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의 진화 22- 일본의 불탑(2)

보협인탑…〈보협인다라니경〉 봉안한 탑
〈무구정광~〉과 같은 불탑신앙 경전
中 오월국 왕 전홍숙이 시작해 韓·日로
관군 때 행한 살생 참회 위해 조성 시작

日 무사정권(가마쿠라시대)때 많이 조성
중국의 전탑과 한국 석탑에서 영향 받아
오륜탑… 우주의 구성요소 ‘5대’ 상징
헤이안 시대(794~1185)부터 조성

지난 호에는 일본의 다중탑, 다층탑, 보탑, 다보탑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번 호에는 보협인탑, 오륜탑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5) 보협인탑(寶篋印塔)
‘보협인탑’은 탑 안에 〈보협인다라니경〉을 봉안한 탑을 말하며, 중국에서 시작하여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해졌다는 문헌상의 기록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로지 1기만 전해지고 있는 반면에, 일본에서는 전시대를 거쳐 가장 많이 조성된 불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사찰에서는 크고 작은 여러 형태의 보협인탑을 쉽게 친견 할 수 있다.
이러한 보협인탑의 유래는 중국 오월국(吳越國)의 마지막 왕이었던 전홍숙(錢弘俶)에 의해서 조성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전홍숙은 오대시기 십국의 하나인 오월국의 마지막 왕으로, 자는 고명(高明)이고 시호(諡號)는 충의왕(忠懿王)이며 항주(杭州)사람이다. 동생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전홍숙은 오월국을 송나라에 바치고 회해국왕으로 임명받고 여생을 편히 살다가 송 태종 단공(端拱) 2년(989)에 세상을 떠난다. 그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관군을 통솔하는 대장으로서 황소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전한다. 특히, 954년 반란군들과의 마지막 전투에서는 적들이 강물에 뛰어들어 도망가는데, 이들을 죽이거나 생포한자가 너무 많아 강물이 멈출 지경이었다. 이 공덕으로 오월왕에 봉(封)해 졌지만, 전홍숙은 많은 사람을 죽인것 때문에 밤마다 죄책감에 시달렸으며, 마침내 병을 얻어 큰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이때, 한 스님이 전홍숙에게 “불탑을 만들고, 탑 안에 보협인다라니를 봉안하고 정성이 담긴 향과 꽃으로 공양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이에 전홍숙은 인도 아쇼카왕의 8만4천탑 조성 불사를 생각하며, 전국에 8만4천탑을 조성하여 〈보협인다라니경〉을 탑 안에 봉안하였다.
원래 〈보협인다라니경〉은 〈일체여래심비밀전신사리보협다라니경〉으로 밀교계통의 경전이다. 보협이란 ‘보배를 담은 좁은 상자라는 의미’인데 그 상자에 모든 부처님의 전신사리를 의미하는 다라니를 모셔서 탑을 조성한 것이다. 이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와 더불어 전형적인 불탑신앙의 근거가 되는 경전이기도하다. 이 경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무구묘광’이라는 브라만이 있었는데, 그의 집에 초청을 받아 길을 걷던 부처님께서 가시덤불과 잡초로 덮인 오래된 탑 앞을 지나시게 되었다. 걸음을 멈추신 부처님께서는 허물어진 탑에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를 도셨다. 그리고는 부처님께서는 가사를 벗어 그 탑을 덮으셨고 그리고는 매우 슬피 우셨다가 다시 웃으셨다. 그 행동이 의아해서 이유를 묻는 제자들에게 부처님께서는 “이 큰 전신사리는 여래보탑을 모은 것으로, 깨알처럼 많은 백천겁의 여래전신사리의 모둠이며, 또한 팔만사천법문이 이 탑 안에 있느니라. 이런 신묘한 까닭에 이 탑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신령스런 영험과 뛰어난 위덕이 있고, 일체 세간에 경사가 가득 차게 할 수 있느니라....(중략)....후세에 나의 제자들이 이 경을 쓰고 베끼면 99백천만겁의 여래께서 설하신 일체경전을 쓰고 베낀 것과 같아서 99백천만겁의 부처님 전에 선근을 심은 것이며, 그 모든 일체의 여래께서 마치 눈을 보호하는 것과 자비로운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보호하는 것과 같으니라. 어떤 이가 이 경을 한 번 읽으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을 읽은 것과 같으며....(중략)....
내가 열반하고 후세 말법시대가 되면, 중생들이 악한 짓을 하여 지옥에 떨어지고, 삼보를 비방하며, 불법은 숨게 된다. 이 까닭에 내가 오늘 눈물을 흘리는 것이며, 저 모든 부처님들께서도 모두 눈물을 흘리느니라. 그러나 이 탑은 오히려 더욱 견고하여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된다. 어떤 중생이 이 탑에 향 하나, 꽃 한 송이로 예배 공양한다면, 80억겁의 생사중죄가 일시 소멸될 것이며 살아서는 재앙을 면하고 죽어서는 극락에 태어난다. 아비지옥에 마땅히 떨어질지라도 이 탑에 한번이라도 예배하고 한번이라도 돌면 지옥문이 닫히며 보리도가 열리리라....(하략)
〈대정신수대장경 19권 710쪽 상단〉

이처럼 〈보협인다라니경〉을 봉안한 탑을 한 번만 예경하면 수십억겁의 중죄가 소멸되어 극락에 태어난다는데 어느 누가 이를 마다하겠는가? 전홍숙은 왕위에 올라 막강한 권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사찰을 창건하고 보협인탑 등을 조성하는 등 불사를 통해 불법의 위신력을 얻어 살생을 많이 한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나아가 국가를 보호하는 한편 스스로를 아쇼카왕과 같은 전륜성왕으로 자처하고자 8만4천의 보협인탑을 조성한 것이다.

