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사찰 건축- 13. 부산 안국선원

형태미 독특한 원형구조 건물
주변 환경과 조화 자연미도 살려
2006년 ‘부산다운 건축상’ 수상

둥근 발코니ㆍ나선형 계단
곡선 살린 절묘한 공간 활용

‘참선’위해 3중 유리창 방음
신도들 위해 탈의실 마련
온전히 ‘공부’위해 지어진 곳

▲ 부산 안국선원은 우주의 무한성을 표현한 원형구조를 택해 독특한 형태미를 보여준다. 동시에 주변 환경과의 조화까지 이루어냄으로써 사찰 건축의 특수성이 지역의 공공성으로 자리잡게 됐다.
지구는 둥근데 땅 위에 있는 것들은 네모난 것들이 많다. 우리는 대개 네모나게 생긴 집에서 네모난 TV를 보며 마찬가지로 네모난 베개와 이불에 파묻혀 잠을 잔다. 손에 닿으면 가까운 것일수록 네모난 것들이다.

부산 금정구 남산동 안국선원은 일상적 ‘네모남’을 거부했다. 컴퍼스를 대고 그린 듯 둥근 건물 세 채가 대지에 서 있다. 야트막한 산의 굽이진 능선을 배경으로 건물의 곡선역시 보드랍게 흐른다. 형태는 독특한데 그리 튀어보인다는 느낌이 없다. 건물의 색깔 때문이다. 초록색 산과 어울리도록 수수한 회색을 썼다. 콘크리트와 통유리가 가로띠처럼 교차해 주변 아파트와 시각적으로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산을 깎다 맞닥뜨린 거대한 암반은 그대로 건물 뒤를 병풍처럼 감쌌다. 건물 사이로 만들어진 산책로는 기존 나무와 풀을 살리면서 조심스레 길을 냈다. 지면을 평평하게 만드는 대신 산의 높낮이를 그대로 활용해 자연스러움을 추구한 안국선원에서는 은근한 멋이 배어나온다.

산 모양에서 지명이 유래한 부산(釜山)과 어울린다고 2006년 ‘부산다운 건축상’도 받았다. 종교건축물이 부산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혔을 정도니 사찰 건축의 함의가 더욱 넓어진 셈이다.
▲ 요사채로 쓰이는 타원형 건물. 둥그런 앞부분은 발코니다.

우주를 옮겨온 건축물
안국선원 건물의 완만한 곡선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우주의 무한성을 담고 싶었다”는 안국선원 설계자 박건 소장(건축사사무소G.A)은 건물의 컨셉을 이렇게 정리했다. 우주 진리, 만물의 근원을 탐구하는 불교를 건축으로 치환해보고자 했다. 시작도 끝도 없이 계속해서 돌아가는 원에서 그 답을 얻었다. 생을 거듭해 맞물려 돌아가는 순환적 관계, 인과의 원리 역시 원안에 담겨있었다.

선을 참구하는 이들이 추구하는 것 역시 본래면목, 깨달은 경지에서 나타나는 자연 그대로의 심성일 터. 윤회의 무한한 굴레를 상징하는 곳에서 세상의 이치를 탐구해 자성을 드러내는 것은 참선도량인 안국선원을 읽는 키워드가 됐다.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 역시 박 소장의 의견을 십분 받아들였다. 스님이 2002년 박 소장에게 건축의 설계를 의뢰하며 주문한 것도 전통 사찰 건축 형태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불교에는 고착화된 상이란 존재하지 않을 터. 있다면 부단히 깨트려야 했다. 스님은 한국 불교의 전통성을 표현하되 동시대인들과 호흡하고 젊은층에게도 거부감없이 다가갈 수 있는 건물을 부탁했다.

박 소장 역시 불교 건축의 역사성이 근대에 들어와 단절됐다며 어설픈 전통 흉내는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찰을 복원했을 정도로 고건축계에서 뼈가 굵은 이의 판단이었다. 고건축을 고집할 경우 경제적 비용도 만만찮았다. 일반 건물에 비해 4배가량 공사비가 더 소모될뿐더러 냉난방, 공간 낭비까지 감수해야 했다.

박 소장에게 남은 것은 어떻게 ‘원’을 현대식 공법으로 구현해내는가였다. 건축학적으로 원은 상당히 까다로운 형태. 박 소장은 대학시절 은사를 찾아갔다. 일본 오사카예술대 카노 타다마사 교수와 머리를 맞대고 안국선원에 응용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곡선 찾기에 나섰다. 큰 방 천장에 실의 양 끝을 매다는 설치미술을 통해 곡선의 다양한 모습을 실험했다. 타원형의 길쭉한 행원과 요사채, 봉긋한 돔 모양의 지붕을 얹은 본동이 만들어졌다. 세 채는 공간적 성격에 따라 나눴고 가운데 본동을 중심으로 건물과 건물을 실내에서 건너갈 수 있도록 동선을 연결했다. 행원에는 공양간과 교육관 등이 자리잡았다. 대지 3610평, 건평 1964평의 안국선원은 설계에만 1년, 완공에 2년이 걸려 2005년 개원했다.
▲ 교육관 내부 모습. 천장과 바닥의 곡선이 강조됐다.

