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사찰 건축 12. 천안 황룡사

‘누구나 다녀가고 싶은 절’
전통 대웅전과 현대 조화가 숙제
해법은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건축
기존 전각 재활용으로 가람 재배열
석조의 3m 처마 새로운 디자인
신축 북카페-휴식·위로의 공간
전 건물 지열냉난방 방식 도입

▲ 황룡사는 전통 양식의 대웅전과 현대적 건축물이 공존하는 독특한 형태의 가람이다.
“불자든 아니든, 저희 절의 신도든 아니든 누구나 지나가다 쉽게 들어갈 마음을 낼 수 있는 절을 짓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절이 종교적인 의미와 더불어 생활친화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건축적인 요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현대적인 건축을 선택했죠.” 충남 천안시 동남구 태조산길에 자리한 황룡사다.

숙제 ‘전통과 현대’
1960년대 터를 닦은 황룡사는 작은 인법당으로 시작했다. 2001년에 전통 양식으로 지은 대웅전을 마련했다. 그리고 2014년 현대적 건축으로 도량을 재정비하며 가람을 완성했다. 현대 건축을 선택한 현 주지 스님은 건축의 설계를 건축가 김개천(국민대 조형대학) 교수에게 의뢰했고 1 년여의 불사 끝에 가람을 완성했다. 앞서 말했듯 스님은 좀 더 확장된 개념의 절, 종교에 얽매이지 않는 절을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시대에 맞는 불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절이 신행활동을 위한 공간과 더불어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문화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절이라는 공간이 새롭게 인식됨으로써 ‘불교’의 인식도 더 넓어지고 결국 포교의 저변도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그런 원력으로 세워진 황룡사다.
하지만 불사 과정에서 한 가지 숙제가 있었다. 2001년 지은 대웅전이 전통방식으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현대적인 건축을 결정한 스님으로서는 새로 지어질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대웅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숙제였던 것이다. 숙제는 설계를 맡은 김 교수의 숙제가 됐다.

▲ ‘ㄷ’자형으로 이어진 건물에 관음전과 후원, 요사채가 있다.
새로운 시도
연면적 약 350㎡, 건축 면적 약300㎡의 황룡사는 전통적인 건축과 현대적인 건축이 뚜렷하게 양분된 구조를 하고 있다. 설계를 맡은 김 교수는 대웅전과 나란히 있었던 기존의 전각을 대웅전 앞의 빈 공간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신축 건물을 세웠다. 김 교수는 ‘대웅전과의 조화’라는 숙제를 가람의 구조를 재배열하는 것으로부터 풀어나갔다. 자칫 죽은 공간이 되어버릴 수 있었던 자리에 기존의 전각을 재활용해 배치함으로써 새롭게 들어서게 될 현대적인 건축물과 균형을 맞춘 것이다. 정자 형태로 해체되어 옮겨진 전각은 새로 지어진 현대건축의 공간과 대웅전이 차지하고 있는 전통적 공간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정자라는 기능성이 추가되어 실용적인 공간이 창출되는 효과를 얻었다.
새롭게 들어선 ‘ㄷ’자 형태의 현대 건축물에는 관음전과 후원, 요사채가 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독립된 건물 한 채가 있는데 이 건물의 용도는 새롭게 시도된 북카페다. 기존의 절에서 볼 수 있었던 다실과 비슷한 개념의 공간으로 볼 수 있지만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문화공간이라 할 수 있다. 황룡사가 신행활동과 더불어 문화적인 기능을 실천하는 중요한 건물이다. 북카페 건물과 정자 사이에는 현대식으로 디자인 한 연못을 배치해 찾는 이들의 마음과 눈을 쉴 수 있게 했다. 공간의 재배열과 북카페 등 설계적인 측면과 구체적인 실천 모두 새롭게 시도된 불사이다.

