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15〉 영축산 통도사 영산전

한자음역 육자진언, 중생 근기 맞춰
불보살의 불생불멸 상주법계 드러내
순환, 회전, 대칭의 코스모스적 운행
칠언절구 문학적 운율 갖춘 게송 표현

육엽연화문에 불보살의 상주법계는 물론이고 사시예불, 장엄염불, 옹호게 등 유례없는 미증유의 진리게송과 염불을 장엄했다
천정은 일체유심조의 마음이 빚어내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축의 천정(天井)세계는 일반적으로 장엄(莊嚴)세계다. 구상과 추상, 상징들의 회화와 조형, 문양들로 조화롭게 짜여 있다. 실내의 어둠과 깊이에서 시간에 따라 드러나고 잠기면서 때론 거룩하게, 때론 위대한 아름다움으로 인간의 머리 위에서 밤하늘의 은하처럼 빛난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 궁륭천정에는 성경 속 서사의 프레스코화로 가득하며, 고구려벽화고분 천정엔 도교적 신들의 세계와 별자리, 생활풍속화, 생명력의 기운이 흐르는 신령의 문양들로 빼곡하다. 그 세계는 단순히 꾸며놓은 평면적 회화세계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철학이며 종교이고, 숭고한 아우라의 정신세계다. 한 시대, 한 사회의 총체적 삶과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일체유심조’의 마음이 그 세계를 창조했다.

현존하는 한국의 불전건물 대부분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치명적 전란을 거친 16세기 이후의 건축물이다. 사회적 기반이 거의 무너진 사회경제적 조건은 한 사찰에 하나의 중심불전 정립을 정착시켰다. 대웅전, 극락전 등이 한 건물에 통합되었고, 건축역량도 중심불전건물에 집중되었다. 우물천정 칸칸에도 정화된 일체의 마음이 작용했다. 사회 저변에 흐르는 민중의 염원과 불교의 화장세계(華藏世界), 그리고 거룩한 진리, 엄숙한 신성, 부드러운 자비를 집합적 군집의 형태로 표출했다.

진리가 갈무리 된 범자종자불

칸칸은 독립된 하나의 독자성이면서, 동시에 전체의 한 부분을 이루었다. 부분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부분이 있는 프랙탈기하학의 생명생성 원리가 전개되었다. 천정은 평면이면서 중중(重重)의 공간세계다. 깊고도 중층적인 상의(相依)의 세계로 펼쳐졌다. 삼천대천의 화엄세계다. 칸칸이 불교세계관의 종자를 심었다. 범자종자불 씨앗을 뿌렸고, 여래장 불성(佛性)을 심었고, 부처님의 말씀을 소중히 갈무리해서 내장하였다. 우물반자 격자 틀을 불성의 논밭으로 일구었다. 그 밭에서 성스러운 불성들이 불립문자로 돋아났다.

그를 키운 건 자비의 봄이었고, 적멸의 침묵이었다. 무위의 봄이 천정 칸칸에 함장되어 있었다. 봄은 머무는 바도, 머물지 않는 바도 없다. 오고 감도, 형상도, 소리도 없다. 그런데 뭇 생명을 소생시키고 기룬다. 봄이 부처고, 부처가 봄이다. 연두빛 새싹이 돋아나는 봄의 대지는 정토(淨土)다. 봄의 대지엔 대지를 뚫고 돋아나는 신명의 새싹들로 금이 가고, 쇄빙선이 지나는 파열음으로 진동한다. 신선한 생명의 풋내가 천지에 가득하고, 생명의 나무에 우화(雨花)의 꽃이 핀다. 여섯 가지 상서로운 법화육서(法華六瑞)가 일어난다.

중생의 다양한 표정처럼 격자의 교점마다 시들지 않는 자비의 마중물로 가지가지 형상의 꽃을 얹었다.
천정장엄 연구에 중요한 실마리

봄이 세간의 대지에 오듯이 부처께서 번뇌 등 다섯 가지 흐린 오탁악세(五濁惡世)의 예토에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출현하신 뜻도 바로 그러함 때문이다. 중생에게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고(開), 지견을 보이고(示), 깨닫게 하여(悟), 해탈에 들게함(入)으로 일체종지의 정토로 제도하기 위해 출현하신다.

그런데 중생 저마다가 가지가지 욕망과 집착으로 저마다 다른 성품과 근기를 가져 가지가지 인연과 비유, 방편으로 쪼개고 나누어서 병따라 처방하신다. 천정의 화장세계도 고차적 관념인 불성의 조형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꽃이 꽃이 아니고, 문자가 문자가 아니다. 불가설불가설의 불교 세계관을 고도로 압축한 상징이자 메타포다. 그래서 천정장엄의 본질을 파악하기가 난해하고, 제 눈의 안경이 되기 십상이다. 불화처럼 천정장엄에 대한 화기(畵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천정장엄에 대한 교의적 바탕이 되는 소의경전(所依經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자니 천정의 꽃만 보면 그나마 교의적 근거로 삼을 수 있는 〈법화경〉 서품에 나오는 ‘우화의 상서’라고 단정짓곤 한다. 그것은 국화를 아는 사람이 모든 꽃을 국화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통도사 영산전 천정장엄은 천정장엄세계의 풍부함과 광대무변(廣大無邊)함, 철학적 깊이의 실상을 낱낱이 자내증으로 드러내고 있어 불교미술사학과 천정장엄 연구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자전과 공전처럼 회전 속 회전

영산전은 통도사 적멸보궁, 부석사 무량수전, 마곡사 대광보전처럼 두 축을 갖추고 있다. 출입동선은 남북방향인데, 예배공간은 90도 꺽인 동서방향이다. 천정양식은 상하2단 층급우물천정이다. 사방 가장자리 천정의 우물칸 수는 124칸이고, 중앙의 상층에 경영된 우물칸 수는 156칸으로, 총 280칸 우물반자 칸칸에 모란, 넝쿨형 신령의 꽃, 그리고 6엽연화문을 베풀어 풍부하고 독특한 벽화와 함께 미증유의 장관을 이루고 있다.