안국선원 백미는 법당
둥근 공간은 시각적으로는 유쾌할지 몰라도 생활하기에 여간 단점이 많은 것이 아니다. 네모반듯한 건물이 공간을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것에 비해 둥근 공간은 죽은 공간이 많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책상 하나를 놓아도 어정쩡하게 죽은 공간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국선원의 묘미는 이 단점에서 시작된다.
본당의 좌우는 원의 곡선을 그대로 살린 나선형 계단이 됐고, 건물의 앞뒤 역시 둥그런 발코니와 법당으로 태어났다. 덕분에 건물 중앙에는 사각형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원을 구획별로 나누어 짬지게 쓴 것을 보면 감탄스럽다. 아몬드처럼 생긴 방 모서리에는 자그마한 찻상을 두고 팽주가 앉을 수 있게끔 공간을 냈다. 그럴듯한 외관에 머물지 않는 내실있는 공간 활용이 절묘하다.

총 4층으로 이어진 건물 중 맨 위층은 안국선원의 백미라 꼽을 수 있는 높이 18m의 원형 법당이 자리하고 있다. 웬만한 체육관 천장보다 높은 것은 돔형 지붕이 있기 때문이다. 철골프레임으로 모양을 잡고 무게가 가벼운 티타늄으로 덮었다.

확 트인 높이에서 오는 장엄함과 아치형 법당의 부드러움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연화장 세계를 그려낸다. 천장에 달린 백열등마저 연꽃 모양이다.

▲ 높이 18m의 법당 내부. 돔형 지붕을 지지하기 위해 뒤쪽으로는 기둥이 둘러섰다.

전면 통유리 창으로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덕에 환한 분위기가 법당을 감싼다. 밝은 나무 바닥과 흰 벽 그리고 가운데 자리잡은 불단의 색감역시 화사하다. 문수, 보현보살이 협시한 석가모니상 뒤로 부처님의 10대제자와 여러 보살이 12m 높이의 나무 부조로 표현됐다. 전체적으로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색 덕분에 6m에 달하는 석가모니상이 위압적이지 않다. 동국대 미술학과 교수로 있는 청원 스님의 작품이다.

천장 양 옆으로는 티베트 깨달음의 사원이라는 뜻의 보드나트 스투파에 있는 지혜의 눈을 연상시키는 창이 자리하고 있다. 선원에 다니는 이들은 정신의 눈과 물질의 눈이라고 부른다. 두 개의 눈으로 우주를 실지실견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바람이 투영됐다.

참선 수행 최적의 도량
본당이 선원으로 쓰이는 만큼 2층 사무실을 제외하면 1층과 3층에도 소규모 법당이 마련돼 있어 신도들은 어디서든 참선할 수 있다. 법당과 각 방에는 3중 유리로 된 창을 달아 완벽에 가까운 방음을 보장한다. 실제로 창문을 닫으면 도로에서 지나가는 자동차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공부하는 이들을 위해 지은 도량”이라는 수불 스님의 말처럼 안국선원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탈의실이 갖추어져 있는 것 또한 그렇다. 탈의실에는 재가자들의 편의를 위해 법복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1, 2층에 남녀별로 마련해놓았다. 이곳에는 새벽부터 오후까지 참선공부에 충실한 신도들의 법복이 빽빽이 걸려있다. 언제든 편하게 와서 정진하라는 수불 스님의 배려다.

▲ 탈의실에는 이곳에서 수행하는 이들의 법복이 걸려있다.

이처럼 살뜰히 만들어진 도량이라면 누구든 경애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지어진지 10년이 지났지만 선원에는 사람 손을 타서 더러워진 곳을 찾기 힘들다. 큰 건물이라 관리가 어려웠을 텐데 곳곳이 깨끗하고 정갈하다. 도량이 공부하는 이들을 배려한 만큼 신도들 역시 주인의식을 가지고 선원을 내 집처럼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건물은 건축가의 의도로 지어졌지만 지금은 사용자들이 만들어가는 공간이 됐다.

인터뷰를 위해 오랜만에 안국선원을 찾았다는 박건 소장 눈에도 뿌듯함이 가득했다. 벽을 스치는 손길 하나에도 애정이 담겨 있다. “지금껏 설계한 건물 중에 가장 즐겁게 몰두했던 작품”이라고 했을 정도로 박건 소장은 선원에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조경, 화장실 타일, 방문의 서체까지 꼼꼼히 기획했을 정도다. 나선형 계단에는 층마다 관조 스님의 사진이 은은하게 조명을 받고 있으며 1층 입구에는 반가사유상이 유리관안에서 고고하게 빛을 발한다. 갤러리를 방불케 하는 센스가 돋보인다. 한국 사찰의 창조성을 실험해보고자 했던 수불 스님의 뜻이었다.

사찰을 가운데 두고 건축가, 스님, 신도 세 주체가 만들어낸 상호작용이 조화로운 곳, 바로 안국선원이다. 법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은 매일같이 이곳을 찾아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님을 부단히 깨달아가고 있다.

건축가 박건 소장

1953년 생. 오사카예술대학과 동대학원 건축과를 졸업하고 삼중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일본에서 건축설계를 하다 1996년 한국에 건축사사무소G.A를 설립했다. 주로 부산에서 활동해오고 있다. 동주대학, 부산가톨릭대학교 시설 다수를 디자인했으며 울산남목성당, 천주교 양산추모관, 울산 장대벌 순교성지 기념관 등의 종교건축물도 설계했다. 그 외 작품으로 해운대 우동 주상복합, 양산 다이아몬드 컨트리클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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