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꽃 절집 천정〈4〉 안동 봉정사 대웅전

어칸과 양협칸 높이 같은 우물천정
후불벽 제외한 모든칸 육자진언 넣어
조형구도는 변화무쌍한 비대칭속 대칭
무위사 극락보전과 비슷한 화려한 진채

봉정사 대웅전 천정에 경영한 두 문양. 위의 문양은 어칸의 것이고, 아래 문양은 양협칸의 문양이다. 어칸은 36칸이며, 양협칸의 우물칸수는 55칸이다.
대웅전 불단 고려 공민왕 10년 조성

봉정사 대웅전 건물은 보물 제55호로 지정되어 오다가 2009년 문화재적 비중을 반영하여 국보 제311호로 승격되었다. 그것은 1997년 대웅전 후불탱화 보존수리과정에서 국내최고로 비정되는 (1435년경) 영산회상 후불벽화가 발견된데 이어, 2000년 대웅전 해체수리과정에서는 종보 보아지, 종도리, 어칸 기둥, 불단 상판 등 네 곳에서 상량문과 묵서가 발견되어 건축내력이 드러나게 된 까닭이다.

특히 대웅전 지붕의 맨 위 종도리를 받치는 종보 보아지에서 발견된 상량문에는 “신라대 창건 500여년이 지난 세종17년(1435년)에 법당을 중창하였음”을 밝히고 있어 지금의 대웅전 건물이 근 600년에 이르는, 고려양식을 계승한 조선초기 건축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묵서기록은 최근 충북대연구팀의 목재연륜연구와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을 통해 밝힌 1434년 연대 측정값과 사실상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대웅전 불단상판 밑면에서 발견된 묵서에는 지정21년, 곧 1361년에 불단을 제작하였음을 밝히고 있어 봉정사 대웅전 불단이 고려 공민왕 10년에 조성된 고려시대 장엄임을 확인해 주며, 또한 봉정사 대웅전이 1435년 중창 이전의 고려시대 요소를 간직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묵서를 통해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찰에만 조영되어 있는 사찰불단의 제작연대 및 제작기법을 비교추론할 수 있는 귀중한 절대연대 기준이 마련된 셈이다.

대웅전 천정
건축과 미술사학의 보고…절대연도와 기준모듈

그런가하면 대웅전 어칸 서쪽 기둥에 쓰인 묵서도 불교미술사학에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어칸기둥 묵서에 따르면 “1436년 여름에 대웅전 내부를 수장(修粧)하고, 단확화주는 각종, 해영, 성월 등 이었음”을 밝혀 시공 연대와 참여자 이름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단확’은 ‘단청’을 이르며, ‘수장’이라는 말은 수장공사라 하여 바닥, 벽체, 천정마감 등 건축내장 마무리공사를 의미한다.

이 묵서를 통해서 봉정사 대웅전 천정장엄이 근 600년에 이르는 중세의 빛임을 짐작할 수 있고, 기록대로라면 영산회상 후불벽화와 천정에 베푼 장엄문양들이 미켈란첼로가 그린 시스티나성당의 프레스코벽화 보다 적어도 70년 이상 앞서는, 거룩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봉정사 대웅전은 건축, 벽화, 불화, 불단, 청정장엄 등에서 편년비교의 절대연도와 양식상의 기준 모듈을 제공하는, 건축과 미술사학의 보고라 하겠다.

천정에 태극기 조형원리로 베푼 육자진언

봉정사 대웅전 천정은 어칸과 양 협칸이 같은 높이로 평평하게 조성된 우물천정이다. 우물칸 수는 어칸에 36칸, 양협칸에 55칸씩, 후불벽 뒤칸에 12칸 해서 총 158칸이다. 후불벽 뒤칸을 뺀 모든 우물칸에는 범어로 ‘옴 마니 반메 훔’의 육자진언을 넣었다. 그런데 어칸과 양협칸에 넣은 문양이 서로 다르다. 두 문양 모두는 태극기의 조형원리를 닮았다. 태극과 건곤감리 사괘 자리에 고도로 관념화 된 연꽃문양을 베풀었다.

