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로 읽는 古典 - 홍자성의 〈채근담〉

明代 홍자성이 쓴 격언집 ‘채근담’
난세에 인기 모으는 처세술 명저
韓 최초 해설서 저자는 만해 스님

판본 유통·판각, 사찰서 주로 진행
저자, 禪 조예 깊어… 불교사상 담아
‘不染着水’ 보살같은 군자상 그려

▲ 월정사 만월선원에서 정진 중인 수좌 스님들. 선에 조예가 깊었던 중국 명나라 시대에 홍자성은 불교와 유교 등 동양사상의 명구들을 모아 〈채근담〉이라는 수상집을 썼다.
‘채근담’은 중국 명(明) 말기인 만력(萬曆) 연간(神宗47년, 1619년)에 홍자성(洪自誠)이 쓴 짧은 격언 모음집이다. 명나라 때 처세의 비결을 담은 뛰어난 3대 걸작인 ‘처세3대기서’(진계유의 〈소창유기〉, 왕영빈의 〈원로야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명나라 말기에는 나라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난세였다. 난국을 슬기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처세의 기술이 중요하여 지혜의 격언을 담은 지침서가 필요하였다. 중국이나 한국 일본에서 ‘채근담’이 많이 유통 유행할 때는 전쟁 중인 난세였다.

‘중문대사전’에 장개석(蔣介石)이 〈채근담〉을 극찬하며 세상에 널리 펴도록 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모택동(毛澤東)도 〈채근담〉을 항상 곁에 두고 평생 읽어야 하는 애독서로 삼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전쟁 중인 1910년 무렵부터 〈채근담〉이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책들이 간행되었다. 야마다 다카미치(山田孝道)의 〈채근담 강의〉가 발행되면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샤쿠 쇼엔(釋宗演)의 〈채근담 강화〉는 1926년 초판을 찍은 후 45쇄를 찍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만해 한용운이 최초로 소개하였는데 그것이 〈정선강의 채근담〉이다. 1917년 신문관에서 발행하였는데 몇 달 만에 매진이 되고, 1921년 동양서원에서 재판을 냈다. 한용운은 일제강점기에 조선 청년의 정신력을 진작시키고 인격을 닦는 수양서로 〈채근담〉을 선택한 것이다. 그 밖에 조지훈은 1962년 현암사에서 ‘채근담’을 역주하여 간행하였다.

‘채근담’이 불교적인 이유
홍자성은 〈채근담〉과 〈선불기종(仙佛奇?)〉의 저자로서 이름은 응명(應明), 자(字)는 자성(自誠), 호는 환초도인(還初道人)이다. 명나라 신종(神宗) 만력(萬曆) 연간에 두 저서를 남긴 사람이나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다만 〈채근담〉에서 스스로 “나는 석씨(불교)의 인연을 따르고, 유가를 근본으로 한다.”고 밝힌 내용이 있어, 유가인으로 불교와 도교에 정통한 재야 사상가로 볼 수 있다. ‘채근담’과 ‘선불기종’의 내용이 불교와 도교의 내용이 많이 포함되고 융해되어 있어 그의 사상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채근담〉의 명각본(明刻本) 제사(題辭)를 쓴 친구 우공견(于孔兼)이 글에서 “나의 친구 홍자성이 〈채근담〉을 나에게 보이면서 서문을 부탁하였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홍자성이 우공겸과 함께 명대 신종 만력시기에 함께 생존한 무명의 사상가임을 알 수 있다. 우공겸은 ‘명사(明史)’에 수록된 인물로 만력 8년(1580년)에 과거에 급제한 인물이다.

〈선불기종〉은 만력 임인년(1602년)에 완성되었다. 이는 ‘사고전서총목제요’에 수록된 책으로 도교의 노자(老子)부터 위백양(魏伯陽)까지 46인과 인도불교의 석가모니부터 학륵나(鶴勒那) 등 17인, 그리고 중국 선종의 달마대사부터 법명화상까지 37인 기타 10인 등 모두 110명의 전기(傳記)를 그림과 함께 저술한 전기체 저술이다. 이로써 홍자성이 불교 선학에 조예가 깊은 유행불심(儒行佛心)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채근담〉은 크게 두 종의 판본이 있다. 원본인 만력본(홍자성본, 명각본, 略本, 1619년)과 건륭본(홍응명본, 廣本, 1794년)이다. 두 본의 구성과 내용의 크기가 차이가 있어 작자가 서로 다른 이명(異名)일 수 있다는 혼란이 있어 왔으나, ‘홍응명 찬’으로 알려진 ‘선불기종’에 “홍응명이 지었고, 홍응명의 자는 자성이고, 호는 환초도인인데 사는 곳과 출신은 자세하지 않다.”고 되어 있어 홍응명과 홍자성이 동일인물임이 밝혀졌다.