중앙칸 천정은 밀교적 금강계만다라의 오대오불(五大五佛)의 세계이다. 붉은 바탕의 천계에 노란 생명의 줄기가 소용돌이처럼 감겨 나가고, 주간에서 다시 새로운 인연의 힘이 뻗쳐나가 역방향으로 돌아나간다. 만유의 자전과 공전처럼 공전 속에 자전을, 회전 속에 회전을 반복한다. 가운데 금니 씨방부분은 자등명으로 미어터져 여기저기서 봄의 생명력이 폭발한다. 삼라만상의 순환, 회전, 대칭의 코스모스적 운행이 아름다운 오방색 색채로 축소조영되어 있다. 그 조영은 한없이 반복적으로 확대재생산 되며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의 화엄법계를 이룬다. 그것은 천상 설레임 같은 미묘본심이 일렁이는 봄의 대지를 닮았다. 봄은 오고가지만 줄어들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 비로자나 법신의 세계다.

삼라만상의 순환, 회전, 대칭의 코스모스적 운행을 표현했다.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의 화엄법계를 이룬다.
유기물 원자의 공유결합 같은 법계

사진가인 나는 영산전을 숱하게 찾아가서 천정에 새겨진 조형문자와 문양들을 낱낱이 영상에 담았다. 나의 주목을 끈 것은 영산전 가장자리 천정, 그 중 동서 양협칸 천정 84칸의 우물반자에 베푼 6엽연화문의 문자종자들이었다. 문자언어가 담고 있는 세계를 인내력을 갖고 빠짐없이 분석해보았다. 그 세계는 차마 놀라왔다. ‘옴마니반메훔’의 범자진언은 물론이고, 한자로 음역된 육자진언도 있어 중생의 근기에 맞춰 조영의 뜻을 전달하려는 언어학적 관용과 방편에 경건함을 자아냈다. 6엽연화문은 평면회화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4중의 중중구조를 지닌 입체다. 맨 아래에 아직 분화되지 못한 미혹의 검은 꽃잎이 있고, 그 위에 여러 불보살과 경전의 진리가 펴져 법계를 이룬다.

여섯 꽃잎 위에 여섯 개의 보주입체가 유기화합물 원자들의 공유결합처럼 원자쌍으로 결속해서 새로운 맹아를 구축하고 있다. 종자범자나, 칠언절구의 마지막 글자를 얹어 한 칸을 일단락 지었다. 법열의 가지가지 형상은 중생의 가지가지 표정처럼 격자의 교점에 화룡점정으로 얹었다. 시들지 않는 자비의 마중물이 적멸의 세계에서 별처럼 빛난다.

헌좌진언, 장엄예불 미증유의 표현

여섯 종자, 혹은 일곱 종자로 드러내고 있는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고 광대하다. 이러한 작법은 어느 불전장엄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부사의(不思議)한 미증유의 신통력이다. 무엇보다 먼저 빈번하게 출현하는 세계는 불보살의 세계다. 석가모니,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의 지혜, 공덕을 총섭해서 부처의 만다라, 곧 불국토를 펼쳐 두었다. 청정도량에로의 봉청(奉請)의 뜻도 담겨 있다. ‘불신보변시방중(佛身普遍十方中)’과 ‘삼세여래일체동(三世如來一體同)’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상주법계를 자내증으로 내보인다. 석가모니와 아미타여래, 관음보살은 대승적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보다 풍부하게 장엄했다. 특히 불전건물의 성격에 상응하여 〈법화경〉 서품과 영산회상의 상서도 빠트리지 않았다.

불생불멸의 상주법계를 정법안장한 후, 사구게나 칠언절구의 문학적 운율을 갖춘 여러 게송과 진언으로 진리법을 드러냈다. 법(法)의 공덕과 법의 장엄(莊嚴)이 문학적 아름다움으로 더해져 적멸의 고요함은 보다 은유적으로 내밀화 하였다. 법화경 사구게, 예불문, 사시예불의 〈헌좌진언〉, 〈장엄예불〉, 〈공양게〉,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아미타불 〈관불게〉. 예수재 〈옹호게〉, 영산재 등에서 행하는 시련 〈옹호게〉 등 장엄의 영역은 무시무종 광대무변으로 펼쳤다. 실상은 천정의 개념을 완전 비우고 여읜 진리의 바다다. 불보살의 상주법계이며, 자비와 경전의 바다, 교해(敎海)다.

〈금강경오가해〉에 나오는 종경스님의 게송 한 구절이 천정에서 빛난다.

천강유수천강월(千江流水千江月)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
천 강에 물이 있으니 천 강이 달이요,
만 리에 구름 걷히니 만리의 하늘이도다.

통도사 영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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