우선 어칸의 문양은 천원지방을 상징하듯 태극 자리에 커다란 원형을 넣었고, 사괘 자리에는 피어나는 연꽃의 형상을 시문하였다. 중앙의 원형은 여섯잎으로 육등분하여 왼쪽으로 도는 육자진언을 입혔다. 칸마다 바탕은 검정색 느낌이 들 정도로 짙은 갈색을 두텁게 올렸다. 그 어두운 바탕색에 명도 높은 노랑과 금니의 색채로 육자진언을 입혀 노랑과 금니의 발채를 극대화하고 있다. 원형의 연판 둘레에는 고려불화의 광배에서 보이는 그라데이션 기법을 사용해서 빛이 파장으로 퍼져나가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바탕에는 생명력과 신성의 기운들이 넝쿨처럼 뻗치고 있다.

대웅전 불단 위에 경영한 감입형 보개천정. 위로 밀어올려 장엄한 닫집이다.
순환과 역순환, 비대칭의 대칭

그에 반하여 양협칸의 문양에는 태극과 사괘 자리에 같은 크기의 연꽃을 경영했다. 조형구도는 대칭과 순환인데, 변화무쌍한 비대칭의 대칭이다. 자전, 공전하는 코스모스적 운행질서와 순환성이 엿보인다. 가운데 태극자리의 연꽃을 중심으로 네 개의 꽃자루가 반시계방향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순환하고, 하나의 꽃자루에는 덜 핀 연꽃 봉우리와 시계방향으로 돌아 활짝 피어나는 연꽃이 뻗쳐 나간다. 순환과 역순환이 통일되어 있다. 이 구도를 기하적으로 간결히 도형화하면 卍자가 될 것이다.

무시무종의 태장계와 금강계 만다라

어칸의 문양이 생명력의 자궁, 곧 메트릭스를 간직한 여성성이라면, 양협칸의 문양은 운동에너지가 느껴지는 남성성이다. 그것은 마치 여성성의 태장계만다라와 남성성의 금강계만다라를 격자 한 칸에 압축해놓은 듯한 상징적 모티브를 느끼게 한다. 문양의 개략적 구도에서 도 두 만다라적 모티브를 자아낸다. 두 문양은 어칸에서, 양협칸에서 음양의 이치로 반복적으로 변주된다. 그 반복 속에서 광대무변의 법계가 구현된다. 법의 진리가 가득한, 진공묘유의 무진법계다. 어칸에는 태장계의 만다라가, 양협칸에는 금강계의 만다라가 무시무종으로 펼쳐져 있는 셈이다.

벽면 평방, 대들보 벽화 바탕에 장엄된 인드라망 벽화. 연기법의 화엄세계를 표현한 기하적 추상이다.
고구려벽화, 고려불화 전통 이은 진채기법

봉정사 대웅전 천정장엄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사실은 채색기법이다. 채색기법에는 수묵이 있고, 담채가 있고, 진채(眞彩)가 있다. 수묵은 먹을 물에 풀어 쓰고, 담채는 대개 식물에서 얻은 염료로 색을 입히고, 진채는 광물안료를 아교 녹인 물에 개어 사용한다. 진채는 고구려 고분벽화, 고려불화, 조선불화, 민화의 책가도에 사용된 채색기법인데, 보통 비단이나 종이에 색을 두텁게 쌓아 입힌다. 봉정사 천정장엄의 문양은 진채기법으로 색채를 입힌 진채화다.

그런데 봉정사 대웅전이 중창되고, 단청장엄이 이루어졌던 시기인, 조선왕조실록 세종 23년(1441년) 12월 2일 기록을 보면, 세종께서 사찰불사에서 금과 진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영을 내린다. 즉 세종께서 승정원에 이르기를 “금은주채(金銀珠彩)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니 지금 후 금으로 부처를 도금하고, 진채를 써서 단청을 하는 일이 없도록 육전을 두루 살펴 법을 밝혀 모두 영으로 드러나게 하라.”고 이른 것이다. 이 금령은 엄하게 내려져 1445년에 이르면, 태조 이성계가 창건한 개성의 관음굴, 석왕사 등을 중창하면서 단청을 진채로 쓸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는 청원도 불허하기에 이른다.