만력본은 우공겸의 제사가 붙어있는 판본인데, 건륭본은 우공겸의 제사가 삭제되었다. 이 때문에 건륭본의 편찬자가 승려라는 설이 있다. 환초당주인의 식어에 “예전에(만력본) 서문이 있었으나 순리에 맞지 않고, 또 이 책과 관련이 없는 말이므로 빼버렸다.”는 내용이 있다. 우공겸의 제사에 “축건(竺乾: 불교)의 업(業)을 행하는 이가 있으면 배척한다.”는 척불(斥佛)의 내용이 편찬자의 비위에 거슬렸기 때문에 삭제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만력본은 책의 구성이 항목을 표시하지 않고 전집(前集)과 후집(後集)으로 분류하였다. 장수(章數)가 360장(약본)이 못된다. 이에 반해 건륭본은 책의 목차를 수성(修省)·응수(應酬)·평의(評議)·한적(閑寂)·개론(槪論)의 5부분으로 분류하였다. 마지막 부분인 ‘개론’에 만력본의 내용 대부분이 수록되었다. 장수는 544장(광본)으로 추가 증보되었다. 건륭본은 승려 내림(來琳)이 편찬한 내림본과 같다. 따라서 건륭본의 편찬자를 내림일거라는 내림설이 있고, 환초당주인도 내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한용운 스님의 〈정선강의 채근담〉의 저본은 일본에서 유행했던 일본유전본인 만력본이 아니라, 내림본(건륭본, 광본)이다. 불가(佛家)의 입지에서 내림의 의취(意趣)와 통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 유통되는 중국유전본(中國流傳本)은 청나라 동치(同治) 을축년(1865년)에 보광사(寶光寺)에서 판각한 판본 계통이다. 그러나 이 ‘보광사본’의 원본은 청나라 건륭40년 제원(際願)의 서문이 있는 양주각본이다. 만력본(명각본) 전집·후집과 보광사본의 권상만 합하면 ‘채근담’ 전체 544장이 모두 갖추어진다.

동양사상 名句 담아낸 ‘채근담’
〈채근담〉은 유불선 삼교를 융합한 정신 수양서이며 처세방법을 가르치는 책이다. 홍자성의 종교는 유교이다. 〈채근담〉의 이상적 인물은 군자이다. 그러나 정통 유가에서 말하는 군자상, 즉 입신양명하여 관직에 나아가 나라에 충성하는 군자가 아니다.

〈채근담〉에서 “권세와 명리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을 깨끗하다고 하나 가까이 하면서도 물들지 않는 사람이 더 깨끗하다”고 한 바와 같이 더러운 연못 속에서 머물면서도 거기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불염착수(不染着水)하는 불교의 보살과 같은 군자상이다.

홍자성은 〈채근담(만력본)〉 첫 번째 잠언에서 “도덕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 쓸쓸하고 외로우나, 권세에 빌붙어 아부하는 사람은 영원히 불쌍하고 처량하다.”고 하였다. 작자의 자화상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그는 권력에 아부하고 빌붙는 선비를 낮게 보았다. 그가 바라는 군자상은 세련되고 능숙하기보다는, 소박하고 세속에 초탈하여 호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채근담’의 채근(菜根)은 ‘나무뿌리’라는 뜻이며, 담(譚)은 ‘이야기’를 뜻한다. 홍자성이 책이름을 정할 때 ‘소학’에 “사람이 나무뿌리를 항상 먹을 수 있다면 어떠한 일이라도 못할 것이 없다.”고 한 의미를 가지고 결정하였을 수도 있겠다. 본문의 “보리밥에 콩나물국만 차린 간소한 식사를 마치고 젓가락을 놓으면 입안이 향기롭다.”고 한 내용이 책의 이름에 걸맞다.

〈채근담〉은 처세 방법과 정신수양에 대하여 유불선의 경전에 나오는 명구를 바탕으로 자신이 체험한 세계를 가벼운 수상 형식으로 기술한 책이다. 대구를 통한 명쾌한 표현과 촌철살인적인 잠언은 이 책의 장점이다. 예컨대 “더러운 땅에는 많은 식물이 자라나고 맑은 물에는 항상 고기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더러움을 받아들이는 도량을 가져야지 깨끗함을 좋아하여 홀로 행동하는 지조만 가져서는 안 된다” 등이다. 홀로 행동하는 지조는 위태롭다. 독선이다. 자신의 빛을 죽여 화광동진(和光同塵)하여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만 ‘채근담’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정리한 학술적인 책이 아니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견해를 나열하며, 소극적인 현실안주의 모습도 눈에 뛴다. 예를 들면 “부귀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은 욕심을 내는 것이 사나운 불길 같고 권세를 좋아함이 매서운 불꽃 같으니, 만일 이러한 사람이 청량하고 냉철한 정취를 지니지 않는다면 그 불길이 남을 태우는 데 이르지 않더라도 반드시 스스로 태워 자멸하게 될 것이다.” 이는 부자들에 대한 편협한 작자의 선입견을 술회한 것이다.

