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혜로운여성 가족지원센터 창립기념 특별강연회

▲ 미산 스님은 … 불교 명상 현대화, 학문과 수행이 결합된 생활 및 실천 불교 확산에 힘쓰고 있다. 스리랑카와 인도에서 불전 언어인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 문헌을 연구하고, 1992년 인도 뿌나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 1999년 영국 옥스퍼드대 동양학부에서 ‘테라와다 불교의 찰나설, 그 기원과 발전’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2000년부터 2년간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이후 귀국해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과 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교수 및 총장 직무대행 등을 거쳐 현재 서울 상도선원 원장으로 주석 중이다.사진=박재완 기자

불교에는 가정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이론적 바탕과 실제적 행법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미산 스님은 10월 2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사)지혜로운여성 가족지원센터 ‘부처님은 가정과 부부를 어떻게 보시는가’를 주제로 창립기념 특별강연을 펼쳤다. 강연에서 스님은 ‘가족에 대한 불교적 이해와 실천’이라는 주제의 토대가 될 수 있는 불교의 핵심 사상인 연기와 중도적 삶의 의미를 다루고, 일상에서 연기와 중도적 삶의 실천법을 설명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부처님이 가정과 가족을 어떻게 보시는지, 어떤 것이 바람직한 가족 관계이며 부부 관계인지 등 현실적인 문제들을 경전을 통해 살폈다. 다음은 미산 스님 강연의 요지다. 

‘나’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지만
우리는 홀로 존재할 수 없어
연기 이해·체험하면 만물에 감사
기쁨 충만한 공존생활 하게 해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다. 불교를 배우려면 부처님이 어떤 분이고 무엇을 가르쳤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 현대인에게 가장 유용한 가르침은 연기(緣起)와 중도(中道)사상이다. 부처님은 깨달은 분이다. 깨달은 분의 관점을 두 가지로 정리해 말 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부처님은 인생의 이치와 만물의 이법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연기법을 철저히 깨닫고 체화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두 번째는 우리는 있는 그대로 온전한 존재로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도 부처님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붓다이고 붓다는 ‘깨달은 존재’라는 뜻이다. 우리는 깨달은 존재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불교다.

현대사회에서는 연기법의 깨달음에 대한 가르침을 철저히 하고 그것이 삼세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교리와 실천방법을 통해 전해야 한다.
연기법을 교리로 생각하고 개념화하면 어려워진다. 실제 경험하고 있는 현장에서 연기법을 몸으로 깨닫기 시작하면 우리 삶 전체가 연기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기법은 세 가지로 구성돼있다. 첫 번째는 원인이 항상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무수한 조건이 있어야 한다. 세 번째 원인과 조건을 통한 결과가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인드라망처럼 계속 연결돼 삼라만상이 벌어지고 있다. 연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다.

연기법을 이해하고 실천 했을 때 우리 삶이 어떻게 바뀔까. ‘나’ 중심의 삶이 아니라 우리 중심의 삶, 함께 하는 삶이 이루어진다. 연기법을 자세히 이해하면 우리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함께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개개인이 ‘나’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부처님은 초기경전에서 ‘나’에 대한 많은 법문을 하셨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무엇일까? 여기에 앉아 있는 여러분은 시간에 의해서 형성된 존재다. 시간에 의해서 여기에 있게 된 존재라는 말이다. 부처님께서 얻으신 깨달음도 ‘나는 연기적 존재다’라는 것이다. 바꾸어 얘기하면 ‘나는 오온(五蘊, 色ㆍ受ㆍ想ㆍ行ㆍ識)으로 연기한 존재다’라는 뜻이다. 이 다섯 가지 연기로 있는 존재를 ‘나’다 ‘인간’ 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연기적 존재인 나를 시간의 관점에서 세심히 살펴보면, 어느 날 갑자기 ‘나’라는 존재가 지구촌에 툭 떨어져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과 거슬러 올라가면 조부모님, 그 위의 모든 조상님들이 있었기에 지금 ‘나’라는 존재가 여기에 있게 된 것이다.

나로부터 20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약 2백만 명 이상이, 30대를 소급해서 올라가면 약 21억이 넘는 조상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엄격히 따져 보면, 30대 앞에 계셨던 21억의 조상님 가운데 한 분만 계시지 않았더라도 지금의 나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역사의 모든 인물들이 직ㆍ간접적으로 나와 연관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분들 중에는 부처님과 예수님과 같은 위대한 영적 스승님이 있을 수도 있고, 인류의 문명을 질적으로 변화시킨 많은 성자들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어떤 존재도 공경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대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두 번째는 기쁨 가득한 공존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연기법을 이해하고 체화하기 시작하면 기쁨 가득한 공존생활을 하게 된다. 아무리 내가 혼자 잘해도 이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부정적인 측면으로 변화 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조사와 보고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특히 인간의 무자비한 개발로 환경이 파괴되고 생태 교란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큰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기적 사유를 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인간들끼리만 연결된 것이 아니라 지구의 생명체들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면 사실 가정 문제도 근원적으로 접근할 수가 없다. 환경, 인간과 더불어 많은 것들과 함께 했을 때, 우리가 연기법을 실천하는 길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네트워크 정보화시대다. 관계를 중요시여기고 관계를 통해 삶이 역동적으로 드러나는 시대다.
지능지수를 IQ(Intelligence Quotient)라 하고 감성지수를 EQ(Emotion Quotient)라 하듯이 정보화 사회에서 서로 공존하며 살 수 있는 능력을 공존지수, 즉 NQ(Network Quotient)라 한다. 공존지수가 정보화 사회의 삶을 영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측면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불교적으로 말하면 지금 우리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네트워크 시대는 연기법의 응용이 극대화된다는 의미다. 농경시대에 사용했던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보다는 네트워크 시대에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란 말이 더 설득력 있고 적합하다는 것이다. 즉, NQ시대의 생존 전략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가 아니라 ‘네가 잘살아야 나도 잘 산다’는 공존의 법칙이 유효하다.