색채의 중도…수월관음도 압축한 기하적 추상

봉정사 내부단청은 그 시기에 입혀진 진채인데, 전란과 화마가 유난했던 우리나라에서는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우물천정에서나 겨우 찾을 수 있는 고색창연한 진채다. 차분하고 진중하며 두터운 신뢰감을 자아내서 마치 색채의 중도를 구현한듯 하다. 유위의 색이 무위의 공으로 돌아간 경지다. 들뜸도 없고, 번뇌도 사라진 색이다. 뜻은 드러나고 색은 잠겨 있는 열반의 경지다. 그 빛 속에 공간은 은은하고 고요히 침잠한 관조의 세계를 운영한다. 적멸의 공간이다.

특히 봉정사 대웅전 천정장엄에 입힌 진채에는 고려불화의 전통이 고스란히 읽혀진다. 일본 단잔진자나 다이산지 수월관음도에 베푼 색채조합, 곧 검은 갈색계통의 바탕에 붉은 주사와 금니(노랑)의 주된 색조조합으로 색의 어둠 속에 형상의 맑은 빛이 드러나게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천정의 연꽃에 베푼 다라니가 ‘옴마니반메훔’이니 연꽃 속에 대자대비의 관음보살께서 환희심으로 나투시고 계신다. 따라서 봉정사 천정 한 칸은 수월관음도를 고도의 관념으로 형상화하고 단순화한 기하적 추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웅전 어칸 불단 위로는 붉은 주사를 입힌 대략 50cm 깊이의 감입형 보개를 경영해서 공간의 위계성을 드높였다. 보개형 감실에는 축소된 포작으로 공간이 가진 신성의 깊이를 더한 위에, 발가락 다섯을 가진 황룡과 적룡이 보주를 다투는 벽화를 올렸다. 이러한 감입형 보개양식의 천정은 대체로 시대가 이른 건축연대를 지닌 무위사 극락보전이나 장곡사 하대웅전 등 서너 곳에서 나타날 뿐이어서 문화재적 가치와 학술적 가치를 더한다.

만세루에서 본 봉정사 대웅전 전경
벽면 평방에 베푼 연기법의 인드라망

뿐만 아니라 봉정사 대웅전에서는 대들보와 벽면 평방에 베푼 문양과 벽화도 주목된다. 문양의 바탕은 육각형과 삼각형, 그리고 원의 얽히고 설킨 결합이다. 이런 문양을 단청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솟을줏대금’이라 부른다. 그런 용어는 조형에 담긴 아무런 뜻도 담아내지 못한다. 그것은 석가탑을 두고 돌무지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평방과 대들보 용 벽화 바탕에 입힌 연속문양의 본질은 연기법의 인드라망이다. 인드라망은 제법무아의 연기법으로 관계하는 우주만유의 그물망이다.

그물망의 매듭마다는 서로를 비추이는 거울이 있다. 만유는 자성이 없는 일체의 연기로서 상입상즉 하는 중중무진의 유기체다. 그래서 부분은 전체이고, 전체는 부분이다. 세계는 연기의 화엄세계다. 그 연기법의 화엄세계를 드러낸 기하적 변상벽화가 봉정사 대웅전 평방과 대들보에 고색의 원형으로 경영되어 있는 것이다. 짙은 녹청의 그물망에 노랑 보주가 빛나고 있다. 저 진리의 연기법을 깨쳐서 하화중생의 보현행원으로 무소의 뿔처럼 갈 때, 그 사람이 진여의 빛, 중도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그것이 하늘에서 빛이 내려온 천등(天燈)의 등불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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