불교로 보는 ‘채근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홍자성은 불교와 선사상에 정통해 있었다. 따라서 ‘채근담’에는 불교교리나 선사상과 일치하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모든 중생에게 착한 자비심과 불성이 있음을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대자비심을 가지고 있으니, 유마거사나 백정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유마거사나 소를 잡아 죽이는 잔인한 백정이나 본심은 자비심과 불성을 가지고 있다. 단지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이 고약하여 자비심을 발휘하지 못할 뿐이다. 살인마 앙굴리말라는 살생의 죄를 뉘우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성자가 되었다. 백정에게도 불성과 자비심이 있다는 증거이다.

마음이 한 덩어리의 맑은 구슬임을 설한 내용이 있다. “마음은 맑은 구슬이므로 물욕으로 마음을 막고 가리는 것은 맑은 구슬을 진흙과 모래에 섞는 것과 같아서 씻어내기가 오히려 쉽다. 그러나 감정과 그릇된 인식으로 마음을 덮어 가리면 맑은 구슬에 금은을 입히는 것과 같아서 씻어내기가 매우 어렵다.” 마음은 투명한 구슬과 같다. 붉은 색깔이 비추면 붉은 구슬이 되고, 푸른 색갈이 비추면 푸른 구슬이 된다. 더러움을 정화시키는 수청주(水淸珠)요, 모든 것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여의명주이다. 이 마음구슬이 오염되면 빛을 발휘할 수가 없다. 물욕보다도 잘못된 감정이나 인식에 오염되면 회복되기가 더 어렵다고 설하고 있다.

공의 이치를 깨달아 집착하는 마음이 없으면 성인이 될 수 있음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참다운 사람이 되는 길은 대단히 높고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속세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곧 이름을 남길만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학문을 하는 데는 공부를 무작정 많이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사물에 얽매이는 일이 없어지면 곧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형상에 집착하는 마음이 떠나면 ‘금강경’에서 말하는 ‘이상불(離相佛)’이다. 부처가 된다는 말이다. 물질에 대한 집착, 나에 대한 집착과 아만 이것이 고통을 만드는 씨앗이다. 집착만 끊으면 부처이다.

선가(禪家)에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하는 ‘무자경(無字經)과 몰현금(沒絃琴)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글자가 있는 책은 읽을 줄 알지만 글자가 없는 책은 읽을 줄 모르며, 현이 있는 거문고는 탈 줄을 알지만 현이 없는 거문고는 탈 줄 모른다. 형체는 사용하고 정신은 사용하지 않으니, 어찌 거문고와 책의 참맛을 터득하겠는가.” 마음속에 문자가 없는 경전이 있다. 또 마음속에 줄이 없는 거문고가 있다. 마음을 고요히 하여 삼매의 경지에 이르면 그 책을 읽어 깨달음을 얻고, 미묘한 거문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김형중 동대부중 교감, 문학평론가
그윽한 선경(禪境)의 세계를 노니는 탈속(脫俗)한 도인이 읊조리는 구절이 있다. “성긴 대밭에 바람이 불어도 바람이 지나가면 대나무에 소리가 머물지 않는다. 기러기가 차가운 연못 위를 건너도 기러기가 건너가 버리면 연못에 기러기의 그림자가 머물지 않는다. 군자도 일이 있으면 마음이 비로소 나타나고 일이 끝나면 마음도 따라서 빈다.” 대나무가 둘러있는 연못에 가을바람이 불고, 하늘에 기러기가 날아가는 한 폭의 동양화와 같은 시상이 느껴지는 명문이다. 공의 이치를 깨달은 탈속한 도인은 지나간 일에 연연하거나 집착하는 마음이 없다. 짐을 못잊어 짊어지고 다니면서 삶을 헉헉거리지 않는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걸림이 없는 구름처럼 사는 것이 자유인의 삶이다.

‘채근담’은 불교와 선가의 멋진 풍모가 느껴지는 천금과 같은 글귀가 많이 있다. 그래서 우리 선가의 스님들이 ‘불교로 보는 채근담’을 강의한 것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