겨나오는 냄새가 역겨워 가지고 어떻게 어떻게 해서 장 처사님하고 같이 옆으로 치우고는, 제 차 트렁크에 선원에서 나온 접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풀숲에 덮어 두고는, 무덤 대신 해 주고 왔는데 그 뒤로 어떤 생각을 했느냐 하면 큰스님을 찾아뵙고 이 말씀을 한번 드려 봐야 되겠다 생각을 했는데, 어느 날 여러분한테 그런 얘기를 드리다가 제가 순간 느낀 게 뭐냐 하면 ‘주인공을 굳게 믿어라.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주인공 네가 한 거다 이렇게 믿고 나가라.’고 큰스님께서 항상 가르치시는데 한참 뒤에 생각해 보니까 나는 선원에 다니며 주인공 공부를 한다면서 그 순간 제가 주인공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정말 그런 믿음이 있었다면 ‘좋은 옷으로 갈아입을 수도 있어.’ 하는 믿음도 바로 나왔겠죠. 그러지 못했던 저를 보면서 참 안타까웠고, 그리고 오늘 갑자기 아까 그 개구리 얘기 하시는 분 얘기를 들으면서 그 토끼 생각이 갑자기 나서, 질문하려는 어떤 의도도 없었지만 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뛰어 올라왔습니다.

그 당시 제가 토끼 사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뭐였느냐 하면 불교를 믿는 사람은 생물을 죽이면 안 되고 생물을 죽이면 천벌을 받는다, 그런 관념이 저한테 있었습니다. 그 뒤에 보니까 그 토끼가 그런 관념을 조금이라도 깨는 데 저한테는 너무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은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원에 여러 해 다녔지만 오늘 질문이 처음입니다, 대법회에서 하는 건. 꼭 하고 싶었습니다. 큰스님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큰스님: 그 토끼가 달아나는 걸 잡으러 가서 죽인 게 아니죠. 그거는 어쩔 수 없는 인연의 소치죠. 그런데 그렇게 해 놓고도 묵묵히 그것을 애처로워했으니깐요. 무슨 주인공이다 이름은 부르지 않았어도 벌써 마음속으로 그렇게 애처로워서 애를 썼으니까요. 그 토끼는 위안을 받고 천도가 되고 그랬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좋겠네요. 하하하.
그것이 쫓아가서 죽이지 말라 한 거지 각중에 들이덤벼서 어쩔 수 없는 사이에 그렇게 된 것을 말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게 됐을 때도 내 생명같이 아끼고 내 생명같이 애처로워해 주면 그것이 다 잘될 수 있다 하는 거죠. 주인공이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았어도 주인공이란 그 이름이 그대로 나타난 겁니다. 댁의 마음이 주인공이니까. 하하하. (대중 스님들 쪽을 보시며) 여기서들은 질문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안 하는 거지, 그러니까. 허허허. 내 옛날 얘기 하나 할까요?

대중: 예.

큰스님: 옛날 얘기 그렇게 좋아요? 하하하. 옛날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아들이 살았더랍니다. 그런데 며느리가 어떻게 자기 시어머니를 구박을 하는지 불도 제때에 때 드리지 않고, 먹을 것도 제때에 주지 않고 만날 구박하니까 그냥, 병상에 누워서 꼿꼿이 말라서 있거든요. 아들이 가만히 생각을 하니 양쪽을 다 살리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하는 거를 연구한 거예요. 아내도 살리고 자기 어머니도 살리고, 이거를 양쪽을 다 살리게끔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온 사흘을 고민을 하고 연구하다가 ‘옳지!’ 그러곤 그냥 무릎을 탁 친 거예요. 그래서 그날 일찌감치 장엘 갔다온 거예요. 장에 갈 일도 없는데.