▲ 사진1.우리나라의 유일한 보협인탑(동국대 박물관)
이러한 보협인탑은 재료에 있어서는 금속과 석재로 나누어지며, 구조를 보면 기단부에 4분의 여래상이 있으며, 탑신에는 모두 본생도(本生圖)를 표현하였다. 네 개의 모서리 장식은 일반적으로 2단으로 구분되어 불전도(佛傳圖)를 나타내고 있으며, 상륜(相輪)이라는 탑상부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일한 보협인탑〈사진1〉이 현재 국보 제 209호로 지정되어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원래는 충남 천안시 북면 대평리 탑골 계곡에 ‘구룡사(九龍寺)’라고 부르는 절터에서 무너져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복원된 탑의 현재 모습은 5개의 돌만 남아 있어 완전한 형태는 아니다. 이 탑에 대한 구체적인 사연은 후일을 기약하고자 한다. 일본에서의 석조보협인탑은 화강암이나 안산암 등의 석재를 주로 사용하였으며, 형식은 중국의 전탑과 우리나라 석탑의 건축적인 요소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 할 수 있다.
▲ 사진2.여산왕생원보협인탑
▲ 사진3.액안사보협인탑
▲ 사진4.관음원보협인탑
▲ 사진5.약사사보협인탑
조성 년대가 확실한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259년에 조성된 높이 205cm의 여산왕생원(輿山往生院)〈사진2〉의 보협인탑을 위시하여, 1260년의 액안사(額安寺)〈사진3〉, 1263년의 관음원(観音院)〈사진4〉, 1279년의 약사사(藥師寺)〈사진5〉 등은 모두 나라현에 있는 같은 시대의 보협인석탑이다.
일본의 역사에서 약 150년간 지속 된 무사정권시기인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에 조성 된 보협인석탑은 현재 까지 수 백기 이상이 일본 전역에 존재한다. 이러한 사실은 그 당시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불탑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막부의 명을 받아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는 살생 등 악업은 계속 행하게 되며, 이를 참회하고 극복하기에는 현세이익적인 ‘보협인다라니경’의 신앙은 그 어느 경전보다도 위안이 되었으며, 보협인탑의 조성이 유행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탑을 조성하는데 비교적 비용이 적게 드는 경제적인 측면도 크게 작용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6) 오륜탑(五輪塔)
〈대일경소(大日經疏)〉에 의하면 ‘지륜정방, 수륜원, 화륜삼각, 풍륜반월형, 최상허공작일점(地輪正方 水輪圓 火輪三角 風輪半月形 最上虛空作一點)이란 내용이 있다. 즉, 지륜은 사각형, 수륜은 동그라미, 화륜은 삼각형, 풍륜은 반달형, 제일 위의 허공륜은 한 점을 찍음이라!’ 이것은 불교의 우주관을 상징적으로 표현 한 오륜탑의 구조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우주의 구성요소인 오대를 상징하는 오륜탑은 하부에 땅을 의미하는 사각형의 지륜, 그 위에 물을 상징하는 원형의 수륜, 불을 상징하는 삼각형의 화륜, 바람을 상징하는 반월형의 풍륜, 제일 위에는 공을 상징하는 여의주 형태의 공륜이 있는 5층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각각의 부위에는 범어로, 땅, 물, 불, 바람, 공(空)이라고 음각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의 오륜탑은 헤이안시대(794~1185) 부터 조성되어 오늘에 이르기 까지 꾸준히 조성되고 있으며, 보협인탑과 비교하여도 수량으로는 우열을 가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다.
절대 편년을 알 수 있는 것으로 가장 오래된 오륜탑은 1169년에 조성된 암수현(岩手県) 석존원(釈尊院) 오륜탑〈사진6〉을 비롯하여 1170년의 대분현(大分)의 중미(中尾) 오륜탑〈사진7〉과 나라현의 당마북묘(?麻北墓)〈사진8〉, 교토의 법계사(法界寺)〈사진9〉오륜탑 등은 모두 헤이안시대에 조성된 오륜탑이다. 특히 나라현에 있는 액안사 오륜탑군(五輪塔群)〈사진10〉은 가마쿠라시대에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높이는 111~281cm로 다양하여 마치 중국의 탑림과 우리나라의 승탑군을 연상하게 한다. 실제로 일본에서의 오륜탑은 승탑의 용도뿐만 아니라 재가불자의 분묘의 용도로도 조성되고 있다. 

▲ 사진6. 석존원오륜탑 높이 158cm
▲ 사진7. 중미오륜탑 높이 151cm
▲ 사진8.당마북묘오륜탑.높이 245cm
▲ 사진9. 법계사 오륜탑
▲ 사진10. 액안사 오륜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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