철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저서 〈공감의 시대(The Empathic Civilization)〉에서 위기에 필요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는 다윈의 적자생존이 아닌 공감하는 인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경제사에 ‘공감’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제시했다.
결론은 연민과 자비의 마음으로 공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이 전 세계에 확산되려면 명상을 통해 해야 한다.

행복한 가정 위한 부처님 가르침
이제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가족 간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부처님은 〈잡아함경〉에서 가족에 대해 “가족이란 식구들이 즐거울 때 같이 즐거워하고 괴로울 때 같이 괴로워하고 일할 때 같이 뜻을 모아 일하기 때문에 가족이라 한다”고 정의를 내렸다.

가정사에 대한 가르침이 가장 많이 나오는 한역 경전이 〈선생경(善生經)〉 혹은 〈육방예경(六方禮經)〉이다. 빨리어 경전으로는 〈시갈로와다 숫따(Siggalovada Sutta)〉라 한다. 〈육방예경〉에서는 ‘육방’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동방은 부모님께 절을 하는 것이요, 남방은 스승님께 절을 하는 것이며, 서방은 아내에게 절을 하는 것이고, 북방은 친지들에게 절을 하는 것이니라. 그리고 하방은 하인에게, 상방은 수행자들에게 절을 하는 것이니라.”

이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우주 공간, 즉 동서남북과 허공의 상하, 6방을 향해 경건하게 절을 하며 다양한 인연들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내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육방과 관계된 모든 분들을 어떻게 받들어 모셔야하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가르치셨다. 부처님은 자식이라는 존재는 부모의 부속물이 아니라 부모를 인연으로 태어난 독특한 인격 주체이므로 아버지의 엄격한 사랑과 어머니의 온화한 보살핌이 잘 조화를 이루어 자식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가르쳐서 독립시켜야 한다고 충고했다. 부처님은 △악으로부터 보호하고 멀리 벗어나게 한다. △선으로 인도해야 한다. △학업을 배우게 하고 기예(技藝)를 가르친다. △어울리는 짝을 구해 결혼시켜야 한다. △적당한 때에 가산을 상속시켜 주어야 한다 등 부모가 자식에게 해야 할 5가지 덕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첫째, 악으로부터 보호하라는 말씀은 자식이 나쁜 일을 하면 올바르게 하도록 꾸짖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한다. 그만큼 귀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쁜 일을 하게 되면 두 번 다시는 그 나쁜 일을 행하지 못하도록 혼을 내라는 것이다. 현대의 부모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다. 요즈음 부모들은 아이들을 귀여워만 하지 꼭 필요할 때 엄하게 꾸짖어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둘째, 가르치고 일러주어서 그 착한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착한 일이 무엇이다, 무엇이 착한 일이라는 것을 아이에게 일러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부모의 사랑이 자식의 뼛속까지 사무치게 하여 바르게 가르치고 아낌없이 주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덕목을 통해 진실과 사랑을 가지고 자식이 훌륭한 사회인이 되도록 돌보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이 바로 부모의 도리인 것이다.

또한 자식은 △부모님을 정성껏 봉양해야 한다. △부모님을 대신하여 집의 온갖 책임을 다해야 한다. △부모님께 순종해야 한다 △잘 받들어 편안하고 기쁘게 해야 한다. △위와 같은 효행을 잘 실천해야 한다. 등 5가지 덕목으로써 부모님을 섬겨야 한다.

이는 자식은 부모님을 존중하고 봉양하며, 전통을 계승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즉, 효행을 권하고 있지만 단순히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부모의 지중한 은혜를 생각할 때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자식의 도리라고 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쌍방적인 것이다.

부처님은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베풀어야 할 덕목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를 업신여기지 말고 인격적으로 예우한다. △의식주(衣食住)의 걱정이 없게 한다. △다른 여인을 사모하지 않는다. △아내의 친족을 잘 보살핀다. △아내에게 장신구를 사 준다 등을 지켜야 한다.

또한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이 밖에서 돌아오면 일어나서 맞이한다. △집안을 잘 정리하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 시중을 든다. △남편의 의사를 존중하고 재산을 잘 관리한다. △다른 남자에 마음을 팔지 말고 남편에게 얼굴을 붉히며 대들지 말아야 한다. △남편이 휴식을 취할 때는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등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이 얼마나 자상하고 구체적인 말씀인가. 오늘날 삶의 현실과 다를 수 있지만 이 말씀 속에 담겨 있는 속뜻은 가감 없이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덕목들이다. 불교의 부부 윤리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부부간의 사랑과 화목과 존중이다.

부처님께서는 부부를 인생의 길을 가는 도반(道伴)으로서의 동반자로 보았다. 그러므로 일방적인 헌신이나 의무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아내에 대해, 그리고 아내가 남편에 대해 해야 할 도리를 쌍방적 형식으로 실천하도록 했다.

가족에게 지켜야할 덕목들을 말씀한 부처님은 수행을 통해 먼저 마음을 부드럽고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기 위해선 첫째로 마음이 과거, 미래로 가지 않고 지금 현재 여기에 깨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집착하는 것을 내려놔야 한다.

이를 통해 지혜가 충만해 지면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부처님을 대할 수 있는 마음의 문이 열리고 힘이 생긴다. 매 순간 자애와 연민의 마음이 항상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자애와 연민의 마음이 먼저 일어나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애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충분한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생길 때 부부와 부모 자식 간 행복이 넘치고 지구촌 전체가 행복으로 바뀐다. 그래서 진정한 행복의 시작은 나이고, 우리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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