장엘 갔다 와서 자기 부인을 부른 거죠. 불러서 귓속에다 대고 “여보, 남이 들을까 봐 무섭소.” 하면서 말을 한 거예요. 장에 가니까 살이 통통 찐 노인네들을 데리고 와서 파는데, 하하하, 소 30마리 값을 모두 받더라 이랬거든요. 그러고는 귓속에다 대고 누가 들을까 봐 무섭다고 “당신 마음은 어때?” 그러니까 “아유, 해야죠.” 30마리 값이면 얼만데, 놓칠 수가 있나 이러면서 며느리가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아들이 생각하기를 ‘아, 이제 씨가 먹히는구나.’ 그러고선 빙그레 속으로는 웃으면서 다시 한마디 들어 본 거예요. “자네, 그래 오늘부터 어떻게, 개시를 할 거야?” 그러니까 “해야죠.” 하더니만 그냥 간식으로 밤을 삶아서 꿀에다 재어서 드리지 않나, 갖은 노력을 다하고 방이 뜨거운가 찬가 손을 항상 넣어 보고 그냥 이거는 뭐 말도 못하거든요, 그냥. 보약을 지어다가 드린다 뭐 온통 야단을 하니까 금새 깨상해서 나았단 말이야.
나으니까는 어린애를 업고 나가서 그 시어머니는 며느리 칭찬하기에 침이 마르지. 며느리는 살찌워서 팔려고, 허허허, 침이 마르게 그냥 노력을 하고요. 그러면 신랑은 ‘아, 다행이다. 어머니가 저렇게 깨상하셔서 다니시니 참 다행이다.’ 하고는 속으로 흐느끼면서 우는 거예요. 그렇게 쭉 하다 보니까 살도 이제 그냥 원만히 찌고 아 뭐, 얼마나 잘해 드렸는지. 그래서 며느리가 아주 계획을 세웠죠. 아주 요 다음 장에는 꼭…, 하하하, 가지고 나가서 팔리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했는데 아, 그러던 차에 나라에서 효부라고, 효부문을 세워 준다고 난리가 났거든.

그냥 뭐, 효부문을 세우고 나라에서 선물을 모두 갖다 주고 상을 갖다 주고 상장을 주고 이러는 겁니다. 그래서 신랑이 “갖다 팔래도 못 팔게 됐네.” 하하하, 그러니까 며느리가 하는 말이 “그러게 말이야. 글쎄, 어떻게 하면 좋지?” 이러고 그 어떡하면 좋지, 어떡하면 좋지 그러다가 나라에서 그렇게 하고 그러니까 도저히 그 어리석은 마음에도 내다 팔 수가 없거든. 팔면 탄로가 날 테니까. 그래서 못 팔고 그냥 효부가 됐더래. 하하하하.
그러니 그 남편이 오직 한마음으로써 연구를 얼마나 잘했으면 이쪽도 살리고 저쪽도 살리고 양면을 다 살렸겠느냐 이거야.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것도 일념으로서 오직 ‘나는 살찌워서 장에 갖다 팔겠다. 팔면 큰 돈을 받는다.’ 요 한 가지만 생각하고 들어가라 이런 얘깁니다. 하하하 .
모든 게 이렇게, 그저 한군데 밖엔 없으니깐요. 저승과 이승을 넘나드는 데는 한군데밖에 없어요. 내가 나온 자리로 파고 들어야 들고 나는 데에 손색이 없죠. 그래서 저승 이승 양면을 들고 나고 들고 나고 왕래할 수 있다면 생사가 벗어진다. 그걸 아니까 벗어진다. 벗어지게 되면 구경에 이르기는 누워서 식은 죽 먹기다. 모두가 그냥 그 평등하고도 공법에 의해서 용무를 스스로서 걸림 없이 끝간 데 없이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자기는 영원히 그냥 자유스럽게 사는 거죠. 내가 수만 명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수천 명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직접 응신이 돼서 그 사람한테 몸을 빌려서 그 사람이 그냥 그렇게 응하게끔 대신하게 할 수도 있고, 이건 자유자재권입니다. 얼마나 대단했으면 자유자재권이라고 했겠습니까?

그러는 중에도 대권이라는 게 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서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대권입니다. 이건 정말이지 부처님께서 수없이 자기가 걸어온 길과 더불어 배운 길과 깨달은 길, 그 도리를 상세히 일러 줬는데도 너무나 그냥…. 요즘 화엄경 풀이하다 보니까 그냥 너무나 많은 가지를 접해 놨는데 가지가 많으면요, 잎새가 많으면 오히려 뿌리 찾기가 어렵죠. 그러니까 나는 여러분한테 그 종자의 뿌리가 바로 당신을 이끌고 있다는 거, 그렇게 아주 그냥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거죠.
그러니까 아까 어머니 길러서 팔아먹으면 돈이 많이 나온다. 오직 그것만 생각하곤 그냥, 그냥 정성을 다했던 거 아닙니까. 그러니 성공을 했죠. 그러니깐 나중에는 팔아먹는 게 나온 게 아니라 바로 효부문이 나온 거죠, 거기서. 그렇게 정성스럽게 한 데서 거기서 효부문이 나온 거죠. 팔아먹게 된 거는 싹 없어지고 그렇게 보배가 나왔으니 말입니다. 우리도 아무리 모르고 어리석다 하더라도 오직 한 구멍을 기준해서 모든 걸 입력을 한다면 현실로 나오는 것이 그렇게 스스로서 능력 있게 자재할 것이요, 또는 세세생생에 자유권을 얻을 것이요. 자기는 모르고도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나중에 그 큰 보배력을 얻을 수가 있다 이런 소립니다.

