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a in Comic & Ani -〈노다메 칸타빌레〉

韓 드라마 〈내일로 칸타빌레〉 원작
순수한 서원과 노력의 과정 통해
음악 천재들의 방황·성장기 그려

불교의 선어(禪語) 중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다. ‘어미닭과 병아리가 동시에 알을 쫌’이라는 뜻으로 병아리가 알을 깰 때 안에서 껍질을 쪼고 어미 닭은 병아리가 나올 수 있도록 밖에서 그 알을 쪼는 것이다. 흔히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어느 기회를 맞아 더욱 두터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시공 불교사전〉에는 이를 ‘수행승의 역량을 단박 알아차리고 바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스승의 예리한 기질을 비유한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일본 순정만화가 니노미야 토모코의 〈노다메 칸타빌레〉(2001)는 ‘줄탁동시’의 예를 잘 보여주는 만화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극장판까지 나온 국민 만화다. 최근 한국에도 〈내일도 칸타빌레〉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돼 KBS에서 방영 중에 있다.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는 원작의 재미를 못 살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연출진들에 대한 기존 원작 팬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을 정도로 원작이 가지는 영향력은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연재했던 출판사인 고단사에서 발행한 만화책 중 초판 100만 부 이상 팔린 만화는 이노우에 다케히코(슬램덩크 작가)의 〈베가본드〉와 〈노다메 칸타빌레〉가 유일이다. 드라마로 제작 당시 OST를 일본 유명 오케스트라가 담당했고, 이로 인해 클래식이 새롭게 조명될 정도했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매력은 톡톡 튀는 캐릭터들의 향연에 있다. 뛰어난 피아노 실력이 있고 음악을 좋아하지만 기본 성정은 4차원 변태인 여주인공 노다 메구미(이하 노다메), 어릴 적 사고로 비행기·물 공포증 생겨 외국 유학을 갈 수 없는 비운의 남주인공 치아키 신이치를 비롯해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져 있는 듯한 조연들은 묘한 앙상블을 보여준다.

기본 이야기 구도는 니노미야 토모코의 전작인 〈주식회사 천재 패밀리〉, 〈그린〉과 비슷하다. ‘엄친아’인 천재가 멍청해 보이지만 실은 더욱 천재인 인물에게 휘둘린다는 포맷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작자는 여기에 음대를 배경으로 클래식이라는 소재를 가져왔다.

▲ 〈노다메 칸타빌레〉의 포스터. 다양한 캐릭터의 조화가 오케스트라처럼 펼쳐지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기본적으로 〈노다메 칸타빌레〉는 노다메와 치아키 그리고 함께하는 조연들의 음악가로의 성장 스토리다. 종국에는 연인으로 발전하는 노다메와 치아키의 관계는 서로의 껍질 깨어주는 상호적 ‘줄탁동시’다.

첫 회에서 특이한 연주를 보여주는 노다메의 피아노를 알아보고 관심을 가진 것은 치아키였고, 이어 ‘모차르트의 2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함께 맞춰냈다. 치아키가 비행기과 배를 탈 수 있도록 이끌어 유럽에 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은 노다메였다.

작품에서 ‘떨거지들의 집합’이라고 절하받던 ‘S오케스트라’를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이끌어 낸 것은 치아키이지만 치아키 역시 자신이 꿈꿔왔던 지휘자의 덕목을 배운 것은 ‘S오케스트라’때문이었다.

음악은 조화로울 때 아름답다. 흔히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교향악단(symphony orchestra)이라 부르고, 교향악단은 교향곡(심포니)을 전문으로 연주하는 단체이다. 교향곡(심포니)의 어원은 ‘sym=함께, phonia=울림’에 있다.

협주를 의미하는 콘체르토(concerto)의 어원은 ‘concertare’로 이탈리아어로는 ‘조화시키다, 동의하다’란 뜻을 갖는다.

나와 너의 소리를 제대로 듣고 한데 모아 아름답게 엮어 내는 것은 동서양을 떠나 음악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우리가 사는 인생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소리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 나의 소리를 제대로 알아주는 인연을 만나는 것만큼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일은 없다.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는 유명한 ‘지음(知音)’에 대한 유래가 나온다. 백아가 거문고를 들고 높은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이것을 타면 친구 종자기는 옆에서 “참으로 근사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산이 눈앞에 나타나 있구나”라고 말했다. 또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기가 막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눈앞을 지나가는 것 같구나”라고 감탄했다.

작품 제목의 ‘칸타빌레’는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듯이’ 라는 뜻의 음악 용어다. ‘당신은 자신의 노랫소릴 알아줄 인연이 있는가.’ 〈노다메 칸타빌레〉는 그렇게 선연(善緣)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갈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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