▲ 새롭게 디자인한 연못.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건축
그리고 김 교수는 전통(대웅전)과의 조화를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건축’으로 풀어갔다. 서로 ‘비슷함’으로써의 조화가 아니라 각자 독자적인 형태로 존재하되 서로를 돋보이게 함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산과 구름이 조화를 이루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김 교수는 전통과 ‘어울리는 건축’이 아니라 전통을 ‘돋보이게 하는 건축’을 생각했다.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각자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결국 조화롭게 상생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실천으로 김 교수가 생각한 상생의 건물은 ‘대웅전의 그림자’였다. 설계는 대웅전의 그림자를 그리는 것이었다. 다 짓고 나면 처음부터 같이 지은 건물처럼 생각될 수 있는 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그래서 건물의 전체적인 톤도 검정을 택했으며, 건물 전체가 형태를 많이 드러내지 않는다.
보는 이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황룡사를 처음 찾으면 현대와 전통이 각자의 모습을 하고 서로를 돕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혀 다른 양식이 전혀 다른 양식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현대적 건축물 옆에 선 전통의 대웅전이 현대적 건물로 인해서 이상하지 않고 돋보이며, 그와 반대로 전통 건물 옆에 새롭게 들어선 현대적 건축물 역시 전통의 도움을 받아 더욱 현대적인 건물로 돋보인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조화다. 선을 긋듯 현대와 전통을 양분시켜 놓은 가람은 양분의 느낌을 전혀 주지 않으며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 황룡사의 특별한 공간인 북카페.
‘전통’ 의식하지 않은 새로운 디자인
관음전이 있는 새 건물에는 새로운 디자인들이 적용됐다. 이 디자인들은 이전의 작업과는 다르게 전통을 응용하거나 리메이크하지 않은, 새로운 디자인들이다. ‘전통’을 의식하지 않은, 설계자의 디자인이다. 현대적인 사찰건축이 늘 숙제처럼 안고 왔던 전통의 문제를 이번 건축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으로 풀었다. 설계를 맡은 김 교수는 전통을 생각하지 않은 디자인들이 후에 전통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디자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했다. 전통에서 시작하지 않았지만 전통과 연결되는 디자인이길 바란 것이다.
새로운 디자인 중 두드러진 디자인은 관음전의 3m에 달하는 긴 처마이다. 사찰건축은 물론 일반건축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으로, 긴 처마로 인해 건물 본체의 모습은 그 모습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다. 석재의 긴 처마를 곡선의 목조 구조물이 받치고 있는데, 디자인은 전통의 처마와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전통 처마의 공포를 연상케 한다. 새 건물이 대웅전의 그림자처럼 서 있을 수 있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그 밖에도 규칙적인 배열을 탈피한 문살의 디자인이나, 유리 뒤에서 문살과 조명이 빚어내는 은은한 분위기 등은 그 동안 절에서 느껴왔던 정서의 새로운 형태로서 새로우면서도 사찰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과 상징성을 이어가는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적 공간
황룡사에는 다른 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이번 신축 건물 중의 하나인 북카페다. 주지 스님은 위로와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이 잠시라도 고단한 일상을 놓고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북카페를 생각했다고 했다. 황룡사의 북카페는 문화친화적이고 생활친화적인 황룡사의 특별한 건축이다. 스님은 북카페가 단순히 건물이나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이 황룡사를 찾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황룡사에는 부처님을 뵐 수 있는 법당도 있고, 법당에서 들려오는 독경 소리를 들으며 쉴 수 있는 북카페도 있는 것이다. 스님은 북카페를 잘 활용하는 것이 또 하나의 숙제라고 했다. 그래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스님은 현대적인 공간인 북카페와 전통적인 공간인 정자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많은 사람들이 황룡사를 찾아오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밖에도 황룡사의 모든 건물은 지열 냉난방 방식을 도입했다. 후원의 경우 바닥 난방 시스템을 병행하는 등 새로운 체계의 냉난방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비 절감은 물론 자연 친화적인 쾌적한 공간을 연출한다. 이렇듯 황룡사는 절을 찾는 이들이 좀 더 편하고 좀 더 문화적으로 머물렀다 갈 수 있도록 설계된 신 사찰건축이며, 전통과 현대가 상생하는 건축이다.

건축가 김개천 교수 인터뷰
“종교가 위로와 치유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있는 것이라면, 종교가 그 역할을 실천하는 공간(건축)의 수준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건물은 삶의 배경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건축은 건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효과적인 배경이 되어주기 위한 ‘노력’이다.”고 말했다. 특히나 그 건축이 종교적인 것일 경우 그 종교가 맡은 바 기능을 충분히 하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앞으로의 불교 건축도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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