내가 어디서 그렇게 옛날 얘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어. 나도 몰라요. 어디서 들었는지 생각나는 대로 하는 거예요, 그냥. 허허허. 그럼…. 아, 내가 꼭 한마디 할 게 있어요. 신문사에 신문을 하나씩 구독하는 것도 보시입니다. 그건 어느 때고 모자라면 이 선원 속에서 나가야 되는 거기 때문에 여러분이 십시일반으로 구독을 해주신다면 내가 고맙게 생각할 거예요. 왜냐하면 그것도, 즉 말하자면 불사하는 데 보시니깐요. 그러니깐 어려운 사람들도 그것을 보시라고 생각하고 하신다면 많이 갖다가 이렇게 보시하는 것도 좋지만 그거 하나하나 하는 정성이 아마 더 귀중할 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내가 항상…, 지금 이 스님네들이 번갈아 가면서 이렇게 신행회 법회를 들어가는데 그러면서 또 나가서 구역구역이 또 법회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구역별로다가만 나가서 법회를 스님네들이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이 스님네들이 얼마나 바쁜지 모르거든요. 신행회 법회는 좀 줄였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내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많은 말을 듣고 그래서 잘하는 게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씩 구역법회를 하더라도 실천을 진짜 할 수 있는 그런 모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건 왜냐하면 여러분이 그냥 참 군색하고 일이 생기고 폐단이 집안에 많으면 돌탑 위에도 돌을 하나 올려놓고 절을 하고 가죠? 속으로 기도를 하고요.

그런데 하물며 우리 스님네들이, 내 제자인 스님네들이 나갈 때는 나는 항상 거기에 내가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만히, 내 제자들이지만 그 제자들 속에는 제자의 주인공과 내 주인공이 둘이 합해서 둘 아니게 거기 들어가서, 가만히 보면 섭섭한 마음이 상당히 들 때가 많아요. 왜냐? 모습을 보고 좀 무시하게 되죠. 스님은 작은 스님이니깐 무시하게 되죠. 그렇죠? 그러는 수가 많죠. 그렇지는 않으시더라도 그럴까봐 내가 그럽니다. 예. 허허허.
돌부처에도, 아무 말도 없고 모습도 아무렇게나 우그러진 그 돌부처에다 정성을 지극하게 하는 건 각자의 자기 마음들입니다. 마음을 정성스럽게 해야 우주 법계에도 통신이 돼서 알게 됨으로써 전부 만물이 다 알게 되는 겁니다, 내 마음의 정성은. 그렇게 하는데 당신네들 마음이 만약에 그렇다면 스님들의 마음도 역시 똑같이 그럴 거란 말입니다. 허, 100% 점수를 줄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생기죠. 그렇다면 벌써 그거는 안 되죠. 그러니깐 그 모습을 보지 말고 작은 스님으로도 보지 말고 큰스님으로도 보지 말고 그냥 내가 정성을 다해서 모시고 내가 정성을 다해서 내 마음을 열고 다 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갖는다면 100% 아마 공덕을 받을 겁니다.

그거를 잘 생각해 보세요.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거 우리가 공부하는 데도 무척 그게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생명같이 생각하라. 나의 모습같이 생각하라. 내 아픔같이 생각하라. 둘로 보지 말라.’ 이런 거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벌써 스님네가 들어오는 거 보면 ‘으이그, 으이그.’ 이렇게 생각하는 때가…. 난 여러분이 말 안 해도요,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거지 여러분이 알지 못하면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하하. 그러실 적이 많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내가 직접 대놓고 그때그때에 얘기 안 하는 것은 여러분이 그래도 마음공부 하는 분들이 그렇지는 않겠지 하고 쭉 내려오면서 지켜봤습니다. 지금 여기 스님네들이 내가 뚱딴지같이 이런 말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알려고 하면 알아지는 거고 알려고 하지 않으면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행회를 구역별로 나가서 하는데 신행회에 스님네들이 들어갑니다. 둘로 보는 모든 걸 이 시간부터 없애시고 친근하게, 서로가 똑같이. 한 몸뚱이 속에 한 개체로 살아나가는 그 몸뚱이는 바로 이 스님이나 당신들 몸뚱이나 똑같거든요. 그러니 똑같이 내 몸과 같이 생각하고 내 동생 내 형, 또 내 딸 이렇게 생각하세요. 그러면 구역별로 한 달에 한 번씩만 해도 좋겠죠?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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